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84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84화
금천상가의 습격 (5)
파앙!
“제기랄! 건진 게 하나도 없잖아!”
구룡상회의 구천상은 속이 좋지 못했다. 올해 들어 금천상가가 유통망을 넓히는 바람에 매출이 급격히 하락하고 말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교에 도움을 청했다.
구천상은 이번에 교에서 가져온 냉동수레를 살펴보았다. 냉동수레는 처음에는 냉기가 계속 유지되어 냉동수레 자체가 냉동의 기능을 가진 줄 알았다. 그런데 일정 시간이 지나자 냉기가 사라지고 보통의 수레가 되어버렸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뭔가가 있다는 것이겠지.”
비밀을 파악하지 못한 이상 상단의 수익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말이 되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상회의 유지 자체가 힘들지 몰랐다.
‘무식한 것들! 다 죽이고 수레만 가져오면 어떡해? 비밀을 밝혔어야지!’
구천상이 속앓이를 할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거대한 체격의 중년인이 있었다. 중년인은 앉으라는 말을 듣지도 않고 구천상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꿈틀!
구천상은 가뜩이나 심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 나타나 무례하게 구는 중년인의 태도에 폭발할 뻔했다.
그러나 그는 노련한 상인이었다. 무려 40년이나 상행위를 하면서 느낀 점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 구천상은 금세 분기를 갈무리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모습을 바꾸었다.
거만한 중년인은 구천상이 자금을 대는 곳에서 나온 인물이었다.
“이제 본교의 자금은 원래대로 지원되는 거겠지?”
“그게 문제가 있소이다.”
“문제? 그게 무슨 말이지? 냉동수레를 가져 왔으면 되는 일 아닌가!”
“수레 자체로는 아무런 비밀도 없었소. 놈들에겐 다른 방법이 있다는 소리요. 그러니 그 비밀이 밝혀지지 않는 이상 자금을 더 대줄 수가 없소.”
“뭐야!”
중년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패도적인 기운에 구천상은 식은땀이 흘렀다. 무식한 놈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자의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일급표사 서른 명을 순식간에 도륙한 것만 봐도 그들의 실력이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차피 겨울이 다가오니 시간을 조금 번 셈이오. 그러니 그 기간 동안 비밀을 밝혀내면 문제가 없을 것이오.”
“흥! 그깟 놈들 다 죽여버리면 다시 상행위를 할 수도 없겠지.”
무책임한 말이었다. 다 죽인다고 해도 비밀이 새어나가는 순간 구룡상회는 모든 대륙 상단의 적이 될 수 있었다.
벌여놓은 일이 커질수록 비밀을 유지하기 힘들다. 차라리 시간이 조금 들더라도 차근차근 밝혀내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었다.
“그런 짓을 하면 큰일나오. 그러니 시간을 조금 더 주시오. 내 반드시 밝혀내겠소.”
“난 이번에 자금줄을 확실히 하기 위해 나왔다. 그 일을 위해 나는 무슨 짓이든 한다. 그러니 내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
남의 말을 들을 위인이 아니었다. 완전 무대포였다. 이런 자에겐 어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았다. 이럴 바엔 다짐이나 확실히 받아두는 것이 좋았다.
“일이 잘못돼도 구룡상회는 관여하지 않겠소.”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으니까!”
중년인은 한 번도 원하는 일을 이루지 못한 적이 없다는 듯이 말을 했다. 거만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중년인이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꽈앙!
중년인이 문을 거세게 닫고 나간 후 남겨진 구천상은 화가 치밀었다. 무인들은 상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교에서 나온 인물이라고 하지만 자신을 이렇게 무시하다니! 생각 같아서는 요절을 내주고 싶었다.
‘지금이야 참지만 어디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
* * *
천악은 소미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왔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천악의 방만큼 치료하기에 적절한 곳은 없었다.
당지독이 닷새 동안 신소미의 혈류와 혈맥을 보호하는 약을 만들어서 마시게 했다. 그동안 신소미는 혈색이 전보다는 조금 좋아졌다.
천악은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서 치료하기 위해 방 전체에 대마법결계를 설치했다. 천악은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했다.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건 돌발적인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천악은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마법결계를 설치했다. 더구나 치료할 때는 조금의 소리나 흔들림도 없어야 했다.
천악은 신소미를 보았다. 무심한 눈이었다. 아이를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천악의 눈을 바라보고는 소미는 몸을 떨었다.
“두렵나?”
“조금 두려워요.”
소미는 솔직하게 말을 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치료를 하는 데 두렵지 않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시체일 것이다.
“치료를 받겠다고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가능성이 적지만 그 가능성을 믿고 도전해 보고자 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포기하지 마라. 반드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라. 그러면 너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의 흔들림조차 보이지 않는 천악의 말을 듣자 신소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감이 차올랐다. 천악이 걱정하거나 불안해 했다면 소미 자신이 더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감정한 천악의 말에 용기가 솟아났다.
“아직도 두렵나?”
“아니요. 저는 살 수 있어요! 오빠를 위해서 살 거예요!”
“너를 위해서 살아라. 세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서 사는 거다. 그럼 치료를 하겠다.”
-슬립(수면)!
천악은 소미의 혈을 짚지 않았다. 혈맥을 치료하는 일에서 혈을 짚어놓을 경우, 적지만 충격을 받을 수 있었다. 작은 충격에도 혈맥이 터질 수 있을 정도로 신소미의 혈은 약해져 있었다. 혈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천악은 슬립 마법을 시전해서 신소미를 재웠다.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천악은 야수안을 발동했다. 야수안이 발동되면 사람의 신체에 흐르는 기운과 혈류의 이동 등 모든 정보가 천악의 눈에 들어온다.
야수안을 발동하자 신소미의 전신이 투시가 되었다.
기경팔맥에 해당하는 독맥(督脈), 임맥(任脈), 충맥(衝脈), 대맥(帶脈), 양교맥(陽交脈), 음교맥(陰交脈), 양유맥(陽維脈), 음유맥(陰維脈)의 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십이경락을 살펴보았다. 십이경락은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 족소음신경(足小陰腎經),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 수소양삼초경(手小陽三焦經), 족소양담경(足小陽膽經),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을 뜻한다.
비교를 하자면 기경팔맥은 호수와 같고 12경락은 강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둘 사이의 흐름을 파악한 천악은 혈맥을 보호하기 위한 프로텍트(보호) 마법을 걸었다.
혈과 혈이 이동하는 동선과 혈 전체에 마법을 거는 일은 9서클의 마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인간의 몸은 우주와 같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무한한 잠재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주의 기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마력과 내공이 필요하다.
생사금침대법이 혈을 자극해서 서서히 막힌 혈을 뚫는 방법이라면 지금 천악이 하는 방법은 프로텍트 마법으로 보호한 혈맥을 한순간 광폭한 힘으로 뚫어버리는 방법이었다.
천악은 야수안으로 막힌 혈을 확인하였다.
‘확실히 음한 기운이 쌓여가고 있군.’
천악은 혈을 보호한 상황에서 기를 집중했다. 천악의 기운이 혈을 막고 있는 음한 기운과 부딪치자 서로의 기운을 감응하듯이 대응하기 시작했다. 음의 기운이 지지 않으려고 거세게 반발하자 천악의 광폭한 기운이 압도적으로 음한 기운을 뚫어버렸다.
천악의 힘이 갑자기 거대해지더니 일순간에 한 개의 혈을 뚫어버렸다. 프로텍트 마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혈맥이었지만 출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천악은 리커버리(복구) 마법을 사용했다. 순백의 빛과 기운이 혈맥의 출혈을 막고 다시 재생시켰다.
기상천외(奇想天外)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보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쉽게 혈을 뚫었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실상 지금 천악이 9서클 마력과 10갑자의 내력을 사용한 것을 안다면 이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혈이 하나 뚫리자 천악은 다시 다음 혈을 찾았다. 한 번 해봤으니 다음에는 더 능숙하게 치료할 수 있었다.
천악은 처음부터 이런 방법을 생각했지만 확실하게 치료가 가능한지도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확정적인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곱 개의 혈을 뚫는 데 다시 집중하기 시작한 천악이었다.
천악의 방 주변에서 대정선자와 당지독, 신일, 추상락, 제갈지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진이 흐르는 동안 천악의 방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당지독이 궁금해서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방 앞에 접근하자마자 자신을 밀어내는 기운으로 인해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중에서 가장 초조한 이는 신일과 대정선자였다.
신일에게 소미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다. 만약 동생이 죽는다면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내내 고통스러울 것이다. 대정선자는 천악의 치료가 성공하기를 바랐다. 만약 성공한다면 자신의 제자도 치료할 희망이 생기기에.
반면 당지독은 궁금했다. 어떤 방법으로 칠음절맥을 치료하는지 알고 싶었다. 만약 그 방법을 안다면 지금 불완전하게 연성되고 있는 천독강시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천악의 방법을 안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천악의 방법으로 천독강시의 혈을 자극했다가는 바로 독기가 타서 모두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다. 독기가 없는 강시는 말 그대로 평범한 강시라고밖에 할 수 없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방문 앞에 집중되었을 때 문을 열고 천악이 나왔다. 천악의 표정만 봐서는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신일은 물어보기가 겁이 났다. 그렇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됐나요?”
“잘됐다. 들어가 봐라.”
신일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천악에게 감사의 절을 올렸다. 바닥에 이마를 대며 절을 하고 나서 바로 소미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이놈아, 정말 치료가 된 것이냐?”
당지독이 물어보자 천악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당지독이 원하는 것은 치료 방법이었다. 설마 자신이 말한 대로 내공으로 혈맥을 보호하고 혈을 뚫는 무식하고 불가능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는 당지독이었다.
“혈맥을 내공으로 보호하고 혈을 뚫었습니다.”
황당!
“너 지금 내가 말한 그 방법을 그대로 썼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진짜로 하다니……!”
당지독은 어이가 없어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듣고 있었던 추상락과 제갈지도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상을 불허하는 천악이지만 이건 정말 대단하다 못해 천의무봉(天衣無縫)이었다.
당지독은 그 말을 듣고서도 믿지 못하겠는지 확인하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소미가 깨어 있는 상태였다. 창백한 피부는 온데간데없고, 홍조를 띤 귀여운 아이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지독은 얼른 소미의 맥을 짚어보았다.
‘하나, 둘, 셋… 이럴 수가! 막힘이 없다. 더군다나 이토록 자유로운 기의 순환이라니! 임독, 양맥을 모두 뚫었다.’
칠음절맥을 치료한 것도 모자라서 벌모세수를 한 것처럼 소미의 모든 세맥과 혈이 열려 있었다. 무공을 익히는 데 천고의 재질을 가지게 된 기연이었다.
그 뒤로 대정선자까지 신소미의 맥을 짚어보고는 기겁을 했다. 설마 설마 하는 심정이었는데 불가능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얼떨떨했지만 희망이 생겼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천악은 오늘 상당한 내력과 마력을 소비했다. 일반적인 무인이나 마법사였다면 선천지력이나 마력지기까지 모두 소비하고 죽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악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힘이 들었다거나 피곤한 기색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