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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독존기 35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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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35화

천수암제의 꿍꿍이 (3)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당지독이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런데 아까 들어오면서 보니 장원 내에 공사를 하던데, 뭘 지으려고 하느냐? 지금도 상당히 좋은데 말이야.”

 

“대장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대장간? 장원 내에 웬 대장간이냐?”

 

“제가 사용하려고 만들었습니다.”

 

“호오, 철을 다룰 줄 아느냐?”

 

“조금 할 줄 압니다.”

 

당지독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철 다루는 기술로 천하에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사천 당가였다. 당가의 독문암기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발전되어 왔고, 발전하기 위해 막대한 재력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암기의 발전이 바로 당가의 힘이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암기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철 다루는 기술과 각종 부수적인 기술이 필수적이었다.

 

“철의 강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련기술이 필수적이다. 얼마나 익힌 것이냐?”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원하는 물건을 만들고 싶어서 기초적인 것만 익힌 상태입니다.”

 

천악이 대장장이 기술을 익힌 시간은 별로 길지 않았다. 그동안 집중적으로 노력을 한 끝에 대충 기본적인 지식과 만드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나 직접 구상한 물건들을 만들어보려고 한 것이니 뛰어난 장인의 기술이 필요하진 않았다.

 

“허어, 철은 살아 있는 생물과 같은 것이거늘. 그저 수박 겉핥듯이 익힌다고 배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물론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장인이 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취미로 하는 것이니 어르신께서는 개의치 마십시오.”

 

당지독은 천악이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부터 두루뭉술하게 해서는 천악에게 효과가 없었다.

 

“우리 당가는 예전부터 제련기술에 있어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 우리 당가의 방계 중 당한철이라는 녀석이 제법 실력이 좋더구나. 네가 무엇을 만드는지 몰라도 혼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이 귀찮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조수 한 명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느냐.”

 

당지독은 귀찮다는 것을 유난히 강조했다. 당지독은 어느새 천악이 수고스럽거나 귀찮은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괴팍하고 기행을 일삼아도 나이는 똥구멍으로 먹는 게 아니었다.

 

천악은 잠시 고민했다.

 

‘음, 그것도 그렇군. 그래도 왠지 저 노인네의 말은 듣기 싫은데…….’

 

당지독의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구상한 것을 제대로 만들려면 실력 좋은 장인이 필요했다. 혼자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보다 조수에게 기본적인 것들을 만들게 하고 자신은 완성을 목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면 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당한철이라는 사람은 제 말에 절대 복종을 하는 겁니까?”

 

“절대복종까지는 모르겠고, 시키는 것은 다 할 거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그냥 보낼 겁니다.”

 

“그렇게 하게나.”

 

당지독이 말한 당한철은 당가 방계 중 한 명이었다. 당가를 구성하는 세력은 직계와 방계, 그리고 데릴사위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직계는 가전독공이나 무공 등을 제대로 전수받지만 방계는 유난히 특출난 인물이 아닌 이상 가전무공을 배우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에는 암기의 제작이나 독공의 연구에 주로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에서도 당한철은 서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가의 제련기술자 중에서 세 번째로 뛰어난 녀석이었다.

 

당지독은 당한철을 내세워 천악과 자연스럽게 연을 잇고, 그 사이에 당묘정을 데리고 와서 천악과 사귀게 할 작정이었다.

 

‘내 손녀 묘정아, 너의 신랑감은 천하제일의 괴물이니라!’

 

당지독은 겉으론 무표정했다. 그는 독성지체를 얻으면서 마음의 수양도 더 높아져 있었고, 표정 연기도 수준급이 되어갔다.

 

“며칠 머물면서 장원을 돌아봐도 되겠느냐?”

 

“마음대로 하십시오.”

 

천악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 * *

 

당지독은 천악의 방에서 먼저 나와 장원을 돌아다녔다. 그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전보다 젊어졌으니 그를 천수암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더욱 없을 것이다.

 

당지독은 장원을 거닐다 빙화 남궁태희와 맞먹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었다.

 

‘저건 또 뭐야?’

 

천악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인데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나자 당지독은 매우 당혹스러웠다.

 

‘묘정아!’

 

그는 속으로 손녀의 이름을 불렀다. 당묘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여인을 또 보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나마 이 여인의 무공은 당묘정보다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당지독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뒤로 보이는 별채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풍운장원은 걸어다니며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이 벅찰 정도로 컸다.

 

“허허!”

 

그곳에는 신일을 비롯한 전칠, 충호가 남궁소희랑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놀고 있었다. 천악이 소희에게 소개시켜준다던 아이들인 것 같았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자 아주 어렸을 때 당묘정이 자신의 품에 안겨 재롱떨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서 웃음이 난 것이다.

 

‘이건 또 뭐야? 초절정을 넘어 화경의 벽을 앞에 두고 있는 놈이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중년의 거지를 당지독은 의아해 하며 바라보았다. 요 근래 놀랄 일이 많았는데, 오늘 또 놀라고 있었다.

 

‘여긴 개나 소나 다 화경이야.’

 

자신조차 쉰이 넘어서야 비로소 화경의 경지에 들었었는데 고작 마흔도 안 돼 보이는 녀석들이 다 화경에 든 것이다.

 

천악은 예외였다. 천악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당지독이 앉아서 아이들을 구경하는 추상락에게 다가갔다.

 

“넌 뭐냐?”

 

“허억!”

 

추상락은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했다.

 

‘기척도 못 느꼈다!’

 

상대를 보았다. 천악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웬 중년인이 다가와서 다짜고짜 반말을 해대는 것이다.

 

추상락은 갑자기 나타나 반말을 하며 정체를 물어오는 중년인에게 화가 났다. 자신은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신경쇠약으로 반응이 늦은 것이라 생각한 추상락이 대뜸 일어서서 당지독에게 다가갔다.

 

“누군데 갑자기 말을 까는 거야? 내가 누군 줄 알아?”

 

“허어, 이 어린 놈을 보게나. 어디서 뚫린 주둥이라고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냐! 어른이 물으면 즉시 대답을 해야지!”

 

“뭐, 뭐라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에다가 황당한 말을 지껄이다니, 당신 정말 죽고 싶어?”

 

당지독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이놈이 그놈도 아니면서 나한테 엄청 대드네.’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우선은 아이들을 쫓아야 했다. 흉한 꼴을 보이면 아이들이 삐뚤어질 수도 있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저쪽에 가서 놀으렴.”

 

“그래라. 어른들끼리 대화가 필요하니까 말이야.”

 

추상락도 그 말에 동조를 했다. 그도 아이들 앞에서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실수였다. 추상락은 자신도 모르게 마지막 구명줄을 자기 손으로 잘라버린 것이다.

 

당지독은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추상락은 왠지 모르게 오한이 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건 또 뭐야? 안 돼, 이러면 패배자의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음을 다잡은 추상락이 혼천강룡신공을 운용했다. 단전을 시작으로 기가 회전을 하고, 회전하며 응축된 기운이 혈맥을 따라 곳곳의 혈을 자극했다. 자극된 혈이 힘을 발하자 굳건하고 탄탄한 근육들이 살아 움직이듯이 꿈틀거렸다.

 

“호오, 혼천강룡신공이라! 네놈은 구걸대마왕의 제자였구나.”

 

“아니, 그걸 어떻게……!”

 

“네 스승도 내 앞에서는 발바닥에 땀나도록 도망쳤는데, 감히 그 제자 놈이 나한테 개긴 거냐?”

 

추상락은 자신의 사부에 대해 험담하는 중년인을 보고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내 스승님을 함부로 말하다니 정말 죽고 싶으냐!”

 

“나? 천 개의 암기를 자유자재로 뿌리는 사람이다, 이놈아!”

 

추상락은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강호에서 천 개의 암기를 마음먹은 대로 뿌리는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한 것이다. 그때 떠오른 사람과 지금 앞에 있는 중년인을 비교해 보았다. 강호 지식이 없다고 해도 강호십대고수조차 모르진 않았다.

 

“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허억!”

 

사삭!

 

당지독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느새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온 당지독이었다.

 

당지독의 주먹이 수천 개로 늘어나더니 추상락의 전신을 복날 개 패듯이 두들겼다.

 

퍼퍼퍼퍼퍼퍽! 퍼퍼퍼퍼퍽!

 

“으아아악!”

 

추상락은 애초에 당지독의 상대가 아니었다.

 

고통 속에서 추상락은 그제야 깨달았다.

 

‘천…수암제!’

 

나락으로 떨어진 이후 해탈(解脫)을 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그에게 남겨진 것은 비명을 지르는 일뿐이었다.

 

* * *

 

장원 안에 시끄러운 비명소리가 울려 퍼질 때 천악은 두 여인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일상적인 대화였다.

 

금은혜는 남궁태희가 있는 자리에서 사업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 일에 대한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우리 언제 다시 놀러 안 가나요?”

 

“글쎄, 아직 그런 계획은 없는데. 뭐, 가고 싶으면 오늘이라고 갈 수는 있지.”

 

금은혜는 이번에 자신 차례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런 시시한 무공보다 보물이 묻힌 곳을 발견했으면 좋겠네요.”

 

천악도 이제 무공엔 관심이 없었다.

 

“그건 그렇군.”

 

금은혜는 남궁태희가 얻은 무공기연을 시기해서 한 말이었다.

 

남궁태희는 그때 당시 천악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화경이라는 지고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남궁태희도 그것을 알기는 하지만 울컥 하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마땅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군천악 때문에 기연을 얻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때 욕심을 부린 것도 부끄러웠다.

 

“그런데 아까 그 느끼한 중년인은 누구예요?”

 

당지독을 지나가면서 본 금은혜가 궁금해 하며 물어보았다.

 

“당가의 노독물이라고 볼 수 있지.”

 

“당가 사람이라고요? 독에 찌든 사람들은 가까이 하면 안 좋은데.

 

“말조심 하는 게 좋을 거예요, 금 소저.”

 

천악이 막말하는 것은 몰라도 금은혜가 함부로 말하는 것은 위험했다.

 

남궁태희의 말에 금은혜가 쏘아붙였다.

 

“그게 무슨 말이죠?”

 

“그분이 누군 줄 알고 함부로 말하는 거예요?”

 

“그래 봤자 독 쓰는 겁쟁이지, 뭐!”

 

금은혜는 황실의 온갖 암투에서 독이 사용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정당당한 대결보다 암투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황실이었다. 금은혜는 그것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특히 독 쓰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분을 그렇게 폄하했다가는 오래 살기 힘들어요. 그분은 바로 이제의 한 분이신 천수암제 당지독 어르신이에요.”

 

“뭐, 천수…암제라고요?”

 

금은혜는 잠시 마시던 차를 점검했다. 독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행동이었다.

 

아무리 금은혜가 구문제독의 딸이라고 해도 천수암제가 정말 무서운 독인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뻔했네.’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 금은혜는 이리저리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가 남궁태희의 말이 얄밉게 느껴졌다.

 

‘저년이 언제 이렇게 말발이 좋아졌담?’

 

남궁태희는 천악 앞에서 전과 같이 조용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먼저 다가오는 것보다 자신이 먼저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천악은 오늘 피곤함을 느꼈다. 여인들의 수다에 더불어 능글맞은 독물을 상대하느라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오늘은 그만하고 다들 돌아가.”

 

“예, 벌써요?”

 

“오라버니와 대화도 별로 나누지 못했는데…….”

 

안쓰럽고 처연한 두 여인의 말을 보통 사내가 들었다면 가슴이 철렁 내려가고 두근거렸겠지만 천악은 달랐다.

 

“두 번 말 하게 하지 마라.”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귀찮게 했다가는 그동안 쌓인 개미 똥만큼의 정도 사라질지 몰랐다.

 

“그럼 쉬세요.”

 

“내일 다시 와도 되죠?”

 

“그래.”

 

천악은 요즘 들어 일상적인 생활패턴이 많이 바뀐 상태였다. 오전에 대장간 일을 하거나 오후에 책을 보는 일 등을 전혀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금천상가 내 도박장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근래에 들어 일상생활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피곤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편안해졌다.

 

‘나도 변해 가는 것인가?’

 

그러나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 웅크린 흉폭함이 언제 다시 그의 뇌리를 지배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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