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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독존기 106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06화

전설을 찾아서 (1)

 

 

킁킁!

 

“어이, 냄새 좋은데!”

 

씨익!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은 당지독이 냄새를 맡으며 노인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냄새가 좋다는 말을 기쁘게 받아들이겠지만 듣고 있는 노인은 전혀 아니었다. 오만 가지 인상을 다 쓰고 있었다.

 

“지금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거야?”

 

“이거 왜 이래! 몸도 깨끗해졌으면 마음도 깨끗해져야지. 입이 그렇게 걸어서야 되겠나!”

 

“니미럴! 지랄하고 자빠졌네.”

 

개왕 궁휼은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향기로 인해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의 상징과 같은 더러운 때가 사라지고 나자 의욕까지 상실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분하면 다시 덤벼보던가?”

 

부들부들!

 

당지독의 비아냥거림을 그냥 받아넘길 수 없는 궁휼이었다. 그렇다고 당지독이나 천악에게 덤빈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제자를 데리고 온다고 나서는 것부터가 실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개봉의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 개방도들이 얻어오는 밥이나 처먹으며 지내는 거였는데. 안 하던 짓 하려다가 덤으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 되었다.

 

‘이 치욕, 반드시 갚아주마. 약점이라도 잡히면 그 즉시 전 중원에 소문낼 거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 자신의 모습은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 있었다. 전에 다 떨어졌던 옷과 구멍난 신발은 다 태워버렸고, 이제는 비단 옷과 새 신발만이 자신의 몸을 치장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겼던 머리를 다시 헝클어뜨려서 겨우 반항을 했지만 예전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누가 지금의 모습을 보고 구걸대마왕이라고 하겠는가! 이제는 보통 사람보다 더욱 깨끗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인세에 지옥이 있다면 지금 풍운장원이야말로 염마지옥(炎魔地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천악은 지옥을 다스리는 염라대왕이었다. 궁휼에게 풍운장원의 화려한 풍경과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 가식처럼 느껴졌다.

 

개방 사람들도 믿어주지 않는 모습이 되어버린 개왕의 입에서는 한숨만이 흘러나왔다.

 

“나도 지금 모습이 믿어지지 않는데, 개방도는 알아줄까? 허허!”

 

허탈한 웃음을 날리는 궁휼의 모습에 당지독이 가시 돋친 말을 서슴없이 하였다. 그는 남의 심정 따위를 생각하는 위인이 아니었다.

 

“그따위 푸념은 개나 줘버려. 거지면 거지답게 바퀴벌레처럼 적응하면 되잖아!”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

 

“그걸 이제 알았냐, 방향제야!”

 

“컥!”

 

당지독의 방향제라는 말이 다시 한 번 개왕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 * *

 

대정선자가 천악의 방문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 고 총관을 비롯한 신소미가 자리하고 있었다.

 

신소미는 전의 창백했던 혈색은 사라지고 살이 오른 양 볼에 건강한 홍조까지 띠고 있었다. 두 눈엔 총명함이 가득했고 어리지만 지혜로웠다. 요즘에 고 총관에게 학문을 배우면서 그 총명함이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장주님이라면 반드시 고칠 수 있어요. 저도 이렇게 완치되었잖아요.”

 

칠음절맥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던 신소미였지만 천악의 도움으로 완벽하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녀에게 천악은 생명을 다시 준 신과 같은 인물로, 세상에 불가능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소미의 확신에 가까운 말과 눈빛을 보자 대정선자는 고마움을 느꼈다. 아이지만 어른을 위로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것이다.

 

“그래, 고맙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운정 언니도 건강해져서 저와 같이 놀았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래.”

 

신소미의 말에 대정선자도 초조함을 지우며 진중하게 천악의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대정선자는 신소미를 자신이 한번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미파의 속가제자로 들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신소미는 운정과 좋은 인연이 돼서 아미파를 빛낼 인재가 될 것이 분명했다.

 

 

 

방문 하나를 사이로 가로막혀 있지만 천악의 방은 천악이 공간을 완벽하게 차단해서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철혈의 방벽이 쳐진 상태였다.

 

의술이 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집중력이다. 의술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이야말로 의술을 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항상 냉정하게 가라앉은 성격의 천악은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가지고 있었다.

 

“과정은 똑같다.”

 

신소미를 치료할 때와 다른 것은 별로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르다면 집중력과 힘의 배분이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칠음절맥과 구음절맥의 차이는 겨우 두 군데 맥이 더 막혀 있다는 것이지만 운정의 맥을 살펴보니 가로막힌 곳이 생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곳이었다. 자칫 한순간 방심을 하다가는 무리한 기의 운용으로 인해 혈맥이 터져버릴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더 운정에게 불리한 것은 시간이었다. 신소미는 아직 나이가 어려 절맥의 진행이 운정보다 심하지 않은 편이었다. 반면에 운정은 오랜 시간 대정선자의 도움으로 버티기는 했지만 맥이 잘 자라지 못해 가늘고 약했다.

 

“컴퓨터와 같은 정교함이 필요할 때다.”

 

이미 운정은 천악의 슬립 마법에 의해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천악은 그런 운정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운정은 그의 첫사랑과 너무 닮았다. 그 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날 때의 냉정함과 사랑했을 때 감정의 편린이 다시 한 번 천악의 심정에 변화를 일으켰다. 다시는 이런 감정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만남으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의 편린은 금세 사라졌지만 기억은 간직될 것이다.

 

천악은 서서히 집중력을 높여갔다.

 

절대영안인 야수안이 운정의 전신을 스캔하였다. 운정의 심장에서 시작되어 뿜어져 나가는 혈류의 이동까지도 선명하게 천악의 눈에 들어왔다. 심박수에 따라 근육의 이완과 수축이 보였다.

 

혈맥으로 따라 흐르던 기운이 막힌 곳이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응축된 음기가 쌓여서 혈색이 변한 것이다. 그러한 막힘이 정확하게 아홉 개가 되었다.

 

천악은 혈류가 흐르는 이동통로인 혈맥에 프로텍트(보호)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빛이 스며들어 가늘게 끊어질 것 같은 혈맥을 살포시 감싸 안았다.

 

천악의 무한한 기운이 서서히 혈맥을 따라 진입을 시도했다.

 

우우우웅!

 

처음 시작은 가볍게 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운정의 변화를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운정의 반응에 따라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했다.

 

천악의 기운이 운정의 사지백해를 따라 혈맥과 모세혈관에 스며들어갔다.

 

모든 것이 정확했다.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 번 경험해 본 천악은 다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전에 신소미의 치료에서 출혈이 발생한 것은 기운의 통제에 의한 환자의 변화를 보지 못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제는 완벽에 가까웠다.

 

천악의 기운이 막고 있던 절맥을 부수기 위해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혈맥을 보호하는 프로텍트 마법에 들어가는 마력의 양도 강해졌다. 두 가지의 힘이 적절하게 배분이 되어 상충이 돼야 혈맥을 보호할 수 있었다.

 

“간다.”

 

혈맥을 막고 있는 음기는 빙벽과 같았다. 단단한 빙벽은 열에도 쉽게 녹지 않는다. 음기의 기운이 응축되어 수백 번이나 다시 얼었기 때문에 얼음철벽이 된 것이다.

 

얼음철벽을 향해 모아진 기운이 그 중앙을 서서히 녹이기 시작했다. 태양빛을 돋보기로 모아 물체를 태우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해진다. 강해진 기운이 극점을 통과하자 부서지지 않을 것 같았던 얼음철벽이 서서히 녹아서 흘러내렸다.

 

시간은 상당히 오래 걸렸다. 신소미와 비교해서 세 배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서서히 뚫리던 절맥이 완벽하게 뚫려나갔다. 그러자 천악은 프로텍트 마법에서 스트렝스(강화) 마법을 혈맥에 걸었다. 혈맥의 유동성이 자유롭게 되었더라도 아직은 혈맥이 혈류의 이동을 완벽하게 막아주지 못했기 때문에 마법을 건 것이다. 지금까지가 잔잔히 흐르던 시냇물이라면 자유로워진 상태에서는 홍수와 같았다.

 

막힌 한 개의 절맥을 뚫자 다음부터는 수월했다. 그 힘과 여파를 정확하게 기억했기 때문이다.

 

 

 

반나절이 훌쩍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대정선자는 한시도 천악의 방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매불망 제자의 건강한 모습을 보기를 원했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아닌가?”

 

“괜찮을 겁니다. 소미와 다르게 구음절맥입니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도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고 총관의 말에도 불구하고 대정선자는 다시 초조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에 불안감이 싹트고 있었다. 한번 시작된 불안감은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대정선자의 불안, 초조, 흥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끼익!

 

천악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방문을 열고 나온 천악의 표정을 본 대정선자는 선뜻 결과를 물을 수 없었다.

 

천악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어떤 일이든지 성공이나 실패를 하면 그 상황이 표정에 드러나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천악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것도 읽을 수 없었다.

 

대정선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어떻게 되었소?”

 

“당분간 요양을 하면 별 탈 없을 겁니다.”

 

“그럼 치료가 성공했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아미타불!”

 

그 순간 대정선자는 법호를 외치며 부처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삼라만상의 의미는 결코 크거나 작지 않다. 그 안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과 삶은 부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말이었다.

 

대정선자는 천악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정말 고맙소이다.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소.”

 

“은혜를 받겠습니다.”

 

천악은 빈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은혜는 베푸는 것이지만 지금 은혜는 대가였다. 당연히 받을 대가를 받지 않을 천악이 아니었다. 사람은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대정선자는 즉시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방에는 아직 운정이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운정은 호흡조차 힘들어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안정된 호흡을 하고 있었다. 음기가 쌓여 창백했던 안색도 조금은 붉어진 상태였다.

 

대정선자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천악의 능력에 새삼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월적인 존재구나.’

 

현 중원의 그 어떤 존재보다 강하고 냉철한 사나이가 바로 천악이었다. 대정선자의 생각에 그의 행보에 따라 중원의 미래가 달라질 것 같았다.

 

대정선자는 아미파가 최대한 돕는다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천악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게 되었다. 만약 천악의 도움을 얻을 수만 있다면 아미파로서도 그 어떤 것보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천악이 뒤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만 알려져도 아미파는 중원 최강의 문파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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