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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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56화
혈사신을 노리는 자들 (2)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귀신 같은 신법이었다. 율무정은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자 돌아섰다.
‘역시나 대단하군.’
고작 수하에 불과하건만 신법을 구사하는 능력이 너무 대단했다.
그림자가 사라지자마자 철호가 올라왔다.
율무정이 철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지?”
“궁주님이 시키신 대로 정보를 모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건가?”
“대막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원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을 조사해 본 결과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의문?”
“과거 혈사신의 흔적을 살펴보았을 때 강력한 수강을 뿜어내어 모든 것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러한 기운을 쓸 수 있으려면 최소한 중원의 오천존 안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천존 중에서 수강을 뿜어내는 고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근래에 벌어진 남궁혈사로 인해 교의 주적이 되어 버린 풍운마룡이 과거의 흔적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풍운마룡?”
“그런데 문제는 그의 실력과 나이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날카로운 기운을 쓴다는 것은 알아냈지만 그것이 다였습니다.”
“혈사신의 후예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알았으니 가봐라.”
“예, 궁주님!”
율무정은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곳곳에 벌어지는 살육, 갈가리 찢겨져 나가는 육편들, 대막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되는 대막혈궁의 전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찢겨나갔다. 그것은 대결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도륙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어머니조차 혈사신의 무참한 손속에 죽음을 당했다.
그날 율무정은 감정을 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살기를 고양시켰다.
‘네놈의 후예라고 해도 절대로 살려두지 않겠다!’
지금 당장에라도 놈의 후예로 의심되는 놈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모두 혈사신을 죽이기 위한 일이었다.
거대했던 제국.
세상 아래 가장 큰 제국을 건국했던 세력 역시도 세월의 힘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져야 했다. 그것이 바로 제국 중의 제국 원 제국이었다. 원 제국은 누구도 넘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중원이라는 거대한 성지(聖地)를 삼키고 놔주지 않으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사라져 버리기는 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초원은 메마르고 중원은 기름지다. 이것이 초원의 전사들이 아직도 중원을 그리워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무엇이든 빼앗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초원 민족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원 제국은 칭기즈 칸이라는 대륙 제일의 영웅이 건국했고 그 뒤를 이어 쿠빌라이 칸과 테무르 황제 대에 이를 때까지는 건재했었다. 하지만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정복한 제국을 안정시키고 서로의 반목을 최대한 억제해야 했지만 원 제국은 그러한 일을 제대로 수행할 여력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거대한 제국을 서로 지배하려는 왕권다툼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중원의 명나라가 공격해 오면서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무너지면서도 다시 한 번 반격할 기회가 있었지만 영략제 때 그러한 희망이 완전히 박살났다.
초원의 전사들은 죽어갔고, 남겨진 전사들은 흩어져서 다시 초원으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오기에는 잃은 것이 너무 많았고 뭉쳐질 원동력이 부족했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 초원 전사들에게 새로운 빛이 떠올랐다.
원 제국의 마지막 황족이 끊어졌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테무르 황제의 조손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정통성을 증명하고, 빠르게 초원 전사들을 포섭하고 힘을 키웠다. 그의 압도적인 지배력과 그 밑에 존재하는 뛰어난 군사의 역량은 다시 한 번 초원 전사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위대한 제국을 다시 한 번 꿈꿀 수 있게 해주었다.
그가 바로 철목성이었다. 전대의 황제 중에서도 치세로 이름이 높았던 쿠빌라이 칸의 호를 이어받아 쿠빌 칸이라고 붙였다. 쿠빌라이 칸의 재림이라는 명호였다.
철목성의 응집력은 대단했다.
건조한 사막과 초원으로 흩어졌던 초원 전사들이 모여들자 그 수가 제법 되었다. 또한 그들을 단련해 줄 군사도 있었다.
군사는 철목성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특이하게 중원인이었지만 계략과 전략, 전술, 군사체계에 대해서 상당히 밝은 인물이다. 철목성에게는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정복자로서 갖추어야 할 힘을 길러준 사람이었다.
철목성이 황제라는 것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했다. 아직 모든 것이 밝혀져서는 안 되었다.
이련호특(二連浩特)을 중심으로 뭉친 철목성의 군세는 20만이 넘었다. 20만이나 되는 대군이 모여 있다는 것을 중원이 알게 되면 전면전을 펼쳐야 했다. 지금 명 제국은 과거의 명 제국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힘과 재력적인 측면에서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았다. 특히 원 제국의 군사들은 기병을 중심으로 하는 빠른 속도를 중요시한다. 한마디로 기습으로 한 번에 끝을 내버리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알려지면 기습이라는 효율성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철목성의 집은 단출했다.
황제의 집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스스로 행한 일이었다. 얻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사치하면 갓 기틀을 마련한 힘이 흔들리게 된다. 애초부터 부정부패의 싹이 탄생하지 않도록 방비해야 했다. 그리고 초원 전사들에게 신뢰를 주어야 했다.
철목성은 항상 검을 놓지 않았다. 그는 황제이면서 전사라고 지칭했다.
휘이익!
검을 들고 땀으로 옷이 흥건하게 젖도록 수련을 하는 것이 그의 일상생활 중에 하나였다. 검에 실린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날카롭고 예리한 검의 궤적에서 또 다른 검이 형성되어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산산조각낼 듯한 기세를 뿜어내었다.
사아아악!
마치 누군가에 대한 원한이 서려 있는 듯했다.
수하들을 대할 때는 이런 표정을 짓지 않는다. 다만 수련을 할때는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누군가에 대한 적개심이 표출되었다.
저벅! 저벅!
철목성이 수련하고 있을 때 누군가 천천히 걸어서 다가왔다. 철목성은 그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검을 멈춘 철목성이 그를 보았다. 그가 바로 철목성을 보좌하며 군사체계를 정비한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은 섭지명이었다.
“무슨 일이지?”
“군사체계를 완비했습니다. 이련호특을 중심으로 분산시켜 놓기는 했지만 일단 전쟁을 치르면 모두 적봉(赤峰)으로 모일 겁니다. 적봉을 통해 요령성을 지나 바로 북경을 장악하는 겁니다.”
철목성은 섭지명의 철두철미한 전술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대군이 모이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 낌새를 채기 마련이었다. 군사를 분산시켜 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분산시켜 놓았다고 해도 명나라가 바보가 아닌 이상 낌새를 챌 수 있을 것이다.
“놈들이 알아챌 확률은?”
“지금으로서는 없습니다. 병사들을 낭인 신분으로 위장 시켜 놓았고 곳곳에 상인들과 연계를 해놓은 상태입니다. 낭인과 상인으로 되어 있으니 알아챌 수 없을 겁니다.”
“언제쯤 출정을 하는 게 좋지?”
“북경에 세작을 보내어 공작을 펼치고 있는 상태입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을 보내올 겁니다.”
철목성은 간혹 가다 섭지명이 무섭기까지 했다. 그는 앞일을 내다보는 현자 같으면서도 날카롭기가 명검을 능가했다.
확실히 내정이 혼란스러우면 전쟁을 치르기 편할 것이다. 방법만큼은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소식이 오는 대로 바로 출정하도록 하지.”
“그럼 준비를 모두 마치고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섭지명은 뒤로 물러나며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섭지명이 나가고 나서 철목성을 지키는 호위무장들 가운데 한 명인 야율타가 들었다. 야율타는 철목성의 개인 호위면서도 은밀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이 탁월한 인물이었다.
“찾았나?”
“죄송합니다. 놈의 흔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음!”
수십 년이 지나도 찾을 수 없었던 존재였다. 쉽사리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철목성은 자신의 아픈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영락제의 북방정벌이 있을 때 초원 전사들은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그 당시에 한 번의 반전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놈들을 끌어들여 고립시키는 방법이었다. 쉽게 성사될 수 없는 마지막 기회였다. 고립된 영락제를 죽인다면 다시 한 번 제국의 영광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한 일을 한 사람이 철목성의 아버지인 철단극이었다. 철단극은 황족이지만 계략에 밝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기병으로 속전속결하려는 순간이었다. 고립된 병력은 3만 정도였다. 그 정도라면 식후 간식거리였다. 초원의 전사들은 모두 일당백의 기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3만의 병력에게 5만의 기병이 몰살당했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무섭도록 강력한 존재가 나타났다.
그의 손과 발, 모든 병장기는 인세에 다시없을 정도로 무서운 살인병기였다. 무섭도록 강력한 힘이 5만의 기병에게 쏟아졌다. 일당백의 기세를 가진 전사들이라고 해도 사신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그의 강력한 무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또한 그의 우상이자 유일한 가족인 철단극마저 사신의 무력에 반 토막이 되어버렸다.
놈은 지치지도 않고 5만을 모조리 다 도륙했다.
오히려 기세를 탄 것은 명나라의 병사들이었다. 이후에 원 제국의 힘은 급격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철목성은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인간이라고 불릴 수 없는 강력한 존재, 망설임 없는 잔인한 손속, 그로 인해 벌어진 참사를 잊는다면 자신은 존재 가치가 없어지게 된다.
‘잊을 수 없다. 반드시 네놈을 찾아 뼈를 갈아 마시겠다!’
허무하게 죽어간 아버지에 대한 복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