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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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70화
녹림은 재수가 없었다 (2)
곽천진의 기운이 변하자 산적들은 소름이 돋았다.
오싹!
그제야 대응삼을 비롯한 산적들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압박을 받아야 했다.
곽천진은 마기를 될 수 있으면 뿜지 않으려고 했다. 마기를 뿜게 되면 그 기척을 월영과 전영이 알아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헙! 이게 무슨……?”
뎅강!
대응삼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고 옆에서 놀라고 있던 산적들의 몸뚱이가 가볍게 반으로 쪼개졌다.
파팟! 주르르륵!
천마가 일단 살수를 쓰자 산적들은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른 채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천마의 일 수가 가볍게 움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너무 빨라서 그렇게 보인 것뿐이었다.
“어? 살… 커억!”
마지막 남은 산적이 뒤로 주춤하며 살려달라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숨이 끊어졌다.
녹림마제 철사종은 술병을 들고 술을 마시다가 그 광경을 보고 술을 토했다.
푸웃!
“저게 뭐야?”
철사종은 지금 자신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헛것을 본 줄 알았다. 그런데 철사종만이 놀란 것이 아니었다. 4대 산채의 채주들과 호법들까지 모두 놀라서 그 참혹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저 개자식이 뭐 한 거야?”
“보통 놈이 아닌 모양입니다.”
“빌어먹을 놈이 감히 내 수하들을 죽였단 말이지!”
철사종은 곽천진의 살수에 살기가 치솟았다. 감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자신의 눈앞에서 수하들을 죽이자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산적들 모두가 동료가 죽은 것에 살기를 뿜어내었다.
“뭐 해! 저놈을 죽여!”
철사종 본인이 먼저 나서는 것은 체신이 없어 보였다. 우선은 수하들이 먼저 나서는 것이 순서였다.
녹림마제 철사종, 4대 산채의 채주와 호법들이 일어서자 그 뒤로 아흔 명의 산적들이 따랐다. 모두 일어나서 곽천진을 둘러싸려고 했다. 놈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철사종의 생각과 다르게 곽천진은 천천히 걸어서 산적들을 향해 오고 있었다.
저벅저벅!
“이 미친놈이 정말 죽여달라고 하는 거지?”
철사종은 걸어오는 곽천진의 행동에 더욱 분노했다. 겁을 먹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다가오다니, 자신을 철저히 무시한 행동이었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산적들 모두가 광분 할 정도로 분노했다.
“저놈을 죽이는 놈에게 황금 백 냥을 주마!”
“와아아아!”
철사종은 수하들의 사기를 조종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산적들이 저마다 먼저 놈을 죽이려고 기세를 뿜어내었다. 그러자 철사종은 자신이 너무 분위기 탔다는 생각에 후회를 했다.
‘너무 크게 불렀나?’
흥분하면 자신도 모르게 수위 조절을 잘 못하는 철사종이었다. 황금 백 냥은 산채의 한 달 생활비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었다. 그러나 일단 말을 했으니 다시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산적들은 활화산 같은 기세를 뿜어내었다. 무인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기세를 정면으로 맞이하면 주춤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녹림마제 철사종은 모르고 있었다, 상대가 보통의 무인이 아니라 천하의 천마라는 것을. 천마가 고작 산적들의 기세에 주춤할 위인인가! 생각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저 죽는지 모르고 덤벼들려는 산적들을 보고 곽천진은 살기를 가다듬다가 뿜어내었다. 무형의 기세가 주변의 기운과 동조를 하더니 유형화된 기운으로 만들어졌다. 살을 에는 듯한 강렬한 무형살기가 곽천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가 산적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휘이이잉!
“헉!”
“커억! 억!”
후덜덜덜!
천마의 무형의 살기를 맞은 산적들 대부분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더군다나 살기가 어찌나 강렬한지 실력이 낮은 산적들부터 핏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녹림마제 철사종은 기겁했다. 그조차도 무형의 살기에 버티지 못하고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엄청난 고수다!’
철사종은 살기만으로 1백 명에 달하는 산적들 모두가 주저앉았다는 것에 할말을 잃었다.
이놈들은 녹림에서도 녹림절예를 익힌 정예 중의 정예들이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버티지 못했다. 이런 살기를 발산하는 자는 중원십대고수 중에서도 최강자의 반열에 드는 오천존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못… 건드렸다.’
저런 고수에게 돈이 없으면 검을 내놓으라고 했으니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총채주, 이제 어떻게 합니까?”
4대 산채 중에 대표로 광마투귀 편승찬이 물었다. 그도 버티기 힘든지 힘줄이 불거져 나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런 살기를 뿜어내는 고수에게 수가 많고 적음은 하등의 소용이 없었다.
철사종은 그래도 참으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 장렬하게 싸우다 죽을까, 아니면 초극의 고수에게 한 번만 사정을 봐달라고 빌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장렬하게 싸우면 녹림인의 기상을 보여주어 영광스러운 죽음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수에게 고개를 숙이면 자신은 녹림마제는커녕 녹림황구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넙죽 아무데서나 고개를 수그리고 꼬리 흔드는 누런 개새끼라고 불릴 것 같았다. 당연히 남자라면 일단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철사종은 고개를 수그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 않나. 내가 무슨 대협도 아니고 고개 좀 숙인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헤헤… 대협, 저희는 그저 조금…….”
녹림마제 철사종이 비굴하게 곽천진에게 사죄를 하려고 할 때였다. 이미 고개는 숙여졌고 손은 공손하게 모아진 상태였다. 말까지 다 나온 상태에서 갑자기 곽천진이 빠르게 녹림마제 철사종을 스쳐 지나갔다. 너무 빨라서 아무도 곽천진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비굴한 짓을 이미 하고 난 후 남겨진 철사종은 찬바람이 불어 공허함을 맛보아야 했다.
‘제기랄! 가려면 하기 전에 갈 것이지 쪽팔리게……!’
모든 상황을 지켜본 4대 산채의 채주들과 호법들이 싱거운 표정을 지었다. 철사종은 그것이 꼭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하! 우리의 기세를 보고 놈이 겁먹고 도망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요.”
“그…럴 겁니다.”
“그러…하겠지요.”
철사종의 말에 채주들도 떨떠름하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들도 좀 전에 봤던 무시무시한 고수를 생각하자 오줌을 지릴 뻔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누구야?’
철사종은 좀 전에 곽천진이 누군지 의문이 들었다. 허름한 마의를 입은 중년인이었기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그의 압도적인 신위를 생각하자 아직도 두려움이 솟아났다. 그 정도의 무시무시한 무인을 만나고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이 들기도 했다.
* * *
곽천진이 사라지고 2각이 지나고 나자 두 명의 청년이 빠르게 모습을 드러냈다. 월영과 전영이었다.
사실 천마가 화를 참고 사리진 이유는 바로 월영과 전영이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했는데 녹림인들 때문에 다시 거리가 좁혀졌다.
월영과 전영은 나타나면서 투덜거렸다.
“제길, 또 한 발 늦었네.”
“쥐새끼처럼 잘도 빠져나가는구나.”
“그러게 말이야. 용혈향의 향기가 갑자기 약해질 줄 누가 알았겠어.”
“괜히 천마가 아니었군. 그새 용혈향에 대해 짐작한 것 같아. 빨리 찾지 않으면 일이 틀어질지 모르겠어.”
천마가 사용한 마늘이 용혈향의 향기를 많이 약화시킨 모양이었다.
“어서 가자!”
“그래.”
월영과 전영이 녹림인들을 무시하고 천마가 간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했다.
녹림마제 철사종은 애송이 두 명이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들을 무시하자 신경질이 났다. 좀 전에 무시무시했던 고수는 은거기인이 갑자기 등장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지금 나타난 청년들은 약관을 갓 넘어 보이는 놈들이었다. 아무리 잘 쳐줘도 절대고수라고 불리기에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이대로 무시당한 채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녹림의 기상을 보여주려고 나온 이번 일에서 기상은커녕 개 무시만 당하고 물러설 순 없는 일 아닌가. 구겨졌던 자존심을 회복하고 다시 녹림의 무서움을 애송이들에게 보여줄 당위성을 느꼈다.
“이 잡것들이, 우리가 개나 소나 다 무시하는 곳인 줄 알아!”
“그렇습니다. 이놈들마저 그냥 보낼 수 없습니다. 저희들이 직접 움직이겠습니다.”
4대 채주의 채주들도 떨어진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철사종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좋다! 가서 녹림의 무서움을 보여주어라!”
“와아아아악!”
잔뜩 가라앉은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서 소리를 지르는 녹림인들이었다.
“뭐야 이 잡것들은?”
월영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쓰레기들의 함성에 어이가 없었다. 그저 산길을 지나가려는 자신들에게 일부러 죽으려고 달려드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냐.”
전영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산적 놈들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가지고 있는 것 다 내놔라! 없다면 목숨은 없다!”
산적들의 목소리가 유향산 전체로 울려 퍼졌다.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에 월영과 전영은 기가 막혔다.
“전영,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게 뭔 소리냐?”
“우리를 턴다고 하는 것 같은데?”
천마도 한 수 아래로 치부하던 월영과 전영이었다. 그런 자신들에게 고작 산적들이 돈을 달라고 하다니, 단체로 미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찮은 것들이 죽고 싶다 이거지!”
죽고 싶다는데 그냥 지나칠 월영이 아니었다. 월영이 검을 뽑아 그의 성명절기인 월영검법의 월혼광살참을 출수했다.
추추추축! 꽈과과과광!
“크아아아악!”
앞에서 달려들던 서른 명의 산적들이 공중 분해되어버렸다. 월영의 월혼광살참이 산적들의 신체를 산산조각으로 분해했다.
그 뒤를 이어 달려들던 산적들 대부분이 그 믿지 못할 광경에 경악하고 저마다 뒷걸음질을 쳤다.
덜덜덜!
서른 명이 순식간에 육편으로 변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 뒤에 다가오던 산적들 스무 명까지 부상을 입고 뒤로 날아가서 바닥을 뒹굴었다. 그저 그런 부상이 아니라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처였다.
남아 있는 산적들 모두 몸을 심각하게 떨었다. 그저 그런 애송이들이 아니라 사신(死神)들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데 전혀 망설임 없는 무시무시한 고수들을 또다시 건드린 것이다.
꾸울꺽!
녹림마제 철사종을 비롯한 4대 산채의 채주들과 호법들이 무섭도록 광폭한 광경에 소리가 나도록 침을 삼켰다. 그나마 남은 산적들 역시 사시나무 떨 듯이 몸을 떨었다. 도저히 덤벼들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다.
철사종은 자신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나조차도 저토록 강렬한 공격에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정말 왜 이래?’
이길 수 없다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벌어지자 철사종은 또다시 고민했다. 여기서 한 번 더 고개 숙이고 사과를 하느냐, 아니면 이번에는 정말 녹림의 기상을 보여주느냐의 기로에 서야 했다.
‘제길! 한 번 숙인 몸, 다시 숙인다고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죽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철사종이 이번에도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그리고 말을 전달했다.
“헤헤! 대협, 저희는 그저 조금…….”
슈슉!
철사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월영과 전영이 신법을 전개해 자리를 이동했다. 너무나도 빨라서 아무도 그 행동을 저지하지 못했다. 아니, 제지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철사종은 후회막급이었다. 불과 2각 전에 한 행동을 고스란히 또 반복해야 했는데, 역시나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사라져버렸다.
‘제기랄! 가려면 빨리 갈 것이지, 왜 꼭 시작하면 가는 거야!’
철사종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산적들의 모습에 할 말이 없었다.
상황이 너무 처참했다. 처음에 데리고 온 1백 명의 수하들 중에 살아남은 수가 예순 명이었고, 그 중 부상자가 스무 명이나 되었다. 제대로 운신할 수 있는 수하들이 마흔 명밖에 남지 않았다.
최정예들이었다. 무림 일류 문파라고 해도 정면으로 붙으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고작 세 명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고 말았다.
무공을 모르던 녹림귀산 조종신이 멀찍이서 모습을 드러냈다. 군사는 원래 대결이 시작되면 빠져주는 것이 관례였다. 군사는 계략을 짜고 상황에 맞게 작전을 지시하는 사람이지 대결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종신은 나타나서 묵묵히 상황을 살폈다.
‘제길! 내가 영업할 때부터 알아봤어. 목적을 위해서는 숨죽이고 기다리는 것이 병법의 기초이거늘!’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 녹림의 정예들을 모아서 데리고 왔음에도 이들이 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비참하게 숨을 거둔 것뿐.
철사종은 이미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제정신 차리려면 시간 좀 걸릴 것처럼 보였다.
4대 채주들과 호법들 역시도 망연자실해서 누구 하나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조종신 자신이 직접 수습해야 했다.
“총채주님, 우선 시체들을 수습하고 본채로 돌아가시지요.”
“음… 그래야겠지?”
이대로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너무 많은 수하가 죽었다. 시신이라고 해봤자 육편으로 변한 상태니 이대로 묻어주는 것이 더 나았다. 녹림마제 철사종이 총채주가 된 후 처음으로 겪는 뼈아픈 사건이었다.
수하들을 잃은 것도 문제지만 자신의 위상도 너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대로 녹림본채로 돌아가면 돌아오는 것 없이 총채주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몰랐다.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철수’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오지 말았어야 했단 말인가!’
녹림의 미래를 위해서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우고 녹림의 정예들을 데리고 2왔다. 계획했던 대로 돼야 정상이었다. 정말 하늘을 원망하고 싶은 철사종이었다.
“어쩔 수 없다. 모두 정리하고 본채로 돌아간다.”
“총채주님의 명령이다. 모두 정리하고 철수한다!”
동료들의 시신들을 땅에 묻고 난 후에 떠날 준비를 했다. 그동안에도 철사종은 정신이 멍했다. 한순간 돌풍이 지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그에 못지않게 4대 채주들과 호법들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