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17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17화
희불승 연광(煉光) (4)
천악 일행이 발길은 멈춘 것은 태실봉의 서른여섯 번째 봉우리를 지나고 난 후였다.
연광은 태실봉의 마지막 봉우리를 지나는 데에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자 의아해 했다. 태실봉으로 가는 것 같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자 의문이 든 것이다.
‘도대체 뭘 찾는 거야? 아무리 숭산이 보물이나 무공 비급이 묻혀 있다는 전설이 돌기는 하지만 그건 다 뻥인데.’
연광 스스로도 무공 비급에 대한 것은 믿지 않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무공도 점점 발전한다. 그것은 소림이라고 해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숭산에 무공 비급이 있다는데 소림에서 찾지 않았다면 그것도 거짓말일 것이다. 결론은 없다는 데에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다.
제갈지가 멈추어 섰다. 그녀는 그려온 지도와 황금비도에 그려진 지도를 비교했다.
“여기쯤이에요.”
“그런가? 확실히 기운이 뭉쳐져서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 같기는 하군.”
미세한 기운이었다. 숭산 자체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기운과 차이가 별로 없어 보였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자는 천악과 진법의 대가들뿐일 것이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진의 축과 생로, 사문을 찾아볼게요.”
“부수면 안 되나?”
“될 것도 같지만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만약 보물을 발견해도 진이 망가지면 다른 사람들이 몰려올 가능성도 있어요.”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
갑작스럽게 봉우리가 다시 생겨났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연광은 옆에서 듣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무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서른일곱 번째 봉우리?’
물어보고 싶어도 말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천악의 제안 때문이었다. 궁금해도 묻지 않는다고 해서 따라온 것이니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야 했다.
제갈지가 환영으로 인해 가려진 진법의 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진법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자는 방해만 되는 작업이라 나머지는 빈둥거렸다.
천악은 가만히 있다가 시간이 되자 또 식사 준비를 했다. 공간을 열면 그 안에서 자동으로 식사들이 줄줄이 나오니 이것만큼 편한 수법은 없었다.
식사시간은 꼬박꼬박 지키면서 산해진미(山海珍味)를 깔아놓는 천악이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가려는 천악에게 먹는 것은 가장 중요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랬기에 풍운장원의 요리장 실력이 중원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제갈지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공간과 공간을 일그러뜨려 사람의 시야를 흐트러뜨리는 것이 진법의 기초였다. 안개는 둘째치고, 주변 환경이 약간이지만 뒤틀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서남북 사방에 축을 잡고 그 뒤를 이어 팔괘에 변이를 준 거네. 이런 규모로 만들려면 진법의 대가라고 해도 쉽지 않겠어.”
살펴보니 왜 이제까지 비밀이 밝혀지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진법의 힘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자연스레 봉우리가 발견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제갈지가 생문을 쉽게 발견한 것은 진법이 노쇠해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진법 연구는 제갈세가에서 주력으로 연구, 발전시켜왔다. 그로 인해 과거의 진법에 비해 상당 부분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제갈지는 진법 부문에서는 세가 내에서도 수준급에 속해 있었다. 따라서 이 진을 파훼하는 것도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좋아, 이대로 들어가면 될 거 같다. 가면서 군 오라버니의 도움을 받으면 어려움은 없겠어!”
제갈지가 돌아오자 천악이 물었다.
“어때, 찾았나?”
“찾았어요. 대신에 제 지시에 따라 천악 오라버니가 기의 공간이 뒤틀리는 부분을 말해 주세요. 제가 그때에 방향을 수정하며 앞으로 나갈게요.”
“알겠다. 그럼 가볼까?”
천악이 움직이자 모든 인원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앞으로 가는 방향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허공임에도 불구하고 제갈지가 앞에서 길을 재촉했다.
황금비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한 번의 기회를 놓치고 나서 후회하는 짓은 어리석은 푸념에 불과했다.
“앞에 뭐가 있을 턱이 없는데?”
연광은 뒤에서 여전히 아리송해 했다. 천악이 요주의 인물이라서 따라오기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헛고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소림사의 위치는 소실봉이고, 소실봉의 열두 번째 봉우리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소림전각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대략 10만 평 정도가 소림의 권역이었다. 태실봉이 비록 소림의 권역이 아니기는 하지만 천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소림사에서 한 번도 조사가 이루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아무것도 없기에 이제는 태실봉의 마지막 봉우리까지 찾지 않게 되었다. 연광도 태실봉의 끝에 오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연광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소림사 내에서 사부의 무공을 익히는 데에 시간을 소비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반야금강대력신공을 익히는 것은 고통이었다. 금강불괴에 다다르는 육체를 얻기 위해서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가 필요했다. 그런 자신도 30년이나 걸려서 완성이 되었다.
천악이 저런 어린 나이에 어떻게 강해졌는지 이해불가였다. 무공은 하루아침에 불쑥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타고난 재질과 끊임없는 노력만이 무공의 경지를 높일 수 있다. 지금까지 보여준 천악의 신위만 보아도 그 나이 또래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경지였다.
‘무공을 익히다 보니 머리가 이상해졌나?’
제갈지는 천천히 천지사방을 좌표로 잡았다. 그와 동시에 팔괘의 건(乾)과 곤(坤)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 들어갔다. 건곤은 음양(陰陽)을 뜻하며 음양은 다시 사상의 네 줄기로 변화를 일으켰다.
안으로 들어가는 부분을 정확하게 찾아 움직이자 진의 생로가 열리기 시작했다. 진의 축을 정확하게 잡지 않고 들어갔을 때는 그저 허공으로 보였으나 생로를 찾아 들어가자 환경이 변했다.
제갈지의 뒤에서 천악은 기의 미묘한 부분을 정확하게 찾아내었다.
“좌로 5보에서 기운이 변한다.”
“알았어요.”
제갈지의 수학적 능력은 대단했다. 그 즉시 생로를 계산해서 바로 답을 구했다. 그리고 구한 답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했다.
무영무한진이라는 상고의 절진이기는 하지만 발전된 지금의 진법 실력만 있다면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이, 이…럴 수가!”
연광은 기겁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소림의 앞마당이라고 일컫는 이곳을 그동안 몰랐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사형들이 알면 배 아프려나?’
앞마당에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찾아가려고 한다. 부처를 모시는 자로서 사리사욕에 얽매여서는 안 되겠지만 소림사도 엄연히 무림의 문파였다. 먹고살자면 돈이 필요한 것은 필수불가결이었다.
‘그건 그거고 나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한 기의 운행을 바로 알아차리다니, 대단하구나!’
남궁태희도 놀라고 있었다. 그녀도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앞에 펼쳐진 진법은 그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에는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은혜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금황전설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 금황이 가진 천문학적인 재산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다가 터질 것 같았다.
요새 상가의 운용 확장을 위해 막대한 현금이 필요했다. 또한 비밀리에 황실에서 군사물자를 마련하라는 명도 있었다. 군비 비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막대한 자산이 들기에 그에 따른 현금의 이동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런 공돈으로 돈이 마련이 되면 뒤탈 걱정이 없으므로 자금 마련에 가장 좋았다.
운정만이 그 뒤를 말없이 따를 뿐이었다. 그녀는 세상을 구경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행복할 뿐이었다.
천악 일행은 반 시진 동안 진법 안에서 길을 찾아 들어갔다.
제갈지의 이마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진법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압력이 가해져 왔다. 숨이 막힐 정도의 압력이었다.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숨이 막혀 질식사를 당할 정도였다.
천악은 그 즉시 상황을 체크하고 기를 둘러쳤다. 기를 둘러치자 그 안에서는 자유로웠다. 다만 천악은 기의 범위를 제갈지, 남궁태희, 금은혜, 운정까지로 만들었다.
일정범위 내를 자신이 가진 기로 둘러치는 것은 홀로 보호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기는 몸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기의 범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와 더불어 자신의 의지 역시도 강해야 했다. 흔히 무림의 고수들이 어검술과 어검강, 심검을 높게 쳐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윽!’
연광은 반야금강대력신공을 끌어올려 몸을 압박하는 기운을 몰아내었다. 자신의 앞에 여인은 아무렇지 않은데, 자신만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천악이 기막을 쳐준 것을 알자 기가 막히면서 자신은 왜 안 쳐주느냐고 항의하고 싶었다. 다만 말을 하기에는 너무 구차한 일이라 입을 다물었다.
진법 안을 가득 메웠던 희뿌연 안개가 사라지고 나니 드디어 동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동굴은 가로 1장, 세로 2장에 달하는 견고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강철로 된 문인 줄 알았는데 보통 철이 아니었다. 상당한 제련기술로 만들어진 만년한철이었다. 아니, 만년한철에 곤옥과 황토를 적절하게 섞은 것 같았다.
천악이 전날 녹산동을 털었을 때 그 문보다도 더 강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시대가 변해도 녹이 슬지 않고 버틸 정도로 단단한 문이었다. 철 중의 철이라는 만년한철이 아니라면 감히 버틸 수 없는 세월일 것이다.
만년한철은 화경의 경지에 이르러야 뿜어낼 수 있다는 검강도 버틴다고 알려졌다. 검강으로도 세 치 이상 뚫기 힘든 금속이었다.
만년한철로 된 문 위에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한 번에 쓰인 글자가 있었다. 상고시대 문자이기는 하지만 해석하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황금비동(黃金秘洞).
황금비도를 푸는 자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지어다!
“허억!”
연광은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황금비도가 가리킨 곳을 찾은 거였어!”
이런 엄청난 보물을 찾기 위해 나설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연광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형들, 정말 배 아프겠소.’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은 아니지만 자신을 제외한 소림사의 중들은 배가 무지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코앞에 금황전설이 있었다. 연광 자신도 학술관에서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뻔했다.
“문은 여기뿐인가?”
천악이 제갈지에게 물었다.
“아마 아닐 거예요. 비도는 총 열 개이고 지금 남겨진 비도는 세 개라고 했어요. 각 비도마다 위치가 다를 것이라고 전해져요. 그러니 들어가는 문도 최소 세 개 이상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천악이 왜 이런 질문은 했냐면 바로 문의 재질이 만년한철이기 때문이었다. 만년한철은 천악이 물건을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재료였다. 문이 여러 개일수록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문이 여러 개라는 뜻이 된다.
‘나중에 다 뜯어가야겠군.’
힘으로 자를 수도 없는 문에 관심을 가지는 천악이었다. 천악이 아니라면 감히 상상하지 못할 일이기도 했다.
“문을 열어야겠지?”
팅!
문을 한번 두드려본 천악이었다.
‘두께가 1미터 정도가 되겠어.’
굉장한 두께였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황금비도에 쓰인 암호를 풀어야 한다.
이미 암호는 푼 상태였다. 동굴의 문 옆으로 아홉 개의 돌부리가 돌출되어 있었다. 돌부리를 정확하게 눌러야만 문이 열리게 되어 있었다.
제갈지가 돌부리를 누르려고 하자 천악이 제지했다.
“굳이 할 필요 없다. 모두 내 뒤로 물러서라.”
천악이 일행을 뒤로 물리자 뒤에서는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척 봐도 꿈쩍도 하지 못할 정도의 두께와 크기를 자랑하는 문이었다. 저걸 힘으로 뜯어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들은 눈이 튀어나올 장면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되었다. 천악의 손이 만년한철의 한 부분을 두부 뚫듯이 뚫어서 잡은 상태로 전체를 뜯어내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 낼 수 없는 괴력이었다.
두두둥!
우지지직!
동굴의 벽면이 뭉텅 뜯겨져 나갔다.
거대한 문짝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린 천악이 아공간을 오픈했다. 열려진 공간 사이로 집어던지자 공간이 만년한철로 된 문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얼이 빠져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천악의 일행들이었다. 특히 운정과 연광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상식적이지 않은 경우라고 할지라도 저런 일이 실제로 벌어져서는 안 된다. 어찌 인간이 저런 능력을 보인단 말인가!
“마, 말도 안 돼!”
연광은 찔끔했다. 가진바 능력을 모두 발휘하면 어떻게든 상대해볼 수 있겠다는 애초의 생각 따위는 저 멀리 우주로 날려버렸다. 저런 괴물과는 마주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 저보고 괴물 같은 재능이라고 했죠? 그럼 저기 있는 저놈은 뭡니까?’
신승은 연광의 뛰어난 재능을 보고 천 년 소림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이라고 평가했다. 천지를 고루 비추는 육망성(六妄星) 중에서도 가장 밝게 빛을 발한다는 자미성의 주인인 자신조차 저런 신위는 불가능했다.
제갈지는 허탈했다.
천악 앞에서는 그 어떤 기관진식이나 진법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한 줄 알았지만 터무니없었다. 산을 날려버렸다는 제갈천기의 말을 완전하게 믿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완벽하게 알았다.
“가지.”
“예.”
천악이 앞으로 갔다.
이제부터 벌어지는 일은 모두 천악이 감당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제갈지를 앞에 내세울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인들은 천악이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천악의 성격이 부드러워지기는 한 모양이었다. 다만 여전히 자신이 아는 존재 이외에는 배타적이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