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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독존기 94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0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94화

구룡상회의 부도(不渡) (1)

 

 

부들부들!

 

한 장의 서신을 받은 노인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버렸다. 불과 하루 만에 그는 천국과 지옥에 발을 들인 것과 같았다.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경련을 일으켰다. 가늘게 찢어진 눈을 이렇게 크게 떠본 적이 없을 정도로 크게 놀라고 있었다.

 

서신의 내용은 이랬다.

 

 

 

〈녹산(綠山)의 증거와 보물은 잘 쓰겠다.〉

 

 

 

구룡상회의 회주인 구천상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녹산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장소였다. 구룡상회를 꾸리면서 조상 대대로 모아놓은 재산과 이제까지 음으로 양으로 실행해 온 큰일들에 대한 자료 등을 모아놓은 곳이기에 자신을 비롯한 직계가족만이 알고 있는 곳이었다.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 곳이었건만 귀신같이 누군가 그곳을 알아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녹산은 말 그대도 푸른 산이었다. 소나무와 전나무 등 숲이 우거진 산이기에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더구나 녹산에 숨겨놓은 재물을 찾기 위해서는 기관장치를 통과해야 했다.

 

기관장치의 첫 관문은 바로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무려 10만 냥이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만들었고, 문을 만든 기관가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한 상태였다. 그런 곳을 누군가가 이렇게 쉽사리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구천상이 냉정하고 차분하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바로 구천상의 아들인 구인혁이었다. 구인혁은 구천상의 세 번째 아들로 녹산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구인혁이 다급하게 구천상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 있던 구천상의 표정은 창백하게 변해 갔다.

 

“그, 그게 사실이란 말이냐?”

 

“저도 믿을 수 없지만 노, 녹산에 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게 언제냐?”

 

“이틀 전이었습니다.”

 

“고작 하루 만에 그 안에 있던 재물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게 말이 되느냐!”

 

“저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이런 쓸모없는 것! 아니다, 내가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

 

구천상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녹산 근처에는 구룡상회의 지부들이 존재했다. 그들이 녹산의 비밀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근처에 누군가 접근했을 때를 대비해 정보를 수집하고 보호하기 위한 장치 정도로 활용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구룡상회의 정보력을 피해 녹산에서 보물을 모두 가져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되었다.

 

녹산의 보물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형수레 30여 대는 족히 필요하다. 그런 대규모의 운반이 있었을 텐데 아무도 몰랐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구룡상회의 정보력이 허술하다는 얘기밖에 안 되었다.

 

“녹산으로 갈 차비를 해라!”

 

“예, 아버지!”

 

* * *

 

부들부들!

 

신수불패 독고패는 이번 사태에 대해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쉬운 일이라고 해서 보낸 백룡대가 모두 실종되어버리고, 구룡상회의 지원 역시 더 얻어낸 것이 없었다.

 

백룡대가 실종이 됐다는 소리는 지금 죽었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교의 5대 무력단체 중 하나였던 혈룡대를 비롯해서 다시 백룡대까지 사라진 것이다.

 

일이 이쯤 되자 독고패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이런 병신 같은 놈!”

 

귀뇌 백천을 비롯한 장로들도 불같이 화를 내는 독고패에게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평상시에는 냉정하지만 일단 화를 내면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백룡대 그놈들, 평상시 하는 행동을 봐도 알 수 있었어!”

 

눈에 잘 띄는 백색의 무복에 용을 수놓아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버리자 독고패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백룡대주였던 등천광은 자신의 무식함을 무마해 보기 위해 광폭한 힘과 멋을 숭상했었다. 아직까지 등천광이 해내지 못한 일이 없어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었지만 결정적일 때 상황을 악화시켜버리자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들을 모두 끄집어내고 있었다.

 

“백천, 말해 봐라. 어떻게 된 일인지?”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 금천상가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운영하는 표국을 공격하려다가 오히려 당한 것 같습니다.”

 

상황을 설명하는 백천도 식은땀을 흘렸다.

 

교의 5대 무력단체가 고작 표국의 표사들에게 당했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상황인가. 인정한다면 백룡대가 표사들보다 못하다는 꼴이 된다.

 

장로들 대부분의 표정도 썩은 동태가 되어갔다.

 

“너 군사 맞냐?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

 

평상시에는 같은 장로 신분이기에 존중해 줬지만 화가 났을 때는 말을 놓아버리는 독고패였다.

 

하지만 지금 어느 누구도 그에게 불만을 표출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장로 중에서 가장 강한 인물이 바로 독고패였기 때문이다. 그의 순수 실력은 장로들 열 명이 합공해도 이길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가장 나이가 많았기에 불만을 표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백룡대주의 실력만으로 강호십대고수는 상대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표사들의 실력이 강호십대고수보다 강하다는 소리인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을 주절대지 말고, 또 다른 변수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란 말이야!”

 

독고패는 화가 난 상태에서도 예리한 지적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연륜은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백천도 귀뇌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조사를 해봐도 단서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에 어떤 단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금천상가 이외에는 조사를 해봐도 연관되는 곳이 없었습니다.”

 

뿌드득!

 

이를 갈던 독고패가 화를 삭이며 말을 이었다. 화를 풀기 위해서 제물을 선택해서 그 제물을 사라지게 만들고 싶은 독고패였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지금 당장 금천상가를 사라지게 만들어!”

 

“그게 또… 안 됩니다.”

 

“뭐가 안 된다는 말이야!”

 

“금천상가가 구문제독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구문제독?”

 

구문제독과 관계가 있으면 당장 건드리면 귀찮아질 가능성이 있었다. 황실에 공작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문제독을 건드리면 일이 또다시 틀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구문제독은 무서운 인물이었다. 괜히 분란을 일으켜 대사를 그르칠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그 군천악이라는 놈과 연관됐을 때부터 되는 일이 없어!”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떠오른 재수 없는 군천악이 생각나자 독고패는 이를 갈며 저주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군천악 그놈이라도 제물로 사용해야겠다. 놈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해.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마.”

 

“알겠습니다!”

 

독고패는 회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생각난 것이 있는지 한마디 더 했다.

 

“전에 확인한 구룡상회의 비밀금고가 있지?”

 

“그렇습니다.”

 

“어차피 구룡상회 놈들의 지원은 그른 모양이니까 그걸 모두 가져와!”

 

독고패는 구룡상회의 지원이 틀어진 이상 그동안 비밀리에 알아낸 금고를 송두리째 먹어버릴 생각을 했다.

 

‘녹산의 재산 정도면 꽤 될 테지.’

 

회심의 미소를 짓는 독고패였다.

 

* * *

 

푸른 산의 골짜기 협곡 안으로 들어간 일행들 중 가장 앞에 서서 가던 노인인 구천상의 표정이 멍해졌다.

 

녹산의 골짜기, 동굴을 개조해서 만들어놓은 곳이 바로 녹산동(綠山洞)이었다. 입구에는 환상미로진이 설치되어 있어 진의 생문을 알지 못하면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또한 밖에서 볼 때는 그냥 평범한 숲으로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져 있는 것으로 보여 접근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도록 설치를 했다.

 

그런데 지금 환상미로진은 사라져버렸고, 녹산동의 입구를 막고 있었던 두께 1척의 두꺼운 만년한철로 된 문은 누군가 무식하게 힘으로 뜯어낸 것처럼 뜯겨나가 있었다. 뜯겨진 동굴의 모양을 보고 알 수 있었지만 정작 대문인 만년한철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었다. 마치 거대한 거인이 힘으로 만년한철을 뜯어낸 것 같은 형상이었다.

 

아무리 무림인들이 날고 기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무식한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는 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지금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져 버리고 말았으니 구천상의 오랜 연륜과 경험으로도 설명할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믿어지지 않는 일을 겪은 사람들은 잠시 동안이지만 의식이 저 멀리 날아가게 된다. 구천상이 다시 제정신을 차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정신을 차리고 난 후 구천상은 즉시 문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안에는 온갖 기관진식이 펼쳐져 있어 주인이 아닌 자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에 구천상은 전설의 신투, 무영신투라고 해도 녹산동에 설치된 기관진식은 뚫지 못하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허억!”

 

그러나 기관진식이라고 설치된 곳은 모두 다 파괴되어 있었다. 그것도 잘라지거나 베인 것이 아니라 짐승이 찢어놓은 것처럼 갈가리 찢겨나가 있었다. 길이가 1장이나 되는 거대한 반달형 쇠도끼조차도 짐승의 발톱에 의해 흉물스럽게 찌그러져 있는 상태였다.

 

기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관진식을 힘으로 뜯어버리고 지나간 흔적은 작금의 상황을 공황상태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구천상을 비롯한 그의 직계가족 중 구인혁을 제외한 3인 모두 놀라고 있었다.

 

“도,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란 말이냐!”

 

구천상의 말은 차라리 절규였다.

 

동굴의 외벽을 타고 흐르던 구천상의 절규는 다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지만 그 안에 설치된 기관진식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다. 아직 안에는 최후의 보루가 있다!’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히고 안으로 들어가 보는 구천상이었다.

 

그는 최후에 설치해 놓은 벽력탄을 믿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될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왔다면 가져가지 못하게 같이 매몰시켜버릴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자신이 갖지 못한다면 남도 갖지 못하게 말이다.

 

 

 

휘이잉!

 

동굴의 안쪽으로 거대한 공터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금은보화와 보석들 중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철전 한 톨도 남아 있지 않고 모조리 다 없어졌다.

 

구천상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상황은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완전하게 벗어난 것이었다.

 

구천상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작은 흔적을 발견했다.

 

화약이 터진 자국이었다. 극히 작아서 소규모 폭탄이 터진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벽력탄이 터졌다면 이 공터가 완전히 날아가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 흔적은 폭죽을 터뜨린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런 개자식이! 나한테 가짜를 판 건가!”

 

화풀이를 할 데가 없던 구천상은 자신에게 벽력탄을 판 놈을 저주했다. 벽력탄을 사기 위해 들인 돈이 만만치 않은 것도 한몫했다.

 

한참을 망연자실하던 구천상은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고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재물이야 다시 모으면 된다. 아직 구룡상회가 무너진 게 아니니까!’

 

평생을 바쳐서 번 재물이 모두 사라져버렸지만 구천상은 이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대륙 오대상단의 회주 아닌가. 쉽사리 포기하거나 자포자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뿌드득!

 

‘누군지 모르지만 절대로 그냥두지 않는다!’

 

그리고 원한 또한 쉽게 잊지 않았다.

 

* * *

 

당한철은 좋아 죽었다. 꿈에서나 있을법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느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정말 굉장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 앞에 놓인 거대한 철문을 보자 마치 성스러운 보물을 본 듯 어루만지고 있었다. 철에 손을 대자 시린 한기가 손끝을 타고 전달되었다. 전신에 전율이 일며 희열감이 뇌리를 가득 채웠다.

 

세로로 1장하고 6척이나 되었고, 가로는 1장이었다. 더군다나 두께는 1척이나 되었다.

 

팅! 팅!

 

손가락으로 잠시 두드려보자 순도 역시 완벽했다.

 

이런 재료로 문을 만든 자가 제정신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정말 엄청난 양이었다.

 

당한철은 자신 앞에 이 귀물을 가져온 천악을 향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만년한철을 이렇게나 많이 가져오시다니… 어디서 난 겁니까?”

 

“수고비로 받았다.”

 

엥? 누가 만년한철을 수고비로 준단 말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년한철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황금보다 더 비싼 것이 바로 만년한철이었다.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면 누구나 탐을 내는 천고의 기물인 만년한철을 수고비로 주는 정신 나간 배포를 가진 사람을 보고 싶은 당한철이었다.

 

“정말입니까?”

 

의심이 든 당한철이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도구를 만들 때 쓰고, 그 중 오분지 일 정도는 네 개인 용도를 써도 된다.”

 

하지만 천악이 공짜로 오분지 일이나 준다는 말에 당한철은 입을 다물었다. 누가 있어 이런 귀물을 그냥 주겠는가! 이런 기연을 얻었을 때는 아무 말 않는 게 상책이었다.

 

‘의문은 개뿔! 그냥 한다! 크크크!’

 

사실 좋아서 죽고 싶었다. 장인에게 만년한철은 무인에게 귀한 무기가 생기는 것보다 더한 감동이었다.

 

당한철은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천악은 그냥 준 것이 아니었다. 만년한철은 아무나 다룰 수 있는 철이 아니었다. 명인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자만이 다룰 수 있는 귀물이었다.

 

천악도 철을 다루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철의 유혹이었다. 불은 사람의 마음을 태우는 유혹을 하는 반면, 철은 장인의 마음을 광기에 젖게 만든다. 철을 만들면서 간혹 미쳐가는 장인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철의 유혹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부작용이었다.

 

그래서 만년한철은 누구나 다룰 수 있는 철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당한철은 명장 중에서도 명장이었다. 즉, 그만이 만년한철을 다룰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귀찮았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만년한철은 자신이 직접 녹산으로 가서 뜯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수고를 한 것은 맞는데, 정작 당사자의 허락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가져온 행위였다. 그것을 굳이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천악은 등천광의 기억의 일부분을 읽고 난 후 아무도 모르게 녹산으로 홀로 순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녹산에 존재하는 모든 재물을 찾아 아공간에 집어넣고 귀신처럼 다시 풍운장원에 돌아온 상태였다.

 

천악이 취한 재산만으로도 안휘성을 사고도 남을 정도였이다. 물론 이미 가지고 있는 재산은 그보다 더 많았다. 이 세상 최고의 부자는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천악이었다.

 

재물은 모두 천악이 갖고 있었고 구룡상회의 비리가 적힌 문서와 물증은 금은혜에게 넘긴 상태였다.

 

금은혜가 어떻게 얻은 것이냐고 물었지만 대충 설명을 했고, 금은혜도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

 

천악은 당한철에게 한 자루의 검을 만들라고 했다.

 

“어떤 형태로 만들면 됩니까?”

 

“길이는 5척 정도면 되고 외날이었으면 한다.”

 

“그럼 도를 만들라는 말입니까?”

 

천악은 자신이 살던 시대의 칼을 생각하고 있었다. 양날의 칼보다 외날에 정감이 갔다. 중원은 현대와 같이 칼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검과 도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 달랐다.

 

“그렇군. 도를 만들어라. 대신에 무게는 조금 가볍게 하고, 검 폭도 보통의 도보다는 작게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얼마나 걸리나?”

 

“명검은 두 달 정도고, 혼을 집어넣은 신검을 원하신다면 여섯 달은 걸릴 겁니다.”

 

“신검이라… 제법이군!”

 

스스로 신검을 만들 수 있다고 하다니, 당한철의 장인기술이 더 발전했다는 소리였다.

 

무기에 혼을 집어넣을 수 있는 수준은 중원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실력이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장주님의 배려 덕입니다.”

 

당한철의 실력이 상승한 것은 바로 풍운장원에 온 이후부터였다. 사천 당가에 있을 때는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력했다면, 풍운장원에서는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발적으로 꾸준히 노력해 왔고 이 일에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사실 당한철은 당가 내에선 철을 다루면서도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방계라는 위치에서 겪은 설움을 철에 담아 기술을 부렸기 때문이다. 한데 그 한 꺼풀을 탈피하자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장인 기술은 집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이다.

 

무인의 경지로 비교하면 화경의 고수에서 현경의 고수로 발돋움했다는 말이 되었다. 당한철의 실력은 가히 신공(神工)의 반열에 당당하게 한 발을 내밀었다고 볼 수 있었다.

 

남궁태희, 추상락, 삼영살이 한 발짝 발전했다면 아무도 모르게 열 발짝 발전한 자가 바로 당한철이었다.

 

당한철은 천악의 오른쪽 소매 부분이 약간 그을린 것을 발견했다. 미세한 그을음이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볼 수 없을 정도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평상시에 항상 깨끗한 옷을 입었던 천악을 생각하면 이상한 것도 사실이었다.

 

“장주님, 소매에 그을음이 묻었습니다.”

 

천악이 오른쪽 소매를 보았다.

 

“그렇군.”

 

“폭죽이라도 터진 것 같습니다.”

 

당한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마 실제 벽력탄이라는 것을 안다면 까무러칠 수도 있을 것이다. 벽력탄의 위력에 고작 소매 끝에 그을음이 묻을 정도로 막아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굉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악의 입장에서는 짜증이 났다. 고작 벽력탄에 의해 옷에 약간이나마 흠집이 난 것이 자존심 상했다. 녹산동의 마지막, 의외의 장소에서 벽력탄이 터지는 바람에 당한 흔적이었다.

 

터진 간격이 2척 정도의 거리였다. 바로 코앞에서 벽력탄이 터졌음에도 기공(氣功)으로 공기를 압축해서 터지는 반경을 1척으로 줄여버린 가공할 천악의 수법을 누군가 봤다면 그 자리에서 기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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