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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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3화
3화
함 속에는 단 하나의 물건이 있었다, 피보다 더 붉어 섬뜩하게 느껴지는 팔각패가.
그런데 팔각패의 겉면에 조각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마치 가면을 붙여 놓은 것처럼.
아니, 얼굴을 떼어내 붙여놓은 것인가?
삐죽한 이빨, 뾰족하니 솟은 귀, 그나마 통통한 볼 때문에 무시무시한 인상이 조금은 덜 무섭게 느껴졌다.
귀신의 모습일까?
지옥의 악마 얼굴을 새겨놓은 것일까?
게다가 조각상의 두 눈알은 진녹으로 빛나고 있었다. 팔각패의 핏빛 색깔과는 정반대로. 혼을 빨아들일 듯 괴기스럽게!
진용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싫어! 보기 싫어!’
왠지 무섭다. 처음에는 그리 무섭지 않았는데, 진녹색 눈을 보면 볼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안 되겠어. 더는 못 보겠어.’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뚜껑을 닫기 위해 손을 내뻗었다.
그때였다. 서두르는 바람에 진용의 손가락이 함을 여닫는 뾰족한 고리에 걸려 버렸다. 순간 엄지손가락에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야!”
느닷없는 고통에 손을 들고 잠깐 멈춘 사이.
뚝뚝!
서너 방울의 피가 함 안으로 떨어졌다.
급히 손가락을 입에 문 진용은 다시 상자를 닫으려다 인상을 찌푸렸다.
상자 안의 팔각패에 자신이 흘린 피가 몇 방울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진녹색의 눈동자 위에 붉은 핏방울!
아버지가 보면 분명 누군가가 들어온 것을 알 것이다, 그 사람이 자신이란 것도.
아마 단단히 화를 내실 것이다. 아버지는 허락받지 않은 일을 맘대로 하는 것을 싫어하시니까.
‘칫, 괜히 들어왔잖아.’
진용은 핏방울을 닦아내기 위해 손을 함에 넣었다. 팔각패를 꺼내 닦을 수도 있었지만, 왠지 께름칙한 패를 꺼내기가 싫었다.
그때,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핏방울이, 자신이 흘린 핏방울이 팔각패의 진녹색 눈동자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스르르…….
“어어어?”
진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처 닦을 사이도 없이 핏방울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진용이 눈을 깜박이며 그 광경을 바라볼 때였다.
화아아악!
진녹색 눈동자에서 밝은 녹광이 쏟아져 나왔다.
“헉! 뭐, 뭐야?”
주춤, 뒤로 한 걸음 물러선 진용은 깜짝 놀라서 눈을 왕방울만 하게 떴다.
녹색 광채가 어찌나 밝은지 순간적으로 눈앞이 멍해졌다.
그런데 눈을 떼려 해도 뗄 수가 없다.
감으려 해도 감을 수가 없다.
그뿐이 아니다. 고개조차 돌아가지가 않는다.
마치 녹색 광채와 자신의 눈이 하나로 연결된 것만 같다.
시간이 지나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일곱 살 아이가 견디기에는 지나친 고통이었다.
“아악! 머리가 너무 아파! 아버지!”
진용은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래도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눈도 여전히 감기지가 않고.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무섭기만 하다.
제발 악몽 같은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뿐.
그러나 고통은 멈출 줄을 모르고,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진용의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 아니 녹색으로 물들었다.
그 사이 신비하면서도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조각상의 눈에서 뿜어진 녹색광채가 진용의 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기쁨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듯 출렁거리면서!
얼마나 지났을까. 조각상에서 뿜어지던 녹색광채가 마지막 꼬리를 신나게 흔들며 진용의 눈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더 이상 조각상에서 녹색 광채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조개질 것 같던 지독한 고통도 녹색 광채가 사라짐과 동시에 가라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머릿속이 흐릿하니 안개 속을 헤매는 것만 같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진용은 떨리는 눈을 돌려 함 안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핏방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녹색이었던 팔각패 조각상의 눈동자가, 말라비틀어진 낙엽처럼 짙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어떡하지? 피가 눈 속으로 스며들었나 봐.”
큰일이다. 아버지가 알면 혼날지 모르는데.
하지만 혼나는 것은 나중 일이다.
“치이. 좀 빨리 오시지.”
아버지가 빨리 돌아오셨으면 지하서고에 내려오지도 않았을 것 텐데.
조금 전의 고통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입술을 삐죽 내민 진용은 눈을 비벼보았다.
눈은 이제 아프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자 몸을 일으켰다.
“나가야겠다. 무서워…….”
진용은 함과 상자를 닫고 원래 위치에 밀어놓은 후 돌아섰다.
그때였다.
“응?”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속삭이는 느낌.
때로는 웅웅거리는 것이 누군가가 어디서 크게 웃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때로는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했고.
-여긴 어디지? 이놈은 누구지?
-크하하하하! 어쨌든 드디어 봉인에서 풀렸도다!
-감히, 감히 나를 봉인해? 두고 봐! 가만 안 둘 거야!
진용은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는 계속 들려오는데.
그때 문득 드는 생각. 진용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서, 설마……?”
머릿속?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인가?
‘뭐야, 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야? 내가 미친 건가?’
-돌아가면 모조리 쓸어버리겠어! 흥! 나를 봉인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어! 일단 이 인간부터…….
‘누가 말하는 거지? 이상하네?’
웅얼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머릿속이 왱왱 울리는 게 영 께름칙했다.
‘기분이 이상해, 밖으로 나가야겠어.’
그런데…….
“아악!”
또 머리가 아파왔다.
조금 전보다 고통이 더 심했다.
연속된 고통을 견디지 못한 진용이 앞으로 꼬꾸라지기 직전, 머릿속에서 녹광이 번쩍이는 두 개의 눈동자가 보였다.
팔각패의 눈동자와 똑같이 생긴 눈동자가.
그리고 갑자기 기이한 울림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조금 전보다 훨씬 뚜렷하게.
‘네 아르시스 네스 마, 앙데 세르사 지우(너의 영혼을 나에게 다오. 그럼 세상을 지배하게 해주마!)!’
아무래도 자신에게 무슨 말을 거는 것 같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뭐, 뭐야? 왜 내 머릿속에서 떠드는 거야? 나가!”
진용은 소리를 지르며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머릿속에 귀신이 든 것 같다. 팔각패에 조각되어 있던 뿔난 녹색귀신이.
귀신이 들면 헛것이 보이고 헛소리가 들린다고 했는데 자신의 상황이 똑같았다.
‘앙데 세르사 지야! 세르아 세가타 지우!(세상을 지배하게 해준다니까! 세상에서 가장 힘센 인간이 되게 해주마!)
강압적인 말투!
진용은 무슨 말인지 몰라도 고개를 끄덕이면 절대 안 될 것 같았다.
귀신에게 홀리면 혼을 빼앗긴다고 했다. 혼을 빼앗기면 가족조차 몰라보고, 미쳐서 날뛰다가 죽는다고 했다.
절대 질 수 없었다. 절대로!
“싫단 말이야! 내 머릿속에서 나가, 이 귀신아! 나가아아!”
잠시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머릿속 녹색 눈동자가 흔들리는 듯 느껴졌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뿔난 녹색 귀신이 당황한 듯했다.
사실이 그랬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상황이 다르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빌어먹을! 아버지는 도대체 나를 어떤 식으로 봉인 시킨 거야? 혹시 봉인할 때 실수한 거 아냐?
하찮은 인간 따위는 위대한 마족의 음성에 대항할 수 없다.
위대한 마족의 음성에는 인간의 정신을 억압하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으니까.
그러니 자신이 그런 말을 하면 영광으로 알고, 아니면 두려움에 잔뜩 질려서라도 부들부들 떨며 명을 받들어야 한다.
이런 꼬마 정도는 오줌을 질질 싸는 게 정상이고.
그런데…… 조금도 두려워하는 말투가 아니다.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악을 쓰며 화를 낸다.
그렇다면 차선의 방법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인간의 수명은 기껏해야 백 년, 그 시간쯤은 자신에게 아무 것도 아니니까.
짜증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자유를 찾기 위해선.
‘다스 그데아나 리(그럼 몸이라도 나에게 맡기면)…….’
잠깐 멈췄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조금 전보다 말투가 훨씬 부드러워진 것 같다.
여전히 알아듣지 못할 언어. 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진용은 더욱 빠르게 도리질 쳤다. 미친 듯이!
“말하기 싫어! 귀신 따위에게 지지 않을 거야! 꺼져!”
‘다스 그데 아르시슈 아 네스 마 그랑데(그럼 몸도 영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 말이냐)?’
“몰라, 몰라! 다 싫어! 내 머릿속에서 나가, 귀신아!”
그때였다.
바늘로 쑤시는 듯한 지독한 고통에 머리가 띵해졌다.
하지만 진용은 무의식중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고 더욱 세게 고개만 저어댔다.
“싫단 말이야! 나가! 제발 나가줘!”
고개를 흔들 때마다 눈물이 좌우로 흩뿌려졌다.
진용이 굴복하지 않자, 밀려오던 고통이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으으음… 하르지 언(지독한 놈)! 지스가르당, 네 수그리데사라 앙뤼. 사마루? 네스 하리야 무(하는 수 없군. 네 허락이 있기 전에는 조용히 있지. 됐나? 나도 더 이상은 양보 못해)!’
“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몰래 들어와서 벌을 받는가 봐요!귀신이 머릿속에 들어왔어요!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요!”
‘자쉬(젠장)!’
이해할 수 없는 한마디와 함께 고통이 완전히 수그러들었다
그 즈음, 갑자기 머릿속이 묵직해졌다.
누군가가 머릿속을 헤집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 뿔난 녹색 귀신은 무슨 귀신인데 왜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온 걸까?
수많은 의문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하지만 의문을 푸는 것은 나중 일이다. 더 이상 이곳에 있기가 싫었다. 무서웠다.
“나가야겠어!”
진용은 잠깐 머릿속이 조용하자 벌떡 일어섰다. 나가서 한잠 푹 자면 귀신도 그냥 나가지 않을까?
그때 머릿속의 묵직함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말이 들렸다.
‘…이름이 뭐냐?’
“흡!”
조금 전과 같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제는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다.
‘나 세르탄의 잠을 깨운 그대, 이름을 말하라!’
“뭐, 뭐야? 누가 말하는 거지? 싫어! 말하지 않을 거야!”
‘순수한 피의 영혼으로 연결된 자여, 이름을 말하라니까!’
이제 머릿속에서도 보이지는 않지만 그 뿔난 녹색 귀신이 분명했다.
“나, 나는…… 싫…… 으으……. 흑! 말하지 않는다니까! 내 머릿속에서 나가란 말이야, 귀신아!”
‘시르……? 네 이름이 시르인가? 여긴 어디지, 시르?’
“…….”
‘너의 머릿속을 살펴봤다, 네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런데 희한한 언어군, 시르.’
진용은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이상하게 불리는 것이 싫었다.
“난…… 시르가 아냐!”
‘시르가 아니라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한 번 각인된 이름은 지워지지 않으니까. 그러니 나는 이제부터 너를 시르라고 부를 거다.’
“시르 아니라니까!”
진용은 빽 소리를 내지르고는, 눈물을 닦으면서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흑흑, 정말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몰래 안 들어올 게요.”
‘아버지? 시르, 네 아버지는 누구지?’
“귀신은 신경 꺼!”
4
지하 서고에서 나온 지 한 시진이 지났다.
진용은 넋이 반쯤 나간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머릿속에 귀신이 들어오다니.
벌을 받은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왜 귀신이 머릿속에 들어온단 말인가.
‘나는 귀신이 아냐, 시르! 나는 마계의 대전사다!’
아무리 아니라고 떠들어도 진용에게 세르탄은 귀신이었다. 줘도 안 먹을 대전사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대전사고, 귀신이고, 다 싫어!’
굳이 입을 벌리고 말하지 않아도 귀신이 자기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안 것은 조금 전이었다. 생각만으로 ‘이제 제발 나가줘!’ 했는데, 머릿속에서 공명이 울리며 말이 전해진 것이다.
‘나도 나가고 싶은데, 당장은 방법이 없어! 나도 답답하단 말이다, 시르!’
그 이후로는 머릿속에 대고 생각하듯이 소리쳤다.
‘들어올 줄 알면 나갈 줄도 알아야 할 것 아냐?’
‘그걸 알면 내가 왜 너 같은 꼬맹이의 머릿속에 있겠냐! 벌써 나갔지!’
‘바보같이, 나갈 줄도 모르면서 들어오기는 왜 들어와!’
‘바, 바보! 가, 감히!’
‘시끄러!’
환장할 일이다. 만만치 않은 꼬맹이다.
세르탄은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제길, 대체 여긴 어디야? 왜 이렇게 인간이 기가 센 거야? 이러다 영영 못 나가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