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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독존기 102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02화

개왕의 수모 (2)

 

 

개왕이 공중에 떠 있던 시간이 1각을 넘어가자 천악의 주먹이 멈추었다.

 

풀썩!

 

천악은 힘없이 지면에 쓰러진 개왕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때는 벗겼지만 아직 냄새는 지독했다. 때만으로 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일생을 살면서 살아온 숨결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는데 쉽게 지워지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지독하군. 추상락!”

 

“예, 주인님!”

 

천악이 부르자 추상락이 바로 대령했다. 사부가 당하는데도 입 한 번 뻥끗하지 못하는 제자의 비운이었다.

 

“살펴봐라.”

 

“알겠습니다.”

 

추상락은 개왕의 상태를 살폈다.

 

그것은 천악의 배려였다. 누가 보면 죽여놓고 그게 할 짓이냐고 반박할 만했다.

 

그러나 추상락은 곧 안심했다.

 

‘충격이 있기는 하지만 멀쩡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천악이 무식하게 주먹을 휘두를 때는 자신도 모르게 오싹했다. 처음 천악과 맞선 날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그날 그는 정말 죽도록 맞았다. 추상락 인생에서 그토록 많이 맞은 날은 처음이었다.

 

“너는 우선 주변에 떨어진 더러운 이물질을 치워라.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까.”

 

“할 일이라니요?”

 

“시키면 시킨 대로 할 일이지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움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천악이 아무 감정 없이 말을 하는데도 추상락은 식겁했다. 그 정도로 천악에 대한 믿음과 두려움, 무서움이 섞여 있다고 봐야 정답일 것이다.

 

추상락은 사부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이물질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그도 거지지만 사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 사부지만 더럽다!’

 

추상락이 이물질을 다 치우자 천악은 개왕을 바닥에 눕혀놓은 상태로 마법을 시전했다. 바로 청결 마법이었다.

 

-클리너(청결)!

 

푸른색의 물살 같은 기운이 개왕의 전신을 가볍게 감싸 안았다.

 

푸른빛은 청결의 상징이다. 색상 하나만으로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한 번의 빛이 개왕을 살포시 훑고 지나갔다. 그래도 역시나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저서클의 마법이라고 하지만 마력 자체의 순도와 힘은 인간 역사상 최강인 천악이었다. 그런 천악의 마법으로도 쉽사리 냄새를 사라지게 만들지 못했다.

 

클리너 마법을 연거푸 사용하는 천악이었다. 서너 번은 족히 사용을 하고 나서야 겨우 개왕의 몸에서 냄새가 사라졌다. 옛말에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마법이 또 있었다. 그것은 바로 향기 마법이었다.

 

-스위트 스멜(달콤한 향기)!

 

천악은 여인의 품에서나 풍길 법한 향기 마법을 연거푸 개왕 궁휼에게 시전했다. 그 냄새는 맡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스멀스멀 녹여버릴 정도로 달콤했다.

 

여인들 입장에서는 천악이 펼치는 향기 마법에 당하고 싶을 것이다. 향기 마법이 있다면 굳이 향낭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을 듯했다.

 

하지만 거지 입장에서 저런 냄새가 나면 그게 어디 거지라 할 수 있겠는가. 지금부터 거지 인생 종쳤다고 봐도 무방했다.

 

천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개왕에게 영구 마법까지 시전했다. 아마 이 향기는 개왕이 죽기 전까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천악은 한참 마법을 난발하다가 멈추었다.

 

“이제 됐군.”

 

개왕의 몸에서 역한 냄새는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까지 장원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반경 5장 안을 오염시켰던 개왕의 몸에서 이제는 달콤한 향기가 나게 되었다.

 

 

 

따앗!

 

당지독이 옆에 있는 삼영살 중 일살의 머리통을 세차게 때렸다.

 

일살은 미처 대비를 하지 못했다. 당지독이 설마 때릴 줄 몰랐기도 하거니와 그 손속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손의 움직임은 암기를 날리는 데 가장 중요했다. 과연 천 개의 암기를 뿌리는 제왕다웠다.

 

그렇지만 일살로서는 방금 맞은 것이 억울했다. 일살은 자신이 왜 맞아야 하는지 몰랐기에 당지독을 쳐다보았다.

 

“왜 때린 겁니까?”

 

“이놈아, 저걸 보고도 하는 소리냐?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저런 신기한 사술은 도대체 언제 배운 거야?”

 

“상황이 비록 믿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게 제가 맞는 것 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거짓말 같아서 실제인지 한번 확인해 본 것이다. 그런데 너 많이 컸구나. 말이 너무 거칠다.”

 

움찔!

 

“아, 아…닙니다.”

 

당지독의 말에 놀란 일살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당지독을 저주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려면 자기 머리를 때리던가! 왜 남의 머리통을 때리고 지랄이야.’

 

“너 지금 내 욕했지?”

 

“헛!”

 

헛바람을 날리는 일살이었다.

 

귀신이 따로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속마음까지 다 들여다본다는 육신통에 이르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거 웃기는 놈일세. 살수 놈이 표정 관리조차 제대로 못 하는 거냐?”

 

“욕 안 했습니다!”

 

“아니면 말고.”

 

힘없는 게 죄였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자신도 그런 생활 속에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참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참을 수 없는 것은 옆에서 키득거리는 이살과 삼살이었다.

 

‘이런 의리 없는 것들! 지들은 안 맞았다 이거지?’

 

괜히 자신만 당지독의 옆에 있다가 봉변당한 것이다.

 

 

 

천악은 쓰러져서 곤히 자고 있는 개왕 궁휼을 방으로 데리고 가라고 추상락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화분에 물 주는 일을 계속했다.

 

천악이 태연히 화분에 물을 주기 시작하자 주변에 정적이 감돌았고, 그 뒤로는 하루가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 * *

 

추상락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궁휼을 보니 마음이 안타까웠다. 어찌나 많은 때를 달고 살았는지 때가 없어지자 몸집의 상당 부분이 줄어 보였다. 왜소해진 사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하지만 화경의 극에 이른 개왕의 얼굴은 생각보다 홍조를 띠고 있어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경에 이르면 피부도 보통의 노인들보다는 월등히 팽팽하다.

 

어떻게 보면 궁휼은 어제 사람이 된 것이지만 거지 입장에서는 거지 인생 종쳤다고 봐도 무방했다. 몸에서는 이제 악취는커녕 달콤한 향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지 않는가. 바로 인간 방향제가 된 것이다.

 

“사부!”

 

“끄응!”

 

추상락의 부름에 개왕 궁휼이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궁휼은 한동안 의식이 멍했다. 편안한 침대 위에 누워 있지만 바늘방석 같았고, 몸은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욱신거렸다.

 

궁휼은 서서히 눈을 떠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야가 밝아지면서 자신의 바로 옆에서 걱정하는 제자가 보였다.

 

제자 녀석이 걱정하는 표정을 보이자 궁휼은 피식 웃었다. 거지는 언제나 만사태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궁휼이었다.

 

“이놈아, 나 안 죽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죽을상이냐?”

 

“사부의 상태를 보고 나서 그런 말을 하십시오.”

 

“내 상태가 어때서?”

 

궁휼은 누운 자세에서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앉아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본 개왕 궁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이럴 수가!”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톱 안쪽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있어야 할 정겨운 때와 손등에 균열을 만들었던 두터운 껍데기가 다 벗겨지고 이제는 사람의 피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킁! 킁!”

 

손끝에서 느껴지는 악취도 사라졌다. 궁휼은 그저 침대에서 나는 냄새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냄새의 진원지가 바로 자신의 몸이라니.

 

사람이 태어나서 몇 번이나 놀라는지는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개왕 생애 오늘처럼 놀라기는 처음이었다.

 

궁휼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혹시 이게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궁휼의 이런 바람을 철저히 외면했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거지의 상징이자 구걸대마왕이라 불렸던 자신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크아아아아!”

 

갑자기 궁휼이 참을 수 없었는지 소리를 질렀다. 한풀이와 같은 소리가 풍운장원에 힘차게 울려 퍼졌다.

 

“사부, 진정하세요!”

 

“진정? 지금 내가 진정하게 됐느냐? 네 그놈을 당장……!”

 

거동하기조차 힘들어하던 궁휼이 어디서 힘이 났는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추상락이 애써 궁휼을 만류했다.

 

“어떻게 할 건데요?”

 

“다시 붙을 거다.”

 

“이길 수 있다고 보십니까? 당해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다니, 사부가 진정 제 사부가 맞습니까?”

 

“그럼 이대로 참으란 말이냐? 내 개방을 총동원해서라도 놈을 가만… 윽!”

 

사부의 도발적인 말에 추상락이 급히 궁휼의 입을 막았다.

 

휙! 휙!

 

누가 듣지 않았는지 상당히 조심하는 추상락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귀신처럼 나타나는 군천악이었다. 그의 이목에서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 사부의 말은 개방을 이 세상에 지워버릴 수도 있는 무서운 말이었다. 그게 개방의 태상장로로서 할 말인가! 어떻게 이런 몰상식한 말을 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추상락이었다.

 

“이놈아, 숨 막힌다!”

 

“사부, 그놈이 어떤 놈인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개방도를 다 죽이고 싶으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추상락은 자신이 아는 군천악에 대해 사부에게 설명해야 했다. 그가 아는 것만 말을 해도 이 세상에서 군천악에게 맞설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제자의 설명을 듣는 동안 궁휼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이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인지 한참 생각을 해봐야 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그놈이 괴물이라는 거네?”

 

“맞습니다. 그것도 괴물 중에 왕괴물입니다. 당지독 어르신이 왜 사부를 가만히 두었는지 알겠습니까?”

 

순순히 당지독이 그에게 안내를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결론은 뒈지게 맞아보라는 것이었다.

 

하긴 자신은 일초지적도 되지 못하고 당했다. 순간 무언가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기만 했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주먹이 다가오는 순간 의식은 저 멀리 우주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풍운마룡 군천악은 십대고수조차 반응할 수 없는 빠름과 강함, 그러면서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무서움을 넘어 소름이 끼치는 궁휼이었다.

 

“잠깐! 정리해 보면 너도 그놈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네?”

 

‘윽!’

 

얘기가 어떻게 거기로 빠지리라고는 생각 못 한 추상락이었다. 불쌍한 사부를 동정하느라고 자신의 잘못을 가리지 못한 것이다.

 

실수는 실수를 낳는다 했던가! 찔린 추상락이 움찔거렸다.

 

“이 사부가 죽기를 바랐느냐?”

 

“사부, 제가 언제… 저는 분명 말렸습니다.”

 

“그렇게 소소하게 말려서 어떤 미친놈이 곧이곧대로 듣느냐, 이놈아!”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젊은 후기지수가 십대고수를 능가한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그 말을 믿는 놈들이 다 미친놈 취급당하기 십상이었다.

 

“오늘 좀 맞자.”

 

“사부, 저도 이제 화경입니다.”

 

“그래서 지금 개기겠다는 거냐?”

 

“그런 것이 아니라…….”

 

아무리 추상락이 강해도 어떻게 사부와 맞장을 뜨겠는가! 그것은 패륜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고스란히 맞아주어야 했다.

 

“애정이 담긴 주먹으로 사람을 만들어주마.”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게 왜 애정입니까? 원한이지.”

 

“꼬박꼬박 말대꾸라…….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웠구나.”

 

아침부터 티격태격하는 사부와 제자였다. 결론은 그들끼리 해결할 일이었다. 그 둘에게서 이미 천악에 대한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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