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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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75화
설화(雪花) (2)
부들! 부들!
주르르륵!
몸을 심하게 떨던 백영대주의 미간과 미간 사이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백영대주는 마지막까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네가 비교했던 사부의 절기 중에 하나인 혈일뢰(血一雷)다.”
살왕의 비전오의 중에 하나인 혈일뢰였다. 핏빛 뇌전이 상대의 전신을 일직선으로 갈라놓았다. 백영대주의 몸이 좌우로 벌어졌다.
삼영살은 백영대를 모두 처리하고 난 후 부골산(腐骨散)을 시체 위에 뿌렸다. 시체들을 녹여서 흔적을 지우려고 한 것이다.
천악은 냉상아를 치료하고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삼영살이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지켜보았다.
삼영살의 공수는 상당히 안정적이고 강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무인들을 상대할 때의 이야기였다. 천악이 원하는 수준에 이르러면 아직 멀었다. 천악은 최소 혈검마 무영을 상대할 정도로 강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삼영살은 모두 처리하고 나자 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과거였다면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이 정도면 주군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천악은 별다른 반응없이 시큰둥한 것 같았다.
“아직 멀었군.”
“죄…송합니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희들은 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나는 내 수하들이 약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천악의 말에 삼영살은 정신이 들었다. 주군이 얼마나 강한지 새삼스럽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강하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강해진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주군을 지키려면 최소한 주군이 인정하는 경지에 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지금 이 상태에서 만족했던 조금 전의 생각을 반성했다.
‘주군은 최강자시다.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갖춰야 해.’
삼영살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천악이 그들에게 준 영약과 믿음을 배신할 수 없었다.
천악은 냉상아를 들고 유유히 금천상가를 넘어서 들어갔다. 누군가 지금 벌어진 상황을 보기 원하지 않았다. 그 뒤를 삼영살이 말없이 그림자처럼 따랐다.
“으음!”
잠깐의 신음을 냈지만 냉상아는 아직 심적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적에게 당한 살의(殺意)를 극복해야만 했다. 냉상아는 무의식 속에 한빙극의신공을 운용했다.
한빙극의신공은 북해빙궁의 절대심법 중에 하나로 궁주의 직계만이 익힐 수 있는 심법이다. 차가운 음한지공을 몸 안에 쌓는 신공으로, 극의로 익히게 되면 호흡만으로 반경 2장 안을 혹한의 냉기로 뒤덮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도 대단한 신공이다.
음한지공을 연성하기 위해서는 몸 안에 차가운 기운을 끊임없이 형성시켜야 한다는 말이 된다. 사실 말이 쉽지 절대로 쉽지 않은 신공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체온이라는 것을 가진다. 인간의 체온은 냉기와는 부족할 정도로 뜨겁고 강렬하다. 기본적으로 냉기를 몸안에 형성시키려면 차가운 환경이 필수불가결이다. 그래서 북해에서 음한지공을 기본으로 한 무공이 발전되었다.
한빙극의신공의 처음 시작은 냉기를 느끼고 호흡한다. 호흡하여 들어온 냉기를 몸 안으로 전달시킨다. 몸이 점차 차가운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인간의 몸은 특이한 성질이 있다. 한 번 끌어다 쓴 냉기를 수압처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특성이다. 냉기의 기운을 기억한 순간부터 몸 안에서 냉기를 만들어 사용하게 될 수 있다.
냉상아가 한빙극의신공을 운용하자 몸 주변을 새햐얀 서리가 덮기 시작했다. 차가운 기운으로 불 같은 살의를 극복하려고 하는 작용이었다.
우우우웅!
심법을 운용하자 점차로 이성을 찾게 된 냉상아는 본능적으로 가부좌를 틀었다.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호흡의 반복 작용으로 냉기를 지속적으로 뿜어내었다.
냉상아가 침상에서 운기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천악은 의자에 앉아 탁자에 놓인 물을 한 잔 마시고 있었다.
“냉기를 사용하는 무공을 익혔군.”
냉상아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의식할 수 없는 상태였다. 끊임없이 냉기를 뿜어내자 몸을 감싸고 있는 옷들이 굳어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냉기가 일정 수준 이상 높아지자 옷이 버티지 못하고 갈라진 것이다.
옷이 갈라지고 새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그녀는 운기를 하면서 점차 기력을 회복해 나갔다. 기력을 회복하자 눈을 뜰 수 있었다. 이제야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옷은 사라지고 없었으며 그 앞으로 자신의 나신을 보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순간 한빙극의신공이 흔들렸다.
“커억!”
운기를 할 때 흔들리는 마음은 주화입마를 당하는 원인이 된다. 그녀는 지금 깨달음의 문턱에 들어 있는 상태였다. 수치심으로 흔들린 마음을 다시 추스를 수 없게 되었다.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가는 음한지공을 제압할 수 없게 된 그녀의 입가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타닥!
천악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했다. 즉시 그녀의 수혈을 짚고 몸 상태를 점검했다. 눈을 뜬 것이 그녀의 실수가 되었다.
천악은 그녀가 천고의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운일 뿐이었다.
외상과 내상은 회복이 되었다. 천악이 순식간에 제압하는 상황이라 별다른 탈은 없을 것이다. 잠시 충격으로 다시 혼절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없었다. 하루 정도 쉬면 다시 깨어날 수 있었다.
“다행이군.”
그녀의 상태가 악화되면 문제가 있었다. 천악을 끊임없이 방해했던 놈들의 목적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고생한 보람이 없는 것은 사양이었다.
천악이 그녀를 다시 침상에 놓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아침이군.”
벌써 아침이 다가왔다.
질투.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질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다. 있다면 해탈이나 탈선을 한 도인, 도사 정도 뿐일 것이다. 그들도 이러한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 수십 년을 수련한다.
애초에 인간은 누군가에 대한 질투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잘난 사람을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질투의 종류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여인의 질투도 그중에 포함이 된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한여름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아침이 되자 여인들은 일찍 일어났다.
남궁태희, 금은혜, 제갈지, 운정이 일어나서 아침 세안을 하고 몸을 단정히 정돈을 했다. 그리고 군천악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아침에 가장 먼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녀들의 마음이 이는 대로 천악의 방에 다다랐다.
“군 오라버니! 일어나셨어오!”
방문 앞에서 먼저 문을 열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어났다.”
그녀들이 말을 하자 천악이 대답을 하며 문을 열었다. 보통이라면 여인들의 시선이 천악에게 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천악의 침상에 어떤 물체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물체는 목각 인형이 아니었다. 숨을 쉬며 움직인다. 더군다나 남성과 반대되는 신체를 가진 여인이었다.
여인이 몸을 뒤척이자 옷을 입지 않은 어깨의 뒤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여인들 모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악을 다시 보았다.
바람을 폈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여인들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보통의 사내라면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했을 것이다. 아니 쥐구멍에라도 숨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천악의 반응은 그녀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그녀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금은혜는 분했다.
‘처음은 내 건데!’
천악이 숫총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남궁태희도 당황했다.
천악이 설마 여인과 합방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설마!’
제갈지의 잘 돌아가는 머리가 정지했다. 운정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의 눈빛은 천악을 향해 해명을 요구했다. 천악은 그녀들이 원하는 대답 대신에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옷이 필요한데 옷을 가져왔으면 한다.”
발가벗은 여자가 침대에 있는데 말을 해서 무엇하랴, 결론은 했냐, 안 했냐로 귀결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차마 했냐라는 말을 하는 여인은 없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자신의 입으로 할 수 있는가!
여인들은 누군가 먼저 검대(劍代)를 메주기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대답이 천악의 입에서 나왔다.
“안 했다. 됐나.”
야수안은 저절로 발동이 된다. 하지만 야수안이라는 절대영안이 아니라고 해도 여인들의 생각은 얼굴에 다 드러났다. 얼굴에 드러난 것도 제대로 모른다면 그것은 고수가 아니었다.
휴우!
남궁태희, 금은혜, 제갈지, 운정은 천악의 말을 믿었다. 천악의 성정상 거짓을 말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다행이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천악도 좀 전의 대답이 상당히 어색했다. 예전이라면 이런 대답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인들에게 오해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천악의 대답에 안심을 했지만 냉상아가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금은혜, 남궁태희, 제갈지, 운정은 말없이 곤히 자고 있는 냉상아를 노려보았다.
‘부러운 년!’
움찔!
자면서도 불안감을 느꼈는지 냉상아가 몸을 잠시 떨었다.
금천상가를 출발해서 구문제독부로 여정을 계속했다. 처음 출발했을 때와는 달리 마차 안은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천악은 원래 말이 없었고 여인들도 눈치를 보는 듯했다. 또한 옆에 누워 있는 여인이 신경 쓰이고 있었다.
편안하게 자고 있는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 깨물어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여인들은 던져 버리고 마음이 먼저 들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달그닥! 달그닥!
마차가 움직이면서 나는 소리와 주위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눈총.
냉상아는 서서히 눈을 떴다. 눈동자에 맺혀지는 잔상이 확실하게 보이기까지 조금 시간이 들었지만 서서히 윤곽이 확연하게 형성이 되었다.
눈을 뜬 냉상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에 서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굉장한 미모를 가진 여인들이 무려 네 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북해제일화라는 별호를 가진 그녀조차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여기가 도대체?’
그녀가 어리둥절할 때,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깼나.”
“예.”
냉상아는 그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또한 백영대에게 쫓기다가 죽을 뻔한 일을 시작으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험한 것이 생각이 났을 때 냉상아의 손바닥이 천악의 안면을 향해 날아왔다.
벗은 모습을 본 사람이 천악이라는 것을 알자 여인의 본능을 발휘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일격이었지만 상대는 천악이었다.
짜악!
고개가 돌아갔다.
네 명의 여인들 모두 입을 벌렸다. 갑작스럽게 뺨을 날린 냉상아의 행동과 더불어서 여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기는 천악의 놀라운 행동으로 인해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아!”
냉상아는 고개가 돌아가고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누군가에게 뺨을 맞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알몸을 본 사람이었다. 이처럼 행동하다니 파렴치한이 따로 없었다.
“목숨을 구해줬더니 상당히 건방지군.”
“아!”
냉상아는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몸을 보니 상처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눈앞에 있는 청년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치료까지 해주었다는 말이 되었다. 그런 상황을 오해하고 자신이 뺨을 날린 것이다.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냉상아는 분했다. 어떻게 뺨을 날렸다고 자신의 뺨을 때릴 수 있는지 그게 더 마음 아팠다. 눈앞에 있는 청년은 사내가 아니었다.
‘아파!’
한편 여인들 대부분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이었다. 천악은 상대가 여자라고 봐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르는 여인을 위해서 목숨을 구해줬으면 그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악은 냉상아가 금천상가에 오려고 했던 이유가 먼저였다. 만약 그녀가 자신을 방해한 놈들과 이어지지 않았다면 도와주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금천상가에 오려는 이유를 말해라.”
냉상아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천악이 먼저 이유를 물어오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할 필요 없다. 금천상가에 오려고 필사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나. 그것만 봐도 충분히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
냉상아는 설화답지 않은 행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북해의 얼음꽃이라고 해도 천악 앞에서는 가녀린 여인일 뿐이었다.
“여기는 어디지요? 금천상가에 가야 되는데!”
천악은 냉상아에게 금은혜를 소개하고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냉상아가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상황 설명을 듣고 나자 금은혜는 오히려 천악을 바라보았다. 냉상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천악이 필요했다.
천악은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북해에 가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