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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최강 군바리 166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3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66화

166화 속 쓰린 패배.(4)

 

 

 

 

***

 

“도저히 안 되겠군. 후퇴하는 수밖에 없겠소.”

 

엘튼 제국의 베르나 백작이 쓰라린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사령관 각하! 너무 포기가 빠른 것 아닙니까!”

 

부사령관인 크로어 백작은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싸워 보지도 않고서 퇴각을 결정하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지난 전쟁에서 이런 식으로 명령을 내렸다가 슬런더 요새로 좌천된 크로어 백작이다. 그것도 사령관이 아니라 부사령관의 자리로 말이다.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도 또 징계를 먹는다면 회복할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저것을 보고서도 그런 얘기가 나오시오!”

 

베르나 백작이 슬런더 요새의 장벽 너머를 가리켰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횃불이 물결을 치듯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적어도 만 단위의 병력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 은은하게 들리는 바퀴 굴러가는 소리. 묵직한 물건을 실은 것이 분명한 바퀴 소리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공격한다면 적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대체 왜 이렇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오. 부사령관! 저들을 보시오!”

 

크로어 백작이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소리쳤으나, 베르나 백작은 이를 드러내며 손으로 슬런더 요새의 안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십여 명의 흑기사가 슬런더 요새의 기사를 상대로 미친 듯이 결전을 벌이고 있었다.

숫자에서 밀렸으나, 흑기사들은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싸운다. 오히려 슬런더 요새의 기사들이 기가 질려 움찔거리기까지 하고 있다.

 

“불과 스무 명의 흑기사를 상대로 아군 기사의 피해가 엄청나오! 저런 놈들이 더 투입된다면 기사 전력은 끝장이오! 놈들이 통신 마법사부터 해치운 걸 생각해보시오! 우리를 전멸시킬 자신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고 뭐겠소!”

 

베르나 백작이 잇몸을 드러내며 쓰라린 얼굴로 말했다.

프레하 제국에서 슬런더 요새를 수리해주면서 내부 구조를 파악해 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콕 집어서 통신 마법사만 공격했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오. 저런 놈들이 몇이나 될 줄 알고 버틸 수 있단 말이오! 지원 요청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퇴각하는 것이 현명하오!”

 

베르나 백작은 반대하려는 크로어 백작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이건 총사령관 각하의 명령이오!”

 

“언제 그런 명령이 내려졌단 말씀이십니까.”

 

뜻밖의 얘기에 크로어 백작이 눈을 크게 떴다.

 

“흑기사에 대항할 병기가 부족한 상태요. 총사령관 각하께선 무리하게 대응하지 말고 신속하게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소. 다만, 요새를 완전히 파괴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들의 진격을 조금만 늦추라는 명령이니 즉시 퇴각을 준비하시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총사령관의 명령이라는 말에 크로어 백작이 그제야 뜻을 굽혔다.

크로아 백작이 부하들을 직접 이끌고 슬런더 성에 보유한 기름 단지를 모조리 투입해 성벽에 불을 질렀다.

슬런더 요새를 복구하고서 몇 개월 만에 다시금 불바다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퇴각하라! 슬러더 요새의 모든 병력은 아이언 백작령으로 퇴각하라!”

 

불길이 치솟는 것을 확인한 베르나 백작이 마나를 담아 크게 소리쳤다.

 

***

 

“칼리입!”

 

영주 성에 도착하기 무섭게 칼립부터 찾았다.

뱅크스 요새의 구원은 세인트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머지 전방 요새의 상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 되겠다.

슬런더 요새와 베링 요새의 갈림길까지 갔다가 되돌아올 생각이다.

물론 혼자서다.

병력을 이끌고 가는 건 오히려 위험하다.

슬런더 요새와 베링 요새의 병력은 대략 6만에 달하는 대군. 그런 거대 병력이 후퇴할 정도라면, 아이언 영지의 3천 병력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터다.

듀카스 대공이 4만의 병력을 이끌고 아이언 영지에 도착했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 병력을 이끌고 가는 건 혼란만 일으킬 뿐이다.

 

“히히히힝!”

 

성문 앞에 도착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칼립이 울부짖으면서 달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충!”

 

“와그너에게 영지민을 강제로라도 아이언 성에 대피시키라고 전하라!”

 

군례를 올리는 경비병에게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영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경비병은 대답과 함께 몸을 돌려 성 안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칼립이 도착해 말발굽으로 땅바닥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대로 훌쩍 몸을 띄워 칼립의 안장에 올라탔다.

정확한 정보라는 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대책을 세울 수 있는 법.

 

“칼립! 가자!”

 

칼립의 배를 가볍게 걷어찼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몸을 피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두두두두두!

 

갇혀 있었던 스트레스를 풀겠다는 듯이 칼립은 바람처럼 달렸다.

이런 속도로 달린다면 반나절도 되지 않아 슬런더 요새와 베링 요새의 갈림길에 도착할 수 있을 터다.

많이 밝혀서 그렇지 속도와 지구력만큼은 최고인 놈이다.

 

***

 

“기사들은 퇴로를 확보하라!”

 

베르나 백작이 고함을 지르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베르나 기사단 역시 말머리를 돌려 굳은 얼굴로 롱소드를 뽑았다.

흑기사들이 몰이하듯 병사들을 장난처럼 죽이면서 접근하고 있었다.

 

“내 저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분통을 터트리면서 베르나 백작이 할베르트의 자루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300에 불과한 흑기사에게 쫓기는 현실이 화가 난 것이다. 물론 흑기사의 뒤에 일만여 명의 프레하 제국 병사와 기사가 쫓아오고 있다는 건 안다.

그러나 흑기사가 아군 병력의 뒤를 장난하듯 치면서 피해를 강요하는 꼴을 더는 지켜보기가 어려웠다.

 

“베르나의 기사들이여! 우리는 여기서 놈들을 막는다!”

 

[사령관 각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사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면서 흑기사를 기다렸다.

 

“아니 됩니다! 사령관 각하!”

 

전의를 불태우는 베르나 백작의 귀에, 피를 토하는 듯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베르나 백작은 물론이거니와 결사항전을 다짐한 베르나 기사단원들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후퇴하는 병사들을 헤치면서 다가오는 크로어 백작과 400명의 기사단이 있었다.

 

“크로어 백작! 지금 무얼 하시는 것이오! 후퇴하시오!”

 

베르나 백작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사령관 각하께서 후퇴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병력을 보존하는 것은 사령관으로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이오. 그러니 부사령관은 나를 대신하여 병력을 무사히 아이언 영지까지 이끌고 가주시오!”

 

크로아 백작의 말에 베르나 백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땅히 사령관인 자신이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크로아 백작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령관 각하! 저는 이미 한차례 기사로서 부끄러운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십시오.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저도 사령관 각하와 함께 싸울 것입니다.”

 

“으음…….”

 

베르나 백작이 침음성을 흘렸다.

상대의 눈빛으로 보아, 절대로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두 개의 기사단이 퇴로를 확보한다는 건 지나친 낭비다.

그러자 크로아 백작이 굳은 얼굴로 한차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망설이실 필요 없습니다. 크로아 기사단은 돌격하라아!”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소리치는 크로아 백작.

 

[돌격하라! 흑기사를 저지하라!]

 

갑작스러운 명령에도 크로아 기사단의 기사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랜스를 손에 쥐었다.

 

“부사령관! 부사령…….”

 

베르나 백작이 제지하려 했으나, 크로아 백작은 이미 말머리를 돌린 다음이었다.

 

“저, 저런!”

 

말릴 틈도 없이 흑기사에게 돌격하는 크로아 백작과 휘하 기사들의 모습에, 베르나 백작이 안타까운 탄성을 발했다.

크로아 백작과 기사들이 기세를 높이면서 함성을 지르고 랜스를 앞세웠다. 그러나 흑기사들도 상황을 깨닫고 병사들을 학살하다가 빠져나가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이미 자신과 부하들이 끼어들기엔 늦었다고 할 수 있었다.

 

“퇴각하라! 크로아 백작과 기사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마라!”

 

[퇴각하라! 퇴각하라아!]

 

베르나 백작이 울분을 참으며 소리치자, 기사단원이 목이 터지라 상관의 명령을 받아 외쳤다.

 

“조금만, 조금만 서둘러라, 제발…….”

 

크로아 백작이 사력을 다해 달리는 병사들을 살피면서 중얼거렸다.

그다음으로 크로아 백작과 그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거리를 벌리고 대열을 완성한 흑기사가 마주 달려오고 있다.

 

“죽여주마!”

 

랜스를 쥐고서 크로아 백작이 살기를 마구 뿜어댔다.

 

“큭!”

 

크로아 백작의 모습을 지켜보던 베르나 백작이 시선을 거두었다.

차마 싸움을 지켜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직접 손을 섞어 본 그였기에 흑기사가 얼마나 괴랄하고 강인한 존재인지 아는 까닭이다.

 

‘그대와 그대의 기사들이 보여 준 용기… 평생 잊지 않겠소.’

 

이를 꽉 문 그가 말머리를 돌렸다.

등 뒤에서 들리는 양쪽 기사단이 격돌하는 소리와 비명이 돌아서는 그의 귀를 괴롭혔다.

 

***

 

아까 말을 타고 지나간 전령 덕분에 슬런더 요새와 베링 요새가 점령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째 불안불안하더라니, 역시나 예상했던 것처럼 전방 요새의 병력이 패주(敗走)하고 있다는 소식에 속이 쓰리다.

대략적인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래서 더 직접 눈으로 확인할 생각이다. 퇴각을 도울 수 있다면 더 좋고 말이다.

 

“칼립! 속도를 내라!”

 

말고삐를 잡으면서 재촉했다.

멀리서 은은하게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누군가 죽어 가는 비명.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소리가 분명하다. 거기에는 말발굽 소리까지 뒤섞여 있었다.

아마도 후퇴하는 아군들일 게 틀림없을 터다.

희미하게 ‘엘튼 제국 놈들을 남김없이 죽여라!’라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이가 갈린다.

프레하 제국의 잔머리에 열이 솟구친다. 소식을 전할 수 없게 통신 마법사부터 제거했다니…

이것으로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뱅크스 요새는 프레하 제국 놈들이 아군의 병력을 분산시키려는 개수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재수 없었으면 제대로 뒤통수를 맞을 뻔했다.

아니, 벌써 슬런더 요새와 베링 요새가 소리소문없이 점령당했으니, 이미 세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다.

조금 더 칼립을 타고 이동하니, 멀리 먼지 구름이 솟구치고 있다. 패퇴하는 아군이 분명하다.

어쩌면 슬런더 요새와 베링 요새의 패잔병이 한데 뭉쳤을 수도 있겠다.

 

“칼립, 저기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곳에서 숲으로 들어가!”

 

“푸르륵!”

 

알았다는 듯이 달리면서 고개를 한차례 끄덕이는 칼립.

현재 후퇴하는 아군을 구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최대한 많은 병사를 살려야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두두두두!

 

아군 병사들의 모습이 눈으로 확인될 때쯤에서야, 칼립이 내가 얘기했던 커다란 나무 부근에서 숲으로 뛰어들었다.

 

“들키지 않게 더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부르면 재까닥 오는 거다. 알겠지?”

 

“푸륵!”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서 나무 위로 올라갔다.

가지가 많은 나무를 일부러 골라서 올라간 까닭에 주의해서 살피지 않으면 나를 발견할 수 없을 터다.

더군다나 아군의 뒤를 쫓는데 정신이 팔려있을 테니, 쉽게 발각당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아이언 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라! 뒤처지지 마라!>

 

마나를 담은 듯한 음성이 아련하게 들린다.

병사들이 움직임을 멈추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하지만 병사들을 독려하는 음성에도 그다지 힘은 느껴지지 않는다. 쉬지도 못하고 도주한 탓에 피로가 쌓인 것이 틀림없다.

그나저나 아이언 영지의 지하 벙커를 확장해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탁한 것은 아니지만, 트와토른이 다른 드워프들과 확장을 해둔 상태다.

전쟁이 끝나고 자신들의 왕국을 만들겠다나 뭐라나?

남탕 왕국이 될 거라는 것에 내 손모가지를 걸어도 좋다.

 

<힘을 내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재차 들려오는 목소리.

이번엔 훨씬 더 가깝게 들린다.

그리고 드디어 패주하는 아군 병사의 선두가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낭패한 모습이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발걸음이 무겁다. 뛰는 건지 걷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

밤을 새워 달려야 했을 테니,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아무리 강병이라고 해도 한계까지 체력을 소비한 까닭이겠다.

끝없이 병사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후퇴하라! 멈추지 마라! 멈추면 죽는다!”

 

피를 토하는 음성으로 소리치는 말에 탄 사내.

이제껏 소리치던 인물이 분명하다. 내가 아는 얼굴이다. 베링 요새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엘란트 백작.

그의 옆에는 슬런더 요새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베르나 백작이 지친 얼굴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슬런더 요새와 베링 요새가 같이 함락당했다는 의미가 되겠다. 그나마 각개격파 당하지 않고 함께 후퇴하는 중이라는 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군의 후퇴 행렬의 뒤쪽에 시선을 던졌다. 검은색 갑옷을 입은 프레하 제국의 흑기사가 여유 있게 말을 몰면서 아군 병사를 도륙하고 있다.

그들이 뒤로 30미터쯤 거리를 두고서 뒤를 따르는 프레하 제국의 병사들.

뒤처진 아군 병사를 확인 사살하면서 역시나 느긋하게 따라오는 중이다.

망할 자식들!

그래, 일단은 참는다.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는 있지만,

후퇴하는 아군을 당장 돕지 못한다는 건 정말로 참기 힘든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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