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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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52화
남궁세가의 가주 취임식 (2)
천악이 출전하면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저 여흥거리로 출전하는 거라 생각한 거와 다르게 천악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사뭇 달랐다. 그 전에도 차가웠지만 더 차가워졌다고나 할까.
“그럼 왜 출전하는 거예요?”
“도전장을 보낸 놈이 있었다.”
“그, 그런 미친 놈이!”
금은혜는 지위도 신분도 잊은 채 상스러운 말을 내뱉고 말았다.
금은혜의 생각에도 미친놈이 지랄하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감히 비싼 밥 먹고 할 짓이 없어서 군천악에게 도전한단 말인가! 그것은 앞으로 수저 들기를 거부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헤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요새 많나 봐요.”
“모르지. 하지만 날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게 될 거다.”
천악과 금은혜가 대화를 하는 동안 남궁혁성과 남궁태희가 찾아왔다.
금은혜는 남궁태희가 찾아온 것이 기분 좋지 않았다. 꼭 둘이 있을 때만 찾아오는 것 같았다. 남궁태희도 금은혜를 바라보며 불쾌한 기분을 드러냈다. 남궁태희와 금은혜의 눈동자가 교차되자 불똥이 튀는 듯했다. 옆에 있던 남궁혁성이 어색한지 헛기침을 했다.
“커험! 자네 잘 지냈는가!”
“그저 그렇습니다.”
남궁혁성의 말에 천악의 대답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제가 비무대회에 출전한다는 것 때문에 온 겁니까?”
뜨끔!
정곡을 바로 찌르는 천악의 말에 남궁혁성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알아서 반응한 것이다.
“솔직히 그러네. 자네 정도의 무인이 후기지수들 간의 대결에 참여하는 이유를 모르겠네.”
남궁혁성도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천악이 대환단이나 분광검법 같은 영단과 비급을 탐할 리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금천하제일괴물(古今天下第一怪物)인데, 대환단이나 분광검법 같은 것을 얻는다고 해서 달라지겠는가.
“우승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천악은 조금 짜증났다. 하루에 세 번이나 똑같은 대화를 나누어야 하니 짜증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자신은 그저 혼을 내주고 싶은 놈이 있기에 참가하는 것뿐이었다.
천악의 표정을 보더니 금은혜가 대신 말해 주었다.
“어떤 놈이 천악 오라버니에게 도전했다는데요.”
“뭐, 뭐라고? 어떤 미친놈이… 헛! 이런……!”
신분을 망각한 채 자신도 모르게 남궁혁성도 상소리를 하고 말았다. 하고 나니 조금 부끄럽기까지 했다.
천악은 분란을 조장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자신에게 왔던 서신의 내용을 남궁혁성과 남궁태희에게 보여주었다.
“허어, 이런 일이……!”
조용히 끝내려는 가주 취임식과 비무대회였는데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남궁혁성은 평범한 비무첩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할 것 같았다.
“혹시 전에 자네를 노렸던 ‘교’라는 놈들의 잔당일지도 모르겠군.”
“그럴지도 모릅니다. 단, 놈을 직접 끝장을 낼 테니 모른 척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자네가 나선다면 우리야 안심이지.”
천악이 나서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이미 해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비무대회 하루 전날에 천악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결론은 다 똑 같았다. 고민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 사람이 걱정한다고 천재지변이 피해 가겠는가.
* * *
남궁세가는 이번 가주 취임식과 비무대회에 초대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세가의 건물 밖에도 자리를 마련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비무대회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그 인파가 산을 이룰 정도였다.
비무대회만큼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오락거리가 없기에 사람들이 비무대회를 관람하려고 많이 모여들었다. 칼부림하는 것이 잔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람의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사내라면 그 마음이 더할지 몰랐다.
안휘성 내의 사람들이 모두 총집합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은 순수하게 비무대회를 구경하려는 것보다 다른 결과물을 얻기 위해 모였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바로 내기였다. 즉, 누가 승리할 것인지 찍는 것이다. 실력에 따라서 배당이 나오고, 비무대회의 승자를 맞추었을 때 얻을 수 있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무인이 승리를 했을 때 얻는 배당금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정도로 많은 돈이 오가고 있었다.
“이번에 누가 이길까?”
“이번에 남궁세가에서는 가주가 되는 검룡 남궁혁성이 출전한다고 하던데, 그가 우승하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현 무림맹주이신 현도진인의 제자인 무당일검 청풍도 대단할 거라 던데?”
사람들은 저마다 누가 이길 것인지 궁금해 했다. 특히 안휘성 내의 문파가 아닌 무당일검 청풍의 출전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작용했다.
또한 검(劍)에서 남궁세가가 있다면 도(刀)에서는 하북 팽가가 있다는 세간의 평가와 맞물려서 이번에 하북 팽가에서도 출전하는 무인이 있었다. 바로 하북 팽가의 신성 팽소천이었다.
강호에선 별호를 얻지 못한 팽소천이었지만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남궁세가와 은근히 경쟁관계에 있는 하북 팽가에서 실력 없는 자를 보내 망신을 자초하는 짓을 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것뿐인가. 빙화 남궁태희가 출전한다지 뭔가!”
“그게 정말인가?”
“물론이고말고. 나도 한 번밖에 본 적이 없는데 그 아름다움은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더군.”
남궁세가의 정문을 통과해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초청장을 받은 사람들뿐이었다. 먼저 가주 취임식이 있기에 모두 명문, 명가의 사람들이 초대가 되었다. 아쉽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까지 모두 초대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제갈천기와 청풍, 제갈지도 남궁세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오면서도 제갈지는 청풍의 옆에 착 달라 붙여서 애정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보는 사람이 있음에도 제갈지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기회다 싶으면 달려드는 성격이었다. 놓치고 나서 후회하는 것보다 도전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을 택하는 성격이었다.
사람들은 청풍을 보고 ‘과연!’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그는 어디 있어도 빛이 나는 군계일학의 젊은 용이라고 평가받을 만하였다.
남궁세가의 소가주이자 남궁혁성도 청풍을 보았다. 자신보다 어리지만 실력을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자라는 것을 인정했다.
“구룡단주 제갈천기가 검왕께 인사드립니다.”
“무당일검 청풍이 검왕께 인사드립니다.”
제갈천기와 청풍은 검왕 남궁장천에게 인사를 했다.
남궁장천은 제갈천기를 비롯해 청풍을 보았다. 여인들깨나 울릴 얼굴을 가진 청풍이었지만 가진바 실력이 자신의 아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무당의 저력이 대단하군.’
“무당에 승천을 기다리는 젊은 용이 있다고 하더니 바로 자네였군.”
“과찬이십니다.”
“아닐세. 비무대회에서 자네의 실력을 기대하겠네.”
남궁장천과 남궁혁성은 이들만 대접할 수 없었다. 검왕 남궁장천에게는 알아서 인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남궁혁성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는 다음 대 가문의 주인이자 얼굴이었다. 세가의 명예를 위해서 명가와 명문의 무인들을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연회가 마련되었으니 우선은 즐기고 계십시오. 곧 있으면 취임식이 있을 겁니다.”
남궁혁성이 제갈천기를 배려했다. 구룡단주 제갈천기는 경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무림맹에서도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제갈세가를 대표하기에.
“알겠네, 그리고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청풍이 연회장 안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순간 청풍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꿈에서나 나올법한 선녀가 한 자루의 검을 들고 오연하게 서 있는 것 아닌가.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검의 선녀같이 보였다.
‘빙화인가?’
그가 이제껏 보아온 여인들 모두 미인들이었지만 남궁태희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례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 옆에서 떠들고 있는 제갈지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방금 전까지 조금 잘해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
연회장 안의 모든 시선이 빙화 남궁태희에게 꽂혔다. 누구도 시선을 돌리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아름다움은 압도적이었다.
청풍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걸었다.
“빙화닷!”
“무당일검이닷!”
두 선남선녀의 등장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 모두 탄성을 질렀다. 서로의 위치가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만큼 어울리는 인연을 보지 못했다는 표정들이었다.
청풍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당의 청풍입니다.”
“남궁태희예요.”
‘흥!’
제갈지는 금세 질투를 느껴야 했다. 그러나 겉으로 내색할 정도로 그녀의 수양이 낮지는 않았다. 질투심을 밖으로 표현할 경우 주변 사람들은 자신을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사내의 마음도 얻지 못하면서 질투나 하는 천한 여자로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하지만 남궁태희는 정말 아름다웠다. 여인인 자신이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의 매력을 발산했다.
남궁태희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무신경했다. 그녀의 시선은 정작 지금 들어오고 있는 한 청년에게 쏠려 있었다. 청풍의 존재를 알기에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하긴 했지만 그녀가 지금 모습을 보인 이유는 군천악 때문이었다. 그가 취임식이라고 찾아온 것이다. 일이 없으면 찾아올 생각도 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이었다.
“천악 오라버니!”
그녀는 천악이 오자 다른 사람의 시선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천악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한 사내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천악은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심기가 별로 좋지 못했다. 그는 남궁세가에 들어오면서부터 자신에게 서신을 보낸 녀석의 기를 찾았다. 그럼에도 기감(氣感)을 느낄 수 없었다. 남궁세가에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천악의 무표정한 모습과는 다르게 그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화사한 미소를 날리고 있는 여인에게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집중됐다.
“엄청난 미인이다!”
“빙화와 쌍벽을 이루는 여인이라니!”
남궁태희가 천악에게 다가가 그의 왼쪽에 자리했다. 금은혜가 오른쪽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군 오라버니, 어서 오세요.”
“그래.”
“금 소저도 반가워요.”
“저도 반갑네요.”
차가우면서도 도도한 여인과 봄날 피어나는 꽃처럼 화사한 여인 둘이 천악 옆에 있자 사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천악에게 향했다. 도대체 누구기에 저런 미인들이 먼저 다가가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남궁혁성이 어느새 다가왔다. 남궁태희가 먼저 자리하고 있기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빠르구나, 태희야.”
찌릿!
천악은 남궁혁성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남궁혁성이었다. 그에겐 가주가 되는 경사스러운 날이니 어느 날보다 중요했다.
“신임 가주가 되시는 것을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자네가 와주어서 남궁세가는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과찬이십니다.”
소가주 남궁혁성이 직접 마중한 뒤 남궁장천까지 군천악을 마중했다. 그러니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구기에 검왕과 남궁세가 소가주가 모두 알고 있는지 말이다. 또한 남궁세가의 빙화 남궁태희까지 그에게 친근함을 표시하니 그 궁금증은 점점 더 배가되었다.
더군다나 남궁세가의 무인들 모두 군천악에게 경외심을 갖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정중하게 천악을 대했다. 남궁세가를 두 번이나 구한 인물이며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인 천악은 그들에게 무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천악이 제갈천기를 바라보았다.
씨익!
제갈천기는 온몸에 소름 돋는 듯했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천악을 본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나는 안 보이냐?”
천악의 뒤에서 중년인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의 임자가 누군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가 검왕 남궁 부자의 말에 모두 기겁하고 슬슬 눈을 피했다. 몸까지 돌리는 간 작은 사람들도 있었다.
“당 선배, 와주어서 고맙소.”
“엎드려서 절 받는 것도 아니고, 이거야 원.”
“남궁혁성이 당지독 어르신을 뵙습니다.”
남궁혁성이 중년인을 ‘당지독’이라 부르자 모두 놀랐다.
천수암제 당지독!
중원십대고수 중 최강자에 속하는 오천존의 한 명인 천수암제 당지독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지독한 손속과 괴행을 알기에 괜히 눈에 띄지 않으려 했다.
천악은 당지독이 뭐라고 하든 말든 연회장의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악이 움직이는 순간에 금은혜와 남궁태희, 당지독까지 움직이는 것을 본 사람들은 점점 더 천악이 누군지 궁금했다. 풍운마룡이라는 별호는 알려졌지만 천악의 외모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도대체 누군지?’
청풍은 자신이 이 자리의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좀 전까지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킨 이는 자신이었지만 어느새 뒤로 밀려나 있었다. 이런 느낌은 정말 처음이었다. 또한 평소에는 여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그가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청년에게 관심이 집중되자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천악에게 적대감마저 들었다.
빙화 남궁태희와 의문의 여인까지 지금까지 청풍이 보아왔던 여인들과 차원이 달랐다. 그런 여인들이 모두 천악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이도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사내라면 당연히 천악에게 질투심을 느낄 것이다.
청풍이 천악에게 말을 걸었다.
“무당의 청풍입니다. 소협은 누구십니까?”
정중하게 말을 건네는 청풍을 보고 천악이 대답했다.
“군천악입니다.”
“아, 풍운마룡!”
“예, 제가 풍운마룡입니다.”
사람들이 그제야 천악의 정체를 파악하고 수긍을 했다. 남궁세가를 도와준 무인이 바로 천악이었으니 남궁세가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대하는 게 이해가 되었다.
천악은 청풍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저 자신에 대해 물어보기에 대답을 한 것뿐.
청풍은 소개가 끝나자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 천악의 행동에 불쾌함을 느꼈다. 자신은 태극검성 현도진인의 제자이자 무당의 용인 청풍 아닌가. 자신을 무관심으로 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례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천악은 오히려 제갈지를 바라보았다.
제갈지는 이전에 대장간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사람의 심령을 제압하는 압도적인 살기를 뿜어냈던 천악을 다시 보자 그녀는 또 한 번 공포를 맛보아야 했다. 지옥의 무저갱을 헤매게 만드는 차가운 눈을 보자 그녀는 다가갈 수 없었다.
‘무…서워!’
공포는 쉽사리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다가 천악을 보자 되살아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