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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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31화
천수암제, 기연을 얻다 (3)
당지독은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가만, 이놈과 대적하는데 왜 이런 상황이 되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중원의 오천존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일방적으로 자신이 이기는 것이 확실했다. 그럼에도 남궁장천은 ‘서로’라는 표현이 썼다.
‘설마 이놈이 그렇게 강하다는 소리인가?’
도리도리!
당지독은 잠깐 동안의 생각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생각해도 터무니없었다. 아무리 강해도 자신보다 강한 자는 중원을 통틀어 세 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한낱 어린 무뢰배 녀석이 자신을 이길 것이라는 생각은 말도 안 되는 발상이었다.
꾸울꺽!
천수암제 당지독과 알 수 없는 실력을 가진 군천악의 대결을 보는 사람들 모두 침을 삼켰다. 세기의 대결이었다. 이 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실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천악의 눈에 당지독의 모습이 들어왔다.
당지독은 천악의 스승과 대등할 정도의 강자였다. 무상검제와 더불어 이제의 한 명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성격은 전혀 달랐다. 자신의 사부는 언제나 올곧았다. 세상의 만물에 귀 기울일 줄 알며 사물을 관조하는 몰아일체를 실천한 분이셨다. 마지막에 등선(登仙)하시면서도 사부는 한 곳을 향해 정진했다.
‘훗! 웃기는군. 감히 스승님을 떠올리게 하다니, 그냥 두지 않는다.’
일순간이나마 눈앞의 안하무인의 노인을 자신의 사부와 비교한 것이 천악에게는 기분이 나빴다.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신 고귀한 분이 바로 사부였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당연했다.
불쾌한 마음이 들자 그의 두 손에 야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야수의 기운이라 하지만 정확한 속성은 기의 변화에 의한 현상이었다.
야수권은 단조로운 권법이지만 천악에게는 이것보다 더 어울리는 것이 없었다. 일전에 제갈천기에게 보여준 기공탄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검환과 비슷한 기의 환을 압축해 놓은 것이었다.
천악은 기의 출수와 수발이 가장 자유로운 무인 중 한 명이었다. 극강의 육체와 능수능란한 기의 출수와 수발! 이것만 가지고도 이제껏 누구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당지독은 당연히 삼 초를 양보했다.
“삼 초를 양보할 테니 어디 재롱을 부려보아라.”
“그럼 막아보십시오.”
천악은 사양하지 않았다.
당지독은 삼 초 후에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았다면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런!”
남궁장천이 안타까운 소리를 냈다. 자신도 삼 초를 양보한다고 꼴값을 떨다가 순식간에 당해 버리지 않았는가. 삼 초 후에 당황할 당지독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 * *
천악은 오른손을 호랑이 발톱 모양으로 만들었다. 손가락에 맺혀 있는 이 기운이 부딪치면 어떤 것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었다.
우아아앙!
야수가 광폭하게 소리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공기의 파공성이 들리고 천악의 신형이 무섭게 움직였다.
꽈과과광! 파아아앙!
갑작스럽게 공격을 한 천악이었다.
천악의 오른손이 지나간 자리는 거대한 야수가 발톱을 휘두른 것 같은 자국이 남았다. 손가락으로 1장이나 되는 장소를 박살내 버린 것이다.
당지독은 순간 위기감을 느끼고 당가의 절정보법인 암룡혈보를 펼쳤다. 어찌나 빠르게 다가오는 패도적인 기운이었던지 제대로 피하지 못해 앞섶이 찢겨 있었다. 만약 피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몸이 육편(肉片)으로 변했을 것이다.
“고작 스친 것만으로 이 정도의 충격이라니… 네놈은 도대체!”
좀 전까지 하수라고 삼 초를 양보하려던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천악에 대한 생각을 전면 재수정해야 했다.
당지독은 잠깐이지만 남궁장천을 보았다.
‘이놈, 웃고 있어?’
남궁장천이 슬쩍 웃고 있었던 것을 보았다. 저놈이 웃고 있다는 것은 천악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알고서도 이따위 괴물을 나한테……!’
남궁장천이 왜 천악과의 대결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게 된 당지독은 분노했다. 그러나 그런 분노를 터뜨릴 시간이 없었다. 어느새 천악이 다시 공격을 해왔다. 그는 상대의 상황이나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꽈과과과광!
“이놈! 받아랏!”
도반삼양귀원공을 바탕으로 하는 지법인 삼양지가 손가락에서 출수되었다. 당가가 자랑하는 절정지법을 사용하고 시간을 벌려는 생각이었다.
타타탕!
“허억!”
삼양지는 극강의 열양지력을 바탕으로 한다. 그 기운은 사람의 몸을 뚫어버리는 것은 우습지도 않았다. 그런데 삼양지가 천악의 가슴에 맞더니 그대로 튕겨나가 버렸다. 몸이 무쇠가 아닌 이상 그런 소리가 나서는 안 되었다.
당지독은 시간이라도 벌려고 다시 삼양신장(三陽神掌)을 출수했다.
“이번에는 삼양신장이닷!”
파아아아앙!
막대한 반탄지력(反彈之力)에 오히려 당지독이 뒤로 2장이나 밀려나갔다.
손바닥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천악의 가공할 반탄지력에 하마터면 내공의 근간인 도반삼양귀원공이 무너질 뻔했다. 잠시지만 천악의 몸에 잠재된 기운을 본 당지독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난 거야?’
9성의 삼양신장이 오히려 튕겨나가 버렸다. 더군다나 내공까지 흔들리게 만들 정도로 그 힘은 너무 강했다.
이게 괴물이 아니면 어떤 게 괴물인가!
당지독은 살아생전 처음으로 두려움을 맛보아야 했다. 당지독은 이대로 체면 구긴 채 물러설 수 없었다. 그는 이제부터 살초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당가의 무기는 지법이나 장법이 아니었다. 물론 그 위력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독문암기와 독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제부터 진짜다. 네놈이 아무리 강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어디 해보시지요.”
“끝까지 건방지구나!”
천악도 시시하게 이대로 끝내기 싫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일 수를 피하고 다시 반격하는 상대를 만나보기는 스승님 이후로 처음이었다. 검왕조차 일격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끝났으니까 말이다. 그에 비하면 당지독은 정말 대단한 실력이었다.
당지독의 손에 열두 개의 각기 다른 암기가 들려 있었다. 당문이 자랑하는 독문암기수법인 연환십이참(連環十二斬)이었다.
촤라라락! 솨아아아악!
연환십이참의 무서운 점은 한 번의 공격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일단 한 번을 맞고 난 다음에 더욱 무서운 암기의 공격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열두 개의 암기가 나선의 폭풍처럼 회전을 하더니 천악의 주변을 모두 막아버렸다. 피하는 것을 미리 봉쇄한 것이다.
연환십이참을 펼치기 위해서는 최소 2갑자 반의 내공이 필요했다. 열두 개의 암기에 지속적으로 내기를 불어넣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카카아앙! 타아아앙!
연환십이참이 천악의 양 손에 부딪치더니 쇳소리가 나며 사방으로 떨어져 나갔다. 극강의 육체에 연환십이참의 광풍 같은 공격이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금강불괴냐?”
당지독이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한 가지의 암기를 같이 날렸다. 당가의 폭우이화정(暴雨梨花釘)이었다.
쿠아아아앙!
폭발음과 더불어 독으로 인해 형성된 검은 연기가 천악의 신체를 가렸다.
당지독이 마침내 독을 사용하였다. 삼환극독은 내공의 수준에 따라 그 독의 성질이 강하고 약하게 조절을 할 수 있었다. 삼환극독의 성분을 5성으로 하여 이화폭우정과 같이 날렸다. 절정의 무인라고 해도 한 줌만 먹게 되면 독수로 녹아내릴 수 있는 무서운 독이었다.
당지독은 마침내 끝이 났다고 생각을 했다. 아무리 천악이 강해도 삼환극독까지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안심하는 그 상황에서 연기가 걷히고 천악이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이, 이럴 수가! 네놈의 정체는 도대체 뭐냐?”
천악의 다음 말에 당지독은 뒤로 넘어갈 뻔했다.
“약간 시큼하군요.”
“뭐, 뭐? 이, 이……! 내 삼환극독이 겨우 시큼하다고?”
당지독 생애 이토록 모욕적인 말은 처음이었다. 아니, 오늘처럼 놀라보기는 정말 처음이었다.
“내 최강의 독을 맛보여주마!”
당지독은 당문이 자랑하는 암기수법 중 최강인 만천화우를 펼치려고 기수식을 취했다. 당문 역사상 만천화우를 극성으로 연성한 천재 당지독이 펼치는 만천화우였다.
만천화우는 적아의 구분 없이 상대의 말살을 위해 만들어진 극강의 암기수법이었다. 일단 그 기의 사정권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살아날 수 없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호신강기를 발하는 고수조차 그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하늘을 만 개의 암기로 가득 채우자 그 기운이 한 곳을 향해 집중적으로 쏟아 부어졌다.
솨라라락! 촤작!
과과과과과강! 두과과과광!
남궁장천이 재빨리 남궁혁성과 남궁태희를 만천화우의 사정권 밖으로 밀어내었다. 자칫 만천화우의 기에 휩쓸리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지를 개벽하는 듯한 진동이 남궁세가를 울렸다. 모든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들었을 정도로 대단했다.
당지독은 만천화우에 삼환극독을 최고로 집약시켰다. 만천화우의 가공할 위력과 더불어 독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허억! 허억!”
당지독은 숨을 몰아쉬었다. 제아무리 그가 천수암제라고 해도 만천화우와 삼환극독을 동시에 사용하고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끝났다, 이놈아!”
-포이즌 브레이크(독의 정화)!
한마디 말이 허공에 메아리치자 검은 독기로 휘몰아치던 연무장이 금세 정화가 되어버렸다.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독을 순식간에 정화하기 위해서는 피독주로는 소용도 없었다. 당지독도 독을 쓰고 다시 하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이 손을 쓰기도 전에 독이 정화되고 사라져버렸다.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연무장의 중심에 굳건히 버티고 있던 천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몸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씨익!
“네놈… 은 도대체가……. 커억!”
슈슈슉!
천악의 신형이 귀신처럼 움직였다. 그리곤 무방비 상태인 천수암제 당지독의 몸을 복날에 개 패듯이 두들겼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퍼퍼퍼퍽!
귀가 따가울 정도의 주먹질이었다.
당지독의 정신은 어느새 패도무쌍한 충격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당지독은 고통과 더불어 자신의 내공 기반인 도반삼양귀원공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정신적 충격과 더불어 육체적 충격으로 인해 내공이 흐트러진 것이다.
“으아아아악!”
천악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당지독을 살려두고 싶지 않았다. 상대를 죽이려는 마음을 먹었다면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죽도록 맞다가 죽는 거다.’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패서 죽이겠다는 잔인한 살심이 천악의 마음을 장악했다. 광폭한 패기로 뭉친 천악의 권은 그야말로 야차의 주먹과 같았다.
당지독의 몸이 정신없이 휘청거렸다. 온몸의 뼈가 박살이 나는 것 같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크윽! 맞다가 죽겠구나!’
* * *
남궁장천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천수암제가 만천화우를 쓸 때부터 상황은 악화일로(惡化一路)였다.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만일 이 상황이 계속 됐다가는 천수암제 당지독도 죽을 것이다. 그러면 사천 당가의 최고 어른이자 십대고수인 당지독의 죽음을 남궁세가가 책임을 져야 했다.
“안 돼! 그만해라! 그러다 죽으면 큰일난다!”
천악은 남궁장천의 외침 따위에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말을 지킬 의무도 없을뿐더러 살심을 먼저 품은 것은 자신이 아닌 당지독이었다. 그의 결정은 단호했다. 이 결정을 막는다면 그것이 검왕이라고 해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이분이 먼저 저한테 살심을 품었습니다. 그 정도면 죽을 이유가 충분하지요.”
검왕 남궁장천은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너무도 차가운 군천악의 말에 도무지 뚫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마지막에나 쓰려고 한 말이었다.
“그는 자네 스승의 친구일세.”
멈칫!
천악의 주먹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천악의 눈이 남궁장천의 눈을 바라보았다. 야수안이라 불리는 진실의 눈이 번쩍였다. 상대의 진실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남궁장천은 자신의 눈을 통해 들어오는 섬광과 같은 빛에 온몸이 경직됨을 느꼈다. 압도적인 정신력이었다. 남궁장천조차 그 기운에 대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광폭한 기운이 남궁장천의 머릿속에 숨겨진 진실을 내려다보았다.
“음, 사실이군요.”
천악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스승의 절친한 친우를 반병신으로 만들었다. 더군다나 지금 꼴을 보니 내공의 기반이 무너지고 독의 원정에 손상을 입은 듯했다. 이대로 그냥 두어도 죽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천악에게 다른 것은 몰라도 스승에 대한 마음은 지극했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가르치며 희생했던 스승이었다.
“일이 묘하게 돌아가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