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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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16화
희불승 연광(煉光) (3)
천악은 기초적인 것을 다 준비해 놓고는 나머지는 진삼에게 맡겼다. 돼지 바비큐가 골고루 잘 익도록 잘 돌려주어야 했다. 적어도 1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천악은 마련한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그 옆으로 여인들도 앉아서 기다렸다. 연광도 자리에 앉았다.
그는 천악이 사용한 수법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다.
“군 시주, 좀 전에 공간에서 돼지가 나온 것 같은데, 그게 뭡니까?”
“알려줄 수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어렵게 물어본 질문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천악이었다.
천악은 남이 궁금하다고 해서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연광은 자신에게 있어 지나가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자에게 일일이 대답해 주고 설명해 줄 하등의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제갈지가 궁금한 게 있는지 연광에게 말을 붙였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제갈지였다.
“스님, 그나저나 신승께서 지시하신 게 뭐지요?”
“아, 그것 말입니까? 사실은 제가 천살성을 찾기… 아차, 이건 비밀인데!”
연광은 전혀 비밀을 말한 것 같지 않은 표정이었다. 입으로 다 말해 버리고 나서 그런 말을 해봐야 소용없었다.
연광은 곧 사실대로 털어놨다. 이미 말해 버렸으니 상관없다는 투였다.
“천살성을 찾아서 봉인하거나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천살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살기와 마기를 타고납니다. 그로 인해 얻어지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 찾아다녔는데,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천악이 천살성인 줄 알고 왔지만 아니었기에 못 찾았다고 말을 한 것이다.
“그럼 천살성이 태어나기는 한 거네요?”
제갈지를 비롯한 모든 여인들은 놀라고 있었다.
천살성은 위험한 기운이었다. 대대로 천살성을 타고난 자는 살성이 되어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전해졌다. 또한 무공을 익히지 않는다고 해도 강했다. 그 강함과 독함, 그리고 무공을 익혔을 때 얻어지는 위력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고, 보통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발전 속도를 보이는 것이 바로 천살성이었다.
오래 전부터 천살성을 타고나면 바로 죽여야 하는 것이 강호 무림의 법칙이었다. 법칙을 어기게 되면 강호의 공적이 된다.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스승님이 천기를 예측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모두 맞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소림으로 돌아가야겠지요.”
제갈지가 원하는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할일 없으면 이만 헤어져도 되지 않느냐는 뜻을 비친 것이다. 금황의 보물을 찾는데 연광이 같이 행동하면 귀찮은 일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기에 사전에 차단하고자 한 것이다.
묵묵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천악은 생각에 잠겼다.
천악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어쩔 수 없이 형성된 기운이었다. 오랜 시간 미망(迷妄)의 시간 속에 빠져 지내왔다. 그 시간은 암흑이었고, 혈로였다.
혈로 속에 부딪쳤던 모든 존재들은 천악의 손길에 의해 사라졌다. 그 힘의 광폭한 성질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자연스레 천악의 주위에 죽음의 무게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연광이 천악을 천살성의 기운으로 착각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 몰랐다.
연광은 이대로 천악과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천악의 진정한 실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했던 것이다.
천살성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자신은 알고 있었다. 천살성은 존재했다. 그리고 불길함이 숭산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천악이 천살성은 아니지만 경계를 풀 수는 없었다.
“군 시주, 제가 여정에 참여해도 되겠는지요?”
“상관없습니다.”
천악이 의외로 단번에 허락을 했다.
여인들 모두 천악이 허락할 줄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연광은 천악이 허락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거절하면 방도가 별로 없었다. 무력으로 천악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자미성체의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면 모르겠지만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이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입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연광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무슨 조건이든 들어준다고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할 수 없으면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었다.
“세 가지 정도입니다. 하나는 여정에 관한 어떠한 사항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간섭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여정에 끼었으니 그에 대한 밥값을 하셔야겠습니다. 세 번째로 저에 대한 소문이 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만 연광은 심사숙고했다. 천악의 존재를 알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여정에 끼지 못한다.
연광은 신중하게 고민하다가 약속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환영합니다.”
천악이 웃음을 짓자 연광은 소름이 돋았다.
천악은 알 수 없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연광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순 없었다.
그에 반해 연광은 천악의 의도에 휘말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째 제 발로 악마의 소굴에 들어온 느낌이 들지?’
다음날 다시 여정이 시작됐다.
숭산으로 가는 길이기에 소림으로 가는 길하고 같았다. 다만 소림사가 숭산의 소실봉 중턱에 위치한 것을 감안하면 지금 보이는 갈래 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했다.
연광은 이곳까지 오면서 이들 여정의 종착지가 소림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거 아니었나?’
중원의 무인들이라면 소림사에 들르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숭산은 중원의 오악 중 하나로 ‘중악’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봉우리 세 개를 준극(峻極), 태실(太室), 소실(小室)이라고 부르는데, 절경의 아름다움이 일절(一絶)이라고 할 만했다.
또한 숭산은 천하무림의 태산북두이자 불타를 모시는 곳이니 예불을 드리기 위해서 오기도 했다. 다만 지금 소림사로 가는 인물이 요주의 인물이기에 걱정이 되기는 했다.
연광은 위험인자를 소림사로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연광의 그런 생각과 다르게 천악 일행은 소실봉이 아닌 태실봉으로 가고 있었다.
태실봉이라고 하지만 봉우리 자체는 서른여섯 개나 되었다. 그 모든 위치를 다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태실봉은 건물을 짓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사찰이나 절이 거의 없어 사람들의 출입이 잦지 않은 곳이었다.
‘태실봉이라!’
연광은 입으로는 떠들면서도 생각이 많았다.
천악은 마차 내부에서 제갈지가 만들어낸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제갈지는 중원의 수많은 산들 중 황금비도가 가리키는 산을 찾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중했다. 그로 인해 얻어진 결과가 숭산이었다. 태실봉에서도, 황금비도가 가리키는 장소를 정확하게 지도로 그려내었다.
천악은 지도를 보면서 지도의 축척법과 도면 그리는 법을 제갈지에게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처음 제갈지는 자신의 솜씨가 더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악이 알려준 지도법은 상당한 수준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궤를 달리한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천악의 가르침에 따라서 그리자 지도 그리는 방법이 정확해지고, 보는 것도 편해졌다.
제갈지는 천악이 무공만 강한 줄 알았다. 워낙 독선적인 방식으로 장원을 이끌어가기에 천악의 지식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가끔씩 보이는 천악의 지식은 결코 얕지 않았다.
“보통 서른여섯 개의 봉우리라고 하는데, 알려지지 않은 봉우리가 또 있다는 말이 되는 건가?”
“맞아요. 봉우리의 마지막 부분을 보세요. 태실봉의 마지막 봉우리와 같잖아요. 그런데 비도의 위치는 그 옆의 봉우리였어요. 그래서 찾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대단하군.”
“맞아요.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대기 중의 기운을 변환시켜 산봉우리 자체를 보이지 않게 만들었어요. 전설로 불리는 무영무한진(無影無限陣)이 아닐까 생각이 되는데요.”
“무영무한진이라… 그게 대단한 건가?”
천악이 인비저빌리티(투명화) 마법을 산에 걸면 산이 사라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천악의 입장에서였다. 보통 사람들이 산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기관진식과 설비가 들어간다. 한두 푼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진법이 아니었다.
제갈지는 천악이 대수롭지 않아 하는 것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대단한 진법이에요. 산봉우리 전체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돈이 천문학적이에요. 왜 금황이라고 불렸는지 알 수 있을 정도라니까요.”
제갈지는 새삼 금황의 재력에 기가 질렸다. 그런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공사를 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천악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다는 말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금황은 이기적인 놈이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천문학전이 돈이 들어갔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노동력을 썼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도 소문이 전혀 나지 않았어. 그 이유가 뭘까? 그것은 하나밖에 없지 않나, 제갈지?”
일꾼들은 이유도 모른 채 끌려와서 죽었을 가능성이 가장 많았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지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살인멸구(殺人滅口)!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천 년이나 비밀이 풀려지지 않았고 황금비도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없다. 이게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제갈지를 비롯한 남궁태희, 금은혜, 운정은 천악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천악이라면 그것보다 더한 짓도 할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천악이 잔인하게 상대를 죽이기는 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
“뭐, 상관은 없다. 타인의 행동을 가지고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맘은 없으니까. 그저 내가 생각한 말을 한 것뿐이야. 금황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사람이 죽어도 그 일은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닌 것을 가지고 불쌍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다만 사실이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뿐이다.”
천악은 자신이 하는 일만 한다는 확고한 말을 했다. 타인의 행동까지 간섭할 이유는 없었다.
여인들은 잠시 당황하다가 역시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제 곧 태실봉에 도착하니 보물을 찾을 방법을 모색하는 게 낫겠지.”
마차 밖 마부석에서 연광은 끊임없이 마차 안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들리기는커녕 무언가에 가로막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반야금강대력신공을 운용해서 막혀 있는 내공막을 걷어내고, 그 안으로 파고 들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천악이 연광의 떠들어대는 전음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천악은 개의치 않았지만 제갈지를 비롯한 여인들이 적극적으로 싫다는 표현을 했기에 실행한 것이다.
천악으로선 연광보다야 여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누가 땡중의 말을 들어주겠는가!
소리를 차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마차의 내부에 기막을 설치하면 어떤 누구도 파고들 수 없다.
‘제길, 궁금해 죽겠네.’
연광은 태실봉으로 가는 것은 알았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하니 답답했다. 그래서 대화라도 하면서 알아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어려웠다. 말소리가 들어가지 않아 전음을 사용했는데 바로 차단되었다.
‘그나저나 대단하네. 반야금강대력신공은 내공의 정순함이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고 사부가 그랬는데, 통하지가 않다니!’
태실봉의 마지막 봉우리로 가는 길은 너무 좁았다. 이대로 사두마차는 갈 수 없기에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에서 내려서 외진 산길을 따라 갔다. 제일 선두에는 제갈지가 있었고 그 뒤로 천악과 여인들, 마지막으로 연광이 뒤를 따랐다.
남겨진 진삼은 인적이 드문 장소에 혼자 남아야 했기에 천악이 마법을 사용했다. 마차 주변에 실드 마법을 걸어서 야생동물이나 사람의 공격에 대비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마차 자체에도 방어 마법과 연락 마법이 걸려 있었다. 마차에 이상이 생기면 천악이 바로 공간이동을 해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천악이 사두마차에 공간이동에 대한 좌표를 설정해 놓은 것은 만약을 대비한 일이었다. 앞일은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것이 천하무적의 천악이라도 예외는 없다. 단지 예외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비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