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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독존기 92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92화

실전 (3)

 

 

내상을 입고 숨을 몰아쉬고 있던 주영달은 얼이 빠져 있었다.

 

순식간에 초식과 초식, 내력과 내력의 공방으로 이루어진 수법은 주영달의 눈에도 희뿌옇게만 보일 뿐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고수들이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저럴 수가! 도대체 저 둘은 누구란 말인가?”

 

“아직 말할 힘이 있는가?”

 

‘허업!’

 

바로 옆에서 말소리가 들려오기까지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

 

주영달은 청년에게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냉기에 소름이 돋았다. 차갑지만 그 안에 내포된 광폭한 야수성으로 인해 절로 몸이 위축되었다.

 

천악은 물끄러미 주영달을 보았다. 투명한 눈동자 속에 주영달 자신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주영달의 눈이 심하게 요동쳤다.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짙은 암흑 속을 헤매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주영달이 급히 눈을 돌렸다.

 

두둥실!

 

주영달의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떠올랐다. 떠오른 상태에서 희뿌연 빛이 감싸더니 외상이 모조리 다 재생이 되었다. 뒤를 이어 몸 안에서 들끓어 오르던 내공조차 차분하게 가라앉더니 금세 전과 같이 변해 있었다.

 

온몸을 살펴보던 주영달은 기겁하고 말았다.

 

외상과 내상이 완벽하게 다 나아버렸다. 더군다나 좀 전에 보인 허공섭물을 생각하자 눈앞의 청년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직 놈들이 남아 있지 않나.”

 

천악의 손이 백룡대를 가리켰다.

 

주영달은 천악이 가리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복수를 하고 싶으면 스스로 하라는 말이었다.

 

남아 있는 표사들이 아직 70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백룡대의 실력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내 수하들이 도와줄 것이다.”

 

“고, 고맙소. 그런데 대협은 대체 누구십니까?”

 

나이가 어려 보임에도 주영달은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도는 절대로 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압도적으로 깔아뭉개는 패도적인 기운은 모든 사람들 앞에 군림하는 절대자들만이 가진 기도였다.

 

“군천악이다.”

 

쩌억!

 

“그, 그럼… 공자가 바로 풍운마룡 군천악 공자이시란 말씀입니까?”

 

“그렇다.”

 

풍운마룡에 대한 소문은 너무 부풀려져 있어서 직접 보지 않은 자들은 모두 풍운마룡을 헛소문의 주인공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철검 주영달 역시 ‘강호에 떠도는 소문에 진실 된 실체를 알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는 격언을 알기에 믿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소문의 실체는 강호의 소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청년이 나타났는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아직 망설일 시간이 있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네가 조금 더 빨리 내공을 주입했다면 표사들이 죽지 않았겠지.”

 

주영달은 순간 자신의 팔목 보호대에 시선이 갔다.

 

‘위급할 때 내공을 주입하라는 말이 이 뜻이었나?’

 

군천악이 어떤 수법으로 이곳까지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주영달은 표국주의 말을 처음부터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해야 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 어서 가라. 가서 네 손으로 후회를 지워라!”

 

“공자, 죽어도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천악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했다.

 

더는 말이 필요가 없었다. 철검 주영달은 즉시 남아 있는 표사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백룡대를 향해 살기를 뿜어내었다.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자신이 지고 싶었다.

 

 

 

등천광의 전신은 땀으로 번들거리며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있었다.

 

그는 지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이토록 고전함에도 백룡대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다.

 

정신없이 남궁태희와 추상락의 공세를 받아내기에 시선을 돌릴 틈이 없었던 등천광이 잠시지만 백룡대 쪽을 바라보았다.

 

‘저, 저게 뭐야?’

 

자신을 구하기 위해 열 명의 백룡대가 달려오는 과정에서 다섯 명의 목이 잘려 바닥에 뒹굴고, 나머지 다섯 명은 심장에 비도가 꽂힌 채 비명횡사를 하고 만 것이다.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백룡대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극히 짧은 시간 동안 그 장면을 본 등천광은 어안이 벙벙했다.

 

등천광은 백룡대를 단련시키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수련을 시켰다. 백련정강이라는 순수한 철을 만들기 위해선 청염을 넘어 백염이 필요하듯이 백룡대 역시도 무섭도록 많은 피와 땀을 흘렸다. 그렇게 시산혈해를 해치고 나온 백룡대는 철혈의 무인들로 구성이 되었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수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속이 터졌다.

 

“이런 개 같은 놈들이!”

 

자신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답답하기까지 했다.

 

 

 

철검 주영달은 백룡대원들 중 한 명의 검을 받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역시나 범상치 않은 놈들이었다. 개개인의 내력이 일급표사들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이었고, 그 중에서 자신을 상대하는 놈은 쉽사리 승부를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검이 부딪치고 나서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백룡대원이 주영달의 옆구리를 기습적으로 공격하였다. 찰나의 순간에 허리 부분이 반 토막으로 잘려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슈웅!

 

바람소리가 들리고 나자 자신을 공격했던 백룡대원의 미간에 붉은빛이 번쩍였고, 섬광처럼 빨랐던 몸뚱어리가 바닥에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너무 빠른 순간이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주영달은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바로 옆에 나타난 검은 그림자의 존재 때문이었다. 너무나 은밀하고 기척조차 없는 움직임에 마치 살아 있는 시체인 줄 알았다. 호흡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살수다!’

 

주영달은 그들이 같은 편이라는 것에 안심을 했다. 아니었다면 표사들 대부분이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 정도로 빠르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했다. 정확하게 사혈을 찔러 넣으면서도 한 점의 망설임조차 없는 냉정한 비검이었다. 누가 있어 저런 살수를 만났을 때 목숨을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주영달은 눈앞에서 천하제일살수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주영달은 자신이 공격하는 찰나에 두 명을 보내버린 그림자뿐만 아니라 다른 표사들에게도 숨어서 은밀하게 도움을 주는 그림자를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백룡대와의 대결에서 이 정도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대단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인물들이 단 한 사람의 명을 듣는다는 것을 알기에 천악을 사람처럼 볼 수 없게 되었다.

 

‘정말 무서운 자다. 이런 자가 고작 헛소문의 주인공이었단 말인가! 강호는 철저하게 이자에게 농락당하고 있다!’

 

세상을 집어삼킬 수 있을 것 같은 기도와 힘을 가진 자가 아무 이유 없이 헛소문의 주인공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 없는 주영달이었다. 무언가 중요한 목표가 있기에 와신상담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삼영살은 살수 특유의 전법으로 상대를 교란시켰다. 접근전으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표사들이 공격을 하면 그 틈에 숨어서 백룡대를 차근차근 한 명 한 명 정확하게 숨통을 끊어놓았다

 

검과 검이 교차되는 시점에 또 하나의 검이 빠르고 은밀하게 스며들자 물 흐르듯이 백룡대원들이 쓰러져갔다.

 

백룡대의 부대주 광천검(狂天劍) 막고여(莫高麗)는 수하들이 살수에 의해 죽어나가는 것을 보자 살광을 번쩍였다. 정면대결도 아닌 고작 살수의 검에 의해 죽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었다. 어디서 이런 살수가 등장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전멸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곧바로 백룡대를 재정비하기 위해 뒤로 물렸다.

 

“물러서… 헛!”

 

파팟!

 

말을 하기 무섭게 투명한 암기가 입을 향해 날아들었다. 기를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암기였다. 하마터면 입 속으로 파고들어 뒤통수를 뚫고 나왔을 수도 있었다.

 

투명한 암기는 바로 무영비침(無影匕鍼)이었다. 바늘과 비슷한 굵기의 작은 비침으로 투명한 것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내부는 투명한 관처럼 되어 있어 일단 박히면 핏물이 관을 타고 뿜어져 나오게 되어 있었다. 숨통을 끊기도 하고 피를 분출시켜 기력을 빼놓을 수도 있는 암기였다.

 

화들짝 놀란 막고여가 다시 소리치려는 순간 또다시 무영비침이 날아들었다.

 

“비겁한……?”

 

서걱!

 

기우뚱!

 

막고여가 비겁하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몸이 기울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아래를 보자 오른쪽 다리가 매끈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그가 신경을 다른 데 쓰는 사이에 삼살이 움직여 막고여의 오른쪽 다리를 잘라낸 것이다.

 

고통이 전달되는 그 시점에서 막고여의 입 속으로 비검이 박혀 들어갔다.

 

“커억!”

 

막고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숨을 거두었다.

 

막고여는 억울했다. 백룡대는 이렇게 쉽게 당할 단체가 아니었다. 백룡대의 진정한 힘인 백룡무적진(白龍無敵陣)을 펼치지 못한 것이 통한이었다.

 

백룡무적진의 힘은 바로 한 번에 필사의 힘을 발휘하고, 다시 뒤로 빠지며 또다시 이어지는 필사의 힘을 이용하는 진법이었다. 백 명이 일사불란하게 최고의 힘을 계속적으로 사용하기에 그 파괴력이 최강이었다. 일단 발휘가 된다면 일거에 수백 명도 쓸어버릴 수 있었지만 상황은 너무 늦어버렸다.

 

삼영살은 막고여가 등천광을 제외하고 가장 강하다는 것을 알기에 미리 손을 쓴 것이다. 그가 소리치고 말을 했다면 상당히 귀찮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적에게 그런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실전에서 삼영살의 능력은 가공할 정도였다. 순수 무력으로 따지면 남궁태희와 추상락이 훨씬 강할지라도 살인 능력에서는 삼영살이 한 수 위였다. 또한 천악의 담금질을 받은 이후로는 더욱더 강해져 가고 있었다.

 

 

 

금천표국의 표사들도 자신들을 도와주는 어둠의 존재를 인식했는지 용기를 얻어 실력을 발휘했다. 등천광의 압도적 신위와 무섭도록 잔인한 손속에 움츠러들었던 공포감이 사라지자 백룡대와 치열한 대결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철검 주영달이 진두지휘를 하고 표사들이 그 지휘를 받으며 조금씩이지만 백룡대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백룡대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을 때 추상락과 남궁태희, 등천광은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광기에 젖은 등천광의 실력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방심하게 되는 순간 저세상으로 갈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위력이었다.

 

등천광은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했다. 백룡대는 그의 인생에 전부나 마찬가지인 존재들이었다. 그동안 들인 공과 더불어서 자신의 위치를 나타낼 수 있는 존재 자체가 소멸되고 있는 상황이니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이놈들, 다 죽인다!”

 

등천광은 광천혈룡부법의 초식들을 있는 대로 다 사용하고 있었다.

 

부우우웅!

 

혈광부가 휘둘러지자 그 주변으로 폭풍과 같은 바람이 불었다.

 

광천혈룡부법의 최강 초식 중 하나인 광폭산(狂爆酸)이 발휘되었다. 폭발할 정도로 강렬한 열기가 혈광부에서 뿜어져 나갔다. 정면으로 맞았다간 그대로 녹아버릴지도 모를 정도였다.

 

추상락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광폭산을 정면으로 맞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 즉시 취팔선보를 시전해서 사정권에서 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광폭산의 위력은 반경 5장이나 되었다.

 

남궁태희 역시도 광폭산의 위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한보를 펼쳤다.

 

슈슈슉!

 

꽈과과광!

 

사르르르르륵!

 

광폭산이 추상락과 남궁태희가 있었던 장소에 부딪치자 굉음과 더불어 주변 지형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간 자리는 쇳물을 녹인 것처럼 붉게 변해 버리고 말았다.

 

“크음!”

 

추상락과 남궁태희는 벗어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신음성을 삼켰다. 처음부터 시종일관 몰아붙였기에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선 상태였다. 그런데 상황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등천광의 광기에 젖은 공격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고 무서웠다. 이런 무서운 인물에 대해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강호에 무수히 많은 고수가 있다고 하지만 정말 대단하구나!’

 

‘이자의 실력은 결코 아버지의 아래가 아니야!’

 

강호십대고수 중 한 명인 검왕 남궁장천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실력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한 추상락과 남궁태희였다.

 

그 둘은 동시에 천악을 바라보았다. 무섭도록 강한 등천광의 공격에도 천악은 무표정했다. 아무리 압도적인 강함이라고 해도 천악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한 천악의 표정을 보자 추상락과 남궁태희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승부에 있어서 냉정함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물극필반을 기억하자!’

 

‘이유제강, 천변만화다!’

 

등천광의 공격도 언제까지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그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공격을 가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등천광의 표정은 기괴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붉은 혈기가 전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혈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등천광의 검은 눈동자가 사라지고 적안(赤眼)의 빛을 발하였다.

 

혈기는 등천광을 완벽하게 뒤덮었고 외부로부터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추상락이 먼저 최강의 공격을 해보았다. 강룡십팔장의 삼라만상을 다시 한 번 출수했다. 그 뒤를 이어 남궁태희 역시도 창궁무애검법의 창궁무애를 시전했다.

 

꾸과과광!

 

주르르륵!

 

혈기와 부딪친 남궁태희와 추상락은 엄청난 반탄력을 느끼며 뒤로 밀려났다. 출수했던 검과 손을 타고 타는 듯한 기운이 뻗어 나왔다. 어찌나 강렬한지 그 기운으로 인해 전신이 순간적으로 마비가 될 정도였다.

 

화경의 고수가 상대방에게서 내공의 침입을 받고 충격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화경의 고수는 내공의 출수와 발현에 자유롭고, 몸 자체가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어떠한 일에도 흔들림 없는 마음을 가져야 비로소 화경의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등천광을 감쌌던 혈기가 사라지고 나자 등천광이 적안을 번쩍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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