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2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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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213화
천하혈란(天下血亂) 무너지는 무림 (5)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았다.
고작 한 명에게 모두 당하고 있었다. 이제 남아 있는 무인은 오백도 되지 않았다. 이대로 전멸당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남아 있는 오백이 도망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물을 이루어 바다가 되어 흘러갔다. 협곡을 피의 바다로 적시고 있었다.
적룡신군 이진현과 혈천대도 담인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얼굴색이 시퍼렇게 질린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괴…물이 틀림없소!”
“인간이 아니오!”
이진현과 담인은 질려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이대로 도망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놈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들도 살아남지 못한다. 혈룡교의 교리에 후퇴는 존재하지 않았다. 후퇴한 이의 변명 따위는 들어주지도 않는다. 가장 비참한 죽음만이 남게 된다.
“어차피 교를 위한 일이오!”
“놈을 죽이지 않는 이상 교의 미래가 없소!”
이를 악물며 이진현과 담인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강신합일이었다.
결사 항전을 의미했다. 강신합일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힘을 내는 주술이었다. 그 힘을 이용하여 놈과 동귀어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혈룡교의 교주시여! 나의 정기(精氣)를 받아 그 힘을 주시옵소서!
주문과 더불어 혈룡교의 교주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었다.
이진현의 붉은 머리카락이 더욱더 붉어졌다. 담인도 마찬가지로 붉은 기운이 형성이 되어 강기로 변해갔다.
주술과 더불어서 급속하게 모든 것이 충만해졌다. 전신에 혈기가 뻗어나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점차 이진현과 담인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 몸속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오!”
“강신합일의 힘이 이 정도였다니!”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이었다. 주술의 기운이 전신에 퍼지자 자신감이 다시 생겼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도 남을 것 같았다. 핏빛 혈기가 점차 그들의 뇌성을 자극했다. 혈기는 폭력적이고 광폭한 힘을 발휘하게 해주었다. 그 힘의 마성은 무인들이라면 빠져나가지 못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천악은 남아 있는 혈룡교의 무인들을 모두 처리하고 강신합일을 한 이진현과 담인을 향해 걸었다.
‘진기를 주고 힘을 얻는다.’
강신합일을 지켜본 천악의 소감이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누군가에게 주고, 힘을 얻는 수법 같았다. 블랙드래곤 가이렌스의 기억을 뒤져 보니 그러한 수법은 마족에게 영혼을 주고 힘을 얻는 것과 상당히 비슷했다. 하지만 마족이 힘을 줄 경우 마기가 짙게 형성이 되어 검은빛을 띠기 마련이었다. 놈들이 보여주는 것은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 기운이 마기와는 다른 힘이었다.
‘상관은 없다.’
놈들이 힘을 얻는 과정을 세세히 파악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놈들이 힘을 가지든 말든 그것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천악이 다가가자 혈기가 더욱 짙어졌다. 붉은 기운이 천악의 반응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담인과 이진현의 눈이 혈기로 인해 적안(赤眼)이 되었다.
“본교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네놈을 죽이겠다!”
“할 수 있다면.”
이를 악물고 덤비는 적이라면 만약의 사태를 발생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압도적인 강자 앞에서는 그조차도 무용지물이다. 강자는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 빈틈이 있다면 강자라고 칭할 수 없다.
천악은 실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았다. 감각이 저절로 반응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생사의 간극을 본다면 몸이 반응하여 위험을 경고하지만 지금은 그런 경고조차 없었다.
이진현의 내공은 적화룡공(赤火龍功)이다. 그가 화룡수 이진충과 같은 내공을 구사하는 것은 형제이기 때문이다. 천악에게 죽은 이진충의 형이 바로 이진현이었다. 같은 무공을 구사하는 이유가 있었다.
거대한 대도를 든 담인은 패도무비한 도법을 사용한다. 패천혈사도법(敗天血死刀法)이 그의 독문무공이었다. 하늘마저 깨뜨리는 위력과 더불어 반드시 상대를 죽이는 악마의 도법으로 유명하다. 본교에서 가장 파괴력이 있는 도법 중 하나였다.
이진현과 담인이 천악의 좌우로 대형을 유지했다. 천악의 가공할 위력을 보았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와는 달리 천악이 점차 접근해 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평소의 걸음걸이였다. 상대의 공격 따위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보였다.
꿈틀!
담인과 이진현은 자존심이 상했다.
놈이 보여주는 자신감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담인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대도인 혈천마도(血天魔刀) 혈아(血牙)가 휘둘러졌다. 피를 머금은 대도가 천악의 신체를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다.
휘이이잉!
타앙!
철벽을 두드린 것 같은 충격이었다. 거대한 대도가 천악의 목을 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천악의 목이 거대한 대도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증거였다. 강신합일을 통한 혈기가 혈아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상대의 육체에 흔적을 남기지도 못했다. 오히려 반탄력에 의해 혈아를 쥔 담인의 손이 찢어질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피의 어금니라고 불리는 혈아가 물어뜯기는커녕 이빨이 부러지게 생겼다.
척!
천악이 혈아의 도면(刀面)을 손으로 잡고 힘을 주었다.
뚜둑!
혈아의 도면이 거침없이 뚫렸다. 손가락이 금강석을 능가하고 있었다. 혈아는 만년교룡의 뼈로 이루어진 대도였다. 만년한철에 버금가는 단단함도 천악의 손가락에는 부족했다. 두부처럼 가볍게 뚫린 혈아를 잡고 휘둘렀다. 그러자 담인의 거대한 신체가 속절없이 휘둘러지며 나뒹굴었다.
꽈다다당!
볼썽사납게 바닥을 뒹굴게 된 담인이었다. 다시 일어서긴 했지만 상당히 어이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공격을 해봐야 타격을 주지 못하면 소용없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이진현은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 즉시 천악에게 달려들었다. 천악을 향해 극렬화룡탄(極烈火龍彈)과 적룡무한격(赤龍無限擊)을 연이어 시전했다.
파파파파파팡!
천악의 신형을 향해 정확히 가격을 했다. 하지만 애꿎은 바닥만 움푹 파이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바로 앞에 있다고 생각했던 천악이 사라진 것이다.
“어디냐?”
주변을 살피던 이진현의 신형이 굳었다.
“느려.”
어느새 천악이 이진현의 등 뒤로 가 있었다. 이진현의 양옆 이마를 타고 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땀이 금세 식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땀처럼 뇌리마저 식어갔다.
“어느새?”
미처 파악하지도 못했다. 어떻게 뒤로 움직였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따라갈 수 없는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었다.
척!
천악이 이진현의 목을 잡았다. 목을 잡고 거꾸로 들어 올렸다. 이진현의 전신에 천악의 기운이 퍼져 나갔다. 전신이 쭈뼛거리며 일직선으로 펴졌다. 몸을 움직이려고 몸부림을 쳐봐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윽! 움…직이…지 않아! 이럴 수가!’
자신의 몸이 의지를 벗어났다. 강신합일의 힘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의지를 벗어난 이진현의 몸은 천악의 몽둥이 대용이 되어 있었다.
천악은 이진현 몽둥이를 가볍게 쥐고 사용했다. 바로 담인을 향해서 말이다.
담인은 기겁했다.
이진현을 몽둥이처럼 휘둘러서 자신을 공격하는 천악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었다. 너무 빨라서 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혈아를 사용해서 막는 것도 힘들었다.
“이놈! 무인이라면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그런가? 그럼 너는 하지 마라.”
비겁하다는 말은 천악에게 통하지 않는다. 적에게 비겁이고 뭐고가 어디 있는가! 이기면 장땡이었다. 상대가 비겁하게 나와서 졌다고 누가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니고, 결국 산 자의 말이 진리가 되는 세상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어딜 가나 험난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험난하다고 평가받는 무림에서 이 정도는 다반사에 속한다.
“이익!”
천악은 교묘하게 이진현을 휘둘렀다. 적당히 피할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반드시 막아야만 하도록 공격했다. 이제까지 귀찮게 한 놈들이니 편히 죽는 것도 행복한 것에 속한다.
동료의 손에 죽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놈들에게 알려줄 필요성이 있었다.
연속적으로 휘둘러지는 몽둥이는 검으로 휘두르는 것보다 빠르면 빨랐지 느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휘둘러지는 이진현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자괴감과 동료의 손에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모두 섞여 있었다.
담인은 이대로 피한다고 피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를 악물고 혈아를 휘둘렀다.
휘이익! 싹둑!
휘둘러진 이진현과 혈아가 부딪치자 무언가 잘려 나갔다. 바로 이진현의 다리였다. 담인과 이진현이 맞닿는 그 순간 교묘하게 힘을 푼 천악이었다. 그로 인해 이진현의 몸이 힘을 잃고 담인의 대도에 다리가 잘려 나갔다. 이진현은 다시 이어지는 천악의 힘에 의해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다만 절망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놈은 악마다!’
정파 무림의 무인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담인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 버린 것,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천악이 다시 이진현을 휘둘렀다. 멈칫하며 뒤로 움직인 담인이 마지못해 대도를 휘두르자 또다시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수번 이상 하자 이진현의 몸이 반 토막이 되어버렸다.
반 토막이 되어버린 몸은 다시 살아나기 힘들었다.
“쓸모가 없군.”
뿌드드득!
쓸모없어진 것은 버린다.
천악은 이진현의 꿈틀거리는 몸을 확실하게 말살해 주기 위해 목을 부러뜨리고 버렸다. 처참하게 죽어 나자빠진 이진현을 보며 담인은 소름이 돋았다.
“네놈은 인간이 아니다!”
“그런 소리를 자주 듣지.”
담인은 혈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자신은 죽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싶었다. 왜 자신들의 앞길을 막아섰는지 말이다. 저놈은 절대 정파 무림을 위해 나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저토록 잔인한 놈이 정파 무림이라면 마도 무림은 선한 축에 속할 것이다.
“왜냐? 왜 우리를 막아선 것이냐?”
“귀찮다.”
“뭐…라고!”
담인은 어이가 없었다. 단지 귀찮아서 이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내 앞에서 자꾸 거치적거리지 말았어야지.”
“이…놈! 죽어랏!”
담인이 화를 참지 못하고 천악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들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지만 화가 나기에 무모한 공격을 하였다. 천악은 무모하게 달려드는 놈의 대도를 야수의 인으로 잘라버리고 놈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푸아아악!
천악의 주먹에 담인의 안면이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박살난 얼굴이 회복이 되기는 하지만 그 틈에 천악의 주먹이 사정없이 뻗어 나왔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가죽 공이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먹 한 방에 가슴뼈가 으스러지고 심장이 꿰뚫렸다. 주먹 하나하나가 태산일격(泰山一擊)이라고 할 정도로 강력했다. 온몸이 으스러지듯이 으깨지고 있었다. 천악은 놈의 의중 따위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고통 속에 죽으면 그만이었다.
철퍼덕!
꿈틀! 꿈틀!
바닥에 엎어진 담인이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생명력이 대단하기는 했다. 마지막 발악하듯이 꿈틀대는 담인의 머리통을 발로 밟았다. 수박이 깨지듯이 뇌수가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가볍게 처리를 한 천악이 다시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려고 움직였다.
양 협곡 사이로 남궁장천과 창천검대, 그리고 이자청과 나민관, 진선아가 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천악을 도와주기 위해서 달려왔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들은 모두 입을 쩌억 벌렸다.
사방에 널린 사람의 육편들. 인간의 형상을 제대로 갖춘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갈기갈기 찢겨버린 흔적들만이 자리했다.
아비지옥(阿鼻地獄)이 따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