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07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07화
전설을 찾아서 (2)
한 달의 시간이 흘러갔다.
시간은 변화를 불러온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세상의 기후가 변화를 일으킨다.
봄이 다가오면서 차가웠던 대지가 점점 녹아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겨울잠을 자던 동물과 식물들이 서서히 힘을 발휘하려 했다. 사람들의 생동감도 서서히 살아났다. 움츠렸던 시간을 보내고 다시 활동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천악은 풍운장원 안에 약속했던 집을 만들라고 명령을 해놓은 상태였다. 집은 바로 아파트다.
아파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공간 활용에 있었다. 좁은 공간을 이용하여 위로 높이를 높여 살아가는 장소를 대폭 늘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시설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바로 펌프의 역할이 컸다.
천악은 아파트에 난방시설까지 완비할 수 있도록 설계를 했다. 난방의 힘은 바로 보일러였다. 보일러의 원료로 석유를 사용할 수 없으니 나무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많은 나무가 들겠지만 이 시대는 그 정도 소모는 버텨줄 수 있을 정도였다.
우선은 5층 정도의 크기로 시작할 생각이었다. 보일러라고 하지만 거대한 통에 물을 끓여, 끓인 물을 펌프의 압력으로 위로 올려 보낼 생각이니 너무 높아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한 층에 네 가구를 설정하니 5층으로 만들 경우 아파트 한 동에 들어가는 가구 수는 20가구가 된다. 인부들 인원이 총 백 명이기 때문에 다섯 동 정도를 만들어야 전체 수용이 가능했다. 1년의 시간을 잡고 만들어야 하는 대공사였다.
“공사 일정에 맞추려면 지금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우리의 집이 생기는 일인데 마다할 인부는 없을 겁니다.”
“시범적 건설이라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제대로 된 아파트를 만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잘 될지 모르겠군. 그에 대한 문제점을 일일이 점검해서 적어놓도록.”
건축일지는 매우 중요했다. 머리로 아는 것은 쉽게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 시작에서 끝까지 모든 것을 일일이 적어놓은 건축일지는 차후에 실수한 부분과 보완할 부분 등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천악으로서는 시험적인 공사였다.
현대의 아파트의 경우 철골과 전기시설, 완비된 난방시설 등에 갖가지 재료가 들어가지만 이번에 만들 집은 나무가 주원료였다. 나무를 원료로 하여 그 안에 난방시설이 들어갈 수 있도록 철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에 따라 나무가 온도를 어느 정도나 버텨주는지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보완점으로 생각한 것은 흙과 돌이다. 한국의 전통 난방시설의 가장 핵심인 온돌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천악으로서는 배운 것, 아는 것을 모두 설계도에 활용했다.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우선 건설해 보고 난 후에 보완할 생각이다.
충일, 도정에게 건축설계에 대한 설계도와 최초의 지시 사항 등을 말해 주고 나자 천악은 일을 끝냈다.
천악이 일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당한철이 물건을 가지고 오고 있었다.
물건은 바로 천악이 미리 말해 둔 검이었다. 검집에 들어가 있어 그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검집에 그려진 무늬와 양각과 음각된 조각만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검이 완성되었습니다.”
당한철이 검을 천악에게 주었다.
천악은 검을 잡은 상태로 검집에서 검날을 빼어 보았다.
차아앙!
맑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이 태양빛에 반사가 되어 그 빛이 천악의 주변을 눈부시게 만들고 있었다. 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했다.
찬란한 검광이 빛을 발하고 있는 가운데, 검을 잡은 천악이 아래서 위로 내리그어 보았다.
휘이이익!
힘이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일직선으로 내리긋는 천악의 모습에서 군더더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괜찮군.”
검을 잡을 때 느껴지는 안정감과 검의 좌우, 면과 면의 조화와 무게감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오차가 거의 없는 이상적인 검이었다.
더군다나 검에 쓰인 재료가 바로 만년한철이었다. 만년한철과 더불어서 당한철 스스로 창안해 낸 성분을 섞어 만들었다. 당한철의 말대로 신검의 반열에 들 정도의 검이라고 할 만했다.
천악이 검을 잡고 나자 검이 스스로 울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자를 위해 검명(劍鳴)을 토해 냈다.
이는 검이 주인을 인정함과 더불어서 검의 존재와 자신의 존재를 일치시키는 경지를 뜻한다. 신검합일의 바로 전 단계에 들어가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지고의 경지였다.
당한철은 천악이 검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검보다는 권법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검을 잡자마자 검이 바로 검명을 토해 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을 잡자마자 검의 울림을 얻다니……!’
당한철이 놀라건 말건 상관없이 천악은 검에 야수의 기운을 주입했다.
날카로운 기운이 검에 녹아들었다. 그 기운은 폭발적이며 광폭했기에 보통의 검으로는 버텨내지 못한다.
우우우웅!
검이 토해 내는 울림이 더욱더 커지더니 그 앞으로 찬연한 순백의 기운이 서서히 형성이 되었다. 형성된 기운은 서서히 그 색을 잃어가더니 마침내는 완벽하게 투명해졌다.
천악이 검강을 만들어낸 것에 당한철은 더는 놀라지 않았다. 전에 수강을 자유롭게 펼친 것을 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여전한데도 불구하고 검날이 보이지 않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형검강!’
당한철이 무형검강이라고 어림짐작하고 있지만 사실은 달랐다. 천악의 기운은 무형심검이라고 해도 막아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야수의 인 자체가 천악의 마음이기 때문이었다. 그 힘의 여파는 천악만이 판단할 수 있었다. 그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는 전대미문의 단계였다.
“한번 사용해 보고 싶군.”
움찔!
저것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이 주변이 초토화될 것 같았다. 당한철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물론 천악은 여기서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천악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풍운장원이 훼손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 함부로 건드는 것 자체를 불허하는 천악이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리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
“대단하네요!”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띤 여인이 걸어오면서 감탄성을 터뜨렸다. 그녀는 바로 아미파의 운정이었다.
운정은 한 달간 이곳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다. 천악의 치료가 있은 후부터 열흘 동안은 누워 있어야 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나고 나자 걸을 수 있었고, 그 뒤로는 활동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운정은 자신이 깨어나고 나서부터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기운에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기운이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여 점점 전신을 깨우고 있었다.
아팠던 몸이 정상으로 되어가자 기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주었던 사부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운정은 그 다음으로 자신을 고쳐준 천악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때 천악은 고개를 끄덕일 뿐 그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상당히 무례한 행동 같았지만 생명의 은인이기에 행동 하나하나가 달라 보였다. 그것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하는 감정이었다.
대정선자는 운정을 간호하면서 맥을 짚어보고는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혈맥을 가로막고 있던 절맥을 뚫었을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보다 건강하고 기의 순환이 자유로워져 있었던 것이다. 무공을 익혀도 상승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생기게 된 것이다.
운정은 자신의 상태를 알고 나서부터는 더욱더 천악이 궁금했다. 천악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그래서 거동이 가능해지는 순간부터 운정은 천악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았다. 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 것이다.
그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굉장한 실력을 가진 것과는 다르게 그의 일상은 평범했다. 아니, 무인으로서가 아니라 장인으로서의 능력은 대단했다. 처음에 가졌던 무서운 사람이라는 느낌과는 다르게 그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장원의 모든 사람들이 천악을 존경하며 그의 말을 광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특이한 사람이라는 것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또한 그가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몸이 안 좋을 텐데 왜 나온 것입니까?”
천악은 의외로 운정을 걱정해 주었다. 천악의 말에 감정이 섞인 것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발전이었다.
“걱정해 주는 것인가요?”
운정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자 옆에 있던 당한철의 얼굴이 붉어졌다.
당한철이 보기에 운정은 결코 남궁태희나 금은혜에 비해 미모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여인의 미소에 녹아내리지 않을 사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운정의 미소에 천악은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녀에게 마음이 가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흔들릴 천악이 아니었다.
“제 걱정과 건강의 악화는 별개입니다. 아직 바람이 찬데 돌아다니는 것은 몸에 좋지 않습니다.”
“그게 걱정해 주는 거예요. 듣고 있으니 기분이 좋네요.”
운정은 천악의 감정 없는 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분이 좋다고 하고 있었다. 그녀도 약간은 특이한 여인이기는 했다.
천악이 당한철을 보았다.
“검은 잘 만들어졌다. 이 검의 이름은 있나?”
“아직 없습니다. 장주님이 지으시면 됩니다.”
“그런가? 좋군.”
운정이 그때 또 끼어들었다. 그녀의 성격이 원래 이렇지는 않지만 검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검의 이름을 제가 지어도 될까요?”
“오오, 운정 소저께서 지어주시겠다는 말입니까? 장주님, 운정 소저가 지어주는 것도 좋지 않습니까?”
당한철은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소저가 자신이 만든 검에 이름을 지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검의 이름은 ‘야수(野獸)’다.”
단칼에 이름을 지어버리는 천악의 행동에 운정은 머쓱해졌고 당한철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검의 주인이 직접 이름을 짓는데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있고 없음, 나아감과 돌아옴, 그리고 무념과 무상,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신검합일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지요. 좀 전에 보인 군 공자의 능력을 보니 능히 그 경지를 넘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검의 이름도 그에 걸맞게 ‘무아(無我)’라고 하는 게 어때요?”
운정은 기왕 이렇게 된 것 자신의 생각을 말해 버렸다.
“내 검은 야수입니다.”
휙!
천악은 운정의 말을 단칼에 무시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운정은 말 없이 다시 천악을 따라갔다.
남겨진 당한철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사랑싸움 한 건가?”
남자는 자존심상 자신의 뜻을 말하고, 여인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이상한 설정이지만 묘하게 사랑싸움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에이, 아니겠지.”
군천악이 사랑 따위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따르는 여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천악이 사랑으로 인해 괴로울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 * *
“야호! 마침내 찾았다!”
별채에서 여러 가지 지도를 살펴보면서 한 달의 시간을 보낸 제갈지였다.
그녀는 황금비도를 해독해야 한다는 막강한 사명감에 잠도 제대로 자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의 시간이 흐르자 드디어 황금비도가 가리키는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예전과 지명이 바뀌고 마을이 달라졌다고 해도 지형 자체는 옛날과 차이가 없었다.
“이제 나도 한 걸음 다가선 거겠지?”
이 일을 계기로 천악과 더욱더 깊은 관계가 되기를 바라는 제갈지였다. 그러기에 사력을 다한 것이다.
마침내 황금비도를 해독하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빨리 알려줘야지.”
조금이라도 빨리 칭찬 받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한 마음이 든 것은 바로 천악이 제갈지를 믿고 맡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그녀가 똑똑해도 여자라는 신분에서 완벽한 믿음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강호에서 지낭이라 칭해져도 제갈세가의 중대사는 모두 남자들이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천악은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배려를 해주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자에게 더욱더 믿음을 주는 것은 사내나 여자나 마찬가지였다.
“금은혜, 남궁태희, 이제 모두 다 내 아래가 될 거다. 호호호!”
그동안 금은혜와 남궁태희가 부러워서 미칠 것 같았던 제갈지였다. 그녀는 이번 기회로 서열을 뒤바꿀 역심(逆心)을 품었다.
제갈지는 빠르게 천악의 방으로 향했다. 향하는 동안 천악이 어떤 말을 해줄까,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녀가 지낭이라고 불리는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여인이기는 했지만 사내에 대해서는 이성보다는 감성적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