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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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89화
종합훈련 (4)
독한 백주를 사발로 마시며 기다리던 산만 한 덩치의 중년인은 느긋하게 수하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은 언제라도 출전해서 놈들을 도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교내 장로파 장로들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이고 전투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바로 백룡대주 혈부(血斧) 등천광(鄧天洸)이었다.
그는 혈룡대가 허무하게 실패하고 나서 같은 대주였던 백룡대주인 자신 역시도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혈룡대 따위와 비교하다니!’
이번 출전 역시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고작 표국의 표행 따위를 방해하라는 말 자체가 자신의 실력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고 장로 독고패의 명령이었다. 서열상 독고패 장로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엄연히 교내의 서열이 존재했고, 독보적이라고 해도 홀로 독불장군 식으로 밀고 나가서는 살아날 수 없다는 현실은 알고 있었다.
등천광은 최대한 강한 힘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술을 한 사발 더 마실 때 수하가 등천광 앞으로 다가왔다.
“대주님, 놈들이 사흘 후에 움직입니다.”
“하루 먼저 출발할 테니 모두 대기하라고 해.”
“존명!”
등천광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피를 보고 싶어하는 그의 도끼가 시퍼런 기운을 뿜어내었다. 그의 별호가 혈부라고 불린 이유가 바로 그의 혈성 때문이었다. 피에 취한 미친 도끼 살인자라고 불리기에 광천혈부(狂天血斧)라고도 불리고 있었다.
* * *
슈슈슈슉!
파팟!
작은 비도 열 개가 순식간에 목표물을 향해 뿜어져 나가갔다. 비도 자체가 날카로움과 더불어 내공이 실려 있기에 막아내거나 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비도가 날아오는 순간에 추상락이 취팔선보를 펼쳐 피하려고 하자 다시 한 번 비도가 피하는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허억! 빠르다!’
놀랄 틈도 없었다. 삼영살은 추상락이 피하는 공간을 미리 막아서고 있기에 피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추상락은 혼천강룡신공을 끌어올린 후 파옥권(破玉拳)을 시전해서 날아오는 비도를 일일이 쳐내었다. 청강석도 두부 부수듯이 부숴버릴 위력을 가진 파옥권이었다. 10성의 파옥권은 금강석도 부순다는 말이 있었다.
탕! 타탕!
비도를 쳐내고 곧바로 반격을 취하려던 추상락의 돌진이 투명한 실에 의해 막혀버렸다. 무영사가 펼쳐진 것이다.
지금 시간은 밤이었다. 추상락은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었다. 삼영살이 여유롭게 움직이며 추상락의 약을 올리고 있었다.
추상락이 삼영살과 대결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훈련과 수련 때문이었다.
남궁태희와 더불어서 추상락은 살수들의 공격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임기응변을 키우고 실전에 대한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천악은 그 옆에서 술을 한 잔 마시며 구경하고 있었다.
느긋하게 공연을 보듯 바라보고 있는 천악의 모습을 곁눈질로 보던 추상락은 기가 막혔다. 안 보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그 장면을 보자 부아가 치밀었다.
“삼영살, 조금 더 바짝 조여라!”
“존명!”
‘훈련을 실전과 같이!’, ‘실전을 훈련과 같이!’라는 구호와 더불어서 삼영살은 인정사정없이 암기와 암수, 무형살검을 휘둘렀다. 당지독과의 ‘10일 특훈’을 받은 삼영살은 전과 달리 완벽한 합격술을 보이고 있었다.
원래부터 합격술에는 뛰어난 살수였고, 조금의 틀어진 마음을 회복하고 나서는 추상락도 쉽사리 승부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화경의 고수를 쩔쩔매게 만드는 삼영살의 실력 상승은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느낄 정도로 달라졌다는 말이 정답이었다.
무형살검진의 구성은 천, 지, 인, 삼재진을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무형살검진이었지만 합격에 필요한 것은 간결함이었다.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합격술에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살왕의 절기가 합격술에 의해 녹아들자 그 위력과 빠름이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세 방향에서 일점혈이 추상락의 미간, 명치, 고환을 노리고 들어왔다.
사내의 중심을 노리는 극악한 수법도 마다하지 않는 삼영살의 지독함에 추상락은 치를 떨었다.
‘이놈들이 장가도 못 가봤는데, 고자를 만들려고 하네!’
“너도 한잔하지?”
“고…마워요!”
천악이 매화주를 한 잔 따라서 남궁태희에게 주었다.
남궁태희는 천악 옆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삼영살의 합격술을 받았던 남궁태희였다.
그녀도 처음에는 자신 있었다. 살수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삼영살은 여인의 치부라고 여기는 곳까지 서슴없이 공격하였고, 치명적인 사혈만을 노리며 들어왔다.
또한 간간이 마비독을 하독하는 바람에 움직임이 현저히 느려지기도 했다. 내공으로 독의 기운을 몰아내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 짧은 시간을 노리며 들어오는 삼영살의 공격에 당황해야 했다. 남궁태희는 다시는 방심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땀으로 달라붙은 옷과 상기되어 붉게 달아오른 남궁태희의 모습을 지켜보며 천악은 술을 마셨다. 진짜 팔자 좋은 고관대작의 도련님과 같은 방탕한 자세였지만 누구도 천악에게 그런 말을 감히 하지 못했다. 누가 뭐래도 천악은 압도적인 강자였고, 훈련을 지휘하는 지휘자였다.
“킁킁!”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개 코를 가진 인물이 있었다.
천악은 천천히 느긋하게 향기에 취해 있었다.
천악이 마시는 술은 고급 중에서도 특급이라고 불리는 극락매화주였다. 한 번 마시면 극락의 환락을 맛본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고급명주다.
병 안에 간직된 매화주의 향기가 장원 내를 가득 메울 정도로 진한 향기를 풍겨오자 참지 못한 당지독이 잠도 자지 않고 찾아왔다.
“이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아느냐?”
“무슨 소립니까?”
“그 술 어디서 난 거냐? 나도 장원 내에서 구경 못 해본 술을 혼자만 마시다니, 이게 무슨 천인공노할 짓이냐!”
풍운장원에는 항상 명주가 있고 당지독이 원할 때 언제든지 마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저런 진한 향기의 매화주는 처음이었다.
“그럼 한잔하시겠습니까?”
천악이 허락하자 당지독의 매끈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느새 남궁태희의 반대쪽에 자리를 잡은 당지독이었다.
또르륵!
한 잔 받은 당지독은 술이 한 방울이라도 떨어질까 봐 조심조심하였다. 마치 독물 중에서 가장 강한 독을 품고 있는 만년독각사(萬年毒角蛇)를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화아, 이 향기! 맛 좀 볼까!”
후르륵!
“캬아! 이것이 극락이구나!”
극락매화주를 한 번 맛본 사람은 그 맛에 취해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흥에 겨운 가운데 추상락과 삼영살의 움직임이 달그림자와 더불어서 운치를 더해 갔다.
“제법 성장했군요.”
“그러게 말이다. 삼영살 이놈들이 무형살검진이라고 붙인 검진은 제법이었다. 나조차도 제법 애를 먹었으니 말이야!”
“휴우!”
추상락이 삼영살의 공격을 피하면서 틈을 살폈다. 강과 유, 쾌와 환, 네 가지를 조합하는 게 지금 추상락의 과제였다.
조금씩 무걸개 추상락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무공을 좋아한다고 해서 붙여진 무걸개란 별호에 맞게 민첩한 움직임과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또한 틈이 보이자 정확하게 삼영살의 허점을 노리고 들어갔다.
‘분명 훌륭한 합격술이다. 하지만 가운데가 아직 불완전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중심이 가장 강할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가장 약한 부분일 수도 있었다.
아직 무형살검진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중심은 좌우 양측의 모든 힘을 조화롭게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일살은 그러한 일을 매끄럽게 수반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완벽해 보였지만 차츰 그러한 약점이 보이자 추상락은 그 중심을 향해 돌진하며 강룡십팔장을 출수했다.
강맹한 위력의 강룡십팔장이 삼영살의 중심인 일살을 향해 공격하자 좌우 양측의 이살과 삼살까지 조금이지만 흐트러지고 말았다.
‘이런!’
‘파악됐다!’
일살도 이러한 약점을 알고 계속 보완하기 위해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방법이 없었다. 강룡십팔장을 정면으로 맞는다면 일살은 살아남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이놈들, 이제 죽었다!’
기회를 잡은 추상락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돌진이 처음부터 막혀버리고 말았다.
추웅!
“큭!”
다리에 지풍을 맞은 추상락이 중심을 잃고 달려들다가 비틀거렸다.
추상락은 지풍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이를 갈았다.
추상락에게 지풍을 날린 자는 바로 당지독이었다.
당지독은 술을 한 잔 입에 대고 히죽거리며 어쩔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놈아! 그렇게 쉽게 끝날 줄 알았느냐? 어디 더 고생해 봐라!”
당지독은 술을 마시며 추상락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있었다. 역시 무의 재능을 타고난 녀석이었다. 싸우는 감각이 날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잘하는 놈한테 떡 하나 더 줄 당지독이 아니었다. 마침내 잘하는 놈은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당지독의 심술이 작용하고 말았다.
씨익!
천악의 입 끝이 올라갔다.
사실 이번에 추상락의 돌진을 막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천악이었다. 추상락은 아직 더 강해져야 했다. 강함은 쉽게 얻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천악조차 진정한 강함을 얻기 위해 긴 시간 동안 혈투와 수련을 반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소비함에 있어서 낭비가 심하다. 짧은 시간이라도 그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서 노력한다면 그 노력은 생사의 고비에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며칠 안 남았으니 고생을 더 해야겠지.’
금천상가의 표행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시간은 열흘 안팎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천악이 생각한 대로 표행에서 원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지만 그의 직감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추상락은 기회를 잃었고 비틀거리며 살기가 듬뿍 담긴 삼영살의 살검을 다시 받으며 이를 갈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것은 독기와 분노뿐이었다.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미 약점이 파악됐다. 내가 이긴 승부야!’
아직 추상락은 자신이 있었다.
추상락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삼영살 중 일살의 눈이 번쩍였다. 원래 사용할 생각이 없었지만 저런 자신감을 보이는 추상락의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싶은 일살은 자신의 팔목에 차고 있던 아대에 내공을 집중했다.
반경 3장 안에 일루전(환상) 마법이 뿌려졌다. 공간과 공간을 일그러뜨려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마법 아이템이었다. 천악은 삼영살의 전투력을 상승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일살에게 착시 마법 아이템을 주었다.
처음에 삼영살도 마법 아이템의 놀라운 능력에 경악하고 말았다.
마법 아이템을 사용하게 되면 환상과 실체 사이의 간격이 약 1척(30㎝)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예를 들면 사람의 신형이 실제 위치와 1척의 간격을 보인다고 보면 정답이었다.
실제적으로 변한 것은 거의 없다. 다만 상대에게 혼란을 주게 된다. 즉, 진짜라고 믿었던 신형을 제대로 찌르거나 베는 것이 어려워진다.
압도적인 차이를 가진 고수들의 경우에는 승부의 차이가 별로 없겠지만, 추상락과 삼영살의 합공에는 그러한 차이가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삼영살의 합공은 추상락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이게 뭐야?’
추상락은 갑작스럽게 위기감이 느껴졌다. 좀 전에 무언가 일렁이는 듯한 느낌이 일어나고부터 왠지 모르지만 삼영살에게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일루전 마법의 시행 시에 빛이 번쩍이며 나오는 현상을 완전히 배제하고 만든 천악이었다. 빛이 난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게 경각심을 높여주기에 그 현상을 지워버린 것이다. 모르고 당할수록 효과가 더 좋았다.
지켜보고 있던 당지독과 남궁태희 역시 놀라고 있었다.
반경 3장 안을 벗어나게 되었을 경우 일루전 마법의 허용범위를 넘어서게 되어 효과가 없다. 다만 그 안에 있는 추상락의 움직임이 전보다 반 박자 느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놈들이 저런 방법도 있었나?’
당지독에게 합공술을 사용할 때는 없었던 방법이었다.
남궁태희 역시도 자신한테 보여주지 않은 방법을 사용한 삼영살의 술법에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확실히 자신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것 같았다. 강호의 경험이 일천하기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는지 몰랐다.
‘약해지지 않는다. 반드시 더 강해질 것이다!’
절대고수의 탄생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좋은 조건, 끊임없는 노력, 하늘이 내려준 자질, 무엇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중 하나라도 없다면 절대고수가 될 가능성도 적어진다.
또한 중요한 것이 바로 경험이었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지 않은 자는 고수가 되어도 진실 된 고수라고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