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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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55화
혈사신을 노리는 자들 (1)
휘이이잉!
사막의 바람은 마르고 건조하며 거칠다.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메마르고 건조한 사막의 대륙에도 사람이 살아간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다툼과 투쟁이 있기 마련이다.
대막은 지금 전쟁 중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대막혈궁이 단 한 명의 무인에게 박살이 났다. 그날 이후 대막은 숨을 죽여야 했다. 당시 대막에서 가장 강한 무인 중에 한 명이었던 광염마제 율극환이 혈사신의 손짓 한 번에 갈기갈기 찢겨나갔던 일은 충격이었다. 그 누구도 혈사신을 입에 담지 못했다. 그의 가공할 손속과 잔인한 성향은 대막무림을 공포로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갑작스럽게 혈사신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근 5년 동안 대막은 조용했다. 언제 어디서 혈사신이 나타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공포를 잊어가게 만들었다. 대막을 지배하던 한 축이 사라지자 나머지 세 개의 축이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대막혈궁이 가지고 있던 세력을 흡수하고 땅을 지배하기 위해서였다. 다툼은 피로 이어지고 핏물이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식혔다.
수라궁(蒐羅宮), 뇌전궁(雷電宮), 벽력궁(霹靂宮)의 전쟁은 어느 순간 소강상태가 되었다. 너무 무리한 소모성 전투로 손해가 막심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소강상태가 되어버린 순간에 하나의 세력이 일어섰다.
이미 무너져 버린 세력은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는 것이 대막의 정석이었다. 일어날 기회를 주지도 않을뿐더러, 일어서더라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다시 일어선 대막혈궁은 아니었다.
대막혈궁을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은 광염마제의 손자인 율성한이었다. 그는 이름을 율무정으로 바꾸었다. 정(情)을 버렸다는 의미였다. 그 뜻이 대막 전체에 받아들여지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새로 일어선 대막혈궁은 전대의 대막혈궁보다 더욱더 무자비했다. 특히 대막혈신(大漠血神)으로 불리는 율무정의 잔인한 성품과 손속은 대막을 다시 한 번 피로 물들였다.
빠르게 예전의 성쇠를 회복한 대막혈궁이었다. 흩어졌던 대막혈궁의 잔존 세력을 규합하고 대막 일대의 중소문파들을 힘으로 복종시켰다.
이토록 쉽게 대막의 한 축으로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수라궁, 뇌전궁, 벽력궁이 소강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힘을 소모하는 동안 율무정은 은밀하게 예전의 힘을 회복시키고 한순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율무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느새 대막제일세(大漠第一勢)가 되어 대막의 모든 문파들을 통합하였다.
수라궁, 뇌전궁, 벽력궁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이 터졌다. 대막혈궁의 부활한 혈궁전사단(血宮戰士團)이 수라궁의 수라마왕대(蒐羅魔王袋)를 궤멸시켜 버린 것이다. 수라마왕대는 수라궁이 자랑하는 최강의 전투부대였다. 그런 수라마왕대가 변변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이로 인해 수라궁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대막혈궁이 예전의 대막혈궁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수라궁과 뇌전궁, 벽력궁이 대막혈궁에 대항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모았다. 세 개의 세력을 합쳐 대막연합(大漠聯合)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합일된 힘이 아닌 모아진 힘이라는 약점 때문에 대막혈궁의 집중력 있는 공격에 변변히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절박한 가운데서도 각자 영향력을 높이려는 인간의 성향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로 인해 덩치만 컸지 내실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에 한 번의 결전에서 크게 패한 대막연합은 계속 밀려 북쪽 사막에 근접하는 지역까지 밀리게 되었다.
중앙 기둥을 중심으로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둘레를 천과 나무를 덧대어 간단하게 조립한 막사형 집인 게르가 수십 개가 지어져 있었다. 게르는 원래 몽고의 전통식 집으로, 짓는 게 간단하고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투형 막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면 편리하다.
여러 개의 게르형 막사가 놓여 있고 그중에서 가장 커다란 막사에 서른 중반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어려 보이는 편이나 날카로운 눈매와 은연중 흘러나오는 혈향이 코끝을 자극하고 있었다.
중년인은 바로 율무정이었다. 대막혈궁을 부활시키고 다시 대막을 지배하기 위해서 마지막 전투를 치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율무정은 낙타의 젖으로 만든 독한 술을 마시며 소식을 기다렸다.
막사의 천이 젖혀지며 수하들이 들어왔다. 대막혈성(大漠血性)들이었다. 다섯 명의 무인으로, 지금까지 율무정을 보필하며 전투를 치러왔던 전사들이다.
철호, 철성, 철극, 철혈, 철경.
단순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들이야말로 율무정의 최측근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대막혈성 중에 가장 지략이 뛰어난 철호가 상황을 설명했다.
“놈들은 사막이 가까워지면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배수진을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리한 것은 대막연합입니다. 차라리 여기서 고사 작전을 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훗!”
율무정이 비웃었다.
고작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들이 발악하는 것이 우스웠다. 세상은 넓다. 대막이라는 좁은 장소에서 자신들이 최고라고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마련이었다.
“놈들에게 전해. 3대 1의 대결을 하자고. 싫다면 겁쟁이들이겠지!”
광오한 말이었다.
수라궁, 벽력궁, 뇌전궁의 삼대궁주를 한꺼번에 상대한다는 말이었다. 대막무림이 중원무림에 비해 격하되기는 하지만 그들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대막의 척박한 땅에서 살기 위해 익혀야 했던 실전무공을 철저하게 자신에게 맞춰 익힌 이들이었다. 쉽사리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대막혈성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율무정의 강함을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의 말을 따랐다.
사신에게 소식을 받은 대막연합의 삼궁주들은 분노했다.
팡!
서신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사신의 목부터 쳐버리는 삼궁주였다. 그들의 분노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애송이 놈의 기고만장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렇소, 놈이 죽고 싶어 용을 쓰는 모양인데, 확실하게 죽여줘야 하오!”
“하지만 잘 되었소. 눈엣가시 같은 놈을 죽일 수 있는 기회이니 원대로 해주는 것도 좋을 듯싶소.”
그중에서 가장 침착한 뇌전궁의 궁주 단목성이 답을 내었다. 화는 나지만 대막혈궁이 보여준 파죽지세의 기세를 꺾어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기회에 대막혈신 율무정의 목을 치고, 다시 한 번 기세를 올려 대막혈궁에 의해 입었던 자존심의 상처를 회복해야 했다.
이대로 다시 전면전을 펼친다고 해도 기세와 힘을 잃은 대막연합이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머릿수로 그나마 막아냈지만 이제는 그것도 부족했다.
수라궁의 좌세경과, 벽력궁의 엽만청 역시 화는 나지만 단목청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분노보다는 냉정이 중요한 시점이었다.
휘이이잉!
여전히 모래 바람이 황량한 대지를 휘감고 날아갔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상황에서 네 사람이 대치하고 있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1만에 달하는 무인들이 양 진영에서 지켜보았다.
대막연합의 좌세경, 엽만청, 단목성은 대막을 진동시키는 대막혈신 율무정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손자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놈이 거만하게 자신들을 보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사지를 자르고 목을 분질러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삼궁주였다.
하지만 보는 눈이 있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어린놈이 방자하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흥!”
좌세경의 말에 율무정은 비웃었다.
“쥐새끼처럼 생긴 놈이 뭐라고 하는 거냐.”
“뭐…야! 이놈이 감히!”
“감히라고? 네깟 놈들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여기까지 와서 예의 차릴 필요 없어. 어차피 나는 네놈들을 다 죽일 테니까!”
율무정은 삼궁주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 말에 삼궁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연배나 경험에 대한 우대 따위는 율무정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뿐이었다.
삼궁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좌세경이 왼쪽을 맡았고 단목성이 오른쪽을 맡았다. 중앙은 엽만청이 달려들었다. 삼궁주가 달려드는 기세가 율무정의 피부를 따갑게 만들었다. 역시나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좌세경의 좌수에 무섭도록 강력한 회오리가 뭉쳐졌다. 그의 독문권법인 풍룡마권(風龍魔拳)의 폭풍지멸(暴風之滅)이었다. 몸속에 충만한 내공을 권에 담아 율무정의 좌측을 공격했다. 그와 동시에 단목성이 뇌전검법(雷電劍法)의 천뇌락(天雷落)을 펼쳤다. 중앙을 맡은 엽만청도 벽력도법(霹靂刀法)의 일도단파(一刀短波)를 출수했다.
사나운 기운이 율무정의 전신을 세차게 흔들었다. 율무정은 광염마제의 독문내공심법인 광염혈류마공(狂炎血流魔功)을 운용했다. 운용한 기운이 전신에 퍼지며 미칠 듯한 진기가 용솟음쳤다.
염천탈혼도법(炎天脫魂刀法)의 지옥염화(地獄炎火)를 펼쳤다. 뜨겁고 강렬한 기운이 대막의 기온을 한층 더 뜨겁게 만들었다.
파파팡! 카가가강! 꽈과과강!
3대 1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검, 도, 권이 난무했다. 사방을 어지럽게 수놓은 것이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하지만 대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은 손에 땀을 쥐었다. 그들의 승패에 따라서 전쟁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백여 초식이 지나면서 삼궁주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린놈의 객기로 치부했건만 지닌바 실력이 엄청났다.
‘이놈의 실력이 이 정도란 말인가!’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설 자리가 없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삼궁주는 굳게 마음을 먹고 최선을 다했다.
삼궁주는 자신이 가진 최강의 초식을 펼쳤다. 전신내공을 모두 검, 도, 권에 집중해서 한순간에 승부를 보려고 했다.
율무정 역시 그러한 기색을 눈치 챘다. 그들의 강렬한 기세에도 율무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꽈과과광!
강렬한 충돌이었다.
서로가 가진 최강의 힘이 격돌하자 사막의 모래 바람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모래 바람이 시야를 가렸다.
다시 바람이 불어왔을 때 네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삼궁주는 믿을 수 없었다.
“설마?”
“이것은?”
“태양신공(太陽神功)!”
삼궁주의 최후였다. 그들의 몸이 순식간에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삼궁주의 몸을 태우는 기운은 태양신공의 태양멸혼(太陽滅魂)이었다. 불같이 뜨거운 기운으로 혼까지 소멸시키는 무공으로 온전한 시신조차 남기지 않았다.
마지막에 삼궁주가 놀라는 이유는 바로 태양신공에 있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대막의 전설 중에 태양왕이 나타나 대막을 일통하고 대막의 무서움을 만천하에 알린다는 전설이 있었다.
율무정의 몸이 태양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그 기운이 보고 있던 모든 무인들의 가슴을 불태웠다.
“태…양왕이닷!”
태양왕이 재림하면 대막의 모든 무인은 그 앞에 경배를 하며 복종해야 한다.
존재를 증명한 율무정이었다.
이제부터 대막의 모든 것은 대막혈궁 아래에 놓일 것이다.
대막을 처음으로 일통한 대막혈궁은 일사천리였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며, 대막의 무인과 상권이 대막혈궁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삼궁주와의 대결이 끝나고 율무정은 철호에게 한 가지를 지시했다. 그 일은 율무정의 숙원이자 지금까지 살아온 유일한 이유였다.
대막혈궁의 가장 높은 태사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게 된다.
율무정은 대막혈궁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뒤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율 궁주님!”
“할 말이 있으면 하고 가라.”
“대막상권에서 벌어들인 재산을 조금 보내주셔야겠습니다.”
“알겠다.”
율무정은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못 한다고 말해야 정답일 것이다. 대막혈궁을 다시 일으킨 모든 힘을 얻은 곳에서 시킨 일이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대막의 힘을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모두 모아주십시오.”
“독 장로님에게는 모든 것을 협조하겠다고 전해라.”
“율 궁주님의 협조에 독 장로님도 흡족해하실 것입니다.”
“그럼 가봐라.”
“알겠습니다.”
슈슉!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