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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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81화
금천상가의 습격 (2)
땅! 땅! 땅!
대장간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대장간 안에는 거대한 기둥을 만들 수 있도록 다섯 개 정도의 기둥이 분리되어 있었다. 나중에 연결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천악이 소풍을 갔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당한철은 일을 하는 데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고작 며칠 만에 이 정도로 만들어놓은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당한철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열 사람 몫의 일을 해내고 있었다. 천악은 당한철 혼자서 계속 일을 하는 것이 힘들지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고, 또 혼자서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았다.
“힘들지 않나?”
“아닙니다.”
“사람 손이 더 필요하면 말을 해라. 그럼 사람을 붙여주겠다.”
“아닙니다. 저 혼자서 다 할 수 있습니다.”
당한철은 완고하게 거절했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바로 천악 때문이었다. 천악이 말해 주는 것들은 모두 신기하고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천악의 일을 도울수록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암기 제작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장인에게 있어서 천악은 기연 덩어리였다. 무인에게 내공과 무공이 나누어 가질 수 없는 보물이라면 장인에게는 신기술이야말로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보물 아닌가.
당한철이 비록 당가에서 인정받고 있는 기술자이기는 하지만 방계였다. 방계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획기적이고 위력적인 새로운 암기를 발명해야 했다.
“무리하지는 마라. 지금 장원에서 네가 누구보다 필요하니까 말이야.”
천악에게 손발이 되어주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당한철이었다. 그가 탈이 나면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당한철만큼 이해력이 빠르고 솜씨 좋은 장인은 찾기 힘들었다.
당한철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천악의 말에 감격하고 있었다. 사실 천악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심 없이 말을 했을 뿐이지만 듣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와 닿았다. 생각의 관점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고 있었다.
“그럼 수고해라.”
“배가 만들어질 때까지 완성해 놓겠습니다.”
“알겠다.”
천악은 별채로 향했다.
별채에 마련된 수련 장소에서 아이들이 땀을 흘리며 수련을 하는 것이 보였다. 추상락의 지도 아래 아이들도 제법 틀이 잡혀가고 있었다.
천악이 오자 추상락이 수련을 멈추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게 했다.
“수련은 잘 돼가는 것 같군.”
“그렇습니다. 실력이 상당히 빨리 늘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조금만 더 지나면 또래 중에서 적수가 얼마 없을 겁니다.”
사실 상당히 빠른 진전이었다. 고작 반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은 칭찬해 줄 만한 일이었다.
천악이 만들어놓은 기 집중마법진으로 인해 빠른 내공 진전을 얻은 것으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해내겠다는 집념과 더불어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승부 근성이 없었다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잘됐군. 그럼 잠깐 몇 가지 생각을 들어보겠다.”
“무얼 말입니까?”
천악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했다. 질문의 내용은 평범한 것으로 보통사람이 가질 수 있는 행위와 행동에 대한 것들이었다.
“너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신일, 충호, 전칠은 아직 어렸다. 어린 나이에 기계처럼 무공 수련만 하는 것은 옳지 못했다. 강한 신념과 사고력, 판단력을 키워야 했다.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신념에 의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면 말이다.
신일이 대답했다.
“저는 가족입니다. 제 가족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겁니다.”
“저도 그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일의 대답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긍정의 표현을 했다. 어린 나이에 꽤 조숙한 대답이었다.
천악은 아이들의 대답을 가지고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스스로 가진 신념과 목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도록 해라. 그럼 이제부터 강호의 생존에 대해 묻겠다.”
아이들이 원치 않든 원하든 무공을 배우게 되면 목숨을 건 대결을 하기 마련이다. 생사대결에서 필요한 것은 정확한 판단과 냉철한 마음이다.
“대결에 임함에 있어서 흔들리는 마음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건 많이 들어봐서 알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책이나 말로 전해지는 것과 많이 다르다. 상대방이 꼭 정면대결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도 있다. 가족과 연인, 친구 등을 인질로 내세워 너희들의 감정을 흔들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
아이들은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처음 대답에서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인데 가족이 인질이 된다면 아이들은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당황할 것이다. 다 자란 성인이라도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결정하는 데 흔들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천악의 입장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였을 때는 이유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하나 그건 압도적인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은 아직 천악의 힘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힘이 없을 때의 대처방법도 알아야 했다.
아이들이 대답을 못 하자 천악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언제나 냉철한 마음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미리 마음을 대비하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계속해서 방법을 찾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질을 쓴다는 것은 너희들의 흔들리는 마음속 빈틈을 파고들어 이용하겠다는 소리다. 상대방의 수법에 휘둘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천악의 말을 듣는 아이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다. 우선은 살아 있어야 구출이든 복수든 할 수 있다. 또한 경험에 의하면 강호는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거는 경우가 빈번하다. 어떤 이를 구하거나 도움을 줄 때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소리다. 무턱대고 아무 대책 없이 일을 벌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오늘따라 천악의 말은 장황했다. 순서에 상관없이 철저히 자신만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적용시키고 있었다.
천악은 협객이나 영웅을 원하진 않았다.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미명 아래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놈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너희들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강해져라. 그리고 영웅이나 협객이 되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만약 협객이나 영웅이 되겠다면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되었을 때나 해라.”
능력도 없이 협을 숭상하거나 영웅이 되려는 짓은 만용이었다. 자신의 몸도 지키지 못하는 놈이 결국에는 소중한 것까지 모두 잃고 피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힘이 있는 자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패도의 사상이기는 하지만 천악은 조금 달랐다. 강해지더라도 남을 짓밟는 짓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힘을 나타낸 것이다. 인간적인 마음까지 버리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천악이었다.
추상락은 천악의 말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틀린 말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힘도 없이 협을 이루겠다고 불나방처럼 뛰어들다 죽을 수도 있었다.
‘이거 나도 점점 주인에게 물들어 가는 건가?’
정파의 이념이 바로 협이었다. 협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것이 정파의 사상이다. 천악이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은 그런 사상과는 절대적으로 배치되기도 했다.
“내 목적을 위해 너희들을 고용한 것이지만 너희들도 너희의 목적을 위해 나를 이용하도록 해라. 나는 최대한 너희들의 성장을 위해 도움을 주겠다.”
신일과 충호, 전칠은 자신들도 모르게 천악의 말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천악은 지금 의념을 형성시켜 의지를 실현하고 있었다. 자신들도 모르게 천악의 생각이 전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천악의 개인적이고, 지극히 독선적인 사고방식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제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장주님의 은혜를 갚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일의 대답에 아이들 모두가 동의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마라.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현명한 선택이다.”
또 다른 천악들의 탄생이 아닐 수 없었다.
* * *
여자아이들 네 명과 남자아이들 다섯 명이 술래잡기를 하며 이리저리 뛰어놀고 있었다.
“잡아!”
“내가 잡힐 줄 알아!”
아이들 중 한 명이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쪽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오늘따라 힘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지 모르지만 생기있게 뛰어노는 아이들 틈에 있으니 더 힘이 없어 보였다.
“소미야, 너도 하자.”
“어, 나 조금만 쉬다 할래.”
소미는 조금만 쉬려고 했는데 점점 숨이 차고 얼굴이 더 창백해지고 있었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힘이 더 빠지는 것 같았다.
산 능선을 타고 흐르는 듯한 유려한 곡선의 모양으로 수놓은 도복을 입은 여승이 바쁘게 길을 가고 있었다.
“하아, 이게 과연 소용이 있을 것인가.”
여승은 한탄스럽게 말을 하며 품안에 간직하고 있는 물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보았다.
여승이 합비 내 한 마을을 지나갈 때였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여승의 입가에 저절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열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있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 것이다.
그런 여승의 눈에 유독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창백한 표정, 힘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 누군가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여승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속도를 내어 아이 앞으로 다가갔다.
“아이야, 어디 아픈 것이냐?”
여자아이가 힘겹게 여승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여승을 보고 아이는 우물쭈물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나는 아미파의 대정이라고 하는데, 네가 아파 보여서 물어본 것이니 안심하거라.”
“저, 전 괜찮아요. 그냥 힘이 없어서 그래요.”
아미파의 대정(大靜)이라고 칭한 여승은 사천의 칠대고수 중 한 명인 아미파의 고수였다. 그녀의 별호는 대정선자(大情善者)였고 법명은 정명사태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미파에서 자란 그녀는 속세의 이름이 없었고, 법명인 정명보다는 별호인 대정을 더 좋아해서 타인에게 대정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했다.
그녀는 나이가 50이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대정신공(大靜禪功)의 영향으로 아직도 서른 중반의 외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사실 대정신공을 연성하기 위해서는 크고 맑은 기운을 가져야 했다. 그녀의 별호가 대정인 이유도 그녀가 연성하는 대정신공의 화후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중후하고 맑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잠깐 내가 맥을 짚어보아도 되겠니?”
대정은 아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창백한 얼굴만 제외하고는 상당히 귀여웠다.
아이는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하는 대정을 향해 고개를 앙증맞게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