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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독존기 98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1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98화

개왕 출동 (3)

 

 

해가 가운데 올라간 정오였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어김없이 개왕의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륵! 꼬르륵!

 

거지면서 배를 곯아본 적이 없는 개왕이었다. 그럼에도 항상 몸이 삐쩍 마른 것을 보면 신기했다.

 

오전에 은자 한 냥을 가지고 배 터지게 먹은 후였지만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개왕의 창자는 또다시 음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제자가 있는 풍운장원에 갈 수 있는 시간이건만 그걸 참지 못하고 다음 구걸 상대를 모색하는 개왕이었다. 보통 거지 근성이 아니었다.

 

개왕은 금천상가로 들어서는 골목에서 완전히 기척을 죽이고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골목길을 도는 바로 그 지점, 사각의 함정을 이용해서 다시 한 번 엄살을 피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개왕이 기척을 죽이면 아무도 찾지 못했다. 시체와 같다는 표현이 딱 적당했다.

 

‘호오!’

 

개왕은 5장 정도 거리에서 누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놀라고 있었다. 느껴지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었다. 이 정도의 존재감은 그동안 좀처럼 보지 못했다. 같은 십대고수 중에서 한 놈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개왕은 그냥 모른 척 다음 놈을 노릴까 했지만 자존심상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던 구걸예도를 무시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자신보다 미숙해 보였던 것도 선택을 무시하지 못하는 데 한몫했다.

 

‘조금만 대성하면 대단하겠어. 하지만 이상하게 친근하네!’

 

개왕이 낌새를 죽이고 골목길 꺾이는 곳에서 다가오는 중년인을 향해 극히 미미하게 부딪쳤다.

 

탓!

 

중년인은 자신과 부딪친 노인을 보고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때에 개왕 궁휼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나 죽네! 이보게, 사람들아! 이놈이 사람을 죽이네!”

 

어찌나 절절한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정도의 연기력은 보통 내공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연기 내공이 필요했다.

 

‘응?’

 

궁휼이 몸을 자지러지듯이 비틀면서 절절한 말을 터뜨리면 보통 사람이 아니라 무인이라도 한 번쯤은 어떤 말이라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중년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궁휼은 오두방정을 떨며 실눈으로 중년인의 다리부터 가슴까지 훑어보았다. 중년인의 옷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좋은 옷감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상당히 깨끗했다.

 

무인치고 비단옷을 입고 다니는 놈은 고수가 아니었다. 고수 정도 되면 편안한 옷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이놈 뭐야? 왜 이리 반응이 없어?’

 

개왕이 소리를 더 지르며 발광했다. 그러면서 중년인의 얼굴을 보았다.

 

‘호탕하게 생긴 놈이 왜 이리 쪼잔해? 빨리 돈을 주란 말이야!’

 

그런데 이상했다. 중년인의 얼굴이 아는 얼굴 같은데 이상하게 이질적으로 보였다. 추상락이 화경의 경지를 밟으면서 조금 젊어지고 거지의 탈을 완전히 벗어던졌으니 당연했다.

 

“킁킁!”

 

본능적으로 냄새를 맡는 개왕이었다.

 

‘낯선 놈에게 제자의 냄새가 나네!’

 

추상락은 설마 했다. 갑자기 자신이 누군가 부딪친 것을 생각하자 어이가 없었다. 바로 앞의 기척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걸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책감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때 쓰러진 거지 노인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추상락이 놀란 것은 거지의 발광 때문이 아니었다. 이유는 바로 그 소리의 임자가 너무도 익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곳에 사부가 나타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 사부님!”

 

“응?”

 

벌떡!

 

‘사부’라는 말에 거지 노인, 즉 개왕 궁휼이 벌떡 일어났다. 언제 아팠냐는 듯 일어난 궁휼은 중년인을 다시 보았다.

 

전체적인 크기와 얼굴이 자신의 제자와 같았다. 하지만 제자의 성취가 이 정도는 아니었고 복장이 거지 복장도 아니었기에 믿을 수가 없었다.

 

“너, 너… 상락이 맞느냐?”

 

“아니, 제자 얼굴도 못 알아봅니까!”

 

사실 거지들은 머리카락이 단정치 않으니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거지였을 때 추상락의 머리카락은 산발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머리카락에서 윤기가 나고, 그 머리카락을 잘 넘겨서 묶었으니 얼굴이 달라 보일 수밖에. 사람의 얼굴이 달라 보이게 하는데 머리 스타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머리를 올리고 내리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전혀 달라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너 그런데 이 불량한 복장은 뭐냐?”

 

“그게…….”

 

사실 추상락은 할말이 없었다. 거지 주제에 이틀에 한 번 목욕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니니, 그게 어디 거지랄 수 있는가! 오히려 일반 사람보다 더 청결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바로 천악이 만들어놓은 펌프가 한몫했다. 일반적으로는 물 떠오는 것이 귀찮아서라도 목욕을 하지 않겠지만 방에서 바로 물이 나오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깨끗하게 씻는 게 버릇이 되어버렸다. 거지 중에서 최악의 거지 탄생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 구걸을 하도 잘해서 부자가 된 거냐?”

 

궁휼은 말이 안 되는 상상까지 했다. 전생이 구걸 신이라고 평가받는 자신도 이 모양인데 제자가 그런 경지에 들었을 리 없었다.

 

‘아니지. 이놈을 이렇게 만든 것은 풍운마룡인가 뭔가 하는 놈이 틀림없어!’

 

개방에서 들은 소식에 제자가 풍운마룡의 수족 노릇을 하고 있다고 했으니 제자를 이 꼴로 만든 것은 바로 풍운마룡이라는 소리였다.

 

“네놈을 이렇게 만든 게 군천악이라는 놈이냐?”

 

“헛!”

 

추상락의 입장에서 사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너무 두려운 이름이었다. 하필이면 거론할 사람이 없어서 주인의 이름을 거론한단 말인가! 일부러 저승길 가고 싶어하는 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만약 사부가 군천악을 본다고 생각하자 천하의 개왕이라 해도 죽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는 극구 부인해야 했다. 사부가 천악을 만나는 것 자체가 재앙이었다. 사부가 죽고 나서 개방이 나서면 천악에 의해 개방도 초토화될 것이 분명했다.

 

“왜 말을 못 하느냐?”

 

궁휼이 재촉하듯이 소리를 내질렀다. 제자를 악마의 소굴에서 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추상락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럴 때는 우선 자리를 피해서 차근차근 대화로 풀어야 했다. 감정적으로 천악을 만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다. 주인은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 절대 자비를 내리지 않을 정도로 독한 성정을 지녔다. 그런 자에게 경로사상 운운하며 설득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때 심각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추상락을 위기에서 구해 주는 소리가 들렸다.

 

꼬르륵! 꼬르륵!

 

심각한 상황에서 주책없이 개왕의 배가 말썽을 일으켰다. 개왕은 실로 솔직한 창자를 가지고 있었다.

 

“저, 사부님… 우선은 식사부터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놈이! 지금 내가 장난……?”

 

꼬르륵!

 

말과 다르게 배고프다는 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그, 그럴까? 그러나 절대 내가 배고파서 그런 것 아니다. 이건 알아야 할 것이다!”

 

“무, 물론입니다, 사부님.”

 

 

 

근처의 적당한 객잔으로 들어간 궁휼과 추상락이었다.

 

추상락이 들어올 때는 점소이들도 아무 말 없다가 궁휼이 들어오자 인상을 찡그렸다. 객잔에 거지가 들어오면 다른 손님들에게 민폐였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쫓아내야 했다.

 

점소이로 일하는 기혁이 궁휼을 쫓아내기 위해 다가갔다. 그리곤 강력하게 노인을 쳐다보며 말을 하려고 했다.

 

똘망똘망!

 

애처롭기 한이 없었다. 노인의 눈은 아이들의 맑디맑은 눈이 연상될 정도로 초롱초롱했고 간절함이 묻어나왔다.

 

기혁은 작정을 하고 다가갔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거지 노인을 객잔으로 들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주인 장 씨가 기혁을 나무랐다.

 

“이놈아, 빨리 쫓아내지 않고 뭐 하고 있어!”

 

기혁은 할말이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그럼 장 씨 아저씨가 한번 해보세요, 그게 말처럼 쉽게 되나!”

 

“어허, 이놈이! 내가 못 할 것 같으냐?”

 

장 씨는 보란 듯이 거지 노인에게 다가갔다.

 

‘이놈들, 내가 왜 객잔 짬밥이 20년인지 알려주마!’

 

객잔 주인의 존재감을 점소이들에게 인식시켜주기 위해 당당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노인에게 인상을 쓰며 말을 하려고 했다.

 

부들부들!

 

‘이, 이럴… 수가!’

 

장 씨는 지금 자신의 마음에 애처롭게 울리는 이 절절한 느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작 눈만 쳐다봤을 뿐인데 입에서 ‘나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말이 되는가, 고작 두 단어가 나오지 않아 입술을 부들부들 떨다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궁휼이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기침을 약간 했다.

 

“이보게, 내가… 몸이 안 좋아서 그런데, 자리가 없나!”

 

“없… 윽! 있…습니다. 저리로 가시…지요.”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도저히 매정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그런 말을 했다가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 되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벙!

 

추상락은 기가 막혔다. 사부의 구걸예도를 배우기는 했지만 몸소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 구걸예도는 이미 도를 넘어 신술이나 사술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사부가 왜 구걸대마왕이라고 불리는지 이제 알겠다!’

 

자리로 돌아간 장 씨는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추상락은 사부를 위해 모아둔 돈을 다 풀었다. 풍운장원에서 생활하면서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고 총관에게 받았었다. 그동안은 그 돈을 쓰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했기에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부를 구워삶기 위한 도구로 음식만큼 좋은 게 없었다.

 

“허허, 이 닭다리가 아주 맛있구나.”

 

“그렇습니까? 많이 있으니 넉넉하게 드십시오.”

 

한동안 사부는 먹는 것에 열중하느라 본론을 잊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추상락은 사부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꺼억!”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 음식의 삼분지 이를 뚝딱 해치우고 나자 트림을 하는 궁휼이었다. 궁휼은 그제야 제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소식으로 들려온 것보다는 자신의 제자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그게 말입니다.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주저리! 주저리!

 

추상락은 있는 말 없는 말을 섞어가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사부에게 설명했다.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이 거짓말이었다.

 

궁휼은 탄성과 더불어 놀라고 있었다.

 

‘언제부터 제자 놈의 말발이 이렇게 좋아졌지? 그것 참……!’

 

궁휼은 제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마지막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자의 말에 따르면 풍운마룡이 추상락을 대결에서 이겼다는 말이다. 고작 약관을 넘은 나이에 화경에 진입한 추상락을 이기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만일 사실이라면 정말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즉, 풍운마룡의 소문이 과장이 아니라 축소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 내기를 했고, 그 내기의 결과로 지는 쪽이 수하가 되는 것이었다는 얘기냐?”

 

“그렇게 됐습니다.”

 

“어찌 개방의 장로가 누군가의 수하가 될 수 있느냐?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궁휼의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구파일방의 일방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는 개방의 장로가 누군가의 수하가 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5년입니다. 5년 동안만 같이 생활하면 됩니다.”

 

“닥쳐라, 이놈! 그게 5년이건 한 시진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사문의 허락도 없이 그게 말이 될 성싶으냐! 내 이놈을 당장 요절내고야 말겠다.”

 

“사부님, 제 모습을 보십시오. 저는 별로 고생스럽지 않습니다. 그저 풍운장원을 지키는 일을 할 뿐입니다. 수하라기보다는 호위무사입니다.”

 

“흥!”

 

콧방귀를 뀌는 궁휼이었다. 제자의 말이 이해되지도 않을뿐더러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 생활이 거지 생활보다 낫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그게 아닙니다. 그저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시끄럽다. 당장 그놈한테 가서 네놈에게 씌워진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마!”

 

“컥!”

 

밥을 한 숟갈 입에 넣고 씹으려던 추상락이 사부의 말을 듣고는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궁휼은 깜짝 놀라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그놈이 너에게 금제를 가한 거냐? 그럴 줄 알았다. 어린 놈이 내 제자를 이기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

 

궁휼은 풍운마룡이 이상한 사술을 써서 제자를 꼬드긴 것이라 생각하고 말을 했다.

 

“어떻게 된 거냐?”

 

“혀……?”

 

“혀, 뭐라고 하는 거냐?”

 

“혀… 깨!”

 

“혀 깨 뭐라고?”

 

“혀 깨물었습니다!”

 

“뭐시라? 이놈이 지금 심각한 상황에서 장난치는 거냐?”

 

“그, 그건 아닙니다!”

 

사실 추상락은 사부가 천악을 찾아가서 따진다는 말에 놀라서 혀를 씹고 말았다. 어찌나 강하게 씹었는지 혀가 꼬이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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