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01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01화
개왕의 수모 (1)
입 안까지 상쾌해지는 듯한 겨울 아침.
비록 겨울이라 찬 기운이 바람에 섞여 있기는 해도 맑은 하늘과 땅을 녹여주는 햇볕으로 인해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시간이었다.
열어놓은 창문 새로 빛이 들어왔다. 들어온 빛이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의 시야를 자극했다.
노인은 약간 뒤척이며 빛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입 안으로 들어오는 구수하고 입맛 당기는 죽을 오물거렸다.
오물오물!
노인은 눈도 뜨지 않은 상태였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을 받아먹을 뿐이었다.
호안의 중년인이 노인의 옆에 앉아 정성스레 수저로 음식을 떠 입에 넣어주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사부, 그러게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소!’
중년인은 바로 무걸개 추상락이었다. 사부라 불린 노인은 추상락의 스승인 개왕 궁휼이었다.
바로 어제 저녁, 사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추상락은 숨을 죽이며 천악의 반응을 살펴야 했다. 만약 그가 마음이 돌변해 그대로 살수를 뿌리면 아무리 개왕이라고 해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군천악은 추상락의 부탁을 들어주기는 했다.
“후우!”
추상락은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어제 일을 떠올렸다.
* * *
불같이 화를 내는 개왕 궁휼이었다. 추상락의 독문신공인 혼천강룡신공은 바로 궁휼이 전수해 준 것이다.
궁휼의 화후는 이미 추상락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개방 역사를 따져도 개왕 정도의 실력을 가진 거지는 드물었다. 아니,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추상락은 군천악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죽을 뻔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 일로 인해 일취월장을 한 상태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개왕도 죽음에 이른 적이 있었다. 죽음에 이른 경험을 한 후부터 개왕은 꾸준히 노력했고, 그리하여 앞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간 경지를 개척했다.
그런 개왕의 무위(武威)가 본격적으로 발휘되었다. 무형의 기운이 뻗어나가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궁상맞기까지 하던 개왕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십대고수다운 풍모가 풍겨 나왔다.
십대고수 중 3왕에 속하는 개왕이 뿜어내는 살기는 죽음의 기운과 같았다. 그 힘의 여파는 대단했다. 보통 고수들이 보았다면 그 대단함에 질려버리거나 두려움에 뒷걸음질 쳤을 것이다.
“어떠냐?”
개왕이 한껏 기운을 뿜어내며 천악을 위협했다.
하지만 지금 풍운장원에 있는 사람들 중 개왕의 위협에 두려움을 나타내는 사람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뿐이었다.
풍운장원의 구성원들을 보면 대문파와 비견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굉장하다 할 수 있었다. 함부로 쪽수 믿고 덤비다가는 풍비박산 나기 쉬웠다.
천수암제 당지독.
무걸개 추상락.
삼영살(일살, 이살, 삼살).
3제에 속하는 당지독만 해도 예전 경지를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고, 추상락 역시도 화경의 고수였다. 그와 더불어 삼영살 역시 전대 살왕에 비견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의 공통적인 생각이 있었다. 세상 누구도 풍운마룡 군천악을 이길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그 어떤 단체가 그에게 떼로 덤빈다고 해도 눈 하나 깜박 안 하고 부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걱정 따위는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개왕은 어리둥절했다. 무형지기(無形之氣)는 화경에 이르러야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위력은 실력이 더 뛰어나거나 동등한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버텨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젊은 청년은 어떠한가! 마치 차가운 빙벽과 같이 흠집 하나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칼바람 위에 서 있는 청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했다.
청년은 오히려 불쾌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개왕은 황당함과 더불어 극도의 분노를 표출했다.
“기(氣)에도 냄새가 나는군요.”
“뭐, 뭐시라!”
아무리 몸에서 냄새가 나도 내공에서까지 냄새가 날 리 없다. 그럼에도 천악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워낙 역한 냄새에 질색했기 때문이다.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지만 자신의 손이 개왕의 몸에 닿는 것도 싫었다. 손이 닿자마자 썩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법 실력이 있구나. 하지만 이번에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봐주마!”
개왕의 몸 안에 존재하는 내공이 순간적으로 회전했다. 내공을 한순간에 끌어올려 가장 빠르게 최강의 내력을 구축하는 자가 진정한 고수였다.
개왕의 몸에선 활화산처럼 차오른 혼천강룡신공이 출수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응축된 기운이 분출할 곳을 향해 뻗어나갔다. 뻗어나가는 기운은 다리로 향했다.
개왕의 다리에 내공의 기운이 감돌자 그 순간 개왕의 움직임이 정지한 것처럼 보이다가 사라졌다. 바로 개방의 절기보법(絶技步法)인 취팔선보였다.
뚜벅! 뚜벅!
한 발짝씩 움직일 때마다 더 빨라지더니 마침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개왕의 가장 무서운 무공은 바로 보법과 신법이었다.
그것은 무공의 경지와는 달랐다. 거지는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 빨라야 굶주리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으며, 빨라야 남들보다 오래 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방은 타 문파에 비해 신법에 관해서는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대단했다.
사삭!
눈을 한 번 깜박이자 개왕의 신형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꿈틀!
당지독만이 어느 정도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천악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개왕의 움직임이 빨라도 천악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개왕의 동선이 슬로모션처럼 천악의 시야에 들어왔다. 점점 더 개왕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천악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쌔애앵!
개왕의 손이 먹이를 가로채듯이 빠르게 천악의 완맥을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손이 닿기도 전에 허공을 내리그어야 했다. 마치 허공을 향해 몸부림 친 꼴이 되었다.
“이게 무슨……?”
바로 앞에 있어야 할 천악이 사라지고 없었다. 자신의 지척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공격했음에도 귀신처럼 사라져버렸다. 즉, 기의 유동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빨랐다는 말이다. 귀신이 곡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을 것이다.
휘익!
개왕은 정면에서 천악이 보이지 않자 그 즉시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 앞으로 짜증이 난 듯한 천악이 심드렁하게 서 있었다. 마치 귀찮게 자꾸 덤비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제법 신법이 뛰어나구나.”
제법? 개왕의 이목을 이토록 완벽하게 벗어난 존재를 과연 ‘제법’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개왕의 말에는 상당한 불합리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 정도가 제법이면 다른 무인들 모두 제법이 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신법만 수련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움직인 거지? 무슨 수로 나의 이목을 이토록 쉽게 벗어날 수 있지?’
의문이 생기자 머릿속에 들어 있는 군천악에 대한 자료를 다시 한 번 훑어보게 만들었다.
안휘성에서 제법 소문이 난 풍운마룡이었다. 그에 대한 조사는 이미 개방에서 이루어졌기에, 개왕은 그에 대해 대부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풍운마룡은 허풍쟁이다!
분명 이런 소문이 중원에 퍼져 있었다.
개왕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놈이 허풍쟁이면 자신은 허풍쟁이도 아닌 초허접이 되어버린다. 더구나 천하십강의 위인이 허접이라면 다른 무인들은 무인 취급도 받지 못한다.
개왕은 감정을 다스리고 냉철하게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럼에도 이성과는 다르게 마음으로는 쉽사리 천악의 실력을 인정하지 못했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괴리감이 존재했다.
‘그래도 질 수는 없다!’
개왕은 마음을 다잡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개왕은 소문과는 다른 천악의 신위를 경험하고 나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혼천강룡신공을 10성까지 끌어올렸다. 끌어올린 기운은 사지백해로 흘러 들어갔다. 기운이 퍼지자 좀 전까지 의기소침했던 자신감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번쩍 드는 듯했다.
“어디 이것도 막아보아라!”
혼천강룡신공을 운용하는 동시에 손바닥에 무섭도록 강력한 기운이 형성이 되었다. 바로 강룡십팔장이었다.
강기의 용(龍)이 개왕의 손바닥 안에 그려지더니 그 힘이 천악을 향해 빠르게 돌격했다. 바람을 가르며 지나간 용은 천악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발기려고 했다.
파파파팡!
연속적인 폭발음이 들렸다. 천악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강룡십팔장이 기의 장막에 가로막히더니 그 앞에서 폭발을 한 것이다.
강기조차 찢어버린다는 강룡십팔장이었지만 천악이 형성한 호신강기를 뚫진 못했다.
“저,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개왕 스스로 생각해도 무리다 싶을 정도로 강력한 일 장을 날렸다. 그런데 상대는 피할 생각도 없이 멀뚱히 서 있었다.
극성으로 펼친 강룡십팔장을 정면으로 맞이한 천악이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악이 피하지도 않고, 호신강기만으로 막아내자 어안이 벙벙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개왕 궁휼의 모습을 본 추상락은 왠지 모르게 공감을 했다.
자신도 강룡십팔장을 출수하고 저와 같은 심정이었다. 강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장법인 강룡십팔장으로 상처 하나 내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사부, 상대는 괴물이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한가하게 망연자실해 있을 틈이 없다니까요.’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천악에게 찍히기는 싫었는지 마음과 다르게 입은 다물고 있었다. 소리 없이 생각만으로 개왕을 응원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지독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내 그 심정 알지. 나도 무형지독이 통하지 않았을 때 그런 심정이었으니까. 그리고 놈은 절대 상대를 봐주지 않아. 개왕 너도 한 번 징하게 맞아봐라.’
스승의 친구인 자신조차도 한 번 덤볐다가 본전도 뽑지 못하고 뒈지게 맞았다. 당지독은 그때 맞고 나서 며칠간 앓아누운 것을 생각하면 다시는 천악을 상대로 비무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개왕은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는지 막무가내로 강룡십팔장을 출수하기 시작했다.
강룡십팔장 자체가 공력의 소모가 많은 장법이었다. 따라서 파괴력이 강하다고 막무가내로 남발할 수 있는 장법이 아니었다.
파파팡! 파파팡! 파파팡! 파파팡!
연거푸 네 번이나 휘두른 강룡십팔장이었지만 무형의 장벽에 막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상당한 반탄지력을 받은 개왕이 뒤로 밀려나가 버렸다.
덜덜덜!
출수했던 손바닥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공력의 삼분지 이를 소비했건만 상대에겐 충격을 주지도 못하고, 자신은 심적인 충격으로 주화입마를 당할 것 같았다. 개왕 생애 이토록 황당하고 무서운 일은 처음이었다.
천악이 숨을 고르고 있는 듯한 개왕을 바라보았다. 정면으로 마주본 개왕의 눈이 천악의 눈과 부딪쳤다.
찌릿!
전신을 불로 지진 듯한 충격을 받은 개왕이었다.
‘이런 존재감과 허무함이라니!’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지 않는가! 천악의 눈에 들어 있는 것은 허무함이었다. 그 뒤로 귀찮음과 번거로움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잔잔한 수면 아래에 숨 쉬는 듯한 광폭함이었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무서운 기운이 개왕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다 했습니까? 이제부터 제가 사람을 만들어드리죠. 우선은 먼지부터 털겠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먼지라니? 개왕의 몸에 붙은 때를 먼지라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개왕은 너무 많은 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순간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개왕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섬광이 번쩍였다.
퍼퍼퍼퍽!
“크어어억!”
개왕은 눈앞에서 무언가 날아왔다는 것을 미처 느끼기도 전에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날아오른 개왕의 몸이 공중에서 멈추었을 때 전신을 수천 번이나 두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권격이었다.
권이 개왕의 몸을 훑고 지나가자 정신까지 몸에서 벗어나 공중으로 날아오르려고 했다.
“이… 떠…그…럴!”
개왕은 벗어나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개왕이 정신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날리는 희뿌연 껍데기들이 문제였다. 도저히 사람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시커멓게 흩날렸다.
“저, 저게 뭐야? 저놈, 도대체 언제 목욕을 한 거야? 사람이 저래도 되는 거냐?”
당지독도 시꺼멓게 날리는 것이 무언지 알고는 역겹다는 표정이 되었다. 사람이 저렇게 많은 때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쩐지 전에도 독이 잘 통하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때갑으로 막고 있었구먼!”
개왕이 마지막까지 생각한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죽도록 아프다!’
천악의 주먹은 개왕의 머릿속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힘의 적절한 안배와 정확한 가격, 무섭도록 빠른 권격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이상적인 권로(拳路)였다. 가장 완벽한 권법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천악은 권풍으로 때리고 있었다. 손에 때가 묻는다는 것 자체가 기분 더러웠기 때문이었다.
천악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할 정도로 많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개왕이었다. 이런 때를 입고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게 더 신기했다.
십대고수라고 하지만 무엇 하나 천악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것이 다시 한 번 증명되는 아주 간단한 여과였을 뿐이다.
반면에 지켜보는 누구 하나 이 장면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으레 거쳐야 하는 연례행사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