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05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05화
황금비도(黃金秘圖) (3)
방에 마련된 침대 위에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고통스러워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햇빛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만 살아온 것처럼 피부가 창백했다. 핏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구음절맥이 심각하게 전이된 상태인 것 같았다.
‘응?’
천악은 여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가슴속에 숨어 있던 아련한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 천악이었다.
천악이 인간의 마음을 가진 시절, 즉 대학교 시절 처음으로 사랑한 여인의 모습과 누워 있는 여인의 모습이 너무 닮아 있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사랑이었기에 천악은 잊은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떠오른 그녀의 얼굴이 천악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놀랄 일이다. 천악은 그 어떤 일에도 흥분하지 않는다. 그런 천악을 잠시나마 흥분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런 감정은 오랜만이군.’
감정은 빨리 사라졌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것이라 누구도 보지 못할 정도로 찰나였다.
천악은 누워 있는 운정의 팔목을 잡고 기를 집중해 보았다. 몸 안에 기의 순환이 어느 정도나 망가졌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손목을 타고 기가 흐르자 그제야 운정이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난 운정은 몸 안에 흐르는 기운이 바로 앞에 있는 청년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청년의 모습을 본 운정은 눈빛이 흔들렸다. 무심히 바라본 청년의 눈에서는 권태로움과 차가움이 동시에 보였다.
그녀는 이런 눈을 가진 자는 무섭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천악은 운정의 몸이 심상치 않음을 금세 간파했다. 조금 더 음기가 쌓이게 되면 몸이 얼음처럼 굳어 죽게 될 것이다. 이 정도 버틴 것도 용했다.
깨어난 운정에게 천악이 말을 붙였다.
“조금 있다가 치료를 시작할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전에 칠음절맥을 치료한 것과는 다르게 소저는 상당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치료를 하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다른 사람보다 건강해진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운정은 눈앞의 청년이 무서웠지만 이율배반적으로 상당히 믿음이 갔다. 흔들림 없는 눈, 실패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는 단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자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치료받겠어요.”
“잘 선택했습니다. 그럼 우선은 수면을 취하십시오.”
“저는 운정이라고 해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군천악입니다.”
“그렇군요.”
-슬립(수면)!
수면 마법을 운정에게 걸자 그 즉시 그녀는 잠이 들었다.
천악은 잠이 든 그녀를 잠시 놔두고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이미 한 번의 치료를 해본 적이 있으니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대정선자가 급히 물었다.
“어떻소? 치료는 되는 것이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장담은 하지 않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병마에 시달려온 불쌍한 아이요. 부디 최선을 다해 주시오.”
지금까지 운정의 상태를 본 의원들 모두 치료를 포기했었다. 치료가 된다는 말 자체를 하지 못한 것이다.
천악은 다 포기한 상태에서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에 대정선자는 받아들였다. 실패한다고 해도 주어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운정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었다.
제갈지는 군천악이 부른다는 소리에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왔다. 기회는 찾아왔을 때 잡는 것이라는 평소지론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그녀의 경험상 시기가 지나면 그 어떤 것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천악의 방으로 들어온 제갈지는 군천악과 대정선자를 보고 의아해 했다. 무엇 때문에 부른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천악이 보자는 말만 들었던 것이다.
“부르셨어요?”
“그래, 너의 지혜가 필요하기에 불렀다.”
“헤헤!”
천악이 자신의 필요성을 이제야 알아주는 듯해 제갈지는 기뻤다.
그동안 제갈지는 풍운장원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와 같은 신세였다.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천악이 불러주지 않으면 먼저 다가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비참하던 신세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무슨 할 일이 있는 건가요?”
천악은 제갈지에게 황금비도를 건네주었다.
황금비도의 중요성을 안다면 여러 사람과 공유하지 않겠지만 천악은 상관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보물이라면 자신의 것이었다. 탐하는 자는 그에 따른 응징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황금비도가 맞는 것인가?”
부들부들!
제갈지는 황금비도를 확인하고 나서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금황전설이라면 그녀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전설로나 취급되는 이야기였기에 현실적으로 믿지는 않았었다. 그녀가 아는 것도 제갈세가 내의 비고에서 겨우 본 몇 글자가 전부였다.
황금비도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본 제갈지는 이것이 진품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황의 독문필체와 같을 뿐 아니라 양피지에 남겨진 시간의 흐름 역시도 진품에 가까웠다.
“진짜예요! 이걸 어디서 구한 거죠?”
“그건 알 거 없고, 해독이 가능한가?”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제갈지는 묵묵히 황금비도를 뚫어져라 살펴보았다. 천 년의 비밀이 간직된 비도였다. 그 진실을 파헤치고 싶은 제갈지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제갈세가의 핏줄을 타고난 자치고 자신의 지혜를 뽐내고 싶어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것은 끊어낼 수 없는 혈통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제갈지의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알 수가 없어!’
황금비도의 글은 해독이 불가능했다. 글 자체가 두서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와 더불어 양피지에는 상고시대의 문자와 서장어, 천축어가 뒤섞여 있었다. 이것을 보고 금황전설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황금비도는 제갈지의 뛰어난 머리로도 해결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 같았다.
“어려워요. 왜 천 년 동안 봉인이 되었는지 알 거 같아요.”
끄덕!
천악도 수긍하는 편이었다. 수백 년도 아니고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풀리지 않는 비밀이었다. 그 비밀이 하루아침에 풀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천악이 잠시 황금비도를 바라보았다. 비도의 글 자체에서는 아무런 해답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천악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주 찰나였다. 마치 어딘가에서 봤던 것 같았다.
천악은 아주 어린 시절 책받침을 보면서 신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매직아이라……!”
즉, 착시현상을 이용한 마법과 같은 현상을 말한다. 여러 가지 중첩된 형상들이 망막에 어떤 형태를 띠었을 때 글자 자체가 공중으로 부양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당시에는 신선했지만 하도 많이 남발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 바로 매직아이였다. 곤란한 것은 눈동자가 안으로 몰려 사팔뜨기가 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천악은 제갈지에게 한 가지 힌트를 주었다.
“눈동자를 가운데로 모아봐라.”
“예? 그건 좀…….”
자신이 생각해도 웃기는 짓이었다. 제갈지는 정인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망설였다. 그런데 천악의 표정을 보니 농담하는 것 같지 않았다. 무언가 알고 있는 듯했다.
눈동자를 가운데로 모아서 황금비도에 집중하자 제갈지는 놀라운 형상을 보게 되었다.
갑자기 양피지에서 산 모양이 입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놀라움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럴 수가! 이런 놀라운 현상이라니……!”
“이제 보이나?”
“보여요. 산의 형태가 나타났어요.”
“형태만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단서는 잡았어요. 산의 모양을 그려서 확인해 보면 더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군. 너에게 맡긴다.”
“최선을 다할게요.”
천악은 여자라고 무시하지 않았다. 여자도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대와는 맞지 않지만 능력이 따라준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믿고 맡긴다는 천악의 말에 제갈지는 감격했다. 자신이 풍운장원에 있기는 하지만 천악에겐 남이나 마찬가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 이유와 더불어 확고한 믿음을 준 것이다.
“황금비도를 해독하는 데 성공하면 1할을 주지.”
“예? 정말이요?”
“일을 했으면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하지.”
황금비도가 전설대로라면 그 보물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고작 1할이라고는 해도 그 액수는 엄청날 것이다.
천악의 넓은 배포와 믿음에 제갈지는 한껏 빠져들고 말았다. 헤어 나오지 못할 대해(大海) 속에 갇혔다고 해도 무방했다.
옆에 있던 대정선자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천악의 저런 자신감은 자신으로서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천악은 누구도 찾지 못한 황금비도의 단서를 한 번에 꿰뚫어 보는 직관력과 과감한 판단력, 더군다나 절대지경의 능력을 가진 청년이었다.
‘하늘 아래 이보다 대단한 자는 없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금황전설을 이루고자 했던 지금까지의 모든 무인들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주 간단한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해서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들은 스스로를 대단한 인재라고 생각했고 비도에 쓰인 문자를 해석하기 위해 애를 썼겠지만, 해석할 수 없는 글자를 어떻게 해석한단 말인가! 다들 헛고생만 한 것이다.
우연에 의해서 밝혀진 일이지만 천악에게는 필연이 될지도 몰랐다.
* * *
산수화가 시원하게 그려진 방 안에서 교의 최고 장로인 독고패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이토록 정교하게 다 망치는지 짜증이 치밀고 있었다.
자금줄을 확보하기 위해서 보낸 화룡수 이진충이 제대로 자금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사실을 조사해 보니 이미 구천상의 재산을 누군가 몽땅 빼돌린 뒤였다.
빼돌린 재산도 문제지만 지금부터 들어가는 돈은 모두 교에서 모아놓은 것으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였다. 물론 막대한 재산이 있기는 하지만 그 재산을 허투루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속히 돈이 들어올 새 자금줄을 만들어야 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 녹산동을 턴 거야?”
녹산동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나서부터 한 발 늦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구천상의 재산을 모조리 획득하고 사용할 것을 생각하자 화가 치밀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되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똑! 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천입니다.”
장로들의 두뇌 역할을 하는 귀뇌 백천이었다.
그가 찾아오자 독고패가 들어오라고 했다.
“무슨 일인가?”
“드디어 해독했습니다.”
“뭘 말인가?”
“오래전에 제게 해독을 하라고 주신 것 말입니다.”
귀뇌 백천은 자신이 해독한 것에 대해 무한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전설의 비도를 해독하는 일은 아무나 하지 못했다. 무려 천 년이나 이어져 오면서 누구도 해독하지 못한 것을 해독했으니 그 자부심은 당연했다.
백천의 말에 독고패 역시도 찌푸리고 있던 얼굴을 활짝 폈다.
“고작 20년 만에 해독을 하다니, 과연 귀뇌답군.”
“무슨 그런 과찬의 말씀을……. 다 최고 장로 덕분입니다.”
“아니, 다 자네의 뛰어난 머리 때문이지. 허허허, 그래 어떻게 찾을 수 있었나?”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각 문자의 배열을 확인하고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자세히 눈을 모아 살펴보니 하나의 산이 거짓말처럼 공중으로 떠올랐습니다.”
“허어, 그런 기이한 일이……!”
신수불패 독고패 장로는 귀뇌의 대단한 발상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평소에도 백천은 독고패에게 믿음직한 장로였다. 그가 해온 일은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다만 요 근래 군천악과 예기치 않게 얽히면서 많이 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백천은 뛰어났다.
“그래, 어느 지방의 산인가?”
“그건 아직입니다. 하지만 조만간 확인이 가능할 겁니다.”
“그럼 드디어 전설이 교에 들어온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산의 모양이 상당히 신비했습니다. 그런 산은 흔치 않으니 금세 찾을 수 있습니다.”
“알겠네. 역시 자네밖에 믿을 사람이 없구먼.”
귀뇌 백천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언가 다른 것을 생각한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왜 그러는가?”
“제가 생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가?”
“아무래도 강호에 혈풍을 불게 하는 게 교를 위해 좋을 것 같습니다.”
“하긴 혼란한 강호는 집어삼키기 쉽지. 그런데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전설의 비도를 강호에 퍼뜨리는 겁니다.”
“음, 비도를 말이지?”
“물론 우리가 먼저 보물을 획득한 후에 각종 기관장치와 독으로 무장한 후 강호인들을 끌어 모을 겁니다.”
독고패 장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작전이었다. 전설의 비도가 현세에 나타나기만 하면 무인들은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조금 구태의연하긴 하군.”
“예전부터 자주 써먹는 작전이지만 무인들이란 게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이 아닌지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은 믿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이니까요.”
“하긴 그렇지.”
전설의 비도다. 강호상에 떠도는 전설이 사실로 드러났을 경우, 무인들의 반응은 대개 똑같다. 함정이라는 것을 의심하면서도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나설 것이다.
“우선은 보물부터 가져오는 게 좋겠지?”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자네가 말인가? 그런 위험한 일은 다른 장로들이 하는 게 나을 텐데?”
“아닙니다. 우선 보물이 숨겨진 장소에 설치된 함정이나 기관진식들은 제가 파악하고 해체해야 합니다. 더구나 나중에 다시 사용하려면 제가 직접 가는 게 나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수고를 좀 해주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귀뇌 백천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전에 황실에 암운을 드리우기 위해 황제에게 비밀리에 독을 복용시켰다. 독은 바로 화열화(火熱花)의 성분을 강화시킨 열화신독(熱火神毒)이었다.
열화신독을 복용했을 경우 이유도 모른 채 열기가 온몸에 퍼지게 되어 나중에서 서서히 타 죽는 독이었다. 유일한 해독약이라고는 빙정뿐이었다. 빙정은 중원에서 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구한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려 결국에는 황제가 죽을 것이 분명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황제는 멀쩡히 정사를 돌보는 것이 아닌가!
일이 실패로 돌아갔기에 백천은 난감했다. 그 일로 인해 대공자에게 미움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뒷골이 당겼다. 그러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보물과 강호 혼란을 조장해서 교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해야 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