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39화
무료소설 위드 카일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39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2권 - 14화
“무엇으로 드릴까요?”
여자 종업원의 물음에 위드는 가장 맛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은 후에 그것으로 가져다 달라고 주문했다.
“저녁을 먹은 후엔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해.”
위드의 말에 피에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위드는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피에나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오긴 했지만 솔직히 네드벨 아카데미에서 그녀를 받아 줄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히덴의 조언을 통한 한 가지 방법만을 갖고 왔기에 그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끝이었다.
피에나를 어떻게든 설득시켜 다시 프레타 성으로 돌려보내던가, 위드 자신이 네드벨 아카데미를 포기하던가, 둘 중 한 가지 선택뿐이었다.
어떤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반드시 둘 중의 하나는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위드는 알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피에나만 프레타 성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단 사실을.
‘네드벨 아카데미를 포기해야만 하나?’
검술 실력만 놓고 보자면 위드는 네드벨 아카데미 졸업이 가능한 리피트 상급이다.
하지만, 단순히 졸업을 하기 위해 네드벨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이 아니었다.
리피트 상급의 실력이라고 하더라도 네드벨 아카데미에서 배울 것은 많았다. 실질적으로도 불과 한 학기만을 다녔지만 위드는 많은 것을 배우며, 깨우쳤다. 그리고 네드벨 아카데미를 다니며 마음이 맞는 인재들과의 만남도 위드에게는 언제고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을 보면 분명 도움이 될 일이었기에 위드는 네드벨 아카데미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종업원이 가져다 준 음식을 오물거리며 먹는 피에나를 보며 위드는 씁쓸하게 웃었다.
‘모두를 가질 순 없겠지.’
자신이 바란다고 모든 것을 갖는 존재는 없다.
신. 그래, 신이라면 가능할지도. 아니, 어쩌면 그건 신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맛있어?”
위드의 물음에 피에나는 포크로 음식을 찍어 먹다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부지런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위드와 맛있는 음식.
피에나가 유일하게 집착 아닌 집착을 부리는 것이다.
“자.”
피에나가 포크에 음식을 찍어 위드의 입 앞으로 내밀었다. 그는 고맙다는 듯 웃고는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었다.
“맛있어?”
“응.”
“헤헤.”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내게 재밌는 일이 상대에게도 재밌고, 내게 맛있는 음식이 상대에게도 맛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행복을 느끼기 마련이다.
“와악! 역시 위드다!!”
식당 안을 울리는 커다란 외침.
“위드으으으으으!!”
와락!
“……!”
“……!”
눈 깜짝할 사이에 누군가가 위드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 모습에 위드는 물론이고, 그의 앞에 앉아 있던 피에나와 식당의 모든 이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위드!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흑흑!! 위드도 나 보고 싶었지? 내가 막 그리웠지? 설마 밤에 잠을 설친 건 아니겠지? 히힛!”
“라, 라샤?”
위드의 당황스런 음성.
“역시! 위드도 내가 그리웠던 거구나!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여전히 위드의 품은 따뜻하구나.”
부비적, 부비적.
라샤는 피에나만이 할 수 있는 위드 품에 얼굴 비비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댔다.
“라샤!!”
얼굴이 붉어진 피에나가 라샤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자 그녀가 기겁을 하며 급히 고개를 돌렸다.
“피, 피에나?!”
라샤는 그제야 위드의 앞에 카울을 쓰고 있는 존재가 피에나임을 알 수 있었다.
“피, 피에나가 여긴 어쩐 일로?”
피에나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라샤는 은근슬쩍 위드의 뒤로 바짝 달라붙었다. 혹시라도 모를 일에 위드를 방패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피에나도 네드벨 아카데미에 가게 되었거든.”
위드의 말에 라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뭐?! 어, 어떻게? 네드벨 아카데미는 추가 입학 같은 것 없는데? 그리고 피에나면 굳이 네드벨 아카데미에서 배울 필요도 없잖아?”
“그렇기는 한데…….”
“비켜!”
“으엑!”
털썩!
피에나는 재빨리 라샤를 밀쳐내며 위드의 곁에 바짝 붙었다. 내동댕이쳐지듯 옆으로 밀려나 바닥에 엉덩방아를 찐 라샤는 너무한다는 듯 피에나를 바라봤다.
“피에나 너무해!”
라샤의 불만스런 외침에도 피에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한 번 위드에게 달라붙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사납게 눈을 떴다.
“위드! 피에나가 날 이렇게 밀었어! 너무하지? 피에나는 너무 무서워! 히잉!”
위드는 갑작스런 라샤의 등장에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우걱우걱.
쩝쩝! 꿀꺽!
“라샤, 좀 천천히 먹어.”
그 말에 라샤가 입 안으로 고깃덩어리를 집어넣다 말고 위드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여기서 이렇게 위드를 만나게 돼서 정말로 다행이야. 나 사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너무 배가 고팠거든. 흑흑!”
우는 척 연기까지 하는 라샤의 모습보다도 위드는 그녀가 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 한 거야?”
위드의 물음에 라샤가 입 안에 넣은 고깃덩어리를 씹어 삼키고는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사실은…… 네드벨 시로 오는 중에 돈을 잃어버렸거든.”
“돈을? 언제부터?”
라샤는 포크를 입에 물며 대답했다.
“분명히 어제 저녁까진 돈이 있었거든?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돈이 하나도 없는 거 있지? 그래서 아침부터 쫄쫄 굶으면서 여기까지 왔어. 다행이도 지나가다가 이 식당에 위드가 있는 걸 보고 들어온 거거든. 히힛!”
“날 보고 들어왔다고?”
위드가 묻자 라샤는 뭘 먹을까? 하는 행복한 얼굴로 음식들을 바라보다 사과 소스에 곁들여져 얇게 썰려 있는 돼지고기 한 점을 포크로 찍어 들어 올렸다.
“저기서 보면 다 보여.”
라샤는 간단하게 식당의 입구가 아닌 커다란 유리창을 가리키고는 포크로 찍어 올린 돼지고기를 입에 쏙 집어넣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저기?”
위드가 고개를 돌려보니 확실히 바깥쪽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우울우물…… 위드랑 나는 운명적인 관계가…… 꿀꺽!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배고파 쓰러지기 직전에 위드를 만나서 이렇게 음식을 먹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운명?”
라샤의 말에 위드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샤는 여전히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골고루 집어 먹으며 말했다.
“사실, 내가 드래번을 타고 엘리아네 집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 테고, 우리가 로크에게 습격당해서 몬스터 땅에 떨어져 가까스로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한 것 역시 운명적이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함께 네드벨 아카데미에 다닌 다는 것도 운명적이고! 그렇지?”
자꾸만 운명이니 어쩌니 하는 라샤의 모습에 피에나는 그녀를 사납게 노려봤다. 그러나 그 정도에 겁을 먹을 만큼 라샤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피에나와의 관계를 위드가 원만하게 풀어주지 못했다면 결코 그녀의 눈빛에 태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샤는 피에나의 따가운 눈초리에 빙긋 웃었다.
“피에나와 나도 운명적인 관계니까 너무 그러지 마. 나는 사실 피에나가 너무 좋거든! 히힛!”
피에나는 대꾸 한 마디 하지 않고 여전히 노려봤지만 라샤는 웃음을 한 차례 더 지어보이고는 음식을 뱃속에 넣는 일을 착실하게 진행시켰다.
피에나는 사실 지금 너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동안 줄곧 위드와 둘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라샤가 끼어들었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살갑게 행동하는 라샤를 뭐라고 할 수도 없었으니 피에나로서는 이래저래 말도 못하고 그저 그녀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피에나, 이것 좀 먹어.”
위드가 손수 음식을 건네주자 피에나는 라샤를 노려보던 눈빛을 거짓말처럼 지우며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라샤가 아니었다.
“위드! 나도 줘! 나도 줘!”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라샤의 모습에 위드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라샤, 네가 먹어.”
“히잉! 위드는 피에나만 챙겨주고! 라샤는 조금도 챙겨주지 않아! 불공평해!!”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라샤는 손을 뻗어 음식을 집어 먹었다.
‘라샤의 성격은 참…… 그러고 보니…….’
위드는 라샤를 바라보다 떠오른 것이 있어 물었다.
“라샤.”
“왜? 나한테 사랑 고백이라도 하려고? 이런 자리에선 조금 쑥스러운데…….”
“…….”
얼굴까지 살짝 붉히는 라샤의 모습에 위드는 도대체 그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로 난감했다. 무엇보다도 바로 곁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에나의 살기는 위드는 물론이고, 라샤까지도 살짝 굳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위드는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라샤도 페르만 왕국 출신이야?”
라샤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
“아니야?”
“응, 난 그라다 왕국 출신이야.”
그라다 왕국 출신이라는 소리에 위드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페르만 왕국과 그라다 왕국이 이웃 국가라고는 하지만 여름 방학은 고작해야 두 달뿐이었다. 라샤는 돈이 없어서 드래번을 타지 못한다고 했으니 이래저래 이동하는 시간만 따져도 결코 여름방학 내에 페르만 왕국과 그라다 왕국을 왔다갈 여유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집에는 갔지?”
“물론이지!”
짧게 대답을 하며 라샤는 쉬지 않고 음식을 집어 먹었다.
“괜찮다면 라샤의 신분을 알고 싶은데.”
위드의 말에 라샤가 음식을 먹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왜 갑자기 나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거야? 설마…… 정말로 내가 좋아진…… 피에나 장난이야! 장난! 아하하하하!!”
피에나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게 변하자 라샤는 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는 라샤의 행동에 위드는 피에나를 달래며, 다시 말했다.
“내 생각에 라샤는 분명히 귀족이거든. 그런데 돈이 없어서 드래번을 타지 못한다는 거나, 돈을 잃어버려 하루 종일 굶었다거나…… 조금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위드의 말에 라샤가 빙긋 웃었다.
“하긴, 나를 돈 없는 귀족으로 보기엔 좀 밝지?”
라샤의 물음에 위드는 솔직하게 답했다.
“너무 밝지.”
“성격이야, 성격! 원래부터 이렇게 타고난 성격! 나도 가끔은 내가 엄청 부잣집에서 자란 것 같다니까! 아하하하!”
그렇게 말을 하곤 라샤는 다시 음식을 입에 넣는 것에 집중했다. 위드는 라샤가 더 이상은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느꼈기에 더는 그녀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그렇게 세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음식만을 먹었다. 어느 정도 배가 채워졌을 때, 라샤는 숨을 깊게 뱉어내며 배를 두드렸다.
팡팡!
“위드 덕분에 오늘은 내가 정말로 포식했다! 나중에 이 빚은 반드시 갚을게! 원한다면 오늘 밤이라도 난 괜찮…….”
“라샤, 그런 장난은 별로.”
“히힛!”
혀를 배꼼 내밀며 라샤는 눈을 찡긋거렸다. 그러다 문득, 피에나를 바라보곤 진지하게 물어왔다.
“그런데 피에나는 정말로 네드벨 아카데미에서 생활할 수 있는 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
피에나가 위드를 바라보자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되도록 해봐야지.”
***
네드벨 아카데미 교장인 하워드 워커는 학생의 신분으로 당돌하게 자신에게 거래를 하고자 찾아온 상대를 지그시 바라봤다.
‘준남작이라고 했던가?’
네드벨 아카데미 설립 이후,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귀족이 입학을 한 것은 페르만 왕국의 프레타 영지를 책임지고 있는 나이 어린 준남작, 위드 카일러가 최초였다.
유명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기에 하워드 워커 역시 위드를 알게 모르게 주시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가 자신과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비록 나이가 어리기는 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을 귀족이기 때문이다.
“자네의 말인즉, 피에나라는 여인을 네드벨 아카데미에서 생활하게 해 달라? 그것도 자네와 단 둘이 한 방에서?”
“그렇습니다.”
“허허!”
어처구니가 없다면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네드벨 아카데미가 설립되고, 하워드 워커가 교장직을 맡아 지금까지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동안 위드처럼 얼토당토 않는 거래를 하고자 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선례라는 것을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위드의 대답에 하워드 워커는 말하기 편해서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내게 말하는 것들은 아주 치명적인 선례로 남을 수도 있네. 다시 말하면, 네드벨 아카데미 측에서 본다면 상당히 불편한 선례가 된다는 말일세.”
“알고 있습니다.”
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아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자신이 하워드 워커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쉽게 허락해 줄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선례가 단순히 그것으로만 끝난다면 다행이겠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네. 빈틈이 보이면 그 틈을 더욱더 넓히고자 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지. 틈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건물이든 사람이든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위드는 하워드 워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이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