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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독존기 113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13화

오악검파의 후기지수들 (4)

 

 

이제까지 비무를 가볍게 지켜보던 홍매화 진선아와 종남파의 검귀 나민관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처음에 군천악이 장일청을 이긴 것은 순전히 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일 수, 일 수는 절대 운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광폭하고 무섭다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자는 허풍쟁이가 아니야.’

 

‘강하다. 어떻게 이런 자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의 주인공이란 말인가.’

 

자신들이 당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허억! 허억!”

 

천악이 장난스럽게 내지르는 일 수에 의해 이자청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지면을 하염없이 굴렀다. 무림인이라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뇌려타곤을 수도 없이 펼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본인은 그런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점점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야수의 인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는 불로 지진 듯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천악은 상대를 철저하게 농락하고 있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사람을 무시하니 이런 꼴을 당하는 거다. 보는 눈이 없으면 목숨을 보장하지 못하는 곳이 무림이라지.”

 

야수의 인을 시전하면서 천악을 말을 이었다. 이전까지 존대했던 말투와는 달랐다. 사람을 몰라봤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피하면서 자신의 귀로 들려오는 천악의 음성에 이자청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제대로 된 반항이라도 한번 해봤으면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자신의 한 몸을 피하는 데에 급급하고 있었다.

 

“이, 이…놈!”

 

이자청은 피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 계속 피할 수만도 없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천악의 일 수에 맞부딪치려고 했다.

 

화산파의 비전이라고 불리는 매화십삼검법(梅花十三劍法) 중에 가장 강한 매화진천(梅花震天)의 초식이었다. 매화십삼검법은 매화의 흩날리는 모습에서 창안해 낸 아름다운 검법이지만 그 위력은 매섭고 무서웠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천악이 이자청에게 틈을 준 것이다. 어디 한번 덤벼보라는 뜻이었다.

 

천악이 뿜어낸 야수의 인과 이자청의 매화진천이 서로 부딪쳐 나갔다.

 

슈우웅!

 

이자청이 뿜어내는 검기가 벼락처럼 천악을 향해 뻗어나갔지만 야수의 인에는 미치지 못했다.

 

야수의 인이 그대로 매화진천을 위아래로 갈라버리더니 이자청을 향해 뻗어나갔다.

 

“크윽! 이런!”

 

이자청이 급히 검을 들어 야수의 인을 막아내었다.

 

카아아앙!

 

부들부들!

 

시끄러운 쇳소리가 울리고 뒤로 하염없이 밀려나간 이자청이 죽을 듯이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야수의 인과 부딪친 충격으로 인해 전신의 근육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쿨럭!”

 

입 속에서 용암이 분출하듯이 핏물이 토해져 나갔다.

 

힘을 잃은 신형이 그 자리에 쓰러져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수의 인은 그저 그런 강기가 아니었다. 천악의 마음이 담겨진 기운이었다. 광폭함을 가득 담은 기운은 이자청의 정신까지 갈가리 찢어버리고 말았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부서졌으니 인형이나 마찬가지였다.

 

천악은 망가진 인형에는 관심이 없었다.

 

“죽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도록.”

 

몸과 정신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이보다 더 심한 상태는 없을 것이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말았다. 이자청이 비록 건방지기는 해도 화산파의 무인이었다. 화산파를 건드려놨으니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남궁태희와 금은혜, 운정, 제갈지는 그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천악을 탓하지는 않았다. 무인이라면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진선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자청을 부축하며 천악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단순한 비무였을 뿐인데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어놓다니……. 이것은 화산파를 무시하는 처사였다.

 

“이런 짓을 하고 화산파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요?”

 

천악을 향해 진선아는 독기를 뿜어내었다. 무서워하면서도 화산파가 있으니 더는 손을 쓰지 못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위협하는 건가?”

 

움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는 천악에게는 감정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묻는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대답 여하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될 수도 있었다.

 

차아앙!

 

나민관은 진선아를 위협하는 듯한 천악을 향해 검을 뽑았다. 나민관은 망설임이 없었다.

 

“자청이가 비록 거만하게 행동하기는 했지만 죽을죄를 짓지는 않았소. 나 또한 오늘 여인을 보며 시기했음을 시인하오. 하지만 오늘 나는 그대에게 도전을 신청하오. 친구가 쓰러졌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되기 싫소!”

 

나민관은 종남파의 검수이기 이전에 이자청의 친구였다. 둘이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몰라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것 같았다.

 

나민관은 종남파에서도 검에 미친 마귀라 알려져 있었다. 조용하지만 검을 잡으면 그는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듯한 격렬한 기운을 뿜어내었던 것이다.

 

천악은 상대가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 정도 하면 겁을 먹거나 도망치는 것이 보통이건만 이자는 친구를 위해 도전하고 있었다.

 

“제법이군. 하지만 난 용서하지 않아.”

 

천악은 가차 없었다. 용기가 있건 말건 자신에게 검을 들이댄 자를 가만히 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정정당당하면 벌어진 결과가 정당화되는가? 그건 아니었다. 이미 검을 내밀었다면 그에 대한 응징만이 남을 뿐이었다.

 

마지막에 일어날 결과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 세상이었다. 다른 누구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

 

“최선을 다할 뿐이오. 죽는다고 해도 무인이라면 감수하겠소.”

 

나민관은 이자청과는 다른 부류였다.

 

그는 지금껏 이자청의 뒤에서 묵묵히 있어왔지만 그의 본 실력은 이자청을 능가한 상태였다. 친구였기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민관의 내공은 태을강기(太乙剛氣)였다. 태을강기는 태을신공(太乙神功)의 방어적인 부분을 철저히 배제하고 공격적인 성향만을 뽑아내어 만들어놓은 공격형 내공강기였다. 태을강기를 뿜어내어 펼치는 태을무형검(太乙無形劍)이야말로 나민관의 진정한 검법이었다.

 

나민관이 검귀의 본능을 일으켰다. 그는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최강의 공격을 펼쳤다. 태을무형검의 마지막 비전초식인 태을검강기(太乙劍剛氣)였다. 최강의 초식이지만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아직 검기의 중첩일 수밖에 없었다.

 

무형의 검기가 뻗어나가는 듯했지만 완벽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빨랐다.

 

나민관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듯이 천악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런 나민관을 천악은 묵묵히 바라보다 그보다 빨리 움직였다.

 

슈슈슉!

 

나민관의 태을검강기가 허공을 꿰뚫었다. 그 즉시 나민관이 천악의 신형을 찾았다. 너무 빨라서 기의 공간에서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나민관은 몸이 굳어버렸다.

 

퍼퍽!

 

천악의 일격이 나민관의 가슴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천악의 권격은 회전력을 이용한 수법이었다. 권투에서 나오는 코크스크류블로와 비슷한 펀치였다. 다른 게 있다면 그 안에 내공의 기운이 뻗어나갔다는 것뿐.

 

심장을 정확하게 가격 당한 나민관은 의식이 한순간 저 멀리 날아가야 했다. 심장이 정지된 상태였다.

 

“컥!”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때 나민관은 바닥을 뒹굴었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졌다. 극심한 통증이 전신을 강타했다.

 

대단한 대결은 아니더라도 공방은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윽! 진 건가!”

 

천악은 쓰러진 나민관을 바라보았다.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꽤나 귀찮을 것이오.”

 

화산파, 종남파, 형산파의 후기지수들을 모두 병신으로 만들어놓았으니 문파에서 그냥 지나치진 않을 것이다.

 

“상관없다.”

 

덤빈다면 박살내 주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상관없었다.

 

이번 대결이 비무가 아니었다면 지금 살아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이자청이 비무라고 말한 것이 한줌의 목숨을 살게 한 이유가 되었다.

 

“왜 상관없는지 지금 알게 해주지.”

 

덜덜덜!

 

진선아는 너무 무서웠다. 천악이 무서운 무공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기절한 자의 팔 다리를 서슴없이 부러뜨리는 것이 무서웠다. 그럼에도 어떠한 감정도 없어 보였다. 그저 귀찮은 막대기를 부러뜨리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냉정함을 보았다.

 

“아, 악…마!”

 

“후후!”

 

천악은 진선아의 말에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설명해 주었다.

 

“내가 왜 악마지?”

 

“당신이 한 짓은 악마나 하는 짓이야!”

 

진선아는 떨면서도 천악을 향해 독기를 뿜어내었다.

 

“비무에서 벌어지는 일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한 것은 내가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 그리고 나는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악마는 사람을 죽이는 자체에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자를 가리키지. 악마에겐 선과 악의 구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그저 죽이고 난 후의 쾌감을 느끼지. 그럼 다시 묻는다. 내가 왜 악마라 불려야 하지?”

 

차분했다. 이유를 설명하라는 말이었다.

 

진선아는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천악의 조리 있는 말투에서 느껴지는 냉정함만이 그녀의 뇌리를 맴돌 뿐이었다.

 

말문이 막혀버린 그녀는 억울했다. 왜 자신들이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항상 모두에게 우상시 되어왔던 자신들이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는가! 그저 상대방에게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려고 했을 뿐인데, 그게 잘못인가!

 

강호무림에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를 만나도 화산파라고 밝히면 한 수 접어주었기 때문에 형성된 망상이었다.

 

“화산파에서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비무에서 졌다고 바로 가서 말하겠다. 그건 어린아이나 하는 짓으로 아는데, 너는 아직 어린아이인가? 누군가의 힘이 없으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녀석들이 감히 타인을 힘으로 억압하려고 하는 게 우습기 짝이 없구나.”

 

천악의 힐난과 이어지는 질타에 진선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언제 이런 말을 들어 봤는가. 생전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지탱해 온 허영심과 자만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남궁태희를 비롯한 금은혜, 제갈지, 운정은 천악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평상시는 굳이 이런 수고를 하지 않는 천악이었다.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힘으로 밀어붙이는 성격이었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그 앞을 가로막는 자는 살아남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직 천악을 모르는 말이었다. 천악은 세상의 도덕적 관념을 무시하지 않았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해결해 나가는 천악의 행동은 가차없다. 그 일은 일반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초월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일이 너무 굉장해서 이해를 못 하는 것일 수 있으나 천악의 행위에 잘잘못을 따지면 잘못한 것이 없었다.

 

 

 

천악은 진선아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나는 내 뒤를 치는 녀석들을 남겨두는 성격이 아니다. 원인을 따지지 않고 지금 벌어지는 일만을 설명하려 한다면 내가 상당히 귀찮아지겠지. 그러한 오해를 경험하느니 네놈들에게 금제를 가하는 게 좋겠다. 이것을 먹어라!”

 

천악이 내민 것은 바로 폭충이었다.

 

금은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찔끔했다. 그동안 금천상가에 물심양면으로 천악을 도왔다. 그리고 천악에게 인심을 얻었다. 천악에게 인정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고민이었던 폭충을 제거해 주었다. 이제는 해제가 되어 안심하기는 하지만 머릿속에 폭탄이 있는데 끔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선아는 천악이 내미는 것을 먹기 싫었다.

 

“시, 싫어요!”

 

“싫다면 다 죽는다. 후환을 남길 바에는 그냥 죽이는 게 낫지.”

 

“우, 우리를 죽이면 가, 강호공적이 될 수 있어요!”

 

“너희들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데 누가 했는지 어떻게 알지?”

 

그녀는 너무 분했다. 하지만 천악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이대로 죽기는 너무 억울하고 분했기 때문이었다.

 

진선아는 반드시 이에 대한 보복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좋아요. 하지만 후회하게 될 거예요!”

 

진선아는 천악이 준 폭충을 먹고 나머지 쓰러져 있는 이자청, 나민관, 장일청에게도 먹였다.

 

천악은 진선아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복수한다고 해도 그게 쉽게 되겠는가!

 

“폭충이다. 나의 대해 발설하는 순간 머리가 터져 죽게 된다.”

 

지나가는 투로 말을 했지만 듣고 있는 진선아는 심하게 떨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고(蠱)를 복용시킬 줄이야.

 

이런 짓은 사악한 마두들만이 하는 짓이었다.

 

“마룡이라더니!”

 

“나는 용기 있는 자를 좋아한다. 네가 용기가 있다면 발설을 해보아라. 그러나 뜻이 전달이 될지는 미지수다.”

 

폭충은 시전자의 의념이 만들어낸 벌레다. 그 벌레 속에 심어진 심령이 복용자의 심령과 연결이 되어 배신하는 그 즉시 터져버리기에 발설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벌레였다.

 

부르르르!

 

진선아는 분노로 몸을 떨었지만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민관은 체념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건드려도 제대로 건드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천지 구분 못 하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살아오다 된통 당하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자신들이 해온 것이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대단하군.”

 

오악검파의 후기지수들에게 수를 쓰면서도 거리낌이 없으며, 그 뒷일까지 완벽하게 막아버리는 잔인한 손속과 압도적인 신위는 정말 놀라웠다.

 

천악이 무섭다는 것을 알지만 나민관은 오히려 부러웠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그 누가 방해가 되든 밀고 나가는 자야말로 자신이 되고 싶은 가장 이상적인 무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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