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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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80화
금천상가의 습격 (1)
풍운장원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이가 바로 고춘성 총관이다. 그는 지금 눈앞에 있는 신출내기 부총관에게 풍운장원 내의 필요한 일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고춘성의 나이는 서른을 넘지 않았다. 반면에 조종신의 나이는 마흔 중반이다. 사람이 살아온 세월과 연륜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춘성의 능력 자체는 조종신보다 뛰어났다. 조종신은 능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학업을 그만두었다면 고춘성의 경우는 돈이 부족해서 학업을 그만두었다.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풍운장원의 모든 결정은 장주님이 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장주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장주님이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도록 보조하고 사소한 일들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면 됩니다.”
고 총관은 조 부총관에게 가장 중요한 말을 하고 있었다. 풍운장원의 절대적인 법은 장주인 천악의 말을 따르는 것이었다.
조종신은 며칠 동안 고 총관과 장원에 대한 대화를 계속 나누었다. 조종신이 생각하기에 고 총관은 학식이 매우 뛰어나고 총명한 사람이었다. 약간은 능글맞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학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과거를 보지 않고 일개 개인 장원의 총관으로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자신은 과거를 보았지만 결국 실력이 모자라 낙방을 했다.
“고 총관은 출사할 생각이 이제는 없는 것이오?”
씨익.
고 총관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기울었던 집안도 바로 세웠고, 월마다 꼬박꼬박 막대한 돈도 벌고 있다. 과거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그가 읽어온 수많은 책에서는 돈의 소중함보다는 청렴결백(淸廉潔白)을 가장 중하게 여기도록 적고 있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서생과 관인이 청렴결백하지 않으면 탐관오리가 되어 결국에는 백성들이 고달프게 된다. 나라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옛 성인들은 돈을 멀리하도록 적어놓았다.
그러나 현실이 그런가! 돈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밥 한 공기조차 돈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고 총관은 이제야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돈에 얽매어 추한 사람이 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지금처럼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살 수 있으면 족했다. 그런 면에서 고 총관은 군천악을 가장 존경하고 있었다.
“아주 잊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합니다. 조 부총관도 장원을 봐서 알지 않습니까. 장원 내의 사람치고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조종신도 처음에 그게 가장 당황스러웠다. 악마 같은 천악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 하고 있었다.
풍운장원에 처음 와본 사람들 대부분이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과 생소하면서도 신기한 장치들을 보고 놀라는 반면, 조종신은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놀랐다.
그가 생각한 천악은 악마의 화신이었다. 사람의 머리통을 부숴버리고 잔인하게 갈가리 찢어발기는 악마 말이다. 그런 악마 밑에서 어떻게 이런 장원이 만들어졌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속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천악의 가면 속에 가려진 정체를 안다면 저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속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소? 장주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수도 있소.”
“제가 그 정도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장주님은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이나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성인은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과 이념에 따라 행동하고 주변 사람들보다는 자신을 위해 살아가시는 분이지요.”
“그러니까 잘못됐다는 것 아니오.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만 생각하다니, 그게 세상을 얼마나 해롭게 하는지 아시오!”
녹림귀산 조종신은 아직도 녹림의 무리를 모두 죽인 천악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녹림이 비록 일반백성들에게 해악을 끼치기는 하지만 무조건 죽인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아는 한 사람의 목숨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져야 마땅했다.
“녹림에 몸담았던 분치고는 순진하시군요.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인간의 욕망입니다. 욕망을 마음대로 분출하는 것 자체는 그릇된 생각일지 몰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합니까? 저는 솔직히 장주님이 부럽습니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과 달리 장주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합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게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해도 저는 장주님의 생각을 따르겠습니다. 이기적이더라도 장주님은 남한테 피해를 먼저 준 적이 없습니다. 이건 제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하는 말이니 장담할 수 있습니다.”
“후우!”
한숨이 나오는 조종신이었다.
논리적으로 조종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말 자체는 매우 훌륭한 말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와 같은 일은 반영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밟고 일어서는 일이 다반사이지 않는가. 인간의 그릇된 욕망으로 인해 무수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알고 있는 조종신이었다. 그에 반해 천악은 광폭한 힘과 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을 위한 일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쉽게 인정이 되지 않았다. 이성과 감성, 그리고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조종신이었다.
“조 부총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저 지금 주어진 일을 잘 해나가면 됩니다.”
“알겠소이다.”
* * *
고 총관은 천악이 떠나기 전 지시한 조선공 열 명을 데리고 왔다. 그들을 불러오기 위해 해당 관청에 신고를 한 상태였고, 배의 용도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천악이 돌아오기 전에 그 일을 마무리하고 천악에게 보냈다.
조선공으로 온 사람들 중 우두머리 격의 인물이 한 명 있었다. 그의 이름은 나도현이었다. 관에서 배의 설계를 담당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소형선에서 대형선, 군용선까지 모든 배에 대한 지식은 다 가지고 있는 능숙한 조선공이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나도현이었지만 지금 천악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이런 만행을 저질러서는 안 되었다. 물에다가 띄울 생각도 없는데 배를 만들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것도 보통 크기의 작은 소형선이 아니라 어림잡아도 중형선 크기 이상이었다.
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와 인부들의 수고비까지 합치면 그 비용이 보통 집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비쌌다.
사실 나도현은 풍운장원에 와보고 많이 놀라기는 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은 장원의 규모 때문에 말이다. 장주가 돈이 많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돈이 썩어나도 이런 짓을 하다니!
나도현으로서는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배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배를 만듦에 있어서 전심전력을 다했다.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오?”
나도현의 질문에 천악이 바라보았다.
움찔!
천악의 눈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나도현은 뒷걸음질을 쳤다.
나도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무심하면서도 한순간 돌변하면 야수와 같은 광폭함을 내포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천악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 좋은 말을 할 리 없었다.
“그래서, 못 하겠다는 말인가?”
“솔직히 강이나 바다에 띄우지 못하는 배를 만들어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소. 이유라도 알면 좋겠소.”
“놀이기구다.”
띠잉!
집채만 한 크기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나도현이었다.
고작 놀이기구를 만드는 데 배 만드는 기술자를 불러서 대대적인 공사를 한단 말인가!
나도현으로서는 평생을 가도 만져보지 못하는 돈을 낭비하는 천악을 곱게 볼 수 없었다.
“허어, 돈이 썩어나는구먼!”
빈정거리는 듯한 나도현의 말에 천악의 뒤에 묵묵히 서 있던 삼영살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누구 앞에서 저런 무모한 행동을 하는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냅둬, 이살. 죽고 싶다는데 말릴 순 없지.]
아직 천악이 나서라는 말이 없기에 가만히 있지만 삼영살은 언제라도 상대의 목을 따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지금 삼영살에게 천악은 절대적으로 받들어야 하는 주군이었다.
삼영살의 생각과는 다르게 천악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힘들게 만들어놓은 건축물이 쓸데없이 사용된다면 화가 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만드는 놀이기구는 그냥 그런 놀이기구가 아니었다.
천악은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다른 사람을 구하면 그만이었다. 조선공이 나도현 한 명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너희들도 하기 싫은가?”
천악은 나도현의 뒤에 서 있는 아홉 명의 조선공에게까지 물었다.
강요해서 하는 일치고 잘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일은 의욕과 더불어 꼼꼼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 하나를 잘못해서 그냥 넘어가면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서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너지거나 부서지기 마련이었다.
“대신 성실히 일하면 1인당 은자 백 냥씩 지급한다. 하기 싫은 사람은 지금 나가도 좋다.”
천악이 가진 두 가지 힘 중에서 하나가 발휘되었다.
무력과 재력이 바로 천악이 가진 힘이었다. 둘 다 우주 최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막강했다.
곧 은자 백 냥의 위력이 발휘가 되었다. 아무도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배 한 척 만드는 데 은자 닷 냥 정도를 버는 그들이었다. 그 정도만 해도 생활에 그다지 불편은 없었지만 은자 백 냥이라는 말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나도현도 망설였다. 장인이지만 장인도 먹고 살아야 했다. 요즘 들어 아내가 아파서 약값이 많이 들었다. 원래 이곳에 올 때도 돈을 많이 준다는 말 때문에 온 것이 사실이었다. 스스로 장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터무니없이 많은 액수였다.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액수였다. 더군다나 천악의 이어지는 말이 쐐기포가 되었다.
“일을 시작하는 자에게 지금 즉시 절반을 주겠다. 물론 가져가서 집에 전해 주어도 된다.”
미리 선불로 일당을 제공하는 천악의 담대함에 조선공 모두는 입을 벌린 채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다.’
‘풍운마룡이라는 사람이 무섭다고 하던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군.’
나도현과 달리 다른 조선공들은 천악에 대한 소문을 조금이나마 들었다. 거짓과 진실, 허무맹랑한 말들이 난무해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파악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무림의 인물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도 망설이기도 했다.
일반 백성들이 생각하는 무인들의 공통적인 성격은 안하무인이었다.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턱대고 무력을 쓰는 인간 말종들 말이다. 좀 전에 나도현이 강하게 나갈 때 조선공들은 조마조마했다. 천악도 문제지만 그 뒤로 서 있는 험상궂은 인상의 삼영살 때문에 긴장감이 더 배가되었던 것이다.
“나는 장인들을 폄하하지 않는다. 평생 한 우물을 파, 일에 있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자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내가 너희들에게 많은 돈을 준다고 생각하지 마라. 내가 준 만큼 훌륭한 배를 만들어주면 된다. 또한 내가 만드는 기구는 단순한 놀이기구가 아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수련을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니 제대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자칫 허술하게 만들어서 아이들이 다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천악은 이 일이 수련 중인 신일, 충호, 전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사실 그저 놀이기구에 불과했지만 일석이조의 역할을 한다면 그것만큼 보람된 일은 없을 것이다.
천악의 말에 나도현도 수긍하듯이 인정했다. 천악이 장인들을 인정해 준다는 말에 감격하기도 했다.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관부에 소속된 관원들은 장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평생 동안 해온 일을 타인이 인정해 주는 것만큼 보람된 일은 없었다. 또한 아이들의 수련을 위한 도구라는 말을 믿고 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한번 열심히 해보겠소!”
“잘 생각했다. 필요한 재료는 고 총관에게 말하도록 해라. 부족함 없이 제공될 거다.”
천악은 조선공들에게 배 만들 공간을 할애해 주고 나서 대장간으로 장소를 옮겼다.
배 만드는 일이 결정이 됐으니 배를 고정시킬 수 있는 장치가 만들어지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