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78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78화
178화 다짐 (3)
***
프레하 제국 흑기사단의 분위기와 달리, 아이언 영지의 집무실은 평온함이 흐르고 있었다.
하이든 백작의 군대가 벙커의 비밀 통로를 통해 진입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언 백작! 정말 고생했네. 자네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어.”
듀카스 대공이 대견한 눈을 하고서 윌슨에게 칭찬을 건넸다.
“발루아 공작과 나머지 소드 마스터 한 놈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대공 전하.”
윌슨이 아깝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프레하 제국의 소드 마스터 셋을 한꺼번에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날아간 것에 아쉬워하는 거였다.
“욕심이 과하군. 소드 마스터 한 명을 해치운 것만으로도 엄청난 전공을 세운 것일세. 당장 나부터도 텔레포트 스크롤을 휴대하고 다닐 정도니, 저들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
듀카스 대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만큼 중요도 또한 높은 게 바로 소드 마스터다.
귀중한 전력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안전장치 한두 개쯤은 구비하고 다니는 게 보통.
근접전투를 벌이는 상황에서라면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하는 게 어렵겠지만, 마법 공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마법으로 먼저 공격한 것이 실수였다고 봐야지.’
듀카스 대공이 무심한 얼굴로 앉은 세인트를 힐끔 쳐다보고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의 상황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인트의 이동 속도가 더 빨랐고 한꺼번에 두 명의 소드 마스터를 해치우려면 고위 광역 마법만큼 확실한 수단은 드물었으니까.
지금 당장은 적국의 소드 마스터 전력 하나를 처리했다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인 일이다. 그만큼 아군의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우리 엘튼 제국의 소드 마스터는 전부 넷일세. 자랑은 아니지만, 내 아들 녀석은 나름 쓸만한 수준의 소드 마스터지. 그러나 실전 경험은 부족하다고 봐야 하네. 모리스 공작의 장남은 더 말하나 마나가 되겠지.”
듀카스 대공의 얼굴이 씁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실질적으로 전장에 투입할 만큼 전투 경험이 풍부한 소드 마스터는 엘튼 제국에 둘 밖에 없는 셈이다.
경험이 부족한 소드 마스터를 무리하게 투입했다가는 낭패를 겪을 확률이 높다. 소중한 소드 마스터 전력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잃을 수도 있는 일.
몇 년 시간이 더 지나고 전투 경험이 쌓이면 모를까, 지금 당장 프레하 제국의 소드 마스터와 붙였다간 허망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결국, 프레하 제국의 소드 마스터를 상대할만한 사람은 현재로썬 듀카스 대공과 윌슨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썬 버티는 수밖에 없겠지. 아이언 백작마저 없었더라면…….’
듀카스 대공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한숨을 내쉬면서 윌슨을 쳐다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은 젊은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엄청난 전공을 세우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제는 엘튼 제국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만약 윌슨이 아니었다면 혼자서 프레하 제국의 소드 마스터를 상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군.’
혼자서 현재의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니,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프레하 제국의 소드 마스터는 이것으로 최하 셋이 되었으니, 나쁘지 않은 결과이긴 합니다. 대공 전하.”
“최하 셋?”
듀카스 대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말에서 뭔가 묘한 뤼앙스가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를레앙 공작까지 합친다면 분명 셋입니다.”
“그렇지 놈들은 셋이나 되는 소드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지, 그런데 내게 할 얘기가 있는 듯하군.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맞습니다. 놈들은 죽은 자를 되살려 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소드 마스터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윌슨이 경각심을 높이려는 의도로 얼굴을 굳히면서 말했다.
“또 다른 소드 마스터를 죽음에서 일으켜 세웠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을 겁니다.”
단정적으로 말하는 윌슨.
“으음…….”
[…….]
침음성을 흘리는 듀카스 대공을 따라,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나머지 귀족들도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지루한 얼굴의 세인트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가 흔한 건 아니잖소. 아이언 백작.”
침묵을 깬 것은 슬런더 요새에서 후퇴한 베르나 백작이었다.
‘일반 흑기사도 무시할 수 없는 놈들인데… 소드 마스터급 흑기사라면 대체 얼마나 대단할지 가늠이 안 되는군.’
새로운 소드 마스터의 출현 가능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정하는 거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아이언 백작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 베르나 백작.”
미간을 찌푸린 듀카스 대공이 손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지면서 심각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놈들에게 몇 명의 소드 마스터가 있는가 하는 게 아니오.”
[…….]
듀카스 대공의 말에 집무실은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소드 마스터의 숫자가 더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한두 명? 최근 사망한 소드 마스터는 프레하 제국이었소. 발루아 공작으로 분장한 놈은 아마도 오를레앙 대공일 확률이 높다고 봐야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공 전하. 그러나 우리가 불리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윌슨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맞장구를 쳤다.
소드 마스터라는 게 흔치 않은 존재인 만큼 시체 또한 흔할 리가 없다.
새로운 소드 마스터급 흑기사가 등장할 확률은 높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그럼에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알고 있네, 그래서 아들 녀석과 모리스 공작의 장남이 지원하기로 했으니, 조금은 숨통이 트일 걸세. 부족한 전력은 동맹국에 사신을 보내 지원을 요청해 두었지.”
듀카스 대공이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자신의 아들과 모리스 공작의 장남이 경험부족이라는 건 알지만, 언제까지 보호하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최소한 둘이서 프레하 제국의 소드 마스터 하나를 상대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부족한 경험을 채울 수 있을 거로 보았다.
“동맹국이라면…….”
뜻밖의 얘기에 윌슨이 눈을 크게 떴다.
소드 마스터의 지원보다도 다른 국가의 지원이 더 반가웠던 까닭이다.
“아직은 결정 난 사안이 아니라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는 일일세. 그저 동맹국에 병력 지원을 받기로 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 게 낫겠지.”
듀카스 대공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윌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은 행동이었다. 어쩐지 듀카스 대공이 말하기를 꺼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아직 전쟁은 시작도 안 한 셈이야. 굳이 자세한 얘기를 들을 필요는 없겠지. 말이 새어나갈까 봐서 걱정하시는 듯하고…….’
윌슨이 듀카스 대공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렇게 결론지었다.
지금 상황에서 뾰족한 수가 나올 일은 없었다. 아이언 영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프레하 제국군의 이동을 막는 게 고작.
최악의 경우,
고립된 채로 지루한 장기전을 벌일 수도 있는 일이다.
프레하 제국군이 이곳에 포위 병력을 남겨두고, 나머지만으로 엘튼 제국을 도모하는 상황도 무시할 수는 없다.
어떤 식으로 상황이 진행되건 듀카스 대공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아이언 영지를 방패로 삼아 저항하는 것이 프레하 제국군의 전력을 약화하는 방법인 것만은 사실이니까.
그렇게 듀카스 대공과 윌슨을 주축으로 대화가 오가던 집무실의 분위기를 깬 것은 문에서 들리는 노크였다.
똑, 똑, 똑!
“들어오라!”
듀카스 대공이 집무실의 출입문을 바라보며 음성을 키웠다.
그러자 갑옷을 입은 기사가 안으로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았다.
“프레하 제국군이 아이언 성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총사령관 각하!”
“알겠다. 곧바로 나갈 터이니, 전투태세로 전환하고 대기하라!”
듀카스 대공은 올 것이 왔다는 얼굴로 어금니를 한번 꽉 물고는 기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충!”
기사가 군례를 올리고 나가자, 듀카스 대공이 한차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프레하 제국이 어떤 지저분한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우리 엘튼 제국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오. 그러기 위해선 이곳 아이언 영지를 기필코 사수하여, 프레하 제국의 기세를 꺾어야 하오.”
[명심하겠습니다. 총사령관 각하!]
눈에 잔뜩 힘을 준 듀카스 백작의 결의에 가득한 음성은, 귀족들의 두 주먹을 절로 불끈 쥐게 만들었다.
“자! 놈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러 가십시다.”
지휘관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그는 이내 옅은 미소를 짓고는 집무실의 문을 나섰다.
***
“발루아 공작,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오를레앙 공작이 걱정과 황당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발루아 공작의 옆에 나란히 말을 몰았다.
“윈스터 경이 상대를 너무 우습게 생각하고 덤벼들었던 모양이오.”
“허면 뱅크스 요새를 구원하러 가시겠다는 건…….”
오를레앙 공작이 말끝을 흐렸다.
자칫 발루아 공작이 오해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질책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놈들에게 엄청난 마법사가 존재하오. 적어도 7서클 이상의 마법사인듯싶소. 베르나르 궁정마법사가 아니라면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소. 뱅크스 요새의 구원은 2군단에 맡기는 것이 나을 듯하오.”
발루아 공작은 무거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 엘튼 제국을 도모하는 것에 차질이 생겼다고 자책하는 중이었다.
“으음… 그렇겠군요. 7서클급 마법사가 설치한 마법진이라면 무아를랑 공작에겐 무리일 테지요.”
오를레앙 공작이 순순히 발루아 공작의 뜻을 받아들였다.
마법 전력에 밀려서 뱅크스 요새를 구원하는 걸 미뤘다는 데야 뭐라할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윈스터 경의 죽음은 뼈아픈 손실이 될 것입니다. 발루아 공작.”
“걱정하지 마시오. 놈들은 아이언 성에 갇혀 있는 신세니, 반드시 밖으로 끌어내서 싸우게 할 예정이오.”
발루아 공작이 멀리 아이언 성을 노려보면서 잇몸을 드러냈다.
“아이언 성을 놔두고 진격할 수 없다는 걸 발루아 공작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물론이오. 놈들을 무시하고 지나친다면 엘튼 제국으로 진군하는 우리의 뒤를 노릴 게 분명하지 않겠소?”
대답하는 발루아 공작의 눈이 더 가늘어졌다.
아이언 영지에 세운 성이, 프레하 제국의 브뜨아 요새를 흉내냈다는 건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절대로 놔두고 지나칠 수 없는 위치다. 아이언 영지를 놔두고서 진격했다가는 자칫 엘튼 제국의 트럼벌 요새의 병력과 앞뒤로 포위될 수도 있는 일.
그래서 뱅크스 요새의 병력을 동원해 숫자로 밀어붙일 생각이었는데, 그게 틀어지고 만 것이다.
“황제 폐하가 진노하신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된 이상 장기전에 돌입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아이언 성을 포위하고 놈들을 굶겨 죽이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닙니다.”
오를레앙 공작이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그때,
“좀스럽군.”
감정이라곤 하나도 묻어나지 않는 음성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드라스 경,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성을 포위하고 적의 보급을 차단하는 것 역시 작전입니다. 어찌 그런 식으로 매도하실 수가 있습니까.”
오를레앙 공작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시시해, 너무 시시하군. 내가 원했던 건 이런 싱거운 전쟁이 아니다.”
드라스가 고개를 흔들어댔다.
지겹다는 표정을 담은 그의 얼굴에선 짜증마저 묻어나고 있었다.
‘이 작자가?’
오를레앙 공작의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황제의 명령으로 군에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아직 드라스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다.
그저 소드 마스터급 기사라니까 그러려니 하고 있었을 뿐이다. 발루아 공작과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얘기하는데 끼어드는 꼴이 못마땅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듯한 성도 없는 걸 보면, 어디 용병으로 굴러먹다 죽은 인간 같았으니까 말이다.
하는 행동마저 불량스럽고 거친 것을 보면 딱 그럴 것이라고 오를레앙 공작은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전투가 벌어지면 싸우고 싶지 않아도 싸우게 될 거요. 그러니 안달하지 않으셔도 좋소. 드라스 경.”
오를레앙 공작이 폭발할 기미를 보이자, 발루아 공작이 대신 나서서 중간에 끼어들었다.
“흐음… 조금 서둘러주면 좋겠는데? 내가 지루한 건 못 참거든.”
발루아 공작이 나름 예의를 차려 말했음에도 드라스는 삐딱하게 말을 받았다.
“알겠소. 그러니 우리끼리 분란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소.”
“좋아, 믿어 보겠어. 발루아 공작.”
한동안 시선을 맞추던 드라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이내 전투마를 몰고 멀어져갔다.
“제멋 대로에 안하무인이군요.”
오를레앙 공작이 기분 나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예의 없게 말하는 것이나, 자신과 발루아 공작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게 못마땅했던 것이다.
“저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오를레앙 공작.”
“저런 행태를 두고만 보라는 말씀이십니까?”
오를레앙 공작이 얼굴을 붉히면서 볼멘소리를 했다.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강자요. 어쩌면 황제 폐하께서 숨겨둔 힘일지도 모르겠소.”
발루아 공작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오를레앙 공작이 새삼스러운 얼굴로 멀어져가는 드라스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인정하는 발루아 공작이 실력을 가늠할 수 없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아서였다.
실력자라고 생각하니, 드라스의 건방진 태도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한계를 넘어선 강자들은 가끔 괴팍한 성향을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드라스의 전신에 흐르는 기세가 흑기사와는 묘하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습한 느낌을 준다는 건 비슷했지만, 절대도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굳센 기운이 느껴진다.
“발루아 공작, 어쩌면 이번 전쟁은 우리가 쉽게…”
드라스의 진면목을 보게 된 오를레앙 공작이 막 발루아 공작에게 기쁨을 드러내려는 순간,
<오를레앙 공작, 네놈이 총사령관이라며? 반갑다, 빌어먹을 자식아! 사람 드럽게 없나 봐? 네깟 놈이 총사령관 자리에 앉는 걸 보면?>
충만한 마마의 기운을 품은 밉살스러운 음성이 아이언 영지 전역에 울려 퍼졌다.
“…….”
오를레앙 공작은 화가 나기보다, 전신에 소름이 좌르르 돋는 괴상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밉살스러운 음성과 내용에 분노가 솟구쳐야 하는 게 당연한 데도 말이다.
***
“응? 오를레앙 공작, 혈색이 좋지 않소. 왜 그러시는 거요?”
발루아 공작이 놀라서 물었다.
이제껏 멀쩡하게 자신과 대화하던 그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은 오를레앙 공작이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치고는 잠시 갈등했다. 그러나 이내 길게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후우… 아이언 백작을 떠올리면 이렇게 됩니다. 저도 어째서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생전의 아버님과 마주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오를레앙 공작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이상하게 발루아 공작의 곁에 서면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게 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를레앙 대공을 얘기하는 거요?”
발루아 공작이 다시 질문을 던지고서 쓰게 웃었다.
자신을 아버지라 밝힐 수 없는 상황이라 곤혹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아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었다.
‘이 녀석과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대화해본 적이 없구나. 쥐잡듯이 다그치기만 했어. 술이라도 한 잔 기울일 여유도 없이 대하기만 했지, 멍청하게도…….’
발루아 공작은 하얗게 질린 오를레앙 공작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아쉬워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만 생각했을 뿐, 애틋한 대화 한번 나눠 본 적이 없다. 죽음에서 부활하고 가장 뼈저리게 후회한 게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아들 녀석이 평소에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아버님은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프레하 제국 최고 실력자였으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말입니다. 아이언 백작을 떠올리면 마치 아버님 앞에 선 것처럼 위축되곤 합니다.”
오를레앙 공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발루아 공작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 아들에게 자신은 그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얘기도 들을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이언 백작의 실력이 그처럼 대단하다고 생각하진 않소. 오를레앙 대공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로서는 좋은 분이 아니었던 모양이구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발루아 공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접 경험해본 윌슨은, 생전의 자신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니, 실력만으로 따지면 생전의 자신보다 강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기세만큼은 생전의 자신과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다.
가볍다고나 할까?
‘어쩌면 그래서 더 위험한 놈인지도 모르지.’
윌슨을 떠올린 그는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목숨을 취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들 녀석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한편으로는 아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주제와 상관없이 ‘오를레앙 대공’의 얘기를 자꾸 꺼내고 있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한결 마음이 든든합니다. 으음… 아버님은 엄격하신 분이셨지만, 좋은 분이셨습니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으셨지만, 제가 성취를 이루면 등을 쓸어주곤 하셨…….”
오를레앙 공작은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발루아 공작도 베링 요새에서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등을 두들겨 주었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느끼지 못했는데, 말을 하다 보니 이상함을 느끼는 오를레앙 공작이었다.
‘너무 앞서나갔군. 아버지는 저렇게 말을 많이 하는 분이 아니지. 다정다감과는 멀리 떨어진 분이시고.’
오를레앙 공작은 이내 상념을 털어냈다.
자신의 제국에서 괴이한 일들을 벌이는 까닭에 말도 안 될 상상을 해버렸다고 생각했다.
눈앞의 발루아 공작과 자신의 아버지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기엔 괴리감이 너무나 컸다. 아무리 몰상식해도 자신의 허락 없이 무아를랑이 아버지를 부활시켰을 거라는 상상도 너무 비약이 심했고 말이다.
“갑자기 말을 하다가 마는 이유가 무엇이오?”
발루아 공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기회였는데, 중간에 말이 끊기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제 아버님은 굉장한 분이셨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감상적이 되려는 것을 경계하고서 오를레앙 공작이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오를레앙 대공에 대해 궁금했는데, 얘기하고 싶지 않다면 할 수 없겠지요. 응? 베르나르 마법사께서 오시는군요.”
마저 얘기를 듣지 못해 아쉬워하던 발루아 공작이 말을 타고 다가오는 베르나르를 발견하고서 반가운 얼굴을 했다.
흑마법으로 부활하고서는 껄끄러운 관계였으나, 얼마 전 베르나르 역시 흑마법사로 거듭났다.
같은 처지가 되고서야 다시 예전처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처지를 얘기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록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허허허! 반갑습니다. 발루아 공작.”
베르나르가 말을 몰고 오면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발루아 공작은 검붉은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 그에게 마주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베르나르 경.”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서둘러서 도착하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두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 오를레앙 공작은 뻘쭘해지고 말았다.
명색이 총사령관임에도 베르나르가 자신보다 발루아 공작에게 먼저 알은체를 하니, 뒤늦게 인사를 건네기가 찜찜했다.
‘곤란하게 되었어. 이래서야 하나로 힘을 모으기가 어려워지겠구나.’
오를레앙 공작은 속으로 탄식했다.
영광스러운 총사령관의 자리를 위임받았으나, 나이가 지긋한 귀족들은 자신에게 고개 숙이는 걸 꺼리는 듯하다.
심지어 2군 사령관인 아르쿠르 후작마저 느릿하게 말을 몰고 다가오고 있었다. 인사하러 오는 게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이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최고의 대접을 받기엔 아직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만 깨달은 셈이다.
아버지였던 오를레앙 대공이 총사령관이었을 때는 이런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그였다.
“…였습니다. 그런데 총사령관께서는 저주에 걸려 있구려.”
“네?”
씁쓸한 미소를 짓던 오를레앙 공작은 자신을 부르는 베르나르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저주’에 걸려 있다는 말에 반응한 것이다.
“머리 쪽에 미세하게 저주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오를레앙 공작.”
베르나르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오를레앙 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베르나르처럼 자신의 머리를 더듬었다.
“고위 마법사가 건드려 놓은 것 같습니다. 저도 눈여겨보지 않았더라면 발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제가 봐 드려도 되겠습니까?”
베르나르가 호기심을 나타내면서 말했다.
오를레앙 공작의 곁에 무아를랑이 있음에도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의 저주다.
흑마법사로 거듭나면서 거의 8서클에 근접하는 마법사가 된 지금, 어지간한 마법은 거의 간파하는 수준이 되었다.
비록 흑마법에 의한 강제 각성이었으나, 그럼에도 현자급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오를레앙 공작의 머리에서 느껴지는 교묘한 마법을 해제해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경지를 개척하면서 어지간한 마법은 시시하게 느껴지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빨리 건드려보고 싶을 뿐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오를레앙 공작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
요즘 들어 이상함을 느끼던 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몇몇 기억은 중간중간 빠져 있었다. 그것도 특정 인물과 관련된 기억은 뭔가 부자연스럽다.
<어이! 우리 쉬엄쉬엄하자고, 디리온 황제 새끼가 지랄하면 내가 천천히 싸우자고 했다고 말해. 수고해라!>
다시금 들리는 윌슨의 밉살스러운 음성.
오를레앙 공작은 몸에서 괜한 떨림이 일어나자, 짜증이 치밀었다.
“말에서 내리시지요. 오를레앙 공작.”
베르나르가 말에서 내려 인자한 얼굴로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빌어먹을 노인네.’
끝까지 ‘총사령관’ 혹은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자신을 치료할 사람이 베르나르가 유일했기에 애써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알겠습니다. 베르나르 경.”
은근히 치미는 분노를 가라앉힌 오를레앙 공작이 순순히 전투마에서 내렸다.
“마침 천막이 완성되었군요. 저쪽으로 가시지요.”
“좋습니다.”
베르나르가 이제 막 병사들이 완성한 사령부 표식이 붙은 천막을 가리켰다.
오를레앙 공작은 순순히 그를 따라 천막으로 걸어갔다. 그러는 사이, 아르쿠르 후작이 전투마에 탄 채로 접근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발루아 공작 각하!”
“겨우 며칠이 지났을 뿐일세. 오느라 수고했네.”
발루아 공작은 간단하게 인사를 받아주고서 천막에 들어가는 오를레앙 공작에게 시선을 던졌다.
“무슨 일로 오를레앙 공작이 베르나르 경을 따라가는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 저주마법을 걸었던 모양이요.”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로 발루아 공작이 대답했다.
‘총사령관’이라는 호칭은 쏙 빼놓고서 작위만 말하는 아르쿠르 후작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훗! 총사령관이라는 작자가 저주 따위에 걸리다니, 어처구니가 없군요.”
그러자 아르쿠르 후작이 코웃음을 치면서 오를레앙 공작을 비웃었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몸으로 저주 마법이 걸렸다는 것은, 그의 상식으로 봤을 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나를 운용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무방비 상태에서 저주에 걸렸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어찌하여 철부지한테 총사령관의 자리를 양보하신 겁니까. 저렇게 덜떨어진 애송이한테 총사령관의 자리가 가당키나……”
비웃음을 담아 이죽거리던 아르쿠르 후작이 말을 끝맺지 못했다. 피부를 에일 듯한 살기가 옆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죽고 싶은가?”
“발루아 공작 각하…….”
갑작스러운 살기에 아르쿠르는 당황하고 말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오를레앙 공작이 총사령관일세. 내가 그에게 직접 총사령관의 자리를 넘겼다는 걸 알면서 비웃는다는 건, 나를 무시하는 것으로 봐도 되겠나?”
발루아 공작이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나타내고 있지 않아서 진정으로 화가 난 것인지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이 살기는 지, 진짜야.’
하지만 발루아 공작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살기가 단순한 경고로 취급하기엔 너무나 강렬했다.
“결코,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발루아 공작 각하!”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아르쿠르 후작은 전투마에 올라탄 채로 정중하게 군례를 올렸다.
“주의하게.”
“명심하겠습니다.”
아르쿠르 후작은 기가 죽은 음성으로 대답하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같은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발루아 공작은 베르나르와 오를레앙 공작이 들어간 천막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아악!>
“!”
발루아 공작은 천막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눈을 크게 떴다.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비명이었기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파앗!
비명을 듣는 것과 동시에 전투마를 박차고 뛰어올라 천막까지 단번에 질주했다.
펄럭!
출입문 역할을 하는 두꺼운 천을 걷어내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요!”
안으로 들어간 발루아 공작이 놀라서 물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고통스러운 얼굴로 숨을 몰아쉬는 오를레앙 공작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베르나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더 발루아 공작은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그의 시선은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린 오를레앙 공작에게로 시선이 다시 돌아갔다.
“아이언 백작… 놈을… 반드시 죽일 것입니다.”
뿌드득!
이제껏 지워져 있던 기억을 되살린 오를레앙 공작은, 눈에 불길이 활활 타오른 채 복수를 다짐했다.
***
성벽 위에서 오를레앙 공작을 비웃는데, 반응이 없으니 분위기 참 썰렁하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상대가 호응해줘야 신이 나서 나도 마주 욕을 퍼부을 수 있는 법이다.
이러면 재미가 없다.
오를레앙 공작이 걸려들면 계속 약을 올려서 1:1 결투를 제안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새끼, 더럽게 소심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