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90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90화
실전 (1)
수레와 마차, 그 사이를 지키는 사람들의 길이가 무려 30장이 넘어갈 정도로 길었다. 표행에 있어서 일직선으로 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으나 평지에 나 있는 길의 폭이 넓지 않기에 모든 표행은 다 이런 형태로 이루어진다.
금천표국에선 이번 표행에 표두 두 명과 특급표사 열 명, 일급표사 백 명이나 표행의 호위로 파견했다. 두 명의 표두 중에서도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철검 주영달이었다.
주영달은 금천표국주 천뢰검 단현상과 마찬가지로 신중한 인물이었다. 그는 하나에서 열까지 표행에 적합한 교본처럼 행동을 했다.
쟁자수를 뽑는 데도 오랜 시간 금천표국에서 일한 자가 아니면 이번 표행에는 데려오지도 않았다. 또한 맨 앞에서 뒤까지 특급표사를 요소요소에 적절하게 배치시켰고, 그 가운데에 표두 한 명을 집어넣어 지휘통제가 빠르고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던 주영달이지만 자신의 팔목에 차여진 팔목 보호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험할 때 내공을 주입하라고?’
단현상이 신신당부한 말이니 허투루 듣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단현상과 같이 생활해 왔기에 단현상이 진중하고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국주님이 한 말이니 해보는 수밖에.’
하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 표행에 들어간 표사들만으로도 중소 문파 정도는 휩쓸어버릴 수 있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 아니면 절대 이번 표행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닷새 동안 이동을 하자 안휘성에서 하남성으로 넘어가는 경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기는 하지만 하남성의 마을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였다.
하남성의 마을이 먼 이유는 여기가 바로 천중산(天中山)이기 때문이다. 천중산은 중원에서 유명한 산은 아니지만 산세가 험하고 거칠었다. 이곳의 토질이 농사를 짓기에도 무리가 있고 야생동물들도 별로 없는 곳이라서 사람이 살기에는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인적이 거의 없었다.
표행은 천중산의 거친 산세를 따라 이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거칠기만 한 산에도 완만한 길이 있어 하남성으로 가는 입구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주영달 일행은 그 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탁 트인 공간에 1백 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서 있었다. 흰 복장에 용이 수놓아진 옷을 입은 미친놈들이었다.
용이 그려진 옷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황제에 대한 모욕이었다. 대낮에 이런 옷을 입고 다니는 놈들이 제정신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눈에 띄고 싶어 안달이 난 놈들이었다.
천중산의 중앙에 자리 잡은 공터의 크기는 수백 명이 들어와도 부족함이 없는 넓은 평지였다. 천중산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넘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좋은 장소였다.
백룡대주 등천광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애병인 혈광부(血狂斧)를 두드리며 먹잇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기다리기 지겨운 시점에 와주는군.”
등천광은 피를 즐기는 인물이었다. 겁을 먹고 도망치는 놈들보다는 덤벼주는 놈들이 더 좋았다. 투기를 뿜어대는 상대의 심장을 혈광부로 쪼개버리고 싶었다.
다그닥! 다그닥!
공터의 맨 끝으로 서서히 금천표국의 깃발이 보였다.
선두에 서 있던 철검 주영달이 손짓을 하자 표행이 멈추었다. 백 명이나 되는 정체불명의 집단이 당당하게 막아서니 멈추고 상황을 살펴야 했다.
주영달이 눈짓을 하자 특급표사 이청한이 소리를 질렀다.
“누군데 우리를 막아서는 것이오?”
“크크크크!”
산만 한 덩치를 가진 등천광이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물건을 곱게 바치면 곱게 죽여주마.”
표국의 입장에서 표물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다. 표물을 잃으면 표국의 신뢰가 무너져서 결국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철검 주영달은 놈들의 기세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했다. 하지만 진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놈들의 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지만 표사들의 수도 그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쟁자수들은 뒤로 빠져 있어라.”
어차피 쟁자수는 표물과 말의 관리를 위해 필요한 노동인력일 뿐이다. 전투력이 거의 없는 쟁자수들은 이런 전투에서 물러나 있는 것이 더 안전했다.
“제정신이 아니군.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이제라도 물러난다면 목숨은 보장해 주마!”
주영달이 등천광에게 위협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등천광은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어차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다 죽이고 표물을 빼앗아 버리면 그만이었다.
등천광은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이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백 명이나 되는 수하들이 있지만 그는 수하들의 후광을 업고 이 자리에 선 인물이 아니었다.
쿵! 쿵! 쿵!
7척이나 되는 덩치에 거대한 도끼를 메고 있는 등천광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주영달을 비롯한 표사들이 검을 꺼내 들며 방어진형을 구축했다. 방어진형의 앞으로 철검 주영달이 검을 든 채 등천광의 행동을 주시했다.
등천광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인물이었다. 앞으로 다가선 등천광이 바로 달려들며 거대한 도끼를 일직선으로 내리찍었다.
“이야합!”
산을 울리는 포효와 같은 기합이 들리더니 광폭한 도끼가 주영달을 향해 날아왔다.
주영달의 별호가 철검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의 검법이 철의 단단함과 같은 방어형 검법이기 때문이었다. 즉, 어떤 무공에도 굽히지 않으며 방어하는 그의 철검십이검식(鐵劍十二劍式)에 의해 붙여진 별호였다.
방어와 함께 이루어지는 역공격을 주무기로 하는 주영달은 앞으로 다가서며 등천광의 혈광부를 막아서려 했다. 비스듬히 검을 들어 내리찍어 오는 혈광부의 손잡이 부분을 노렸다.
씨익!
등천광의 입가에 한 줄기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콰아아아앙!
타아앙!
“크윽!”
주영달의 검과 등천광의 혈광부가 정면에서 부딪친 결과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주영달은 그 충격으로 인해 뒤로 단순히 밀려난 게 아니었다. 날아가서 지면을 세 번이나 구르다가 팔과 다리로 힘겹게 지탱해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주영달은 상대의 믿지 못할 괴력과 내공에 기겁을 했다. 온몸의 핏물이 모두 튕겨나갈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참혹한 혈사를 눈으로 봐야 했다.
“저, 저럴 수가!”
등천광의 혈광부가 두 번 휘둘러지자 그 앞에 있던 표사들이 손도 써보지 못하고 반 토막이 되어 시체가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10여 명의 표사가 죽었다.
표사들이 모두 방어진형을 구축하고 대비하고 있었지만 등천광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그 뒤로 백룡대가 손을 놓고 지켜보고 있기만 하는데도 한 명을 막지 못하고 있었다.
‘엄청난 고수다!’
절정고수인 주영달조차 감히 그 깊이를 잴 수 없는 초극의 고수였다. 수가 많다고 해서 이겨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디서 저런 고수가 나타났단 말인가?’
초극의 고수가 표행을 공격해 표물을 턴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이대로 생각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위험할 때 내공을 주입해라!”
찰나의 순간에 주영달은 국주인 단현상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거의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주영달이었지만 쉽사리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기에 망설이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다.’
주영달이 팔목 보호대에 내공을 주입했다.
약간의 내공이 팔목 보호대에 흘러 들어가기는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리고 곧 실망했다.
계속 실망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던 주영달이 등천광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벌써 스무 명이나 되는 표사들이 살 조각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등천광은 정말 피에 미친 살인마처럼 보였다. 광폭한 살기와 망설임 없는 잔인한 손속은 표사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주영달이 철검십이검식의 후반 삼식 중 하나인 철검광휘(鐵劍光煇)를 펼쳤다.
시퍼런 검기가 철검을 타고 빛을 뿜어내었다. 줄기줄기 뻗어나간 검기가 부챗살처럼 퍼지더니 등천광의 오른쪽 어깨 부위를 향해 덮쳐 들어갔다. 단순한 검기의 발광이 아닌 묵직한 힘이 검기에 실려 있었다.
츄추추춧!
등천광은 눈부신 빛 무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히죽거렸다. 약간이지만 흥미가 도는 공격이었다.
등천광의 내공 내력은 바로 광천대마력(狂天大魔力)이었다. 거친 소용돌이가 전신으로 퍼져나가 광폭한 마공이 솟구쳐 올랐다. 응축된 마공이 분출할 통로를 찾듯이 혈광부에 내력이 집중되었다.
광천혈룡부법의 위력은 압도적인 파괴력에 있었다. 그 힘의 집중이 이루어진 광천포(狂天砲)가 철검광휘의 검기망을 무참하게 찢어버렸다.
슈웅!
쿠쿠쿵!
타앙!
꿰뚫어 버린 광천포의 위력이 멈추지 않고 주영달을 향해 일직선으로 대포처럼 날아왔다. 정면으로 맞았다가는 몸이 뚫어져 나갈지 몰랐다.
주영달은 철검에 온 내공을 집중해서 광천포를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그 위력은 주영달이 막아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내공의 차이였다. 내공의 수위도 문제지만 광천대마력의 흉포한 내공은 상대방의 힘을 철저하게 말살하는 능력이 있었다.
쿠아아앙!
주영달이 최선을 다해 철검을 옆으로 밀어젖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내공과 근력을 쏟아 붓고 나서야 겨우 광천포의 방향을 틀 수 있었다.
틀어져 나간 광천포는 수령이 1만 년은 넘어 보이는 거대한 기둥 같은 나무를 박살내고, 그 뒤 지면까지 까 뒤집어버렸다.
울컥!
주르르륵!
핏물이 식도를 타고 목구멍까지 솟구쳐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은 주영달은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30년 동안이나 자신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애검 철검이 반 토막이 되어버린 것이다.
철검의 이름을 들으면 보통의 철검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주영달의 철검은 바로 한철이 절반 정도 포함이 된 한철검(寒鐵劍)이었다. 철과 한철이 절묘한 조화로 이루어져 있어 명검 반열에 들 정도로 단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주영달의 이 철검이 광천포에 힘없이 잘려져 나갔다.
망연자실한 틈도 없었다. 등천광이 싱거운 표사들 대신에 자신을 향해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주영달은 다시 한 번 이어지는 등천광의 공격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직도황룡(直搗黃龍)의 수법이었다. 그냥 일직선으로 무식하게 찍어 내리는 가장 단순한 삼재검법의 초식이지만 그 빠름과 위력은 항거불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피할 틈도 없이 반 토막으로 잘려버릴 상황이 되어버린 주영달이었다.
주영달은 절정고수였다. 그렇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 시점에서 극심한 무기력감을 맛보아야 했다. 태어나 이토록 무력해 보기는 생전처음이었다.
주영달은 분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향해 내리찍어 오는 혈광부를 지켜보았다.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카아아앙!
번쩍!
쇠와 쇠가 부딪쳐서 불빛이 번쩍였다.
주르르륵!
갑옷처럼 단단한 근육과 7척에 달하는 거대한 신체를 가진 근육덩어리 살인마가 뒤로 거침없이 밀려나갔다.
밀려나간 등천광이 짙은 혈기를 뿜어내며 자신을 밀어낸 존재를 찾았다. 날카로운 기운이 밀어낸 것 같았지만 그것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뿌드득!
“누구냐?”
등천광이 이를 갈며 광분해서 소리 질렀다.
등천광의 자부심 중 하나가 바로 힘이었다. 그런데 힘 자랑에서 지금 처참하게 뒤로 밀렸으니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없었다. 등천광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다시 보아도 표사 놈들 중에서 자신의 기운을 받아낼 존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