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215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215화
그는 영웅인가? (1)
달빛이 은은하게 운치를 만들었다. 그 사이로 뭉게구름이 지나가니 운영(雲影)이 지면을 비추었다. 달빛과 구름, 은은하게 불어오는 미풍(微風)은 감상적인 마음이 들게 하였다. 운치를 즐기는 선비라면 밤의 정취에 취해 있겠지만 어두운 그림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사사사사삭!
빠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상당히 많은 그림자가 움직임에도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절정의 신법을 구사하는 고수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노리는 곳은 안휘성 최대의 문파인 남궁세가였다.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세 명의 무인이 이들을 이끌었다.
“막아서는 놈은 모두 죽여라.”
무인들을 모으고 있다는 것 자체가 혈룡교에 대항하기 위한 수작이었다. 그런 수작을 그대로 넘겨줄 이유가 없었다.
암천신검 독고성은 기습을 하면서도 전혀 거리끼지 않았다. 어두운 하늘의 주인이라는 별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밤에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무섭기까지 했다. 그 뒤로 구극검귀 최상락과 일도불패 면역상 장로가 협조하여 움직였다.
남궁세가는 불이 밝혀져 있고, 경비가 삼엄했다. 밤이 되자 무인들의 경비는 두 배로 강화가 되었다. 안휘성뿐만 아니라 사천성의 무인들까지 모여들기 시작하는 때였다. 남궁세가의 가주인 제왕신검 남궁혁성이 미리 대비를 시켰다. 놈들이 이런 시기를 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대비한 것이다.
속속 모여든 무인들의 수가 족히 오천은 되었다. 사천성에서 사천의 패자 중 하나인 사천당가의 무인들이 먼저 도착했다. 천수암제 당지독이 부르니 두말하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남궁세가의 가주실 창천각.
창천각에 사천당가의 가주인 만천독군 당사현이 남궁혁성의 옆에 자리했다. 그 옆으로 독봉 당묘정과 소가주 독룡 당건하까지 자리했다.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닐세. 가주가 된 날 오지 못해서 미안하네.”
“지금은 무림의 위기입니다. 같이 힘을 합쳐 적을 물리쳐야 할 시기입니다.”
“당연한 말이네. 당가도 절대 놈들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네!”
남궁혁성은 당가가 발 벗고 나서주어서 안도를 했다.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문제였다. 한시라도 빨리 무인들을 모아 혈룡교에 대적해야 했다. 혈룡교가 무림맹에 자리하고 선포한 것은 중원 무림으로서는 상당히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사현은 왜 남궁혁성이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운이 절대 자신보다 떨어지지 않았다. 또한 그 옆으로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 빙화 남궁태희는 절대 인간의 아름다움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과연 중원제일미라 불릴 만하구나!’
당사현의 아들인 독룡 당건하는 처음 보는 남궁태희의 아름다움에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당건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녀석, 좋을 때군.’
남궁세가와 사천당가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혈연관계로 맺어지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걸 알기에 당사현이 남궁혁성에게 넌지시 말을 넣었다.
“아름다운 동생을 두었네!”
“제 동생이지만 조금 괴팍한 편입니다.”
‘윽!’
농담 한 번 잘못하다 빙화의 예리한 검에 찔끔한 남궁혁성이다.
“농담도 심하구먼. 그런데 이처럼 과년한 처자면 혼사를 받을 때도 되지 않았나!”
‘응? 호오!’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나 했더니 당건하가 남궁태희를 보는 시선을 보고 알게 되었다. 물론 사천당가와 잘되면 상당히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남궁태희가 좋아하는 사내는 사천당가보다 더 중요했다. 가문의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남궁태희였다. 가히 사명감에 불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남궁혁성은 당사현의 의도를 파악하고 바로 대답을 했다. 이런 일은 바로 거절해야 했다. 흐지부지하게 해놓으면 나중에 귀찮아질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이미 혼인할 사람이 있습니다. 참 좋을 때가 아닙니까!”
“커흠! 그렇다면 다행이구먼.”
혼인할 사람이 있다는 말에 당사현이 헛기침을 했다. 그와 더불어 당건하의 표정이 바뀌었다. 마치 자신의 여인을 빼앗긴 것처럼 질투심이 들었다. 그래서 당건하가 바로 물어보았다.
“빙화께서 혼인하신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녀석이!’
남궁혁성과 남궁태희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당사현도 못마땅한 눈치를 보냈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도 죄였다. 말 한마디에 목숨이 오가거나 중요한 협상이 물 건너 갈 수도 있었다.
“풍운장원의 장주와 반년 후에 혼인하기로 했네.”
풍운장원의 장주라면 당지독이 머물고 있는 장원을 의미했다. 그곳의 장주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무가의 인물이 아닌 장원의 장주와 혼인시킨다는 말에 당사현은 의아해했다.
“한 번 만나고 싶군요!”
당건하가 상당히 도전적인 말을 하자 남궁혁성과 남궁태희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누굴 만나겠다고 하는 것인가! 잘 못하면 사천당가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천악은 사천당가의 당지독이라 해도 덤비면 그냥 두는 위인이 아니었다. 혈룡교에 대한 문제만 해도 머리가 복잡한 시기인데, 이런 자질구레한 일이 발생하면 분란만을 초래한다.
남궁태희는 당건하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지만 한 가지 당부의 말을 해야 했다. 당건하로 인해 벌어지는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우선은 천수암제 어르신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거예요!”
날이 서 있는 음성이지만 당건하는 그 목소리마저도 천상의 음률처럼 느껴졌다. 또한 당지독을 만나보라는 말은 허락을 구하라는 뜻으로 여겨졌다.
“그럼, 오늘은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실 테니 푹 쉬십시오!”
“그러겠네.”
당가의 인물들이 모두 나가고 나서 남궁혁성과 남궁태희가 잠시 남아서 얘기를 나누었다.
“정말 철이 없는 녀석이지 않느냐?”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네가 꽤 냉정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어서 고맙다.”
남궁태희는 분명 당지독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과연 당지독의 반응이 어떠할까! 그 결과가 눈에 선하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말을 하지도 않고 무조건 검을 날리는 빙화였다. 지금은 검보다 말이 더 날카로워졌다. 천악을 만나면서 성격이 상당히 많이 바뀌고 있었다.
‘무섭구나! 태희야!’
남궁세가로 사천당가의 가솔을 부른 것은 당지독이었다. 당지독이 풍운장원에서 남궁세가로 왔다.
오랜만에 자식들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특히 독봉 당묘정에 대한 당지독의 애정은 남다르다 할 수 있었다. 다른 것은 제쳐 두고 당묘정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버님! 더욱 정정해지셨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너도 제법 의젓해졌구나!”
“아직도 그 소리입니까.”
당사현이 사천당가의 가주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당지독의 아들이었다. 당지독은 간간이 당사현을 놀려먹는 버릇이 있었다.
“할아버지!”
“어이쿠, 내 손녀! 이제는 점점 이뻐져서 할아비의 눈이 다 부시는구나!”
손녀에 대한 콩깍지는 여전했다. 빙화, 금룡화가 아름답다 하나 당묘정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인물이 당지독이었다. 이제야 이곳에 왔으니 천악과 잘 엮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천악이 당가와도 친분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할아버님!”
“건하도 잘 지냈느냐?”
“그렇습니다, 할아버님!”
“오랜만에 가족을 보니 내 마음도 흡족하구나!”
당건하가 잠시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할 말이 있는 거냐?”
“풍운장원의 장주를 아십니까?”
“알고 있다면, 그건 왜 묻는 것이냐?”
“남궁세가의 빙화 소저와 혼인한다는데 사실입니까?”
당지독은 손자의 말을 듣자 표정이 변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찬바람 가득한 혹한으로 변한 것이다.
“너 그놈을 왜 보려는 것이냐?”
“사천당가를 위해서 남궁세가와 유대관계를 맺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남궁세가는 실수를 하는 것이니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네가 적임자다 이거냐?”
“그렇습니다, 할아버님!”
당건하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을 했다. 정말 하나도 빼지 않고 정확하고 솔직하게 말을 했기에 당지독이 헷갈리지 않고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남궁세가에 왔으니 빙화를 보았을 것이고, 첫눈에 반했을 것이다. 빙화와 혼인한다는 자가 별 볼일 없다고 판단하였고, 자신이 나선다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혼인을 한 상태다. 물린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네가 마음을 바꾸어라!”
우선은 손자이기에 조용히 타일렀다.
당지독이 많이 참고 있는 가운데 당건하는 절대 안 된다고 말을 했다.
“제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풍운장주를 만나 얘기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얘기할 건데?”
“점잖게 말을 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험하다는 것을 알게 해줄 생각입니다!”
‘허!’
당지독의 입가에 어이없는 한숨 소리가 나왔다. 사천당가의 소가주이고, 부족함 없이 자랐으니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강호의 일이기에 일반인이 생각할 수 없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극소수만 알고 있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대륙 전체를 통째로 부숴버릴 수 있는 괴물이었다.
당지독은 말로 타이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판단했다. 그리고 화가 치밀었다. 손자 녀석이 만약 천악을 만나서 허튼짓을 하면 정말 큰일이었다. 천악은 친분이 있다고 망설이는 녀석이 아니었다.
“건하만 남고 너희들은 나가 있어라!”
당지독은 당사현과 당묘정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 두말없이 당사현과 당묘정이 나갔다.
밖으로 나간 당사현은 당지독의 표정과 말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버님이 왜 그러는지 너는 아느냐?”
“알면 다쳐요. 모르는 척하세요.”
당묘정도 어느 정도 눈치가 있었다. 풍운장원의 장주가 군천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날 그가 보여준 광폭한 기운에 폐관수련까지 해야 했던 당묘정이었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방에 남은 당지독과 당건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조손간의 오붓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포기할 수 없겠느냐?”
“제가 처음으로 반한 여인입니다. 그런 여인을 두고 포기한다면 당가의 사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천당가의 사내라면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당가의 매섭고 끈질김이 묻어 나오는 말투였다. 보통이라면 충분히 칭찬하고도 남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대는 고집과 끈질김만으로 상대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죽어도 포기할 수 없느냐?”
“물론입니다!”
“그럼 할 수 없구나!”
당건하는 당지독이 허락한 줄 알았다.
꾸욱!
“할아버님! 왜 갑자기 주먹을 말아 쥐시는지?”
“이것 말이냐? 정신 나간 녀석 정신 차리게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게 무슨?”
“밖에는 들리지 않을 테니 걱정 마라!”
이미 그럴 줄 알고 당사현과 당묘정이 나가자마자 기막(氣膜)을 쳐놓은 상태였다. 사천당가의 오랜 존속을 위해서 할아비의 따스한 정이 담긴 권(拳)을 사용하는 당지독이었다.
퍼퍽! 퍼퍽! 퍼퍽!
꾸웨웩!
돼지 멱따는 소리가 당건하의 식도를 타고 올라와 입으로 빠져나갔다. 물론 당지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듣지 못한다. 당건하는 왜 맞아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뒈지게 맞았다.
한참을 때린 당지독은 당건하에게 다시 한 번 말을 했다.
“아직도 포기 못 하겠니?”
“할…아버님! 도대체… 왜?”
“그래, 그래, 그 끈질김이 당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지. 내 그 맘 다 안다!”
마음을 안다면서 다시 사정없이 주먹질을 하는 당지독이었다. 여러 번을 같은 방식으로 때리고 계속 물었다. 마지막에 결국 당건하는 그러겠다고 했다.
“포기…하겠습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 다시 한 번 그따위 말을 하면 절대 그냥 두지 않을 테니 명심하여라!”
당지독은 손속을 무겁게 사용하면서도 차마 손자라서 가혹하게 대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진기를 유통시켜 추궁과혈과 비슷한 타법을 시전했다. 조금 자다가 일어나면 전보다 움직이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기절한 당건하를 보며 당지독이 생각했다.
‘이 녀석아, 상대를 봐가며 해야지.’
다른 녀석들이라면 어떻게든 해줄 방법이 있지만 천악은 아니었다. 손자를 포기시키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수면을 취하게 한 후 당지독이 방을 나섰다. 방 밖에는 당사현과 당묘정이 기다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몸이 허약한 것 같아서 진기를 타통시켜 주었느니라.”
“오오! 그렇습니까! 건하 녀석도 좋아하겠습니다.”
“잠시 자게 놔두어라.”
당사현은 당지독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있지만 당묘정은 아니었다.
[아니잖아요!]
[모른 척하여라.]
당지독과 당묘정만이 아는 비밀을 당사현이 알지 못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것보다 당지독은 당묘정에게 의향을 물어보았다. 군천악에 대한 것을 알아보아야 했다. 묘정이만 좋다면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천악과 연결해 볼 용의가 있었다.
“묘정아! 마음은 정했느냐?”
“할아버지, 그 사람은 절 싫어할걸요.”
“네가 좋아한다면 마다할 사내가 없을 것이다!”
당지독은 다른 것은 현실적이라고 해도 당묘정에 대해서만은 객관성이 극히 부족했다. 당묘정도 웬만하면 당지독의 말을 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는 상태였다. 그와 함께 무림맹으로 간 후 급격하게 마음이 기울었다. 이미 사랑에 눈을 뜬 당묘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문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달려오려고 했었다.
뻘쭘하게 얘기를 듣는 당사현은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랐다. 당지독이 갑자기 당묘정에게 말을 했을 때, 선뜻 끼어들기에 민망할 정도로 이해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딸의 애정사에 관한 일을 부모가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무심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럴 때는 지켜보다가 적당한 때에 끼어드는 게 낫겠지.’
당지독의 성격을 봤을 때, 괜히 끼어들면 본전도 뽑지 못한다. 강호에서 만천독군이라고 하면 사천 칠대고수라고 하여 굉장한 대접을 받지만 당지독 앞에서는 그저 아들 그 이상도 아니었다.
“잘 생각해 보아라. 네가 좋다고 하는데 싫어하는 게 정상적인 사내라고 할 수 있느냐!”
“할아버지의 뜻은 알지만 이미 제 마음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있어요.”
‘응?’
전혀 생각하지 못한 대답으로 인해 당지독이 잠깐 공황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현실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