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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독존기 99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4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99화

개왕 출동 (4)

 

 

‘이씨, 큰일났네!’

 

걱정이 태산이었다. 사부는 정말 천악과 사생결을 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20여 년간 같이 생활해 온 바로는 사부는 일단 마음을 먹으면 고집을 꺾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이제 정말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수중에 갖고 있는 10만 냥을 가지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금천상가에서 받은 돈이라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도망쳐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 천악의 수중에서 도망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개방의 이목에서 벗어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진퇴양난, 사면초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사부님은 제자가 약속을 저버리시길 원하십니까?”

 

“시끄럽다. 개방에는 너처럼 함부로 약속을 하는 놈은 없다. 네가 어수룩하게 보여서 당한 것뿐이야. 내가 해결해 줄 테니 어서 너는 나를 그놈에게 안내를 해라!”

 

“그래도 이건 좀……!”

 

“어허, 사부가 화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냐? 널 생각해서 조용히 말로 타이를 거다!”

 

추상락은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사부의 말에도 안심할 수 없었다.

 

‘그놈에게 대화가 통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환장할 일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마음이 들자 추상락은 갑자기 사부가 얄미웠다. 사부의 안전을 위해서 지금 고군분투하는 제자의 고생을 전혀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추상락은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지금 당장 자신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고 사부가 믿어줄지도 의문이었다.

 

“이제 먹을 만큼 먹었으니 어서 가도록 하자.”

 

궁휼은 제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 누가 개방의 태상가주이자 십대고수 중 3왕에 속하는 개왕 궁휼의 말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거지들의 우두머리에게 잘못 보이면 일생을 살면서 좋은 꼴 보기 힘들 것이다.

 

십만 개방 방도가 일시에 침을 뱉어도 최소한 반경 10장 안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다. 거지가 이빨을 닦을 리 없으니 그 냄새에 모두 질식사 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궁지에 몰리면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이성을 잃고 폭주하거나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포기해 버린다. 두 가지의 상반된 반응 중에 추상락은 포기를 선언해 버렸다.

 

‘에잇, 몰라! 될 대로 되라! 설마 주인도 생각이 있다면 사부님을 정도껏 다루겠지!’

 

어느 때 보면 사부도 정말 대책이 없다. 그렇지만 추상락도 그런 사부의 대책 없는 면을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본인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천악과 부딪치지 않도록 해야지, 저렇게 포기하는 것은 제자로서의 의무를 포기하는 일이었다.

 

* * *

 

“오!”

 

궁휼은 진정 감탄했다. 추상락이 결국 궁휼을 데리고 풍운장원으로 온 것이다.

 

궁휼은 좌우로 보이는 웅대한 담벼락과 거대한 정문,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과 풍운장원이라고 써진 웅장한 필체의 현판 등을 보면서 감탄을 했다. 거지 생활하면서 이 정도로 호화로운 장원은 처음 본 궁휼이었다.

 

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는 별세계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좌우로 보이는 정원수와 바닥에 사용된 최고급 대리석은 밟고 다니는 것 자체가 죄악처럼 느껴졌다. 특히 궁휼의 발은 그 자체가 살인무기였다. 발가락 냄새만으로 대리석이 썩을 듯하니 말할 필요가 없었다.

 

주변에 먼지 한 점조차 보이지 않아 궁휼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지독한 냄새와 흔적이 뚜렷하게 남았다.

 

“추 형, 이게 무슨 짓이오?”

 

왕삼이 궁휼을 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풍운장원의 장주인 군천악은 유난히 청결을 중시하는 면이 있었다. 장원 내에 거주하는 하인들 대부분에게 다른 것은 둘째 치고 청결 유지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런데 지금 추상락과 함께 걷고 있는 궁휼은 풍운장원에 들어오면서부터 심각한 냄새와 움직일 때마다 비듬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역겨움을 느끼게 했다.

 

“왕 형,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주게. 내 사부님일세.”

 

“그런가? 그럼 어서 장주님이 보지 않도록 데리고 가시게.”

 

왕삼은 그러면서 궁휼에게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장주님이 워낙 청결을 중시하셔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괜찮네.”

 

궁휼이 괜찮다고 하면서 왕삼의 눈을 바라보았다.

 

왕삼은 순간적으로 울렁거리는 심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개왕의 눈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겪는 반응이었다.

 

왕삼은 잠시 궁휼이 여자도 아닌데 이상하단 생각을 했다.

 

‘눈이 촉촉하네!’

 

 

 

궁휼은 추상락을 따라가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신기하고 요상한 것들이 잔뜩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호 생활을 제대로 안 한 지 꽤 돼서 그런지 문물이 상당히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장주에 대해서는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깔끔 떠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 없다!”

 

“사부, 오늘은 그렇고 내일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인 줄 아느냐?”

 

거지가 한가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 다 바빠서 과로로 죽을지도 몰랐다.

 

추상락은 군천악의 방으로 가면서도 무척이나 찝찝했다.

 

‘이런!’

 

그때 추상락은 장원에서 안 마주쳤으면 했던 서열 두 번째 인물을 보고 말았다. 하필이면 이 중요한 순간에 천수암제 당지독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한동안 무언가 연구를 한다고 해서 밖에 싸돌아다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때마침 나온 것이다.

 

“이놈아,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다 오는 거냐?”

 

빠직!

 

개왕 궁휼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검미가 꿈틀거리자 얼굴을 감싸고 있는 때갑의 일부분이 부스럭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누군가 봤다면 살이 떨어지는 줄 알고 기겁했을 것이었다.

 

궁휼은 지금 눈앞에 있는 건방진 놈이 자신의 제자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났다. 자신은 둘째 치고 제자의 나이도 마흔이었다. 더군다나 개방의 장로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은 개방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상대의 나이가 많았다면 참겠지만 얼굴을 보니 서른 중반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넌 뭔데 내 제자에게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냐?”

 

“사부!”

 

추상락은 ‘아차!’ 하는 기분이었다.

 

당지독도 한성깔 하는 인물이었다. 감히 자신에게 ‘너’라니! 요즘 너무 조용히 지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거지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어? 이거 뭐야? 너 구걸대마왕이잖아!”

 

“네놈이 날 어떻게 아느냐?”

 

“너, 나 모르냐? 내 얼굴 보면서 떠오르는 사람 없냐?”

 

개왕이 당지독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얼굴의 윤곽이 예전에 독한 놈이라고 생각하던 놈과 상당히 비슷했다. 그러고 보니 분위기도 비슷하고, 말투도 비슷한 것 같았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개왕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너, 너… 설마 당지독?”

 

“이제야 알아보다니,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보지 못했구나! 아무튼 오랜만이다. 그런데 좀 전에 나한테 너라고 삿대질 한 것 같은데, 내 성격을 그동안 잊었나 본데?”

 

뚜둑!

 

가볍게 주먹을 푸는 당지독의 모습에 개왕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아무리 개왕이 강해도 당지독은 오천존의 한 명이었다.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한 번 대결했다가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얼마나 지독한 독이었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았다.

 

“오랜만에 한판 해볼까?”

 

주춤!

 

“난 오늘 다른 일이 있어니 다음에 결판을 내주마.”

 

“다른 일? 그게 뭐냐?”

 

궁휼이 바로 한마디 했다.

 

“이곳 장주에게 따끔한 말을 하려고 왔다.”

 

“호오, 그래? 그럼 내가 양보하지.”

 

당지독이 웬일로 깔끔하게 바로 양보해 버렸다.

 

‘응?’

 

지독할 정도로 집요한 당지독이 바로 포기를 하다니! 궁휼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알기로 당지독은 이렇게 쉽게 포기할 녀석이 아니었다.

 

하지만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지독은 정말 지독한 놈이기에 다시 붙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특별히 내가 안내해 주지.”

 

추상락이 속셈을 부리기도 전에 당지독이 먼저 선수를 쳤다. 추상락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이런 젠장!’

 

당지독은 궁휼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실컷 웃었다.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하면 웃겨 죽을 것 같았다.

 

‘죽으려고 지옥의 입구로 들어가겠다는데 굳이 막을 생각 없다! 히히히!’

 

“자, 날 따라오라고. 내가 친절하게 가르쳐줄 테니 말이야!”

 

“그러지.”

 

궁휼은 당지독의 친근한 말을 들을수록 기분이 이상했다. 이상하게 친절할수록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놈이 이런 놈이 아닌데……?’

 

당지독을 따라가는 궁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추상락은 그 앞으로 염마지옥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부!’

 

당지독이 무서워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부라는 말을 목 놓아 불렀다. 이 간절함이 전해지길 기대했지만, 말하지 않는데 귀신도 아니고 알 턱이 없었다.

 

* * *

 

천악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분수대 아래에 놓인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천악은 가끔씩 하인들 대신에 물을 주면서 화분과 분재의 모양을 꾸미기도 했다.

 

정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세상을 파괴시킬 정도의 광폭함을 가진 천악이 고작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니, 그를 아는 자들은 이상하게 여길 만했다.

 

천악이 물을 주는데 5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부터 천악의 심기를 자극하는 불결한 냄새가 퍼져왔다. 물을 주자 생기를 마음껏 발산하던 화분의 꽃들이 순식간에 죽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악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당지독과 추상락은 알고 있기에 상관없지만 한 명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상거지 중에서도 지독한 거지가 장원 안에 들어온 것이다.

 

천악의 심기가 갑자기 급격하게 불편해졌다. 천악은 불결한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더러워도 남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역한 냄새가 다가오기에 순간적으로 천악은 윈드 마법을 펼쳤다. 바람으로 냄새를 날려버리려는 행동이었다.

 

휘잉!

 

 

 

당지독이 천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이 풍운마룡이다. 가서 따끔한 말을 한번 해보도록!”

 

‘할 수 있으면 말이지.’

 

“그러니까, 저놈이 내 제자를 하인으로 만들었다 이 말이지?”

 

개왕 궁휼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추상락이 마지막으로 말리려고 했지만 당지독이 가볍게 제지해 버렸다.

 

[당 어르신! 정말 이러깁니까?]

 

[왜 그러냐? 난 그저 네 스승이 원하기에 들어준 것밖에 없다!]

 

[스승님은 주인님을 모르니까 하는 행동이지 않습니까! 잘못하다 죽으면 당 어르신이 책임지실 겁니까?]

 

[그걸 왜 내가 책임져? 네가 책임져야지! 난 몰라!]

 

무책임한 말이었다. 전음을 주고받은 추상락의 얼굴이 썩은 똥을 씹은 것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개왕 궁휼이 3장 안으로 다가오려고 하자 천악이 한마디 했다. 그의 말에서 감정의 기복은 없었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화가 나게 만들 만큼의 파괴력은 있었다.

 

“냄새나니까 더는 다가오지 마십시오.”

 

“뭐라고! 이놈이 지금 좋게 말하려고 겨우 참고 있는데 말하는 본새가 그게 뭐냐?”

 

“누군지 모르겠지만 역한 냄새로 인해 제 코가 참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듣는 입장에서 상당히 모욕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다른 누구의 소유도 아닌 제가 주인인 장원입니다. 장원의 주인으로서 말하는데 씻고 오든가 아니면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천악은 상대방의 정체보다는 지금 퍼지는 역겨운 냄새로 인해 신경질이 났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상대방을 힘으로 억누를 생각은 없었다. 차분한 말로 설득해 보려는 생각이었지만 개왕의 입장에서는 건방짐이 하늘을 찌른다고 볼 수 있었다.

 

“내가 누군 줄 알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냐?”

 

스스로 대단한 자라고 생각하는 자들의 독특한 말투였다. 천악에게는 거슬리는 말투지만 상관없는 사람의 행동방식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알고 싶지 않군요. 그리고 지금 저는 장원의 주인으로서 나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놈이……!”

 

개왕이 화를 내자 무형의 기운이 천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십대고수의 살기는 무시할 수 없는 공격성을 가지고 있었다.

 

꿈틀!

 

이유 없는 살의가 전해지자 천악의 표정이 급격하게 차가워졌다.

 

그 모습을 보던 추상락은 다급해졌다. 그는 급히 천악에게 전음을 날렸다.

 

[주인님! 그분은 제 사부님입니다. 그러니 조금 무례하더라도 참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심히 불쾌한 일이었다. 갑자기 쳐들어와서 자신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 만큼 천악의 성격은 선하지 않았다.

 

[전에 제 소원 하나 들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간을 꿈틀거렸던 천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랬지.]

 

[사부님을 조금 살살 다뤄주십시오.]

 

[그게 소원인가?]

 

[그…렇습니다.]

 

[소원을 너무 쉽게 쓰는군. 아무튼 약속이니 지켜는 주겠다.]

 

추상락도 아까워 죽으려고 했다. 최후의 구명줄로 남겨둘 생각이었지만 사부의 등장으로 너무 허무하게 반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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