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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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54화
남궁세가 비무대회 (1)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여명이 서서히 만천하를 비치기 시작하자 어둠이 금세 저 먼 지평선으로 사라져갔다. 곳곳에 아침을 알리는 닭울음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풍운장원도 날이 밝아오자 분주하게 사람들이 움직였다. 이제껏 숨죽였던 장원이 다시 활기차게 변해 가고 있었다.
인부들은 어제 마무리 짓지 못한 공사를 다시 시작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주방장과 장원을 청소하는 하인들의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다.
천악도 천천히 일어나서 세안을 했다. 물은 추홍이 떠온 상태이기 때문에 세안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풍운장원의 주인이기에 그는 바쁘지 않다. 그저 지시를 내리면 아랫사람들이 척척 해결하기에.
천악은 세안을 끝내고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는 거실에서 이루어졌고, 그 자리에 당지독과 금은혜, 추상락, 그리고 아이들까지 같이 자리했다. 천악이 그들과 같이 식사를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모이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 실력도 볼 겸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서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자고 한 것뿐이었다.
당지독은 전날 천악을 도발했던 청풍에 대해서 말을 했다.
“그놈이 벼르고 있을 텐데… 죽이지는 마라.”
“어차피 예선이 끝나고 나면 만날지 안 만날지도 모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절 노리는 놈뿐입니다.”
“하긴, 네가 우승 같은데 신경 쓰겠냐마는 적당히 하거라. 네가 수위조절 못 하면 여러 사람 죽는다.”
“재차 말하지만 저는 아무나 죽이는 살인마가 아닙니다.”
물론 타당한 이유가 있을지 몰라도 천악의 손속이 과할수록 죽어나가는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적당히 하라고 말을 했지만 그게 지켜질지 의문이 드는 당지독이었다.
“저기… 저도 가면 안 됩니까?”
추상락은 이번 비무대회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구경하고 싶기는 했다.
“안 돼.”
단호하게 거절해 버리는 천악이었다. 그 즉시 추상락은 입을 다물었다.
호안의 인상과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기가 죽어 있는 추상락을 당지독이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천악은 전날 당지독에게 장원을 지키라고 했지만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추상락이 장원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당지독의 생각은 달랐다.
“천악아, 저놈도 데리고 가거라. 장원이라면 내가 잘 지키마.”
“흠… 좋습니다. 하지만 당 어르신은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이다.”
“주인님, 암제 어르신, 고맙습니다!”
아침을 먹고 난 후 바로 남궁세가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동행자는 금은혜와 추상락이었다. 금은혜는 둘이 가고 싶었지만 결정권이 없었다.
바글바글.
인산인해라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이 커다란 땅덩어리에 사는 사람들이 남궁세가 앞마당에 다 모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비무대회를 구경하기 위해서 모여 있었다.
이번 비무를 위해서 남궁세가는 외부에 비무장소를 마련했다. 남궁세가가 아무리 커도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남궁세가의 정의검 이명환이 예선을 치른다는 말을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전했다. 내공을 사용해서 말을 했기에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예선을 시작합니다. 대기자들은 순서에 유의해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호명하는 번호와 이름에 따라서 예선이 시작되었다.
예선에 참가하는 무인들의 수만 해도 4천 명이나 되었다. 이들이 모두 대결해 본선에 오르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므로 어중이떠중이의 쓰레기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걸러내 옥석을 골라야 했다. 따라서 이번 비무대회 예선은 세 가지 관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 첫 번째는 내공의 시험이었다. 통과하기 위해선 최소한 1갑자의 내공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 시험을 위해서 청강석(靑强石)을 준비했다.
청강석은 푸른색을 띠고 있는 옥돌로 표면에는 푸른 나뭇결무늬가 있었다. 푸른색이 짙을수록 그 강도가 뛰어나고 귀한 보석으로 인정받는 청강석은 일반 무인이 온 힘을 다해 주먹으로 친다고 해도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이 시험에서 무인들은 한 치(3㎝)의 흔적을 남겨야 했다. 제대로 된 무인이 아니면 통과하기 쉽지 않은 관문이었다.
두 번째는 신법이었다. 신법을 사용함에 있어서 거리의 제한이 있었다. 서 있는 자리에서 5장을 뛰어넘어야 했다.
신법은 무공을 사용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내공을 사용하는 데 막힘이 없어야 제대로 된 신법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한 줌의 진기로도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진법이었다. 무인은 위험을 달고 산다. 진법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얼마나 침착하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진법으로 채택이 된 것은 오행진(五行陣)에 사상(四象)의 묘리를 가미한 오행사상진(五行四象陣)이었다. 오행진은 기초적인 진이었지만 경험이 없고 침착하지 못한 자는 통과하기 쉽지 않았다.
공개된 예선시험과제를 본 무인들 중 낯빛이 새파랗게 질린 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들로서는 꿈도 못 꿔본 엄청난 과제처럼 느껴졌다.
“역시 남궁세가군.”
“이거 짐 싸서 집에 가야 하는 것 아냐?”
곳곳에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누구도 그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실력이 없다는 말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배경에 상관없이 비무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시험 수준이 너무 높았다. 4천 명 중에 제대로 예선을 통과할 자는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일류의 경지를 넘어야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예선에 응시하는 무인들이 대부분이었다.
“34번 탈락! 35번 탈락! 36번 탈락!”
연달아 탈락이었다. 1차 관문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하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건천문(乾川門)의 전가람은 최선을 다해 권을 내질렀다. 그가 25년 동안 수련한 모든 내공을 한 점을 향해 집중적으로 뿜어내었다.
푸아앙!
소리가 울리고 나서 전가람은 손을 잡고 방방 뛰고 있었다.
“으아악! 내 손!”
청강석의 단단함에 비견되는 엄청난 돌머리였다. 자신의 실력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있는 힘을 다해 내질렀으니 주먹이 남아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남궁세가의 의약당(醫藥黨) 소속의 의원들이 어느새 나타나 전가람의 상처를 치료하려고 데려갔다.
사람이 너무 많은 나머지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개중에 1차 관문을 통과하고 2차 관문까지 통과하는 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3차 관문인 진법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탈락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1, 2차 관문은 모두 내공을 사용하는 것이라 연장선상에 있는 시험이라 볼 수 있지만 진법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탈락하는 자들이 많았다.
반나절이 지나는 동안 세 관문을 모두 통과한 자는 겨우 네 명이었다. 탈락한 자가 물경 5백 명이 넘어가니 경쟁률이 125:1이나 되었다.
천악의 차례가 다가왔다.
천악이 순서를 기다리다가 시험장에 들어서는 순간 제갈지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저번에는 제가 너무 무례했어요. 그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겠어요. 부디 제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제갈지는 처음부터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천악은 제갈지의 마음이 진심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어제 마음속으로 수백 번이나 이 말을 되새겼다. 천악의 앞에서 거짓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음까지도 진심으로 무장한 상태로 연습을 했다. 그 결과 그녀는 하루 만에 많이 변해 있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었다.
“사과한다니 다행이군. 너의 성의를 받겠다.”
“정말 고마워요. 그래서… 한 가지 알려 드리려고요.”
“뭐지?”
“오라버니는 진법 관문을 어떻게 통과할 생각이세요?”
천악은 진법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야수권으로 부숴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겐 진을 찢어버릴 수 있는 실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 따위가 내 앞을 막을 순 없다.”
“물론 알아요. 하지만 진을 부수는 것은 너무 엄청난 일이에요. 아무리 가벼운 진도 힘으로 부수는 자는 무림에 얼마 없을 거예요. 제가 보기에 천악 오라버니는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제갈지의 설명에 천악은 수긍했다. 여태까지 누가 막고 있다면 간단하게 부수고 지나갔을 뿐이지 그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진 못한 것이다.
“오행은 수(水),금(金),지(地),화(火),목(木)! 이 다섯 가지 기운을 의미해요. 그리고 사상도 수(水),화(火),지(地),암(巖)과 태양(太陽), 태음(太陰), 소양(少陽), 소음(少陰)을 의미하지요. 이 중에서 겹쳐지는 것들은 모두 함정이고 그 중 하나, 바위만이 전혀 달라요. 바위는 흙이라고 볼 수 없거든요. 이곳이 바로 생문(生門)이에요. 생문을 따라 이동하면 쉽게 통과하고 천악 오라버니의 실력도 숨길 수 있을 거예요.”
제갈지의 설명에 천악은 또다시 수긍했다.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지만 제갈지로 인해 한 가지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흐름을 파악했으면 그 흐름이 시작되는 곳과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 흐름의 시작을 파악하고 끝을 찾아낸다면 진을 파훼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군. 좋은 지적이다.”
“감사해요. 조금이나 도움이 됐으면 해서요. 그리고 저도 응원할게요.”
“제갈천기에게 나에 대해 들은 모양이군.”
제갈지는 천악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천악은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직관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즉, 천악의 손 안에서 벗어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반성하고 뉘우쳤다는 것은 진심이에요.”
“그럼 된 거다. 너의 됨됨이가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똑똑하다는 것은 인정해 주마.”
천악이 예선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고 나자 제갈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그저 무서운 사람이 아니었다. 논리정연하게 대화를 하면 풀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갈지가 모르는 부분이 있었다. 천악은 평소 논리적으로 살아가려고 하지만 누군가 건드리면 논리고 뭐고 없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판단하는 정의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면 딱 적당했다.
제갈지가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도끼눈을 뜨며 다가오는 여인이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찡그리자 그 모습까지도 귀여웠다.
“야, 너 뭐야?”
“아, 금 소저께 인사드립니다.”
“너 뭔데 내 남자에게 꼬리를 치는 거야! 내가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 꼴 더 못 본다. 다치기 싫으면 알아서 찌그러져 있는 게 좋을 거야!”
금은혜의 막말에 주변 사람들 표정이 어이없다는 듯이 변했다. 저런 고운 입에서 쌍스러운 말이 주저없이 나오자 놀란 것이다. 지금 들은 말이 저 아름다운 여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 사실인지가 의문스러운 사내들이었다.
“제가 뭘 했다는 거예요? 그저 천악 오라버니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드렸을 뿐이에요.”
“뭐? 오라버니? 언제부터 내 오라버니가 네 오라버니가 된 거야? 그 말 취소해라, 아가리 안에 든 이빨 몽땅 나가기 전에 말이야!”
제갈지는 금은혜의 정체를 알기에 말을 놓지 않고 예의를 지켰다. 구문제독부의 금지옥엽이라는 것 자체가 대단히 높은 신분이었다. 대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당하고만 있을 제갈지가 아니었다. 어차피 금은혜도 자신의 정체를 알리고 다닐 처지도 아니지 않은가.
“천악 오라버니는 아직 누구의 남자도 아닌 것으로 아는데요.”
“너 정말 죽고 싶어? 관 속에 편히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수가 있어.”
“아직 스무 살밖에 안 됐는데 벌써 관에 들어갈 생각은 없네요.”
“뚫린 주둥이라고 함부로 내뱉는다 이거지? 어?”
그녀들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빙화닷!”
“남궁태희닷!”
천악이 일찌감치 1관문과 2관문을 통과할 때 남궁태희도 예선을 치르기 위해 나선 것이다.
관중들의 소리가 커지자 그녀들의 싸움도 휴전이 되었다. 어느새 그녀들은 남궁태희를 공동의 적으로 보고 있었다.
‘저 계집이……!’
‘흥! 그래 봤자 천악 오라버니는 내 거야!’
남궁태희 역시 쉽게 1차 관문을 통과했다. 한 번의 장법으로 정확하게 손 모양을 남겼다.
남궁태희가 가진 내공의 심후함에 식견이 있는 무인들은 모두 놀라고 있었다. 청강석에 선명하게 흔적을 남기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빙화가 아니라 검후라고 해야겠다.’
‘저런 엄청난 내공이라니!’
남궁태희의 실력은 신법에서도 탁월했다. 한 번의 발 구름도 없이 응축된 무릎의 굽힘으로 새처럼 날아서 5장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허공을 나는 남궁태희의 모습은 사내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선녀야, 선녀!”
“와! 미치겠다!”
천악이 3관문을 통과하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금은혜와 제갈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금은혜가 제갈지에게 가라고 했지만 그 말을 들을 제갈지가 아니었다.
천악이 걸어가는데 그 뒤로 남궁태희가 바싹 다가왔다. 그녀도 어느새 1, 2차 관문을 통과했는지 금세 합류했다.
이들의 모습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다 긁어모았다. 세 명의 미인이 주변을 감싸고 한 명의 사내가 있으니 그 부러움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