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2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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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212화
천하혈란(天下血亂) 무너지는 무림 (4)
철퍼덕!
목이 꺾인 무인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구겨진 종잇장처럼 나자빠진 무인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혈룡교의 무인들은 저렇게 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모두 일당백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목리추와 이진현, 담인은 청년의 놀라운 수법에 상당히 놀랐다. 하지만 놀람이 분노로 바뀌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감히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고 교인을 죽이다니 온전한 채로 살려둘 수 없는 놈이었다.
청년의 표정도 마음에 안 들었다. 무표정한데다가 건방져 보이기까지 했다. 건방진 놈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곧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살려달라고 매달리며 비굴하게 굴게 될 것이다.
“네 이놈! 살아 있는 게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해주마!”
목리추의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협곡 사이로 내공을 실어 날리는 음성으로 인해 여러 곳에서 이중으로 들려와 확실하게 뜻을 전달했다.
청년은 목리추의 말에 응대를 해주었다.
“죽으면 다 똑같다.”
“건방진! 천룡대는 뭐 하는 것이냐! 놈에게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어라!”
“옛!”
혈룡교에서 끌고 온 무력부대는 천룡대(天龍隊), 마룡대(魔龍隊), 투룡대(鬪龍隊)였다. 자신들이 이끌고 온 부대 중 하나인 천룡대에게 청년의 처리를 맡겼다. 천룡대의 대주가 목리추였기에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섯 명의 천룡대원이 청년을 향해 돌진했다. 협곡의 폭을 생각해서 다섯 명이 움직인 것이다. 놈이 어디로든 빠져나갈 수 없게 길을 모두 차단했다.
천룡대의 대원이 일제히 검을 뽑아 놈의 사지를 모두 절단내 버릴 것 같은 기세로 달려들었다.
쌔애앵!
청년의 손 모양이 갈고리처럼 변했다.
변한 손 모양이 아래서 위로 그어졌다. 손에서 투명하고 강력한 기운이 형성이 되었다. 그 기운은 날카로우며 어떤 것이라도 완벽하게 잘라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형성된 날카로운 기운이 순식간에 다섯 가닥으로 뻗어나갔다.
슈슈슝!
지면을 스치고 지나간 다섯 줄기의 기운이 정확하게 뻗어 나갔다.
앞에서 돌진하던 천룡대원 다섯 명에게 쏘아져 나간 기운이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어떤 명검보다 예리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가자 전속력으로 돌진하던 천룡대원이 멈추어 섰다.
멈칫!
멈추어 선 천룡대원들의 눈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혼이 사라져 버린 상황이었다. 그 뒤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사람의 몸이 사과가 쪼개지듯이 좌우로 갈라졌다. 갈라진 후에도 즉시 피가 흐르지 않았다. 예리한 절단면으로 인해 핏물이 퍼지지 못한 것이다.
주르르르륵!
잠시 동안 흐르지 않던 핏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사람의 몸은 결코 약하지 않다. 또한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 무인의 몸은 강철보다 강하다. 더불어서 무인이 가지고 있는 무기까지 생각하면 단번에 쪼개버린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러한 상황이 발생했다.
천룡대원의 병기가 잘리고 몸까지 완벽하게 이등분이 되어버렸다. 천룡대원 다섯 명이면 초절정 고수도 쉽사리 죽여버릴 수 있었다. 청년의 실력이 보통을 넘어 굉장히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룡대주 철혈귀갑 목리추가 이를 뿌득 갈며 상대방에게 물었다. 보통의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란 것을 알기에 놈의 정체를 물은 것이다.
“네놈은 누구냐?”
“날 모르나?”
“겁이 나지 않는다면 정체를 밝혀라!”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청년은 자신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다. 무인들 간에는 이상한 자존심이 있었다. 자신의 정체를 말하면 비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우스운 일이었다. 상대가 모르면 모르는 대로 놔두는 것이 나았다. 적에게 굳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부들! 부들!
목리추와 이진현, 담인은 청년이 자신들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식의 대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대로 손 놓고 놈의 재롱을 봐주는 것이 지겨워졌다. 놈의 만행도 이제 끝이었다.
“네놈이 명을 재촉하는구나!”
철혈귀갑이라고 불리는 목리추가 직접 나섰다. 그가 나서자 이진현과 담인이 뒤로 물러섰다. 귀갑을 두른 목리추는 잔인했다. 일단 적을 제압하고 껍질을 벗기는 것이 그의 취미였다.
철혈귀갑은 혈광석(血鑛石)을 만년한철과 섞어서 만들어낸 갑옷이었다. 혈광석은 호신강기를 파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가 어떤 강기를 쓰든 상관하지 않고 뚫어버리는 마석(魔石)이었다. 혈광석과 만년한철, 그리고 미량의 적철(赤鐵)을 절묘하게 섞어 만들어낸 귀갑은 그 어떤 것으로도 흠집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귀갑을 두른 목리추가 살기팽천한 기세로 청년에게 다가갔다.
“네놈의 껍질이 얼마나 연한지 봐주마!”
청년은 목리추가 다가와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청년은 바로 천악이었다. 압도적인 강인함을 가지고 세상사에 무관한 천악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목리추의 내가기공은 철탑기공(鐵塔氣功)이었다. 철탑기공은 온몸에 기운을 퍼뜨려 강철보다 강력한 신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강력한 신체야말로 모든 것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목리추였다. 그가 철탑기공을 운용하여 전신의 힘을 주먹에 모았다. 힘은 목리추의 주먹에 고스란히 모여 바람마저 가르는 소리가 났다.
쩌저저적!
주먹을 지르니 그 소리가 천둥번개가 치는 듯했다. 목리추의 주먹을 맞는다면 그 자리에서 머리가 박살날 것 같았다.
척!
바람마저 가른 주먹이 도중에 막혔다.
기가 막힌 일이 발생했다. 목리추의 주먹을 막은 것은 손가락 하나였다. 천악이 검지를 들어 목리추의 주먹을 막아낸 것이었다.
“이럴 수가!”
목리추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진현과 담인도 마찬가지였다. 목리추의 주먹이 어떤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검지손가락 하나로 막을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다. 거짓말 같은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다.
“우습군.”
천악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천악의 손바닥이 목리추의 주먹을 감쌌다. 그러자 목리추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얼굴에 핏발을 세운 목리추가 참을 수 없어서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우드드득!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귀갑이 우그러지며 주먹까지 으스러져 버리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철탑기공을 두른 목리추의 주먹은 만년한철보다 강력했다. 그럼에도 천악의 악력에는 부질없는 짓이었다. 마치 형체가 없는 미생물을 만지듯이 주먹을 가볍게 부숴버린 천악이었다.
파팟! 쿠쿵!
천악의 발이 목리추의 다리를 걸어버렸다. 건장한 신체가 속절없이 무너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목리추의 몸을 사정없이 밟았다.
퍼퍼퍼퍼퍽! 우드드드득! 우드드득! 우드드드득!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다. 그와 동시에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비명이 연이어 들렸다. 철탑기공이 전혀 소용없었다. 전신에 철갑을 두른다 하여도 천악의 발길질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목리추는 지금까지 그 어떤 고통도 참을 수 있다 자부했지만 천악의 발길질은 참을 수 없었다.
‘안… 돼!’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는 데도 시간이 모자랐다. 여러 번을 밟아주자 끝이 났다. 온몸에 뼈가 없는 것처럼 뭉개져 버린 목리추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이대로 죽는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빠각!
목리추의 흔들리는 눈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천악의 발이 인정사정없이 목리추의 목을 밟았다. 목리추는 미처 강신합일을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혈룡교의 무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경악으로 인한 정적이 흘렀다.
이진현과 담인도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혈룡교의 장로가 저딴 식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공포를 모르던 혈룡교의 무인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무표정한 그대로 사람을 가차없이 죽이는 천악의 손속에 말이다.
까닥!
천악이 검지를 움직였다. 다시 덤비라는 말이었다.
이진현과 담인은 광대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놈의 가공할 손속이 비록 대단하다고 하나 이처럼 지존광대한 놈은 처음이었다. 놈을 반드시 죽여야겠다는 공통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먼저 덤비지는 않았다.
“적은 하나다. 대 혈룡교의 무인이 저놈 하나에게 당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모두 쳐랏!”
이진현과 담인의 외침에 천룡대와 투룡대, 마룡대가 일시에 움직였다. 수적인 우위가 있기에 두려움이 극복되었다. 아무리 강해도 사람인 이상 지치기 마련이었다. 결국에는 지쳐서 죽을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삼천의 무인이 뿜어내는 기세는 어떤 것보다 무서웠다.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기세였다.
“이야야얍!”
함성 소리와 함께 천악을 향해 돌진했다.
천악은 다가오는 적을 향해 좌우 양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변형했다.
“야수가 왜 야수인지 오늘 보게 될 거다.”
음성의 고저가 느껴지지 않지만 뼈가 시릴 정도의 한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천악의 손이 교차하며 야수의 인이 형성되었다. 형성된 기운은 전보다 더욱 강력했다. 숫자가 많다하여 우위를 점한다는 것은 천악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앞에서 달려오던 열다섯 명의 천룡대를 향해 야수의 인을 뿌렸다. 그들은 미처 앞으로 오기도 전에 야수의 인에 의해 육편으로 화해 버렸다. 다섯 조각으로 나뉘어진 육편으로 부족해서 그 뒤로 몰려오는 마룡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일직선과 사선으로 그어지는 야수의 인이었다.
그 범위 안에 있는 존재들은 어떤 것으로 가로막던 소용없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슈우우욱! 뎅강! 철퍼덕!
예리하게 잘려 나가는 고깃덩어리의 향연이었다. 천악의 가공하고 잔인한 손속이 발휘되었다. 앞으로 다가가 천악에게 공격할 수 있는 혈룡교의 무인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오기도 전에 야수의 인이 먼저 몸을 조각내고 있었다.
그들은 죽기 전에 비명도 내지 못했다. 언제 죽었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야수의 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는 것은 잘린 사지들뿐이었다.
이진현과 담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것은 싸움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일방적인 도륙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자신들이 일방적인 도륙을 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마…신 그 자체가 아닌가!”
악마가 있다면 바로 앞에 있는 청년이 그 악마일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사람이라면 사람을 죽이는 데 어느 정도의 망설임이 있는 법이다. 한두 명이 아니라 천여 명이 죽어가는데도 청년은 표정 변화 없이 무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죽음 자체와는 무관한 존재의 등장이었다.
이진현과 담인은 천악의 모습에서 누군가를 떠올렸다.
‘교…주님!’
‘교주님의 압도적인 신위를 생각나게 하다니!’
혈룡교의 교주가 지닌 신위가 바로 저러할 것이다. 저와 같은 강대한 힘을 지닌 자가 또 있을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회복한 검왕 남궁장천은 망설이고 있었다.
천악이 강하다고는 하나 상대하는 숫자가 엄청났다. 더군다나 놈들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혼자서 모든 무인을 상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라고 했으니 가야 하나!’
나중에 남궁태희가 뭐라고 할까 봐,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사위를 위험 속에 혼자 두고 왔다는 말을 들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천악이 그냥 가라고 했는데 괜히 나서는 것도 보기가 흉했다.
남궁장천이 망설이는 상황에서 회복한 이자청과 나민관, 진선아가 다가왔다. 그들은 천악의 힐링 덕에 모두 회복이 되었다. 진기가 약간 손상된 상태라 완벽하게 회복한 것은 아닐지라도 지금 당장 움직이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무슨 일인가?”
“은인은 어디 계신 겁니까?”
“천악은 지금 없다.”
“어디에 가신 겁니까?”
이자청은 자신을 구해준 천악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전날에 무례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것만 해도 자신은 천악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처지였다. 이대로 모른 척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남궁장천은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다가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일이었고, 천악이 한 일에 대해서 알아두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위 자랑하고 싶은 장인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뒤에서 쳐들어오는 적들을 막으러 갔다.”
“예?”
이자청을 비롯한 나민관과 진선아도 모두 놀라고 있었다. 뒤에서 접근해 오는 적은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적이었다. 그런 강대한 적을 혼자 상대하러 갔다니, 죽으러 가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되었다.
“아니! 혼자 가도록 놔두신 겁니까! 그들이 어떻다는 것은 검왕 어르신이 가장 잘 알지 않습니까!”
“어허, 녀석이 잘 알아서 할 것이다.”
“안 됩니다. 어서 빨리 가서 은인을 데려와야 합니다. 이대로 적들의 손에 죽는다면 저는 하늘을 다시 볼 수 없을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할까!”
남궁장천도 역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강호인이었다. 남궁태희를 생각하면 자신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천악에게 가는 데 약간의 핑계거리가 생긴 셈이었다. 이놈들이 알아서 말을 해주니 자신이 갈 수 있는 이유가 생기게 되었다. 일부러 말을 끌며 상대방이 말하도록 유도했다고 보면 정답이었다.
“빨리 가야 합니다! 놈들과 상대하다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혈룡교의 무서움을 절절하게 느낀 이들이었다. 혼자서는 죽었다 깨도 막아낼 수 없는 일이었다. 천악이 비록 신비한 힘으로 모든 사람을 낫게 했지만 힘과 주술은 그 궤를 달리하는 일이었다.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의 한계가 엄연히 존재했다.
“그럼 창천검대와 같이 간다.”
남궁장천은 사대금강 중에 살아남은 연오에게 남아 있는 자들과 안휘성으로 가라고 말을 하고 창천검대와 같이 천악에게 가기로 했다. 연오 대사도 은인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같이 간다고 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가는 것도 구해 오는 데 번거롭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이자청과 나민관, 진선아는 따라가겠다고 우겨서 데리고 가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