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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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48화
무영, 도발하다 (2)
금은혜가 오랜만에 장원에 왔다. 장원에 오니 전과 또 달라져 있었다.
개울물 근처의 연못에 보지 못한 물건이 있기에 신기해서 다가갔다. 네모난 상자처럼 생긴 것 밖으로 대나무통이 연결이 되어 세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네모난 상자에서는 ‘위잉’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왜 들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게 뭐야?”
천악이 매번 신기한 것을 만들기에 금은혜는 무척 궁금했다. 또 다른 물품을 만든 것 같았다. 세 갈래로 나뉜 대나무는 땅속으로 들어가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용도는 천악에게 가서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빨리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대장간으로 들어가자 천악이 보였다.
천악이 대장간의 한쪽 물통에서 물을 틀자 물이 폭포수처럼 흐르는 것이 보였다.
금은혜는 이것이 너무 신기했다. 물을 틀자 물이 나오고, 잠그자 다시 나오지 않았다.
상인의 눈이 다시 한 번 발동한 금은혜였다. 저런 편한 물품을 확보한다면 당장에 금천상가는 천하제일상가가 되어 중원상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욕심이 났다.
“저 왔어요.”
“무슨 일인데 또 왔지?”
“꼭 일이 있어야 찾아오나요? 보고 싶어서 왔어요.”
천악의 말투야 원래 이렇다는 것을 알기에 금은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은근슬쩍 물 나오는 장치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건 뭐예요?”
수도꼭지를 보며 말을 하는 금은혜를 보고 천악이 설명해 주었다.
“물 나오는 장치다. 사람이 일일이 물을 길러 갈 필요가 없어졌지.”
“정말이요? 그럼 대단한 장치네요. 저걸 상품화하면 안 될까요?”
“안 될 건 없다. 단지 비싸다는 것이 문제지.”
“얼마나 비싼데요? 그래도 고관대작들은 다 살걸요!”
금은혜는 비싸봤자 얼마나 비싸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사실 천악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펌프의 날에 쓰인 재료가 황금보다 비싸다는 묵철이었고, 동력기로 사용한 것이 야명주였다. 그것도 아주 최상급. 외관을 둘러싸고 있는 철도 중철을 섞어서 단단함을 유지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들어낸 것 자체가 특허가 된다. 특허라는 개념이 이 시대에는 별로 통용되지 않겠지만 독자적으로 만들었으니 그 가치가 더 올라갈 것이다.
즉, 펌프 한 대의 가격이 좋은 장원과 맞먹는다는 소리였다. 액수를 따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차라리 그 돈을 쓰느니 하인 수백 명을 동원해서 물을 긷는 게 더 싸게 먹힐 것이다.
천악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금은혜의 표정이 썩은 감자처럼 변했다. 확실히 비싸도 너무 비쌌다. 그럼에도 장점도 있었다. 한 대만 팔아도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난 이 장치를 이용해서 건축물을 만들고, 그 건축물 자체를 파는 것을 생각해 볼 생각이다.”
“집을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집이다. 집은 그 자체가 완전한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지. 물론 내가 만들어낸 집은 그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 비싼 만큼 그 가치를 느끼게 해줄 수 있다.”
풍운건설인력회사가 중원의 고급 정원과 주택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는 말이었다.
형식은 미리 땅을 사서 집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준 후 적정한 가격이면 파는 것이다.
대장간의 한쪽에서 당한철이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형식의 이음새를 만들고 있었다. 당한철도 기관을 움직이기 위해서 톱니 모양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만드는 것은 톱니바퀴가 아니라 체인이었다.
천악이 알려준 체인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톱니바퀴 사이의 거리에 상관없이 체인을 연결하면 기관 작동에도 효율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당한철에게 천악은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보고였다.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은혜가 망치질에 혼을 쏟아 붇고 있는 당한철을 보았다.
“누구예요?”
“날 도와줄 사람이다.”
“그래요? 흠, 그건 그거고, 오라버니 우리 어디 놀러가지 않을래요?”
금천상가도 막대한 이윤을 내고 있고 별달리 할 일이 없어진 금은혜가 심심하다며 놀러가자고 졸랐다. 그러나 아직 천악은 장원에서 할 일이 있었다.
“아직은 안 돼. 1년 정도는 시간이 없을 것 같다.”
“1년이나요? 너무 길어요.”
“길어도 할 수 없어. 인부들을 훈련시키고 건물을 완성시키려면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
고 총관이 인부들 중 능숙한 사람들을 대장간으로 데리고 왔다. 충일과 도정을 비롯해서 열 명이었다.
“장주님, 인부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잘했다. 여기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밖에서 설명하는 게 좋겠군.”
금은혜는 그저 말없이 천악을 따랐다. 그녀가 뭐라고 한다고 들을 인간도 아니었고, 뭐라고 하면 바로 가라고 할 것이 분명했다.
충일과 도정은 이미 전에 봐서 아는 사람이기에 천악은 편하게 말을 했다.
“여기 이렇게 오라고 한 것은 나와 함께 일해 보지 않겠냐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내가 하는 일에 동참을 하면 매달 충분한 돈이 지급되고,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것이다. 할 사람만 손을 들도록.”
인부들 중에 손을 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굶기를 반복하는 일상에서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단, 내가 가르쳐준 기술을 유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어기면 가만두지 않겠다.”
천악의 기세와 험한 말투에 인부들이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기술을 마음대로 유출하는 것은 장인들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도면을 보여주도록 하지. 보는 법은 충일과 도정이 알고 있으니 따로 배우도록 하고 기본적인 것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천악이 밤새도록 구상한 도면이었다. 평면도와 더불어 투시투상법을 이용한 각도법까지 사용하였다. 또한 전체적인 외곽도 정교하게 그림으로 표현돼 있었다. 완성된 그림은 한 폭의 예술과 같았다.
충일과 도정이 감탄을 했다.
“와! 이건 완전 예술작품입니다. 장주님의 그림 솜씨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금은혜도 감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말이에요. 이 선의 정확성과 정교하게 맞물리는 자연의 조화, 모든 것이 환상적이네요.”
현대에서 판에 박은 듯이 찍어내는 그림들이라고 해도 이 시대에서는 상당한 예술품으로 보인다. 오히려 더 신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건물 위에 정원을 만들 생각을 하시다니 획기적인 발상입니다.”
유리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 여기서 유리는 상당히 고급제품이지만 만드는 방법만 알면 얼마든지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만드는 것은 이상적인 내 집을 만든 거다. 하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고급형 주택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가구로 만들어서 여러 명이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고, 그 집을 일정기간 빌려주고 돈을 받을 수도 있지. 만들기에 따라서 저렴하게 만들 수도 있다.”
천악이 생각하는 것은 아파트단지의 조성이었다. 물론 고층 아파트는 많은 철골과 더불어 시멘트가 필요하기에 이 시대에 만드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저층의 빌라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발달한 도시일수록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상주인구보다 떠도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객잔 형식이지만 집을 따로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우선은 전체적인 틀을 짜는 것을 시작으로 각각 맡아야 되는 부분을 배우도록 하겠다.”
인부들이 모든 부분을 다 배우는 것은 능률이 떨어진다. 각기 맡아야 하는 부분을 전문적으로 배울 필요성이 있었다. 그 부분에 한해서는 최고의 기술자가 되어야 했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장주님.”
인부들에게 도면을 가르치고 기초적인 건축지식을 주입시키는 일은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렇지만 계속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건물의 초석을 다지는 일은 시작했다.
천악이 일에 열중하자 금은혜는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싫증내지는 않았다. 요즘 들어 그냥 천악을 지켜보는 것도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사흘 동안 인부들의 교육이 실시되었다.
천악은 다른 때와 달리 말 없이 자신을 지켜보는 금은혜의 모습이 낯설었다.
“뭘 그렇게 넋 놓고 보지?”
“그냥요.”
“그냥 봐서 뭐가 생기나?”
“쳇! 천악 오라버니는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몰라요.”
좋아하는 사람이 무언가에 빠져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해 하는 것은 여인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었다. 왠지 모르지만 든든하고 행복한 생각이 드는 금은혜였다.
“나중에 아버님께 오라버니를 소개시켜도 되나요?”
“그러든지.”
“꼭이에요.”
“알았다.”
여인의 아버지를 만난다는 것은 혼인을 허락받기 위해 간다는 소리와 같았다.
금은혜는 오늘보다 행복한 날이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원하던 것을 얻은 것이다.
* * *
제갈천기는 맹주의 압력에 이기지 못하고 무당일검 청풍을 구룡단원으로 받아들였다. 구룡단원들 중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놓고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이유는 청풍이 맹주의 제자였기 때문이었고, 구파일방 중 가장 성세를 구가하는 무당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룡단원끼리 그래도 미심쩍다며 시험을 해보았다. 그런데 청풍의 실력은 가히 발군이었다. 그 나이 또래에 가질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들 청풍의 느리면서 육중한 기운을 품고 있는 검법에 감탄을 해야 했다. 역시 태극검성 현도진인의 제자라고 생각했다.
제갈천기는 합비 행에 다른 구룡단원을 데리고 가는 대신에 청풍과 제갈세가에 머물러 있던 제갈지를 불러서 같이 데리고 가기로 했다.
제갈지는 숙부 제갈천기의 부름에 조금 짜증이 났지만 청풍을 보고 완전히 마음이 달라져 있었다.
청풍은 정말 임풍옥수(臨風玉樹)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초절정의 미남이었다. 전설의 미남자들 송옥이나 반안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더군다나 태극검성 현도진인의 제자이니 배경도 엄청났다. 여자라면 누구나 탐내는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청풍은 속가제자로 받아들여져 있었다.
제갈지는 현명하면서도 적극적인 여성이었다. 다만 청풍도 자신의 잘난 외모와 그로 인해 여인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게 문제였다.
청풍은 제갈지가 계속 유혹하는 것을 알고 받아주었다. 바람기가 있는 것이 무당파의 도인들이 되기는 틀린 청풍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여자하고 관계를 갖거나 방탕하게 생활하지는 않았다. 또한 성품도 그다지 악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위치에서 보통 사내들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제갈천기는 제갈지의 저런 행동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분명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지금 가는 곳은 괴물이 있는 곳이었다. 청풍이 미래의 제일 후기지수이며 절대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것은 맞지만 천악과 비교하면 태양과 반딧불이었다. 아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거 큰일나는 것 아니겠지? 저놈도 사내라고 들이대는 여자 마다하지 않는 놈 같은데 말이야.’
천악에게 붙어 있는 두 명의 여자는 제갈지와 비교대상이 아니었다. 청풍 저놈이 만일에, 아주 만일에 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니 절대로 막아야 했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정말 큰일이었다. 그 다음날 무림맹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아니겠지, 하는 마음을 품고 제갈천기는 남궁세가로 향했다. 어차피 남궁세가에서 가주 취임식이 있다는 서신을 무림맹에 전한 상태였기에 방문해야 했다.
우선은 청풍과 제갈지에게 임무를 숙지시켰다.
“우리가 가는 것은 남궁혈사의 이면에 깔린 음모에 대해서 조사하기 위해서다. 임무를 잊지 말도록 해라.”
“물론입니다, 구룡단주님.”
“알았어요, 숙부님.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다고요.”
‘네가 제일 문제야. 알긴 뭘 알아? 네가 괴물을 알아? 안다면 네가 그렇게 편안하게 발 뻗고 잘 수 있을 줄 아냐?’
제갈천기는 차마 자신의 위신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진 못했지만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제갈지는 남궁혈사라는 이미 끝난 사건보다 이번에 가주 취임식 때 열리는 비무대회가 더 신경이 쓰였다. 서른 살 이하의 후기지수들이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는 대회이니만큼 청풍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청풍 도장님, 이번 비무대회에서 꼭 우승하실 거예요.”
청풍도 비무대회에 한번 나가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 혈기 왕성한 나이니만큼 자기 실력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했다.
“제가 응원할게요.”
“제갈 소저가 응원한다니 더 힘이 납니다.”
‘저 쌍것들이!’
요즘 들어 구룡단주이자 철혈판관검인 제갈천기의 생각이 상스럽게 변해 가고 있었다. 또한 전과 같이 침착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현실적이지 않는 상황을 겪고 나니 그동안 감추어진 본성이 드러난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