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10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10화
오악검파의 후기지수들 (1)
따그닥! 따그닥!
호화로운 사두마차가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느긋하게 산길을 나아갔다. 나아가는 동안 마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흘러가는 경치를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천악이었다.
천악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말없이 있었다. 그의 조용함과 무심함과는 다르게 금은혜와 남궁태희, 제갈지는 쉴 새 없이 천악에게 질문을 퍼부으며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 세 명과 대조적으로 차분히 천악을 바라보는 운정이었다.
운정은 천악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보통 사내들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본능적으로 사내들의 습성은 비슷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천악은 달랐다. 그는 무심했다. 그럼에도 여인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모순적인 행동이었다. 관심이 없는 척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고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말에서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호하기가 칼 같고 무정하기까지 해 마치 빙정 같았다.
운정은 그런 천악의 모습이 오히려 안타까웠다. 이유를 정확히 모르지만 그는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지 몰랐다.
‘한 가지는 좋다. 이렇게 건강하게 여행하는 것!’
천악을 생각하면 복잡하지만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어준 천악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때 제갈지가 천악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았다. 그것은 다른 모든 여인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했다. 언제나 궁금했지만 정작 왜 그것을 물어보지 않았는지 모를 정도였다.
“고향이 어디세요?”
창 밖을 바라보던 천악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고향…….
그동안 잊고 있었다는 것이 맞았다. 차원을 넘어오면서 시작된 혈로, 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던 세월의 힘이었던가. 그로 인해 천악은 고향을 떠올리지 못했다. 아니, 무의적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초롱초롱!
여인들은 신기한 전설에 대한 결말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표정과 같았다.
천악은 그런 여인들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말을 해주었다. 굳이 속일 필요는 없었다. 새로 주어진 인생이었고 자신의 지난 과거를 제외하고는 말해 주어도 괜찮았다.
“나는 중원인이 아니다.”
“예?”
모두 놀라고 있었다. 그런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표정이었다.
“동이라는 나라가 나의 고향이지.”
천악은 중원인들이 변방의 나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은근히 중원인이라는 우월감을 가지려는 어리석음 말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습기 짝이 없었다. 국가와 개인은 떨어트려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국가의 위상이 높다 하여 자신이 높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못살고 국민들 대부분이 배곯는 나라라고 해도 잘사는 부류는 항상 존재한다. 그런 부류에 끼지 못하는 일반 평민들에게 세상은 불공평할 수밖에 없다.
중원인의 대부분은 잘살지 못한다. 중원인이라는 우월감을 가진다고 해도 자신의 행복이 추구되지 않는데 어떻게 우월감을 가지는가! 그건 어떻게 해서든 우월감으로 자신의 고달픔을 잠시나마 잊어보려 발버둥 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천악은 주변의 풍요로움과 발전 등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신의 영달과 생활이 발전하기만을 바랄 뿐.
따라서 천악에겐 중원인과 그 외의 변방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자와 자신을 가로막는 자만 존재할 뿐. 둘 중 한 가지를 제대로 선택하지 않는 자는 재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놀랐나?”
“솔직히 놀랐어요.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거든요.”
금은혜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금은혜는 천악이 같은 중원인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괴물 같은 천악이 자신의 나라가 명 제국에 의해 핍박을 받는다고 하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 제국을 위해서라도 천악의 고향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현명했다. 그것이 지금 막 기틀을 잡기 시작한 명 제국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로써 한 가지 도움이 되는 정보를 건졌다.
‘이건 특급이다. 그런데 누가 믿어줄까?’
전서에 ‘동이는 괴물의 나라니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써 보내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제대로 조사를 해서 적당히 조정 관리들을 회유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모르고 일을 저질러서 괴물로 인해 일어나는 참담한 사태를 보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나는 나라보다는 사람이 가진 성격,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이 태어나면서 만들어놓은 귀천의 구분은 신용하지 않는다.”
매우 위험한 사상이었다. 황족과 귀족, 평민, 천민으로 구성되는 지금의 사상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사상이었다. 입을 함부로 나불대었다가는 구족이 참수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단, 지금 말하는 사람이 천악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여자라고 해서 무시하지도 않는다. 사내라서 무조건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자라서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뛰어난 업적을 남길 수 있다.”
“그건 저희도 동의해요.”
“맞아요. 여자라고 해서 못 할 것은 없어요.”
“형편없는 사내가 얼마나 많은데!”
금은혜와 남궁태희, 제갈지가 동시에 천악의 말에 수긍했다.
그녀들은 스스로를 개척한 여인들이었다. 물론 주어진 배경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는 했지만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리도 보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침에 출발해서 정오가 다되었다.
천악은 그녀들과의 대화에서 동떨어지지 않았다. 묻고 대답하는 일에 귀찮아하지 않는 것만 봐도 예전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만나면서 천악이 조금씩이지만 잊었던 감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저 지금까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만 생활을 해왔다. 사람이 쓰러져 있으면 구한다. 그것은 도덕시간에 배운 기초적인 내용으로 이해했을 뿐이지 쓰러진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엔 어디로 가는 거예요?”
“하남성이다.”
제갈지를 제외하고서 나머지는 목적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지금의 여행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번에도 산인가요?”
“산은 맞다.”
금은혜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설마 길이 아닌 곳으로 가야 한다는 등산은 아니겠지요?”
“이번에는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 그러니 그런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목적지가 있다는 말에 금은혜는 더욱 궁금해졌다. 보통 일로 귀찮음을 감수하며 움직이는 천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다는 것인데…….
천악은 여인들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궁금한가?”
“말해 주게요?”
“못 해줄 것도 없지.”
천악은 여기 있는 여인들에게 황금비도에 대해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녀들이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거니와 그녀들이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으니까.
다만 제갈지는 천악이 말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황금비도를 풀었다!”
‘허억!’
금은혜는 평소에 중원에 퍼져 있는 3대 전설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금황전설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금황전설을 푸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금황진천하’보다는 금황이 가진 천문학적인 재산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사실 금황전설을 풀기 위해 금천상가에 명령을 내린 적도 있었다. 황금비도를 한번 찾아보라는 지시였다.
무영신투의 비서를 보며 알아낸 것은 황금비도에 대한 것은 영원한 전설로 남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자신이라면 한번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많은 공부를 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 황금비도를 천악이 풀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서 금(金)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뿜어져 나왔다. 능히 금안(金眼)이라고 불릴 만했다. 황금신공을 운공했을 때 일어나는 초절한 절학을 스스로 터득했다고 볼 수 있었다.
남궁태희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어린 시절이기에 특별히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천악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전설은 사실이었나 보다.
“헤헤!”
금은혜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뭔가 떨어질 게 없나 하는 기대의 눈빛을 천악에게 보냈다.
“보물은 화를 부르지. 그리고 노력한 자만이 대가를 받는다. 이번 일에 일등공신은 제갈지다.”
으쓱!
천악이 황금비도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와 다르게 제갈지는 고개를 들어 잔뜩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떠냐! 너희들은 꿈에도 하지 못할 일을 내가 해냈다.’는 뜻이었다.
‘저년이……!’
‘군 가가와 왜 같이 가나 했더니……!’
천악이 아침부터 제갈지를 챙기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금은혜와 남궁태희는 속으론 이를 갈았으나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제갈 소저, 축하해요. 마침내 능력을 인정받았군요.”
“황금비도의 전설을 풀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말 속에 뼈가 있다는 것이 이와 같을 것이다.
‘후후!’
운정은 이 모든 것이 즐거웠다. 여인들이 질투를 하는 모습이나 그녀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묵묵히 그녀들을 지켜보는 천악. 이상한 조화였지만 그 모습에서 웃음이 나왔다.
* * *
하남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닷새가 지나갔다. 안휘성과 하남성까지 가는 시간이 그 정도까지 걸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느긋하게 이동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소비되었다.
하남성의 외곽이지만 그 주변이 차의 생산지라서 상권이 형성된 도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하남성의 고시(固始).
고시는 화차로 대표되는 녹차와 콩을 말려서 향기를 우려낸 두향차 등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했고, 전국적인 판매망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곳에 상권이 발달한 또 다른 이유는 하남성과 안휘성 경계에 위치한 덕도 컸다.
당연히 상권이 발달하고 목이 좋은 곳에 금천상가가 운영하는 객잔이 존재했다.
차는 중원인의 식수와 같았다. 저가의 차부터 시작해서 고가의 차가 생산되는 곳에는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마련이고, 그런 곳을 대륙 사대상단 중 하나인 금천상가가 놓칠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