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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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75화
천마를 만나다 (4)
“크윽!”
산을 타고 빠르게 질주하던 천마는 등 뒤에서 흐르는 상처와 핏물로 정신이 가물거렸다. 월영과 전영의 공격의 반동을 이용해서 신법을 전개하기는 했지만 그 위력을 모두 막아낼 수 없었다. 심각한 상처를 입은 천마는 최선을 다해 천마잠형비행술을 펼쳤다.
고금제일의 신법이라고 불리는 신법이지만 놈들의 신법 역시 만만치 않았다. 월영과 전영이 빛살처럼 천마를 쫓았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천마는 도주하는 순간에도 가슴 안에 숨겨 놓은 작은 구슬 세 개를 꺼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챙겨온 것이다.
천마가 가진 구슬은 마교의 전대 장로였던 폭탄마(爆彈魔) 진자량이 만들어놓은 폭탄이었다. 벽력중첩탄(霹靂重疊彈)이라는 것이었다. 벽력탄의 폭발력을 중첩해서 연달아 터지도록 만들었다.
한 번의 폭발이 있은 후부터 연속적으로 다섯 번이나 더 터지도록 되어 있었다. 대신에 위력이 벽력탄보다 작았다. 다만 벽력탄 자체가 백 장 안으로 초토화시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위력이 작다고 해도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천마는 될 수 있으면 이런 기물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무인이기에 무공으로 승부를 내고 싶었지만 상황은 그런 속 편한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우선은 살고 봐야 복수를 할 수도 있었다.
천마는 지금 죽을 수 없었다. 아들이 남겨둔 마지막 후인인 손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야 했다. 자신이 이대로 죽게 될 경우 손녀가 마교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위험했다. 자신조차 죽이려는 놈들이 손녀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마교 내에 알 수 없는 세력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안휘성으로 넘어오면서 마교에 비상연락을 했다. 그런데 아무소식이 없었다. 그 말은 곧 마교 내에서 자신의 이동경로에 대한 보고가 사전에 차단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려면 마교 내에서 장로 이상의 위치에 있어야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이 마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반드시 마교로 돌아가야 했다.
천마는 망설이지 않고 구슬의 뇌관 한쪽을 돌리고 뒤로 던졌다. 벽력중첩탄은 돌리는 형식의 뇌관으로 되어 있고, 많이 돌리고 적게 돌리는 방법에 따라 터지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다.
일단 뇌관을 반 바퀴 돌리고 난 후 던진 천마였다. 벽력탄의 위력은 너무 강해서 강호에서도 금지되어 있었다. 일단 터지면 그 위력을 감당할 고수가 거의 없었다.
월영과 전영은 갑자기 위기감이 들었다. 전속력으로 천마를 쫓는 가운데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라도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무시하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 순간, 천지가 개벽하는 폭발이 일어났다.
투과과과과과광! 투과과과광!
강렬한 폭발력과 더불어 상상할 수 없는 열기가 사방으로 뻗쳐나갔다. 가을이 지나가는 시기라 일단 불이 붙으면 화마(火魔)가 온 산을 다 태우고도 남았다.
월영과 전영은 폭발로 인해 충격을 받았다. 즉시 호신강기를 일으켜 몸을 보호하였다. 하지만 폭발은 한 번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연속해서 다섯 번이나 폭발을 일으켰다. 호신강기가 찢어지는 듯한 충격을 연속으로 받은 월영과 전영이었다. 용신갑으로 변해 있지 않았다면 열기에 녹아버렸을지도 몰랐다.
염마지옥을 방불케 하는 폭발이 사라지고 나서도 불길은 계속해서 번져서 산 전체를 태우기 시작했다. 시커먼 연기와 불길에 의해 월영과 전영은 쉽게 천마를 쫓을 수 없었다.
“개 같은 천마… 네놈을 결코 그냥 죽이지 않겠다!”
월영은 이를 잔뜩 갈았다.
설마 설마했는데 천마는 폭탄까지 사용을 했다. 그들은 천마가 천하최강자이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천마는 궁지에 몰리게 되자 기절초풍할 정도의 수법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가장 까다로운 상대를 만난 월영과 전영이었다. 물불을 가리지 않은 초극의 고수는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감당하지 못할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월영과 전영은 화마와 지독한 연기를 모두 뚫고 전진을 감행했다. 용신갑으로 변한 상태이니 이 정도의 화마와 연기에 큰 위협을 받지 않았다.
쌔애애애앵!
공기가 찢기는 듯한 바람소리를 내며 월영과 전영이 내달렸다. 그들은 천마가 뿌리는 용혈향을 향해 달려갔다.
천마는 무작정 달리지 않았다. 산의 지형을 살피고 난 후 놈들의 기세를 느끼자 다시 이동했다.
‘역시 이 정도로는 막을 수 없나 보군!’
벽력중첩탄의 위력을 몸으로 절감하고 난 후에 더 빠르게 쫓아오는 월영과 전영의 지독함에 탄성이 나왔다.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괴물 같은 놈들이었다.
천마지체를 넘어 마신지경에 이르러 있는 상태에서도 승부를 감당하지 못하는 놈들이었다. 이런 놈들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다니, 정말 알 수 없는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천마는 협곡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협곡 중에서도 가장 가파른 협곡 사이를 바람처럼 이동했다. 천마는 이동하는 협곡 사이에 벽력중첩탄의 뇌관을 돌려 두 개를 모두 던졌다. 그리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협곡 사이의 지형은 아무리 단단해도 벽력충첩탄의 위력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월영과 전영이 협곡을 내달렸다. 그들은 더는 위험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천마라고 해도 더는 어떤 교활한 수작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월영과 전영은 또다시 당하고 말았다.
투과과과과광! 투과과과광!
연속적으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협곡 안으로 이미 들어간 상태였다.
양 협곡의 가파른 지형이 폭탄의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우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산사태가 일어났다. 월영과 전영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바위와 흙을 모두 다 피할 수는 없었다.
“이런 젠장!”
“도대체가!”
월영과 전영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산사태로 인해 완전히 매몰될 위기였다. 용신갑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산사태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말할 틈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협곡 안에서 벗어나야 했다.
“제기랄……!”
월영과 전영의 말이 산사태에 의해 같이 묻혀버렸다.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 매몰이 되어버린 것이다.
천마는 안심하지 않았다. 한시라도 더 빨리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신법을 전개하다가 다시 걸었다. 천마지체에서 벗어나 마신지경에 이른 후에 있는 후폭풍이 상상 이상이었다. 몸 전체가 부서져 나갈 것 같은 충격을 받은 천마였다.
“크으으윽!”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천마였다. 또한 등 뒤에 나 있는 상처와 내상으로 인해 걷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월영과 전영이 조금만 더 빨랐다면 손쉽게 천마를 죽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천마는 상태가 좋지 못했다.
상상할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이 천마를 괴롭혔다. 이를 악물며 다물었던 천마지만 신음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터벅! 터벅!
천마는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길이 난 곳으로 걸었다. 천천히 걸었지만 어느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지고 있었다.
‘천마지체의 후유증이 이 정도라니… 너무 심하다.’
가물거리는 정신의 한 자락을 잡고 버티는 것도 한도가 있었다. 계속적으로 팽팽하게 긴장을 하게 될 경우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유향산을 벗어나서 밖으로 나온 천마는 숨을 몰아쉬며 걷다가 결국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천하의 천마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인간이었다.
* * *
따그닥! 따그닥!
느긋하게 움직이는 사두마차가 유향산을 벗어나고 있었다. 사두마차를 모는 마부는 진삼이었다.
진삼의 옆으로 녹림귀산 조종신까지 같이 탔다. 원래는 조종신도 마차 안에 들어와도 된다고 천악이 말을 했지만 조종신은 마부석이 더 편하다고 했다. 천악도 굳이 편하지 않다는데 같이 있을 필요가 없어서 그냥 놔두었다.
사실 조종신은 천악이 두려웠다. 바로 몇 시진 전에 참상을 벌인 천악과 마주보고 앉을 용기가 없었다. 두려운 나머지 진삼과 같이 앉아서 가게 되었다.
진삼과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놀란 것은 조종신이었다. 한낱 마부였지만 진삼은 그런 잔인한 광경을 보고서도 충격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자네는 아무렇지 않은가?”
“뭐가 아무렇지 않다는 겁니까?”
“사람이 죽었네. 그것도 참사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아무렇지 않단 말인가!”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산적이나 악인들이 죽으면 선량한 양민들이 더 편해지지 않습니까.”
“자네, 제정신인가!”
“저는 제정신입니다. 제가 왜 그런 놈들 걱정을 해야 합니까? 전 제 장주님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진삼은 산적들이나 악인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착하지 않았다. 그도 산적들이 얼마나 많은 양민을 죽였는지 보고 들었다. 그런 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선량하게 살아가는 자신과 같은 자들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생각했다.
진삼도 천악의 성격에 물들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종신이 한숨을 쉬며 대화를 그만두었다. 주인이나 하인 모두 측은지심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냉정한 위인들 같았다.
“어, 저기 사람 아닙니까?”
진삼이 길목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조종신도 진삼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삼영살도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고 천악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쓰러진 사람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지. 데리고 와라.”
“알겠습니다, 장주님.”
삼영살이 쏜살같이 쏘아져 가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중년인을 마차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천악은 중년인을 마차 안 침상에 올려서 눕힌 후 상처보다는 우선 가지고 있는 검을 보았다. 검집은 특별하게 고풍스럽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한 검집이었다. 하지만 재질은 달랐다. 검집의 재질이 만년교룡의 힘줄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상당히 질기고 마모성이 적어 보였다.
차앙!
천악이 검을 뽑아서 검면을 살폈다. 검면에 글자가 몇 자 적혀 있었다.
“만마앙복(萬魔仰伏) 천마현세(天魔現世)…….”
만인의 마인이 굴복하는 천마가 현세에 재림한다는 소리였다. 모든 마인들의 정점이라는 글이 검에 적혀 있었다.
천악이 읽어나가자 듣고 있던 여인들 세 명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천악이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뭔데 그런 표정들이지?”
“읽고도 몰라요?”
“몰라.”
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저 ‘천마’라는 두 글자가 마음에 와 닿을 뿐이었다.
여인들은 그 글자가 뜻하는 바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마교의 신물인 천마검이에요.”
“마교의 천마검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제갈지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 이유보다 천마검을 가진 이 사람이 누구냐는 거예요? 대대로 천마검을 가진 자는 교주이자 당대의 천마라는 말이 되잖아요.”
“그럼 이 사람이 천마일 수 있다는 말이 되는군.”
천악은 중년인의 상처를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전에 무영이 죽으면서 남긴 말 중 하나가 바로 천마를 죽인다는 것이었다. 놈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꼴을 절대 볼 수 없는 천악이었다. 원수 같은 놈들 잘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천마를 살려야 했다.
천악은 우선 중년인의 등 뒤에 난 외상을 치유했다. 힐링 마법을 사용해서 상처를 치료하고 피가 멈추도록 했다. 그리곤 단전에 손을 대었다. 단전은 모든 기가 모이는 중추적인 핵이었다. 핵이 얼마나 손상되어 있는지를 살피는 중이었다.
‘본원진기가 많이 상했군.’
단전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중년인이 어떤 악전고투를 겪었는지가 보였다.
단전에 기를 집어넣어 보았다. 기운이 도는 혈맥을 따라 단전의 아래 임맥과 독맥에 기를 보내 다시 단전으로 돌려보냈다. 기경팔맥과 십이경락의 길은 불완전하긴 해도 운기요상을 하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이대로 단전의 본원진기를 채워주면 스스로 알아서 회복할 것이다.
‘상당한 자다.’
이제까지 천악이 만난 자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를 꼽으라면 바로 이 앞에 누워 있는 중년인일 것이다.
지켜보던 여인들 모두 놀라고 있었다. 본원진기는 남이 채워줄 수 없는 것이었다. 본원진기를 다른 말로 하면 생명력이었다. 생명력을 나눠준다는 것은 목숨을 상대방에게 준다는 소리였다.
그녀들의 생각과 다르게 천악의 생명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끈질긴 생명력은 우주와 맞먹을 정도로 끝이 없다. 이 정도 나누어준다고 해서 천악이 약해지는 일은 생겨나지 않는다.
“됐군. 그것보다 밖에 손님이 왔나 보군. 아주 익숙한 손님이야.”
천악의 입 꼬리가 유례없이 올라가 있었다.
오싹!
남궁태희와 금은혜, 제갈지는 천악의 웃음에 소름이 돋았다. 그저 웃는 것이 아니었다. 웃음에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천악이 이런 웃음을 지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옷은 넝마가 되어 있었고 얼굴과 전신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이제 막 하천에서 나온 거지같은 꼴의 청년 두 명이 천악의 마차를 가로막았다. 그들은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를 질렀다.
“천마, 나와라!”
우우우웅!
대기가 흔들릴 정도로 소리는 굉장했다. 너무 강해서 마차가 흔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끼이익!
반면에 너무 태연하게 천천히 마차의 문을 열고 나오는 천악이었다.
천악이 한껏 미소를 지으며 놈들을 바라보았다. 만날 사람은 만난다는 옛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
“아주 잘 왔다.”
천악의 얼굴에는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로 하얀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