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204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204화
혈풍천하(血風天下) (2)
요동성에서 불어오는 혈풍과 더불어서 섬서성에서도 피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둘 중 한 곳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상당히 복잡했다. 하지만 가장 급한 불을 먼저 꺼야 했다.
“맹주님에게 연락하고 각 문파에 소집령을 다시 내려!”
“알겠습니다, 군사님!”
사마운정의 요청에 따라 장로회의가 긴급하게 열렸다. 회의의 중심에 현도진인이 있고, 그 옆으로 현재 가장 심각한 일에 처한 화산파의 검운진인이 앉아 있었다. 검운진인이 바로 입을 열었다.
“빨리 무림맹의 전투부대를 출전해야 할 것이오!”
“이미 현천대를 보내라고 한 상태예요!”
사마운정의 말에 검운진인이 잠시 안정을 취했다. 역시 사마운정이었다. 검운진인의 의도를 미리 알고 답을 내고 있었다.
“그것보다 대막 무림이 진격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대막 인근을 막고 있던 사신단이 반 시진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전멸했어요! 화산파는 어느 정도나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요?”
사마운정의 말에 검운진인은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신단의 능력은 검운진인도 알고 있었다. 그 실력이 결코 각 문파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신단을 반 시진 안에 무너뜨렸다면 화산파가 아무리 강해도 오래 버틴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맹주님, 우선은 소집령을 다시 내렸습니다. 하지만 다시 모이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최악의 경우 섬서성을 내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섬서성을 버리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검운진인이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섬서성을 버린다는 말은 화산파를 버린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구파일방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화산파였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그 안에 서린 자부심은 어떤 문파보다 높다고 할 수 있었다.
“아주 내주자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당장 무림맹의 소집령이 내려도 무사를 모으려면 최소 한 달이 걸려요. 그 기간 동안 화산파가 버틸 수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검운진인도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마운정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계속 무림맹의 전투부대를 보낸다고 해도 소규모일 수밖에 없어요. 놈들의 전력이 만만치 않은 것을 아는 상황에서 소모적으로 무사들을 죽일 수는 없는 일 아니에요. 그렇다면 방법은 힘을 모아서 한 번에 역전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무림맹주 현도진인 역시도 사마운정의 말에 동의를 보냈다. 다른 장로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문파가 아니라 안도하기는 했지만 상황이 돌변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을 강요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요동성에서 모용세가가 혈맹을 만들었다는 보고가 올라왔어요, 그 수가 족히 이만에 달한다고 알려졌어요. 그들까지 중원을 넘보게 되면 정말 큰일이 날 수 있어요! 지금 당장은 힘을 모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혈맹을 만들어 무사들을 계속 모았다면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것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무 뜻 없이 혈맹을 만들어 무사들을 모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요동성까지 이런 일이 있다니!”
무림맹이 생기고 난 후 최대의 위기였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는 힘을 모은 후 다시 두 갈래로 나눠야 할 거예요. 지금 급한 것이 섬서성이기는 하지만 요동혈맹이 진격할 때도 대비해야 해요.”
사마운정이 정해놓은 사항을 빠르게 전달하자 장로들은 말이 없어졌다. 사건의 심각함이 너무 위중해서 어떤 것이 나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태극검성 현도진인이 어쩔 수 없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무도 하지 못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수장의 몫이었다.
“우선은 군사의 뜻대로 합시다!”
결국은 현도진인도 사마운정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모두의 결정이 난 후에도 철혈판관검 제갈천기는 한 가지를 고민했다.
‘그 괴물이 나서준다면 일이 쉬울지도 모르는데.’
군천악이 한 번 나서면 제아무리 강한 적이라고 해도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산을 날려버리는 가공한 기운을 한 번 뿌리면 대막 무림의 무인들은 그 자리에서 공중분해되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지금 그 말을 할 수도 없을뿐더러, 해도 믿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내 이름을 걸고 말해도 안 믿겠지.’
그런 인물이 중원에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자신도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 않았다. 자신의 말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또 시간을 들여야 한다. 차라리 무림맹의 힘만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보였다.
솔직히 군천악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무섭기 때문에 망설이는지도 몰랐다. 제갈천기가 보기에 천악은 영웅이 아니었다. 차라리 재앙이라고 하는 편이 맞았다. 무림맹의 결정에는 따르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결국 분란만을 조장한다. 또한 함부로 군천악에게 덤비면 오히려 무림맹이 먼저 끝장날 수 있었다.
‘말하지 않는 게 낫겠다.’
“아아악!”
카카캉!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산을 울렸다. 화산파로 들어오는 입구를 중심으로 방어진을 설치한 화산파, 종남파, 형산파였다. 하지만 무섭도록 강력하게 뚫고 들어오는 대막혈궁의 무인들은 악귀와 같았다. 팔이 잘리고 몸이 뚫려도 살아 있는 한 상대와 함께 동귀어진(同歸於盡)을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대막혈궁의 무인 한 명을 죽이는 데 다섯 명이나 죽고 있었다.
사방에서 화산파의 무인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화산파를 구성하는 검수 중에서도 뛰어난 자들이 매화검수였다. 매화검수에 속하는 자운진인이 대막 무인의 검을 막지 못하고 심장이 뚫려 죽었다.
사나운 맹검(猛劍)을 휘두르는 자는 대막혈궁의 대막혈성 철호였다. 그는 독검(毒劍)이라는 별호가 붙을 정도로 사납고 독했다. 손속에 망설임이 없으며 일단 적이라고 칭한 자는 반드시 죽였다.
매화검수는 화산파의 미래였다.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최상위 실력자들에게만 붙여주는 별호로, 다음 대 장문인이 될 인재들이었다. 그런 무인들조차 상대가 되지 못하고 죽어 나가니 일반 제자들은 말할 필요 없었다.
사방으로 피가 튀기고 살점이 날아갔다.
인세에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바로 지옥이 아닐까 하는 잔인한 장면을 연출했다.
보고 있던 화산파의 장문인 검운진인은 승산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대로 계속 막아낸다는 보장도 없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이곳에는 시체밖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유 장문, 구 장문, 이대로는 승산이 없소!”
“그럼 어찌하자는 말이오?”
“이대로 물러서자는 겁니까?”
검운진인이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여기서 다 죽으면 그야말로 개죽음이었다. 사람이 살아야 문파도 보전되는 것이다. 전각이나 건물, 비급이 문파의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살지 않은 곳이 어찌 문파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남아 최선을 다해 막아볼 테니, 유 장문과 구 장문은 나머지를 데리고 빠져나가시오!”
“검운진인, 진심이시오? 어찌 우리를 몰염치한 사람으로 만드시오!”
“그렇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남아 싸우겠습니다!”
서로 경쟁을 하기는 했지만 가장 중요한 협을 잃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검운진인의 마음이었다.
“여기서 죽어봤자 우리의 죽음이 인정받을 수는 없소. 차라리 다음을 기약하시오. 이미 무림맹에서 전투부대가 오기로 되어 있소. 그들과 협력하려면 온전히 무인들을 데리고 빠져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될 수 있소!”
검운진인이 이같이 말을 하니 유 장로과 구 장로는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검운진인의 말이 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화산파가 오악검파 중에서 수좌를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과연!’
‘화산이다!’
검운진인이 이자청을 불렀다.
“자청아, 화산의 문도들을 데리고 빠져나가거라!”
“사부님! 어찌 저희만 빠져나가라는 말씀이십니까!”
“어허, 지금 사부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야? 그럼 지금 이대로 화산파가 멸문당해야 직성이 풀리겠느냐!”
“하지만…….”
“너의 마음은 안다. 그러나 사람은 앞을 보아야 한다. 여기서 무너지기 위해서 네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이자청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지금의 자신이 있게 만들어준 분이 검운진인이었다.
‘내가 더 강했더라면!’
강했다면 이처럼 참담하게 스승을 버려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힘이 없음에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 순간 천악이 떠올랐다. 압도적인 강함, 자신은 감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그 정도로 강했다면 대막의 무인들을 모두 죽여버렸을 것이다. 순간 복받치는 눈물을 닦으며 이자청은 돌아섰다.
남은 자.
떠나가는 자.
모두 비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은 자는 목숨을 걸었다. 검운진인의 눈에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화산파, 종남파, 형산파의 결의대가 집결하여 삼백 명을 이루었다. 목숨을 거는 자에게 두려움은 없다.
검운진인의 비장함을 느껴서인가. 그 앞으로 대막혈신 율무정이 한 명의 무인을 치우고 다가왔다.
“제법이군.”
중원 무인들은 죽음 앞에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해준 검운진인을 무인으로서 대우해 주었다.
검운진인도 율무정을 보았다. 대막혈신이라는 무시무시한 별호와는 다르게 상당히 젊은 나이에 절대자의 반열에 든 무인이었다.
검운진인이 검을 들어 올리며 대치했다.
“여기까지다!”
“끝까지 막는단 말인가. 좋다, 무인으로서 당신의 기백을 인정하지.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야!”
원래의 목표가 여기까지인 율무정이었다. 그가 원해서 전쟁을 한 것이 아니기에 목표대로 움직이는 것이 먼저였다. 화산파, 종남파, 형산파의 무인들이 도주한다고 해도 따라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막는다면 부숴준다.
율무정의 기세가 변했다. 잔혹한 혈풍을 몰고 온 인물답게 무섭도록 살벌한 기운이 전신에 퍼져 나갔다.
검운진인은 폭풍과 같은 기세에 놀라야 했다.
‘허! 저 나이에 이처럼 강력한 기운이라니!’
죽음을 각오했지만 상대 또한 냉정하고 강했다. 승패에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승부사였다.
“화산의 무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간닷!”
중원오악이라고 불리는 화산. 화산의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매화의 잔치, 그 안에서 형성된 검의 문파인 화산파다. 화산파 최강의 공부가 바로 자하신공(紫霞神功)이다. 검운진인의 검에 자하진기(紫霞眞氣)가 흘러들어 자주빛의 고운 자태를 드러내었다. 자색의 아름다움과는 다르게 자하신공은 광폭한 신공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익히기도 까다로울뿐더러 주화입마에 걸리면 마공이라는 칭호까지 얻는다. 그 정도로 강력하고 무서운 신공이었다.
검운진인이 구궁보를 밟으며 율무정을 향해 돌진했다. 율무정도 검을 들었다. 율무정의 몸속에서 태양의 기운이 뻗어 나왔다. 한낮에 뿜어지는 사막의 열기를 몇백 배나 능가하는 기운이었다.
카아아앙! 타탕!
순식간에 교차되며 십여 초가 지나갔다. 빠르고 강력한 절대고수들 간의 치열한 대결이었다. 하지만 검과 검이 부딪칠수록 전신이 불에 타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 검운진인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매화검법의 절대삼초 중의 하나인 매화만리(梅花萬里)가 펼쳐졌다. 그와 동시에 율무정의 검에서도 태양멸혼(太陽滅魂)이 형성되었다.
쿠아아아앙!
절대검법이 부딪치고 난 후 검운진인의 몸이 정지했다. 더 이상 움직일 기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태양멸혼을 정통으로 맞은 몸은 서서히 무너져 내려갔다. 승자인 율무정이 돌아서서 화산파 안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무인들도 서서히 승패가 기울어져 갔다.
대몽고평원을 지나 적봉으로 달리는 기마병들.
수십만에 달하는 기마가 달리는 모습은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이 무엇이든 그들이 지나는 길에 남아 있는 것은 잿더미에 불과했다.
다다다다다닥!
이십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진격하는 인물은 대원(大元)의 마지막 황손인 철목성이었다. 그가 선두에 서서 진두지휘하며 군사를 다스렸다. 그는 가장 빨리 진격을 준비했다. 상대가 미처 대비를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철목성이 적봉을 치는 이유는 놈들이 직선거리로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놈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서 요동성을 지나 산해관(山海關)을 통과할 것이다.
산해관은 동북전선의 마지막 요충지이며 강력한 성이기는 하지만 대비를 하지 못하면 바로 무너뜨릴 수 있었다. 강력하다는 것에 자만심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무너뜨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적봉을 향해 돌격하라!”
적봉을 방어하는 진양성(振揚城)은 그다지 높지 않고 견고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