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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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77화
천악의 신위 (2)
“후우!”
남궁태희가 숨을 몰아쉬며 다시 일어섰다.
순간적으로 부딪친 전영의 광폭한 힘은 그녀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화경의 경지에 이르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었다. 그런데 오늘 상대의 단 일 검에 전신의 기혈이 뒤틀려버렸다.
“저 둘은 뭐란 말인가?”
일전에 남궁세가 비무대회에서 본 삼양문의 현위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었다. 세상에 알려진 자들이 아니었다. 어디서 이런 자들이 계속 나타나는지 남궁태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강한 것도 정도가 있었다.
현 강호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상태였다. 또한 지금의 십대고수는 전대의 십대고수들보다도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당금의 현실이 안정기에 들면서 이들 십대고수들보다 강한 자들이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강호의 평가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나타난 약관의 어린 청년들이 현 강호의 십대고수들보다 더 강하지 않은가.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상황인가!
천악의 말도 안 되는 강함을 이해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을 소비한 남궁태희였다. 그의 강함은 논외였다. 이렇게 강한 천악이 세상에 등장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 남궁태희였다. 하늘은 이유 없이 세상에 강한 힘을 가진 자를 내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실(疎而不失).
하늘이 만들어놓은 그물은 너무 커서 그 실타래가 성긴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인연의 그물은 하늘이 만들어놓은 대로 이루어진다.
그만큼 하늘의 뜻은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었다. 천기(天氣)를 읽으면 하늘의 노한 기운을 받아 죽는다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었다.
남궁태희는 모든 것이 하늘이 만들어놓은 운명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퍼억!
쿠당당탕!
전영이 움직이는 곳으로 천악의 손이 움직였다. 그 즉시 전영은 기의 흐름이 끊기면서 신법이 엉켜버렸다. 엉켜버린 상황에서 신형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전영은 땅바닥에 굴렀다. 하수들이나 했음직한 뇌려타곤이 되어버렸다.
수치감이 들 만했지만 전영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은 상태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천악을 바라보았다.
개인적인 무력에서 전영은 월영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신법만큼은 그 누구보다 빨랐다. 그런 자신의 신법을 여유롭게 따라붙더니 앞으로 나갈 방향의 맥을 정확하게 짚어서 끊어버렸다.
이게 사람이란 말인가!
전영은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도대체 네놈은 누구냐? 누군데 우리를 이렇게 방해하느냐?”
천마를 죽이려고 온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체불명에, 지닌 힘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청년이 앞을 막는 것이 아닌가.
전영은 역부족임을 절감해야 했다.
천악은 전영의 말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뚜벅뚜벅!
천악이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전영은 천둥이 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다시 덤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장 자신 있는 신법에서조차 천악에게 진 상황이 아닌가.
그렇지만 전영은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었다. 전영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천악을 향해 검을 들었다.
“네놈이 누군지는 상관없다. 하지만 죽여주마!”
전영은 기합을 내지르며 천악을 향해 검을 출수했다.
“히얍!”
있는 힘을 모두 검에 쏟아 넣자 검에서 무형의 검이 하나 생겨났다. 무형검강을 뛰어넘어야 형성된다는 검의 또 다른 경지인 무형심검(無形心劍)이었다.
완벽한 무형심검은 현경을 넘어 극강의 경지인 생사경에 이르러야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 보이는 전영의 무형심검은 완벽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함에도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무형검강을 뛰어넘고 있었다.
유령검법의 마지막 비기였다. 전영은 유령신(幽靈神)이라고 불리는 무형심검의 검법을 펼치려고 한 것이다.
전영은 몸 안의 내력과 마음을 검에 담았다. 그의 필생공력과 더불어 전신의 기력을 실은 유령신이 천악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무형심검은 마음의 검이라고 불린다. 형태가 보이지 않지만 기와 정신, 몸이 하나가 됐을 때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이 생겨난다.
“죽어랏!”
그의 의념을 모두 실은 유령신이 뻗어나가자 고함을 지르는 전영이었다. 괴기스러울 정도의 기운이 검에 녹아 들어가 있었다.
슈슈슈슈슉!
치치치!
차악!
유령신이 천악의 앞으로 다가가자 번갯불이 번쩍였다. 그 순간에 유령신이 다섯 조각으로 갈라지며 날아갔다. 무형심검이라고 불리는 지고의 경지도 천악이 펼치는 야수의 인에 의해 무참히 갈라져 버렸다.
“크아아앗!”
유령신이 갈라지고 나서도 뻗어 나오는 야수의 인에 의해 전영의 전신이 흉측하게 찢겨나갔다.
앞가슴을 비롯해서 전신에 다섯 개의 발톱 자국이 생겨났다. 살가죽과 핏덩어리가 뜯겨나가 몸 안의 내장기관까지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입은 전영이었다.
고통으로 인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온몸의 핏물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용신갑으로 무장한 강철 같은 육체였지만 베어져 나간 자리는 여전히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어 치료가 되지 않았다.
주르르륵!
전영은 전신의 핏물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과 더불어 의식이 꺼져감을 느꼈다. 몸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소리였다.
천악은 전영의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전영의 앞가슴을 발로 지그시 눌렀다.
“크아아아아아앗!”
바동바동!
전영은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서 몸을 바동거렸지만 천악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슴을 누르자 핏물이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갔다. 마치 풍선을 누르자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넌 죽는다.”
우드드드드드득!
가슴뼈가 서서히 함몰됐다. 한 번에 눌러서 부수는 것이 아니라 지그시 눌러서 서서히 가슴뼈를 부러뜨리려는 것이다.
당하는 전영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생생히 전해지는 고통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었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전영은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이대로 죽기에는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절대적인 강함과 힘을 가졌다 생각했던 자신이 왜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 살…려… 크아아악!”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핏물과 울부짖는 전신으로 인해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전영이었다.
씨익!
살려고 하는 놈의 의지를 보는 순간 천악의 발이 놈의 머리통을 향했다. 이번에는 가볍게 누르는 게 아니라 인정사정없이 찍어 내렸다.
푸아아악!
수박 깨지듯이 머리통이 박살이 나버렸다.
그것이 전영의 마지막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천악은 놈의 시체를 위로 들어올려 갈가리 찢어버렸다. 다시 재생이라는 것을 꿈꿀 수 없도록 완전한 말살을 한 것이다.
꿈틀꿈틀!
살 조각들이 아직도 꿈틀거리는 것을 보니 정말 대단한 생명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일단 모든 것이 찢겨진 이후에는 그 생명력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헛!”
월영은 심장을 소생시키고 난 후 전영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눈을 부릅뜬 월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몸이 떨려오고 공포심이 뇌리를 가득 채웠다. 전영을 잔인하게 죽이는 천악의 모습은 악마 그 자체였다.
덜덜덜!
월영의 머릿속엔 수억 겁이나 떨어져 있는 지저갱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의 화신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월영은 자신이 없었다. 이대로 놈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전영의 신법은 자신보다 더 빨랐다. 그럼에도 도망치지 못하고 결국에는 살 조각이 되어버렸지 않는가.
그런 월영의 눈에 아직 기혈이 뒤틀려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들어왔다.
월영의 눈이 번쩍였다. 치사하지만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월영은 설마 자신이 이런 비열한 방법까지 쓸 줄은 몰랐다. 이런 비참한 기분 또한 생전처음 느꼈다.
월영의 신형이 빠르게 남궁태희를 향해 쏘아져 갔다.
남궁태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악의는 빠르고 강했다.
천악과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몸 안의 기혈은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남궁태희는 순간적으로 창궁무애심법을 폭발적으로 운기했다.
내공의 힘은 반탄력을 최대한으로 빠르게 하여 몸 안을 회전시키는 것이다. 돌고 도는 회전의 힘에 의해 내공의 속도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기의 이동통로가 흔들리게 되면 내공이 가다가 막히게 된다.
남궁태희는 막힌 부분을 무시하고 폭발적으로 기를 운기해서 한순간 파괴력을 검에 집중시켰다. 나중에 무리가 가더라도 지금 검을 펼쳐야 했다. 악의를 가진 월영의 행동이 무얼 의미하는지 짐작했기 때문이다.
남궁태희는 창궁무애검법의 가장 빠른 검법인 창궁섬영(蒼穹閃影)을 휘둘렀다.
검법의 빠름은 무엇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단지 내공이 강해야 하는가? 아니다. 빠름은 군더더기가 없이 공기의 마찰을 줄이고 자신에게 맞는 최단거리를 찾아야 한다.
남궁태희는 악의를 향해 검을 뻗으면서 한 점에 집중했다. 그 한 점을 향해 남궁태희가 아는 최선의 공격을 퍼부었다.
슈슈슉!
타앙!
쾌검이지만 그 안에 실린 검의 힘은 검강이었다.
남궁태희의 검강이 상대방의 검에 부딪쳐서 튕겼다.
남궁태희는 다시 한 번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몸을 부르르 떨던 남궁태희는 몸이 마비됨을 느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월영의 손이 남궁태희의 가녀린 목을 잡았다.
“커억!”
남궁태희는 숨이 막혔다. 조금만 더 손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면 목이 부러질지도 몰랐다.
“계집! 제법이지만 소용없다.”
월영은 남궁태희의 검에서 느껴지는 각오와 더불어 빠른 쾌검의 속도에 방심했다가 낭패를 당할 뻔했다. 그 정도로 남궁태희의 검은 뛰어났다. 만약 월영이 아닌 다른 무인이었다면 남궁태희의 검에 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목을 잡은 월영이 남궁태희를 앞세우며 몸을 뒤로 숨겼다.
삼영살은 급살을 맞은 듯했다. 한순간에 남궁태희가 제압당했다. 그 순간 자신들은 손을 써보지도 못했다.
‘제기랄!’
삼영살은 신경질이 났다. 어떤 수법도 써보지 못하는 무력한 상황이기에 자신들에게 화가 난 것이다. 공력이 증진되면서 가졌던 나태함을 후회해야 했다. 상대의 비겁함보다는 막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살수 아닌가.
천악은 전영을 해치운 후 월영이 하는 행동을 보았다.
결국 인간은 똑같았다. 살기 위해 발악을 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일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짓이지만 막상 절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선택을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자신이 살아 있어야 그 다음이 있는 것이다.
천악이 월영을 향해 다가갔다.
월영은 남궁태희의 목을 잡고서 천악을 위협했다.
“다가오지 마라! 다가오면 이 계집을 죽이겠다!”
천악은 지금의 이 상황을 보고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주마등처럼 떠오른 편린이었다. 그 당시에 느꼈던 기분은 더러웠다.
당시에 천악은 감정에 서툴렀다. 아니, 인간의 감정이 거의 죽어버린 상황이었다. 그저 선악의 기준을 자신의 주관적으로 판단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천악은 감정을 어느 정도 가진 상태였다.
“인질을 살리고 싶으면 네놈의 내공을 부셔라!”
“싫다.”
고민 한번 해보지 않고 거절하는 천악의 모습에 월영은 당황했다. 분노의 감정이 느껴졌다면 월영이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 것 같군.’
내공을 부순다는 것은 일평생 익혀온 무공을 모두 없앤다는 소리였다. 자신조차 남을 위해 그런 짓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월영은 다급하게 다시 말을 정정했다.
“날 이대로 놔준다면 계집의 목숨은 보장해 주마!”
“넌 도망 못 친다. 그리고 내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으니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아무리 네놈이 강해도 이 거리에서 계집을 구하진 못한다.”
“후후후!”
천악이 오랜만에 웃음소리를 냈다. 과거라면 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결국에는 모두 다 죽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자신이 아니었다.
-블링크(공간 이동)!
천악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홀드(정지 마법)!
월영은 그 즉시 남궁태희의 목에 힘을 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순간 몸이 더디게 움직였다. 천악은 블링크 마법으로 월영의 뒤에 나타난 뒤 바로 홀드 마법을 사용했다.
고수에게 찰나는 커다란 기회가 된다. 월영의 몸이 느려지게 된 상황에서 천악이 월영의 팔을 잡고 뽑아버렸다.
우지지직!
“크아아아악!”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팔 관절이 뽑혀진 월영의 입에서 비명성이 흘러나왔다.
천악은 월영의 목을 잡고 밖으로 집어던졌다.
던져진 월영의 몸이 지면을 세 번이나 튕기다가 바위 앞에 부딪치며 멈추었다.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월영이었다. 생으로 팔이 뽑혀진 고통으로 인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