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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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34화
천수암제의 꿍꿍이 (2)
달과 별이 구름에 가려져 불길한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귀신의 통곡소리처럼 술렁였다. 이런 날에는 암수를 부리거나 귀계(鬼計)를 모색하는 데 가장 적당했다.
휘이잉! 휘이잉!
산중의 작은 초가집 안에 네 명의 중년인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 주변으로 서른 명의 무인들이 그들을 지키고 있었다.
한 명의 중년인이 그들에게 웃으면서 말을 하였다.
“기다리던 때가 다가오고 있소이다.”
“제검가와 함께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고 있소. 우리 태천문에서는 태천검단이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소.”
“우리 숭의문도 파천단의 준비가 끝났소.”
“우리 절영문도 준비가 되었소이다.”
그들은 바로 제검가를 위시해서 안휘성 내 중소문파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문파인 숭의문, 태천문, 절영문의 문주들이었다. 그들은 결전을 며칠 앞둔 상태에서 마지막 점검을 위해 모인 것이다.
그들은 안휘성 내 남궁세가의 정보력을 피하기 위해서 무인들을 산개해 이동시켰다. 이들은 최종적으로 안휘성 합비 남궁세가의 중턱에 자리한 황산(黃山)에 모이기로 되어 있는 상태였다.
숭의문의 문주인 파천도 도주태가 근심어린 말을 하였다.
“과거에나 지금에나 남궁세가는 만만치 않은 곳이오. 특히 검왕의 무위는 우리 넷이 한꺼번에 덤빈다고 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소이다.”
네 문파의 문주들은 나름대로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지만 검왕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화경의 무인은 수가 많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그들의 경지가 비록 초절정이라고 해도 힘들었다.
제검가의 제천신검 형사명이 그들의 걱정을 해소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을 본 네 문파의 문주들은 모두 놀랐다.
“이것은 설마……?”
“악마의 마병(魔兵)이라고 불리는 그 광석으로 만든 것이지 않소이까?”
“그렇소이다. 아무리 검왕이라고 해도 우리가 한꺼번에 덤빈 상태에서 이것을 사용한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오.”
음모를 꾸미는 그들의 표정이 대번에 환해졌다. 남궁세가의 정예들이 무섭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이제까지 준비한 그들의 힘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남궁세가 내에 거사를 방해할 요소는 없는 것이오?”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를 보면 위험요소는 없소이다. 구룡단주인 철혈판관검 제갈천기가 무림맹으로 돌아간 이상 별다른 어려움을 없을 것으로 보오.”
그들은 구룡단이 무림맹으로 귀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칫 전쟁이 일어난 후 그들이 개입을 할 경우 일이 위험하게 꼬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있다면 풍운장원의 풍운마룡 군천악이라는 애송이뿐이오.”
그 말에 제천신검 형사명이 이를 갈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이미 손을 써놨소이다. 그놈은 분명히 갈가리 찢겨 죽을 것이오!”
다른 세 명의 문주들도 형사명이 왜 분노하는지를 알기에 아무 말이 없었다. 아들을 잃었으니 아버지로서 당연한 분노였다.
제천신검 형사명은 집요한 인물이었다. 평소에는 사람 좋은 미소를 가지고 있지만 뒤로 음흉함을 가득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인물이 자식을 죽인 자를 가만히 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허어, 형 문주의 말을 들으니 오한이 다 드는구려.”
“풍운마룡도 제 명대로 살 수 없을 것이외다.”
“우선은 남궁세가가 먼저니 그 일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계획은 차질 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오.”
“물론이오.”
“우리는 생사를 이 계획에 걸었소이다.”
* * *
남궁세가의 가주실에 있던 남궁장천이 벌떡 일어났다. 열흘 만에 연공실에서 나온 당지독의 모습을 보고 놀란 것이다.
“당 선배, 회춘(回春)하셨소이까?”
“뭐야? 지금 그 말이 왜 나와?”
남궁장천이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당지독의 겉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은 온데간데없고 쭈글쭈글했던 피부도 팽팽하게 당겨져 있으니 남궁장천이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 당지독의 외모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만류귀원신공을 완성한 당지독은 독성지체가 된 상태였다. 세월의 흐름을 역행할 정도로 엄청난 경지를 이룩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는 남궁장천이 더 늙어 보였다.
남궁장천은 조금 분한 마음이 들었다. 저 괴팍한 노인네에게 개세적인 기연이 찾아온 것이 배가 아팠다.
‘전보다 더 강해졌으니 이제는 정말 엄두가 나지 않는구나.’
전에도 천수암제 당지독은 검왕 남궁장천에게 상당히 껄끄러운 상대였다. 그런데 이제는 더 까다롭게 되었다.
‘그때 말리는 것이 아니었는데. 흠, 그건 아니구나.’
천악을 말리지 않았다면 더 큰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그래도 후회스러웠다. 저 능글능글한 표정이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내공을 잃고 후회하던 모습을 보고 통쾌했는데 그 감정을 누릴 시간이 너무 짧았다.
“너 그놈 사는 데 알지?”
“너라니요? 저는 대남궁세가의 가주이자 당 선배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뭐라고? 그게 또 무슨 말이야?”
“제가 천악에게 당 선배가 혁 선배의 친구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천악이는 곧바로 선배를 저세상으로 보냈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 그래서 지금 나한테 대접받고 싶다는 소리냐?”
남궁장천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뭐 그래도 다음부터는 함부로 하진 않겠지.’
말은 저렇게 해도 이제는 조금 편해질 것이다.
“풍운장원입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으니 금세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나보고 혼자 찾아가란 말이냐?”
“제 딸이 안내해 줄 겁니다.”
“알겠다.”
당지독은 남궁태희를 보고 손녀 당묘정이 생각이 났다.
‘어찌 이리 차이가 날까.’
아무리 손녀가 귀엽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고 하지만 남궁태희의 아름다움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차이가 너무 나니 손녀인 당묘정이 남궁태희를 이기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남궁태희는 겨우 약관을 넘은 나이에 화경의 초입에 이르러 있었다. 다른 후기지수들과의 실력 차이도 엄청났다. 그녀는 이미 절대반열에 든 상태였다.
당지독은 천악의 엄청난 실력과 그 신비한 능력을 경험한 이후로 천악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내 손녀를 밀어붙이기엔 이 아이가 너무 벅차구나.’
그렇다고 포기할 당지독이 아니었다.
천악의 술법 중에 순수한 독을 응집시키는 기술은 당문이 가장 탐을 낼 만한 것이었다.
‘명색이 스승의 친구인 내 말을 매정하게 거절하지는 못하겠지.’
그걸 믿고 밀어붙여 볼 생각을 한 당지독이었다.
남궁태희가 밖으로 나가자 남궁소희가 뛰어왔다.
“언니, 나도 같이 가!”
남궁태희는 난처했다. 옆에 당지독이 있는데 철없는 남궁소희를 데리고 가는 것이 부담되었다.
“다음에 데리고 갈게.”
“흥! 나도 천악 오빠 보고 싶단 말이야.”
귀여운 인형처럼 생긴 소희가 떼를 쓰는 모습이 귀여워 당지독은 깨물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젖살이 빠지지 않은 두 볼은 무엇을 잔뜩 물고 있는 듯 볼록했고,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괜찮다. 같이 가자꾸나.”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괜찮으니 데려가자.”
“당 어르신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당지독은 풍운장원에 도착을 한 후에 입을 떠억 벌렸다. 풍운장원에 대해서 사전에 제대로 알지 못한 탓이었다. 장원의 규모는 둘째치고 웅대한 대문을 비롯한 주변 경관과의 조화로움 등을 볼 때 사천 당가가 오히려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이놈은 뭐야?’
무상검제 혁리광은 검소한 생활을 표본으로 삼고 사는 친구였다. 그는 돈보다는 무공의 깨달음을 추구했고, 배부르게 생활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제자라는 놈은 호화찬란한 대궐 같은 집에서 살고 있으니 너무 비교가 되었다.
천악은 당지독이 왔다는 말에 마중을 나왔다.
당지독에게 인사를 하기 전에 남궁소희가 달려가 천악의 품에 안겼다.
“천악 오빠, 그동안 나 보고 싶었지?”
“후후, 물론이다.”
“나도 보고 싶었어.”
남궁태희는 천악의 환한 웃음에 자신도 모르게 우울해졌다. 그동안 천악이 저런 미소를 지은 것은 남궁소희를 볼 때뿐이었다. 자신에게는 한 번도 저런 웃음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내심 서운했다.
“이놈아, 나는 안 보이느냐?”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여기 오면 안 되는 거냐? 혁리광 그 친구가 정말 제자를 냉정하게 키워놨구나.”
“그런 시시껄렁한 말씀 하실 거면 오지 마십시오.”
천악은 당지독이라고 해서 말을 가리거나 하지 않았다. 별달리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그저 스승의 친구여서 사정을 한번 봐준 것뿐이었다.
천악은 그가 찾아온 이유를 눈치 챘다. 당가의 인물이니 천악이 만든 독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천악은 내심 기분이 나빴다.
당지독은 천악의 냉대에 상당히 민망했다.
“그래도 명색이 사부의 친구였는데, 차 한 잔도 대접 안 하느냐?”
우선은 참아야 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당지독은 인내를 했다. 얼마 전까지 그에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천악 오빠, 화났어?”
남궁소희가 불안하게 묻자 천악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내가 왜 화가 났겠어. 우리 소희, 친구들 많니?”
“아니. 내 또래 아이들하고는 잘 못 놀아.”
남궁소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궁세가라는 울타리가 보통의 아이들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높은 장벽이 되었던 것이다.
“그럼 내가 친구들을 소개해 줄까?”
“정말? 진짜지?”
“물론이지. 고 총관, 소희에게 친구들을 소개시켜주도록 하지.”
고 총관이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대답을 했다.
“알겠습니다, 장주님. 소희 아가씨, 저를 따라오세요.”
고 총관이 남궁소희를 데리고 가자 천악은 당지독을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당지독과의 대화에서 좋은 말이 오갈 것 같지 않아 미리 남궁소희를 아이들에게 보낸 것이다.
“너는 잠시 다른 곳에서 기다려라.”
“알았어요, 오라버니!”
당지독은 남궁태희가 천악을 오라버니라고 부르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둘 사이가 그렇고 그런 건가?’
자신의 손녀인 당묘정을 들이밀려고 했는데 경쟁자가 너무 대단했다.
그러나 정작 천악은 남궁태희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보고 있는 사람이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기에 진실이 가려진 것이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알았다, 이놈아!”
* * *
천악이 안내한 방에서 당지독은 차를 마셨다. 차를 비롯해 찻잔, 주변에 장식돼 있는 산수화와 도자기 등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모두 귀하고 비싼 것들이었다.
천악은 당지독이 입을 열기 전까지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당지독도 먼저 말을 하기보다 기다렸기에 한참 동안 조용했다.
마침내 침묵을 참지 못한 당지독이 먼저 입을 열었다. 궁한 것은 자신이었으니 먼저 말을 한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그 독기운을 어떻게 만든 거냐?”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그 독기는 한 번밖에 만들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엄청난 돈을 손해 봤으니 어르신께서 그걸 배상해 주셔야겠습니다.”
일단 입막음을 위해서 천악은 강수를 두었다. 계속 귀찮게 할 게 뻔한데 계속 만들 수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건 네놈이 내 내공을 없애는 바람에 일어난 사단이 아니냐? 그 정도 수고는 당연한 것이다.”
씨익!
천악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천악은 당지독에게 바로 그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당지독의 입장에서 천악이 만들어낸 독기는 천 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는 보물이었다. 당지독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으니 천악이 배상을 요구하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제가 손해를 좀 보겠지만 비긴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게 왜 그렇게……?”
원하는 대답은커녕 오히려 궁지에 몰린 당지독이었다.
사실 그런 순수하고 강력한 독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당가로서는 위험한 일이기도 했기에 당지독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독을 익히는 것은 다른 무공에 비해서 돈이 많이 들었다. 각종 독물과 독초의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났기 때문에 돈이 없으면 익히기도 쉽지 않았다. 그걸 알기에 당지독도 천악에게 더는 요구하지 못했다.
“좋다. 그건 고맙게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내 손녀를 어떻게 할 생각이냐? 네놈으로 인해 심각한 상처를 받은 상태다. 네가 사내라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떠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악은 당지독의 말에 약간의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어찌 잠시 생각해 보는 척도 않느냐? 내가 네 녀석 스승의 친구인데 어찌 이토록 매정하냐?”
“스승님의 친구라서 한 번 도움을 드렸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천악은 바늘구멍도 뚫어지지 않을 혹한의 빙벽 같았다.
당지독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녀가 어디가 빠진단 말인가! 배경 좋지, 예쁘지, 귀엽지, 어디 하나 빠질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일언반구에 거절을 당하니 손녀를 사랑하는 당지독으로서는 참기 쉽지 않았다.
“네 스승이 뭐라고 하지 않더냐? 자신의 제자나 딸이 있으면 서로 혼례를 올려주기로 했다는 얘기 말이다.”
“없습니다. 혹 그런 사실이 있다고 해도 제 마음에 안 들면 거절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찔러 본 당지독의 바늘은 그대로 휘어져 버렸다. 어디 한 군데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천악의 대답은 확고했다.
‘허어, 정말 대단하구나.’
자신 앞에서 이토록 당당하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당지독은 강압적으로 천악을 대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모든 공격을 무위로 만들어버린 괴물 같은 녀석이었다. 비록 자신이 전보다 더 강해졌지만 지금이라고 해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천천히 하자. 우선 묘정이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후 천천히 친해지게 만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