마법서생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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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5화
5화
다음 날 종상현이 찾아왔다.
“하하하! 산책을 하고 있었구나, 우리 조카!”
“예, 종 숙부, 그동안 별고없으셨어요? 그런데 저…….”
“왜? 아버지에 대한 소식 때문에? 글쎄에?”
빙글거리며 약 올리듯 말하는 종상현을 보고 진용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아버지 소식을 듣고 싶다고 했어요?”
“그럼?”
“요즘 북경의 바람이 찬 것 같아서, 혹시 숙부님 댁에 뭔 일이 없나…….”
“에라이! 요 녀석. 지금 숙부를 놀리는 거냐?”
“헤헤헤…… 그러게 왜 순진한 조카를 놀리냐구요.”
“옜다!”
종상현이 불쑥 두툼한 서신을 내밀었다.
서신은 누가 뜯은 듯 미세한 자국이 나 있었다. 진용이 그것을 보고 눈을 반짝이자 종상현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황궁에서 나가는 서신은 검열을 거치게 되어 있다. 설마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알아요. 그래도 아버지의 서신은 내가 제일 먼저 보고 싶었는데…….”
“녀석, 네 아버지는 잘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라. 며칠 있으면 오실 게다.”
“걱정은요…….”
“아참! 아버지가 돌아오면 시험 치른다니까, 그 서신에 적힌 책들을 꼭 공부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좌우간 알아서 해라. 어려운 문제를 낼지도 모르니, 열심히 안 하면 아마 볼기가 성하지 못할걸?”
“예?”
조금 이상한 말이었다.
지금껏 시험이라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가끔씩 문제를 내기는 했어도. 그런데 전보다 더 어려운 문제라니?
“알…… 았어요. 열심히 하죠, 뭐.”
이상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고 봤다. 뭔 소리냐고 물어봐야 종 숙부도 모를 것 같았다.
종상현은 그 후, 스스로는 다 컸다고 생각하는 진용에게 어린놈이 대견하다는 둥, 혹시 밤중에 혼자 안 우냐는 둥 하면서 진용을 완전히 갓난아기 취급을 하다가 한 시진이 더 지나서야 돌아갔다.
가기 전 그나마 유모를 만나 아버지가 일한 대가라며 열 냥의 금자를 놓고 간 것이 가장 보탬이 된 일이었다.
진용은 그날 하루 종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보낸 서신 때문이었다.
서신은 모두 석 장이었다. 서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또 보고, 열 번도 더 읽어봤다.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몇 가지 있었다.
종상현이 말했던 시험에 관한 내용도 그랬지만, 서신에 적힌 내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우… 왜 이렇게 적으셨을까?”
[진용아, 공부는 열심히 하겠지? 한서 구권을 건네준 것이 일 년 전이니 이제는 다 읽었겠구나. 그럼 이제 삼권을 읽거라. 아비가 없다고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지하에 있는 네 어미도 네가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중략)…….
작년 십이월에 준 남산경도 다 읽었겠지? 그럼 아버지의 서고에 가져다 놓아라. 아버지가 돌아가는 즉시…….]
“한서를 받은 것은 이 년 전이었는데…… 게다가 백이십 권 중 유일하게 빠져 있는 삼권을 읽으라니. 또 뜬금없이 엄마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도대체…….”
멍하니 천장을 쳐다본 채 진용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내내 조용히 있던 세르탄이 슬며시 물었다.
‘시르, 왜 그렇게 고민하는 거지?’
‘응, 아버지가 보낸 서신 때문에. 아까 안 봤어?’
‘봤는데 그게 왜?’
진용이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세르탄이 말했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할 때는 이유가 있겠지.’
‘그러니까 그 이유 때문에 고민하는 거잖아.’
‘혹시…….’
‘혹시 뭐?’
‘놀리려고 그런 것 아닐까?’
‘…멍청한 최루탄!’
삐쳐 버린 진용은 세르탄이 말을 걸어도 들은 척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다음 날, 문득 진용은 아버지의 서신 중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하나 생각났다.
‘가만, 남산경도 아버지가 지하 서고에 가져다 놨는데?’
재빨리 세르탄이 나섰다.
‘지하 서고로 가보자, 시르.’
‘넌 빠져!’
솔직히 진용이도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전에 맘대로 들어갔다가 세르탄 같은 골칫덩이를 머릿속에 담아서 나오지를 않았던가.
저런 골칫덩이가 또 있다면 진짜 큰일 날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
“그래, 가보자.”
마침내 진용이 결심을 하고 지하 서고에 내려가겠다고 하자 세르탄이 환호성을 질렀다.
‘진작 그럴 것이지!’
‘시끄러! 지하 서고가 너네 집이라도 돼?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흐흐흐…… 난 그곳이 좋아. 음침한 것이 꼭 고향 같거든.’
‘흥! 좌우간 들어가서 쓸데없는 소리로 머리 아프게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네 영혼이 담겼던 팔각패를 부숴버릴지도 몰라.’
팔각패를 부순다고? 그건 안 되지. 그게 어떤 물건인데…….
‘아, 알았어……. 시르.’
일단 유모를 불렀다.
“예? 지하 서고에 들어가신다구요?”
“응, 아버지가 무슨 일이 있으면 지하 서고에 들어가서 알아보라고 허락하셨거든.”
“그래도 그 냄새 나는 곳에…… 어이구, 도련님. 그곳은 컴컴하고 먼지도 많아서 도련님처럼 어린 사람이 들어갈 데가 못 된다구요.”
“괜찮아, 전에도 들어가 봤는…….”
“예?”
“아아…… 전에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갔다는 말이야.”
유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어릴 때잖아요?”
“좌우간, 들어갈 테니까 혹시 늦으면 먹을 거나 아버지 방으로 가져다줘.”
대충 얼버무린 진용은 재빨리 유모의 방을 나섰다.
4
지하 서고는 전에 들어왔을 때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굳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에 있던 상자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 정도였다. 나머지는 크게 신경을 안 썼기에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상자는 아마 자신이 본 걸 알고 한쪽으로 치우셨나보다.
저벅, 저벅, 저벅.
세르탄마저 입을 다물고 있자 발자국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전과 다르게 편안한 느낌이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불빛 아래 보이는 광경도 전보다 훨씬 잘 보였다.
‘내가 밤눈이 밝아졌나?’
뜬금없이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다.
한서가 있는 책장을 훑어보았다.
“일권, 이권…….”
역시 없다. 뒤쪽을 아무리 찾아봐도 삼권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서고에 있는 한서는 한서 중에서도 매우 귀한 것이라 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직접 내주고 거두어가고 했으니 분명 제대로 꽂혀 있어야 옳았다.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근 한 시진에 걸쳐 자세히 훑어봐도 보이지 않는다.
“후우, 할 수 없군, 남산경이라도 살펴봐야겠다.”
하는 수 없이 두 번째 문제에 도전했다.
산해경의 남산경은 생각대로 지하 서고에 있었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작년 십이월에 내주었다고 했을까?
일단 남산경을 뽑아 들었다.
온갖 신기한 이야기가 쓰여 있는 산해경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였다.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는 책이 바로 산해경이었다. 남들이야 골치 아프다고 할지 몰라도.
실제로 종 숙부는 자신이 산해경을 좋아한다고 하자 제정신이 아닌 아이로 취급한 적도 있었다.
천천히 처음부터 읽어가던 진용의 시선이 멈춘 것은 남산경을 몇 장 넘겼을 때였다.
[영문극(影文劇)]
“뭐, 뭐야? 영문극? 원래 쓰였던 글이 아닌데?”
처음 보는 글이다. 눈이 한곳에 멎었다.
십이(十二).
열두 번째 쪽이다. 그 밑에 월(月) 자가 적혀 있다.
영문극이라면 진용도 안다.
아버지와 함께 놀이를 했던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 드물게 한 놀이 중 하나가 바로 영문극이었다.
영문극은 앞에는 문제를 내고 뒤에 해답을 보이지 않는 약품으로 쓴 후 나중에 불에 비춰서 해답을 알아맞히는 놀이였다. 문제는 뒤에 쓴 글이 그냥 봐서는 보이지 않고 촛불이나 유등불에 비춰야만 보인다는 것이다.
진용이 심심하다고 하면 아버지는 문제를 내놓고 혼자 풀게 했다. 그리고 지하 서고로 들어갔다. 절대 해답을 먼저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강조하고.
그것이나마 아버지하고 논다는 것이 좋았기에, 이후로 그 마저도 놀아주지 않는 아버지가 미워졌을 정도였다.
그런 영문극이 왜 여기에 쓰여 있단 말인가?
‘아! 서신!’
진용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 가지 난제가 풀렸다.
‘아버지는 나와 영문극 놀이를 하자는 거다, 행여나 내가 심심할까 봐서.’
하지만 다른 한 가지는 풀리지 않았다. 한서 삼권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쳇! 없는 것을 억지로 찾을 수도 없잖아. 일단 영문극 문제부터 풀고 보자.’
속 편히 마음먹고 밖으로 나가려 할 때다.
‘시르, 나가려는 거야?’
‘응.’
‘조금 더 있다 가면 안 될까?’
‘그래.’
‘정말?’
‘대신 너만 남아, 나는 나갈 테니까.’
‘……?’
‘키키킥!’
‘감히, 나 세르탄을 약 올리다니! 시르으으!’
세르탄이 꽥꽥대든가 말든가, 밖으로 나온 진용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황촛불부터 켰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서신을 펴서 첫 번째 장을 촛불 가까이 대어봤다.
진용의 눈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휘둥그레졌다.
“무슨 글이…… 이렇게 많이 적혀 있지?”
서신의 뒷면에는 세필로 적은 듯 수백 자의 글이 가득 적혀 있었다.
[용아야, 아마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나 당황하지 말고 아버지가 적어놓은 대로 행동해라. 용아는 똑똑하니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글에 대한 것은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그럼 종 숙부나 유모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단 건가?
그래서 이중 삼중으로 이 글을 보게끔 했단 말인가?
어린 진용조차 심각함을 느끼고 몸이 잘게 떨렸다.
“대체 왜……? 아버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진용은 다시 서신을 들어 불에 비춰보았다.
일단은 뭔 일인지를 알아야 대처를 할 것이 아닌가.
처음 당부의 말 아래에는 이상한 글이 쓰여 있었다. 마치 도가의 법문 같기도 하고 불경을 해석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글을 아버지가 써놨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모두 삼백육십 자의 글자였다. 근 반 시진에 걸쳐 다섯 번을 읽자 내용은 몰라도 일단 글자는 모두 암기할 수 있었다. 가히 천부적인 암기력이었다.
진용은 첫 번째 서신에서 눈을 떼고 다음 장을 집어 들었다.
두 번째 장에는 아무런 글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몇 글자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을 뿐이었다.
지하 서고 행 즉(地下 書庫 行 卽).
‘……?’
“즉시 지하 서고로 가라? 뭐야? 금방 갔다 왔는데……. 왜 처음부터 가라고 하지 않고……?”
세르탄이 넌지시 자기 생각을 말했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겠지. 아무도 몰라야 한다며?’
제법 그럴 듯한 말이었다. 자신 역시 세르탄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서신의 세 번째 장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여기에 답이 있을지도…….’
떨리는 손으로 서신의 다음 장을 촛불에 가져다 댔다.
‘……?’
단 한 글자만 보였다.
한서 삼권의 중간에 삼(三) 자만 있었다.
“뭐야? 뭔 뜻이지?”
‘삼…… 삼?’
“뭐?”
‘아니, 그냥…….’
“뭐라고 했냐니까?”
‘그냥…… 삼 자 반대편에 삼 자가 있어서 삼삼(三三)이라고 읽었을 뿐이야.’
‘삼삼? 삼십삼? 아니면 삼삼은 구?’
진용은 벌떡 일어섰다.
‘어디 가는 거냐?’
“지하 서고!”
세르탄은 입(?)을 다물었다. 행여나 또 좋아하면 가지 않을까 봐. 세르탄에게 진용은 그러고도 남을 심술쟁이니까.
지하 서고에 들어간 진용은 한서가 꽂혀 있는 서대를 바라보았다.
백 권이 넘는 한서가 빽빽이 꽂혀 있었다. 그중에 육권을 먼저 빼 들고 훑어봤다. 하지만 어디에고 아버지가 뭔가를 남겼음 직한 글은 보이지 않았다. 구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권을 서대에 꽂은 진용은 가만히 서서 삼십삼권을 바라보았다.
유추할 수 있는 책은 우선적으로 셋, 그중 이제 가장 가능성이 큰 삼십삼권만 남았다.
“후우…….”
크게 숨을 몰아쉰 진용은 삼십삼권을 빼 들고 처음부터 세세히 살펴보았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살펴가던 진용의 손이 멈춘 것은 삼십삼 쪽에 이르러서였다.
“이, 이건…… 아버지가 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