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54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54화
삼태상(三太上) (4)
“으음!”
연무장의 가장 구석진 곳에 누워서 수면을 취하고 있던 누군가 칼바람 같은 기운에 정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이상한 장소에 누워 있게 된 궁자생이었다. 궁자생은 궁극한이 들고 와서 연무장의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상태였다.
허억!
무형의 기운에 헛바람을 삼키는 궁자생이었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뿜어낼 수 없는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이런 살벌한 기운이 어디서 나오는지 몰라도 패왕마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이럴 수가!’
패왕마공을 끌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힘의 여파를 줄일 수 없었다.
“이리 오너라.”
두둥!
궁자생은 자신이 원하는 것도 아닌데 몸이 저절로 붕 뜨더니 곽천진의 영향권으로 날아왔다.
궁자생은 허공섭물을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기운을 보여준 사람이 교주라는 것을 알자 기겁했다.
“교…주님!”
“조용히 지켜보아라.”
“옙!”
더 이상 입을 놀리지 못했다. 마교에서 교주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더군다나 좀 전에 보여준 엄청난 허공섭물에 경악한 상태였다.
궁자생은 천마의 뒤에서 어정쩡하게 선 채로 상황을 살펴보았다. 압도적인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세 명의 노인이 있었다. 그 앞으로 자신을 일수에 제압한 청년이 서 있었다.
‘이런 엄청난 기운을 버틴단 말인가!’
자신은 전신의 내공을 모두 발휘하고도 내상을 입을 뻔하지 않았는가! 그것을 생각하자 자신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궁자생이 건드린 청년이 상상을 불허하는 고수라는 것을 알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저쪽을 보아라. 네 할애비다.”
곽천진이 가리킨 곳은 삼태상 중의 한 명인 궁극한이었다. 궁자생도 궁극한을 볼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할아버지였다. 조금 전까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한 자신이 아닌가! 할아버지를 제대로 볼 면목이 없었다.
“네 할애비의 실력을 보아라, 그는 자신의 실력만으로 이 정도나 강해졌다. 너는 자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의 실력만 있다면 자리는 찾아오는 것이다.”
쿵!
성급한 궁백림만큼이나 궁자생의 성격 역시 겉으로 잘 드러났다. 자신의 어리석음에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궁자생이었다. 그러나 뒤이어서 들려오는 천마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네 할애비는 강하지만 꼴이 말이 아닐 거다.”
“그게 무슨?”
천마가 인정한 강자인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삼인혈성진이 개진되자마자 대결이 시작되었다.
사악!
가공한 기운이 칼날처럼 불어오는 가운데, 한 점의 바람이 불었다.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바람. 무변(無變)의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공기의 움직임이다. 움직임이 있으면 당연히 공기의 유동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움직임 없는 무변의 바람이 불었다.
공간을 갈랐다.
삼태상 중에 핵심인 전륜마도 궁극한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천악이 존재하지 않았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생각이 미처 정리되기도 전에 천악이 나타났다.
그것도 궁극한의 코앞에 나타난 것이다.
천마만이 저럴 줄 알았다고 생각할 뿐이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움직임이었다.
삼인혈성진의 무서운 점은 처음에 뿜어져 나가는 무형의 기운이었다. 그 기운으로 상대의 기세를 꺾고 움직임을 봉쇄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세가 천악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그 정도의 기세에 꺾일 천악이 아니었던 것이다.
헛!
“이런!”
너무 놀랐다.
궁극한의 시야를 완전히 벗어난 존재는 생애 처음이었다. 어느새 나타난 천악이 일격을 뻗었다. 가장 최단거리의 주먹이었다. 일직으로 뻗어나가는 일격은 섬광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했다.
푸아아앙!
꽈과광!
일권에 스며든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빠른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가공할 권격이었다. 궁극한은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힘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삼태상 중의 일인이 너무나 쉽게 당하자 삼인혈성진이 한순간에 깨졌다.
용혈마검 윤권과 귀곡신마 곽신양이 미처 손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반백년 동안 손발을 맞추어 온 자신들이었다. 속수무책도 정도가 있었다. 너무 쉽게 깨지자 황당한 말이 곽신양의 입에서 나왔다.
“다…시 하자!”
공격을 가하려던 천악이 멈추었다.
시간을 주고 다시 한 번 해보라는 뜻을 내비추었다.
스스로 말을 하고도 얼굴을 붉히는 곽신양이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대결에서 다시 하자라는 말을 하다니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졌다.
“뭐야?”
궁자생은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눈을 비비며 다시 보았다.
천악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도 못했다. 천악이 한 발을 내딛는 찰나에 뭔가 번쩍하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 그것이 다였다.
“저…놈은 도대체 누구야?”
궁자생은 교내에 교주 말고 저런 엄청난 고수를 본 적이 없었다. 있다면 마교의 우환을 걷어낸 마신뿐이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궁자생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마…신……!’
덜! 덜! 덜!
온몸이 떨려왔다.
마신이라는 결론을 내리자 모든 것이 다 맞춰졌다. 조각난 것들이 하나로 이어지자 궁자생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자신이 뭔 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용할 지경이었다.
“크윽!”
궁극한이 연무장의 벽에 부딪치고 나서 일어났다. 다시 공격해 온다면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욱씬! 욱씬!
단 일격이었는데 몸이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다. 반면에 굉장한 공격을 한 천악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믿지 않았는데 사실이었구나!’
삼태상은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소문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강자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씨익!
천마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찍어보니 똥맛이지.’
곽천진이 보기에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더 비참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괜히 통쾌한 천마였다. 일 년 동안 내려가지 않은 똥이 순식간에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삼태상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정색하며 천악을 보았다. 좀 전까지 무시무시한 일격을 날린 사람 같지 않았다.
삼태상의 공통된 의견은 하나였다.
‘다시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삼태상은 삼인혈성진을 다시 펼쳤다. 최고의 힘으로 실력발휘를 해보아야 했다. 이대로 진다면 개망신이었다. 시험이고 뭐고가 아니었다. 그냥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 된다. 이러려고 40년 동안 은거를 한 것이 아니었다. 뭔가를 보여주고 끝을 내야 했다.
곽신양은 보지 말아야 할 것까지 보았다.
곽천진이 야릇하게 웃는 모습을 말이다.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보고 나니 그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오기였다.
하지만 오기도 상대를 봐가며 부려야 한다는 걸 깨닫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삼태상이 삼인혈성진을 형성하여 전신내공을 모두 진에 가미했다. 공력과 공력을 공조하여 내공의 증폭을 불러일으켰다.
1의 힘에 1을 더하면 2가 되는 것이지만 진법을 이용하면 3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전신의 내공을 모두 사용하려면 그만한 힘을 받쳐 주는 능력이 돼야 하는 단점과, 일단 사용하고 난 후 후유증이 남는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천악의 움직임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일단 움직임을 잡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판단한 곽신양이 먼저 방어하고, 공격한 후에 이어지는 짧은 공백의 시간에 다시 공격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까딱!
천악이 가볍게 주먹을 쥐자 삼태상이 움찔거렸다. 가볍게 움직이는 주먹의 궤적이 얼마나 굉장한지 겪어봤기에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천악은 전투에는 진지하게 임했다. 상대를 비웃지도 않을뿐더러 상대가 약하다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슈웅! 쿠과과광!
천악의 주먹에서 무형의 권격이 형성되어 뻗어나갔다.
삼인혈성진의 공격적인 성향을 모두 방어에 주력했다. 그런데 일단 천악의 권격이 부딪치자 방어진의 한 축이 일방적으로 흔들렸다.
“으윽!”
쿨럭!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연속적으로 무형권격을 날리는 천악이었다. 접근해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사정거리를 두고 날리는 무형권격에 삼태상은 속수무책이었다. 압도적으로 강하면서도 상대에게 틈을 전혀 내주지 않는 천악이었다. 냉철하게 상대를 파악하고 역으로 공격하는 천악의 가공할 수법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
파파팡! 파파팡! 파파팡! 파파팡!
무형권격의 위력은 태산을 단숨에 부숴버릴 정도로 강했다. 방어진을 구축했다고 생각했지만 소용없었다.
거리 대비 위력이 상상초월이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지는 권격이 아니었다. 천악에게 거리는 무용지물이었다.
꽈다다당!
점점 강해지는 무형권격에 삼태상이 방어를 하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져 버렸다. 볼썽사납게 바닥을 뒹굴었다고 보면 정답이었다. 천악이 쓰러져 있는 삼태상을 향해 걸어갔다.
크아아악!
마교의 삼태상이 비명을 질렀다.
고통은 연륜이나 경험이 많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지하 연무장을 가득 메우는 노인들의 비명이 가히 듣기가 좋다고 볼 수 없었다.
사람의 다리를 잡고 바닥에 내리꽂아 버리고 발로 머리를 차버리는 천악의 행동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경로사상이 땅바닥에 처박혔다고 할 만한 일이었다.
삼태상은 항복이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치솟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말을 할 틈이 없이 이어지는 무참한 폭격에 불쌍할 따름이었다.
딸꾹!
궁자생은 마치 자신이 당한 것처럼 딸꾹질을 했다. 보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상황이었다. 사람을 저처럼 무식하게 팰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 차라리 깨끗하게 죽이는 것이 더 참혹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전신이 냉증(冷症)에 걸린 것처럼 덜덜 떨려왔다. 이와 이 사이에 따딱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마신이 화를 내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뼈저리게 깨닫는 궁자생이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곽천진도 미간을 찌푸렸다. 핏물을 이리저리 흘리며 볼썽사납게 개망신을 당하고 있는 삼태상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과 교차되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도 저렇게 맞았나?’
천악이 때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맞았는지는 때린 사람만 기억한다.
커어어억!
마교의 역대 강장 중에서도 가장 강한 편에 속하는 전륜마도 궁극한, 용혈마검 윤권, 귀곡신마 곽신양은 죽도록 맞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맞아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말이다.
철퍼덕!
패대기쳐진 삼태상의 몸꼴은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가 되어버렸다. 온몸이 걸레 조각처럼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얼굴은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단전과 혈이 멀쩡하다는 것에 있었다. 정신을 잃지 않고 고스란히 모든 충격을 받은 것이다.
천악이 쓰러진 삼태상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은 처한 상황이 비참할수록 미지의 힘을 내는 동물이다. 극한까지 내몰리게 되면 악에 받쳐서 힘을 내기 마련이었다. 물론 좌절해서 망가지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평생 무공을 익힌 무인이었다. 이 정도에 좌절해서 무너진다면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천악이 돌아섰다.
궁자생의 눈이 천악과 마주쳤다. 천악이 희미한 미소를 보내자 궁자생은 벼락이 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천악이 보내는 미소는 마치 다음에 만나면 그냥 두지 않는다는 협박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