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69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69화
녹림은 재수가 없었다 (1)
백 명의 무리를 이끌고 산길에서 기다리고 있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산적들이었다. 입고 있는 옷만 봐도 딱 산적들이라고 할 만했다. 우락부락한 근육들과 마구 기른 수염과 털들, 생전 손질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 같은 머리카락까지 어느 하나 산적이 아닌 듯한 모습이 없었다.
그 중심에 한 명의 우람한 중년인이 서 있었다. 그가 바로 5만 녹림인들의 제왕인 녹림마제 철사종이었다.
철사종의 옆으로 4대 채주들과 호법, 그리고 군사가 나란히 서 있었다.
“마차가 이곳으로 오는 게 맞아?”
철사종이 군사인 녹림귀산 조종신에게 물었다. 조종신은 사두마차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나서 그들이 지나갈 길목을 확인했다.
조종신은 나름대로 뛰어난 군사였다. 그가 과거에 낙방한 서생이라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귀계를 부리거나 전투에 대한 식견이 제법 되었다.
“물론입니다, 총채주님. 황산을 여행하고 나서 다시 합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기 유향산의 길목을 지나야 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놈들이 제 발로 이 길에 나타날 겁니다.”
“그래, 나타나기만 해봐라.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철사종은 전형적인 녹림인이었다. 무공이 강하기는 하지만 성급하고 화통했다. 그래서 기다리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철사종은 하루 정도를 기다리고 나자 심통이 났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사두마차가 오지 않자 지루했다.
“영업하자.”
“예? 설마 여기서 영업을 하자는 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놈들을 조용히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됐어. 어차피 녹림의 기상을 보여주는 일, 화끈하게 하면 돼.”
그때부터 이곳 유향산을 지나는 놈들에게 통행세를 걷기 시작했다.
조종신을 빼고 그 일에 대해 별달리 불만을 가진 이들은 없어 보였다. 산적이 사람들 돈 뜯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이 매일 하는 일을 하는데 그게 이상할 리 없었다.
유향산은 구화산을 통하는 곳에 위치했다. 즉, 사람이 종종 지나가는 길목이라는 소리였다. 구화산은 예로부터 4대 불산으로 이름이 높은 곳이다. 곳곳에 절들이 있기에 공양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돈을 가진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생각보다 짭짤하군.”
“그렇습니다. 이곳에 우리 산채가 들어서면 실적이 제법 나오겠습니다.”
녹림마제 철사종의 말에 서산채주 육장홍이 맞장구를 쳤다. 다른 채주들과 호법들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녹림귀산 조종신만은 표정이 굳어 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여기서 산적질 하면 소문이 나서 그놈들이 안 올 수도 있는데…….’
산적들이 출몰하면 금세 사람들의 귀에 들어간다. 자신들이 지금 이러고 있으면 인근에 산적들이 출몰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는 소리는 사두마차를 탄 놈들도 소문을 들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이곳에서 기다리는 일이 말짱 헛수고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조종신은 그만두라고 하고 싶었지만 녹림마제 철사종은 막는다고 하지 않는 위인이 아니었다. 자신이 필요해서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것은 조종신이 무공을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기랄!’
상황을 이렇게 몰고가놓고 나중에 사두마차가 오지 않으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울 것이 분명했다. 예전부터 잘되면 지 탓이고 안 되면 무조건 자신 탓으로 돌리는 위인이었다.
‘제길! 무공을 익히든가 해야지.’
조종신이 안절부절못하는 것과는 다르게 사냥해 온 고기와 술을 마시며 느긋하게 천악 일행을 기다리는 녹림마제 철사종과 수하들이었다. 웃고 떠들며 거들먹거리는 전형적인 녹림인들 사이에서 조종신만이 애를 태우고 있어야 했다.
‘잘들 논다. 왜 녹림이 안 되는 줄 알아? 이래서 안 되는 거야.’
이렇게 어이없는 짓을 하면서 천하제일을 꿈꾸다니, 세상을 너무 우습게보는 게 아닐 수 없었다.
* * *
“휴우우!”
숨을 가다듬은 중년인은 붕대로 감은 상처를 살펴보았다. 세 번이나 옷을 갈아입고 변장을 하면서 몸을 피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추적을 따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상처와 내상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하면 놈들이 어느새 거리를 좁혀서 다가왔다.
중년인은 바로 월영과 전영에게 상처를 입은 천마 곽천진이었다. 어느새 호북성에서 안휘성까지 왔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군.”
지금까지 오면서 자신의 기척을 숨기기 위해서 흔적을 지웠다. 오는 동선을 여러 갈래로 만들어서 혼선을 주기도 했지만 월영과 전영은 전혀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곧장 따라붙었다. 그렇다고 놈들이 이곳에 정보조직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비선을 이용하지도 않으면서 이토록 빠르게 추적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무언가를 남겼다는 소리였다.
천마는 초극의 무인이었다. 그런 자신의 감각은 천리추종향(千里追從香)이라고 해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다. 그런데 지금 몸에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잠시 심사숙고했다. 월영과 전영을 만났을 당시부터 고심을 하면서 움직였다. 당분간은 거리를 조금 벌려서 시간이 있었다. 무턱대고 빠르게 가려 할수록 기력만 낭비된다. 놈들도 시간에 따라서 운기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틈에 거리를 벌리기보다는 자신도 쉬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었다. 무리하게 도주하다가는 어느새 먼저 몸이 버티지 못하게 된다. 그 점을 천마는 간과하지 않았다.
“놈들에게서 묻은 것이라고는 피뿐인데, 이 피에 뭔가가 있을지 모르겠군.”
무슨 향인지 알 수 없지만 놈들은 자신들이 뿌린 피의 향을 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모양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놈들을 뿌리치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지칠지 몰랐다. 심장이 뚫리고도 살아나는 괴물 같은 놈들이니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향을 지울 수 없으면 당분간이지만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향을 중화시켜야 했다. 향을 중화시키는 것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시약이지만 시약은 특수한 약물이었다. 곽천진이라고 해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마늘이었다. 마늘은 향을 중화시키고 독특한 향을 풍긴다.
“이게 맞는다면 시간을 더 벌 수 있겠지.”
곽천진은 일반 민가로 스며들어 마늘을 찾아내 피가 묻은 곳에 발랐다. 마늘향이 전신에 퍼지자 곽천진은 코가 매웠다.
아직 확신할 수 없기에 곽천진은 조심했다. 거리를 더 벌려서 시간을 번 다음 운기를 해서 상처가 완치되면 역공을 취할 생각이었다.
곽천진은 민가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길을 천천히 걸어서 상처가 터지지 않도록 했다.
산을 걸어가는데 앞을 가로막는 놈들이 있었다. 족히 1백 명이나 되었고, 그 중에서는 산적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을 정도로 실력이 좋은 놈들까지 있었다. 일부러 이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다면 저 정도 수의 산적들이 모여 있을 수 없었다.
‘초절정에 달한 녀석이 한 명에다가 절정 수준이 여섯 명이나 된단 말이지? 감히 산적 놈들이 날 막는단 말인가.’
천마 곽천진은 오해를 하고 말았다. 자신이 가는 길목을 차단하고 있는 놈들이 산적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안휘성까지 도주하면서 곽천진은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었다. 고작 애송이 두 명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서 산적 놈들까지 자신을 노린다고 생각하자 울화가 치밀었다.
그냥 놈들 몰래 지나가려고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런 놈들 정도는 몇 수 정도 휘둘러 주어도 괜찮을 것이라고.
‘부상을 당했다고 해서 날 너무 만만히 보는구나.’
천마 곽천진의 결심을 녹림마제 철사종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그저 그런 중년인으로 생각하고는 당연하게 애들을 시켜 털도록 명령했다.
녹림마제 철사종을 비롯해 4대 채주들은 사두마차를 기다리는 중 허름한 마의를 입은 중년인이 나타나자 별 볼일 없는 놈이라고 생각을 했다. 저런 놈을 털어봤자 별로 나올 것 없어 보였다.
“털어봤자 먼지도 나올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그렇습니다, 총채주.”
흑백쌍도 육장홍이 철사종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옆에 있는 폭뢰마검 이겸이 다른 말을 했다.
“검을 들고 있는데 무림인인 것 같습니다.”
“호오!”
요즘 들어 검만 들고 무림인 행세를 하려는 놈들이 있었다. 특히 녹림을 우습게보고 무림인 행세를 하는 놈들도 있었다. 검을 들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무림인인 줄 알고 도망친 겁 많은 산적 녀석 몇 놈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이 일로 인해 녹림은 상당한 망신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거짓 행세도 백에 한 번 정도 통할 뿐이었다. 개나 소나 검 들었다고 녹림이 호락호락 당해 줄 정도로 바보들만 모인 곳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녹림이 위축되어 있는 것이 불만이었던 철사종은 심기가 뒤틀렸다.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보내줄 수도 있지만 괘씸해서라도 그냥 보내주기 싫었다.
“죽이지는 말고 녹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줘라.”
“알겠습니다, 총채주님.”
철사종이 눈치를 주자 육장홍은 수하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육장홍의 명령에 산적들 열 명이 중년인을 가로막았다. 산적들은 기세등등하게 살기를 뿜어내었다. 하지만 그게 잘못이었다.
천마 곽천진은 기가 막혔다. 변변찮은 산적들이 자신의 앞을 막아섰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공격한 줄 알았건만 이놈들은 자신이 목적이 아닌 모양이었다.
백 명이 죽자 살자 기세를 뿜으며 덤비려고 했다면 그나마 오해를 했겠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곽천진은 자신이 너무 앞서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무의미하게 살생을 하는 취미는 없었다.
“비켜주게.”
산적들은 곽천진의 정체를 몰랐다. 만약 알았다면 감히 고개 빳빳이 들고 살기를 뿜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체를 아는 순간 오체투지하고 고개조차 들지 못했을 놈들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천마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천하최강자라고 불리는 천마의 얼굴은 일반 무인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천마가 자신이 오해했음을 알고 그냥 지나가려는 관대한 마음을 먹었건만 산적들은 그 구명줄마저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산적들 중에 대응삼이 웃긴다는 듯이 곽천진에게 호통을 쳤다.
“이거 아주 제정신이 아닌가 보구나. 우리가 누군 줄 알아? 산 중 호랑이도 울고 간다는 천룡채의 호걸들이다! 살고 싶으면 가진 것 다 내놔라.”
곽천진은 지금 줄 것이 없었다. 돈이 있지만 천하의 천마가 산적한테 삥을 뜯기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가진 게 없으니 그냥 보내주게.”
곽천진은 많이 참고 있었다.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별 거지 같은 것들이 계속 앞을 막고 보내주지 않으려 하자 짜증이 치밀었다.
평소 성격이 차분하고 현명한 천마였지만 부상과 도주, 그리고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해 예민해진 터라 인내심이 많이 줄어 있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그가 아무리 차분한 천마라고 하지만 그는 천마, 즉 모든 마교인들의 정점에 서 있었다. 마인은 무공을 익힐수록 호전적인 편이었다.
“이게 지금 누굴 놀리나! 들고 있는 검은 뭐야?”
곽천진은 자신의 검을 달라는 대응삼의 말에 참고 있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천마의 자존심이자 교의 신물인 천마검을 달라는 말을 듣고 천마가 참을 리 없었다.
대응삼은 곽천진이 분을 참으며 몸을 떨자 겁을 먹은 줄 알고 더욱 의기양양했다.
“얘들아, 이놈에게 산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주자!”
“좋지. 크크크! 곱게 달랄 때 주는 게 좋을 거야!”
곽천진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더는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