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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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30화
천수암제, 기연을 얻다 (2)
“음!”
천악이 고민을 했다. 그가 직접 그런 일을 하는 것보다 거대 상가의 도움을 받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금은혜가 천악의 성정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좋다.”
“그럼 협상이 성사된 거네요?”
“그래, 내가 일시적으로 냉기를 발산할 수 있는 장치를 주겠다.”
“일시적이요? 영구적으로 하면 안 되나요?”
“너무 욕심내면 전면 백지화되는 수가 있어.”
“아, 아니에요. 그렇게 하세요.”
“며칠 걸릴 거다. 내가 만들어주는 것을 일주일에 한 번씩 사용하면 냉기를 유지하는 데 문제는 없을 거다.”
“알았어요. 그럼 정식계약을 위해 서면으로 세부조항들을 작성하도록 하죠.”
“그러도록 해라.”
정식계약을 위해서는 금천상가로 가야 했다. 금천상가가 발행하는 계약서식과 인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천악에게 냉기를 발산하는 장치를 부탁한 것은 바로 식재료의 유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였다.
대륙에 사는 사람들에게 얼음이나 바다 생선 등은 매우 귀했다. 그나마 겨울에나 소금에 절인 생선들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생선과 과일 등의 신선도를 유지해 팔 수 있다면 굉장한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말 그대로 유통의 새로운 혁명이 되는 것이다. 또한 냉기를 발산하는 장치는 유통과 더불어 다른 여타의 상행위나 생활 전반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차후엔 모든 것을 금천상가가 독점을 하게 될 것이다.
천악은 아이스 계열 마법 중 하나를 선택했다. 물론 고서클의 마법보다는 저서클의 아이스 마법을 사용한 스크롤을 제작할 생각이었다. 스크롤로는 종이를 사용하여 인잰트하면 되었다
이런 정도는 금세 끝낼 수 있었다. 하나의 스크롤을 만들고 이미지 스캔(복사) 마법을 통해 수만 장을 한 번에 새긴 다음에 마력을 집어넣으면 되었다. 넘쳐나는 마력을 가진 천악에게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럼에도 일부러 금은혜에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 것은 계약을 좀더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였다. 일단 일을 하기로 했으면 이윤을 얻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저서클의 마법이라고 하지만 영구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마력이 필요했고, 마법진의 조작도 난이도가 높아져야 한다. 차라리 소모성으로 만들면 금천상가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천악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으리라. 빚을 많이 지워놓을수록 천악 자신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다다익선이겠지.’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많을수록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이 찾아올 것이다.
똑똑!
“고 총관입니다.”
“들어와!”
고 총관 뒤로 남궁태희가 보였다.
“또 무슨 일이야?”
남궁태희는 천악의 차가운 말에 서운했다. 그녀도 사내들 앞에서 항상 차갑게 보였지만 천악에게 유독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여심이 작용한 탓이리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사람이라면 자신은 남에게 서운하게 행동해도 남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남궁세가에 와주셨으면 해서요.”
“지금 좀 바쁜데, 다음에 가면 안 되나?”
“그게… 조금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젠데?”
남궁태희는 사천 당가에서 가장 높은 어른이 남궁세가에 방문해 군천악을 찾는다는 말과 더불어 그 전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당가의 독봉 당묘정을 아세요?”
“내가 어떻게 알아?”
“오대세가의 후기지수 중 한 명이에요. 그 중 한 명이 독봉 당묘정이에요.”
천악이 그제야 남궁장천의 회갑연에 가기 전 대장간에서 벌어진 일이 생각이 났다. 그 당시에 오대세가의 애송이들이 건방지게 자신을 점원 취급하고 위협을 가하려고 했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의 건방진 똥 덩어리들 중 한 명이라는 소리지?”
‘큭!’
남궁태희는 천악의 저 황당한 묘사에 웃음을 참아야 했다. 표현을 해도 저런 표현을 하다니, 당사자들은 상당히 모욕적일 것이다.
“아직 어리기는 하군. 그새 어른들에게 일러바칠 줄은 몰랐어.”
“그 어른이 강호십대고수 중 한 분이자 오천존이신 천수암제 당지독 어르신이라는 게 문제예요.”
“당지독? 그게 뭐가 문제지? 내 실력을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오라버니의 실력을 아니까 문제예요. 그분은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 분이세요.”
“흥!”
천악은 콧방귀를 뀌었다. 함부로 대할지 말지는 자신이 판단할 문제였다. 상대의 신분에 따라서 달리 대하는 것은 천악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어떻게 할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 네가 참견할 문제가 아닐 텐데?”
“그건 맞아요. 하지만 당지독 어르신은 나쁜 분이 아니세요. 그저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른 것뿐이에요. 오라버니도 알잖아요.”
그 남다른 것 때문에 피해 본 사람이 여간 많은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남궁태희는 차마 당지독의 괴행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좋아. 우선 가보지.”
“다른 걸 바라지는 않겠어요. 조금만, 조금만 참아주세요.”
더 말해 봤자 소용없었다. 천악이 강하기는 하지만 천수암제 당지독도 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한 것이다. 설마 하는 심정의 남궁태희였다.
* * *
하루에 몇 번씩 찾아와서 천악이 어디 있는지를 물어보았던 당지독이었다. 남궁장천에게 당지독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서 타당한 방법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었다. 당지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주관을 가지고 상대를 파악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 남궁장천은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네가 그놈을 감춰놓고 보여주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여행에서 돌아왔으니 곧 있으면 올 거라고 말입니다.”
“놈을 요절내지 않으면 내가 성을 간다.”
당지독도 많이 참고 있었다. 성질 같아서는 기다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직접 찾아갔을 것이다.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고 하더니 남궁태희와 천악이 남궁세가에 도착을 했다.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오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천악은 남궁태희의 안내에 따라 당지독이 머물고 있는 별채로 갔다.
불만이 많은 노인네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천악을 바라보았다. 노인네의 고약한 표정을 본 천악의 표정과 심기도 좋지 않았다.
인사도 하기 전에 당지독의 험악한 말이 쏟아졌다.
“네가 군천악이란 놈이냐?”
처음 말을 시작할 때부터 좋은 말이 나가지 않았다. 당지독의 말에서 그의 심기가 심히 불편하다는 뜻이 전해지고 있었다. 또 감히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손녀 당묘정을 네깟 놈이 괴롭혔냐는 힐난이 섞여 있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고울 것이다. 남궁태희의 당부가 없었다면 천악도 바로 반말로 응대했을 것이다. 노인네라고 해도 상호존중의 예를 모른다면 예의로 대해 줄 필요가 없었다.
“예, 제가 군천악입니다.”
천악의 말투는 여전했다, 무관심하고 감정의 고저가 전해지지 않는.
당지독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자신의 말투와 표정을 보면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놈에게 오히려 분기가 솟았다.
평소라면 그 대범함을 칭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손녀와 불쾌하게 엮여 있으며 자신을 기다리게 한 놈이었다. 당지독은 천악의 말투조차 거슬렸다.
“네놈이 한 짓을 알고 있겠지?”
“모릅니다.”
“뭐야! 네놈이 내 사랑스러운 손녀의 자존심을 망가뜨린 천인공노할 짓을 했으면서 그따위 말을 한단 말이냐?”
당지독은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옆에서 남궁장천은 흥미진진하게 구경을 하였고, 남궁태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장천은 하인을 시켜 술 한 잔과 안주거리를 가져오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남의 집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지 않는가.
“당시에 저는 건방지고 오만방자한 계집을 훈계한 것밖에 없습니다. 남을 무시하고 자신의 힘을 내세우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아닙니까?”
“뭐, 뭐시라? 이놈!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따위 망발을 하는 것이냐!”
천악은 자신의 손녀를 건방진 계집이라 칭하고, 그걸 핑계로 죄 없는 사람을 핍박하는 자신이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고 돌려 말하고 있었다.
천수암제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화가 치밀자 사천 당가의 독문심법인 도반삼양귀원공(導反三陽歸元功)이 운용이 되었다. 당지독은 무시무시한 기운이 응축되자 집중적으로 천악을 향해 뿜어내었다. 십대고수이자 이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천수암제 당지독의 무형살기(無形殺氣)는 여타의 살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흔히 당문을 평가할 때 가장 지독하고 마늘처럼 맵다고 표현한다. 살기도 그와 같이 독심으로 뭉쳐져 있었다.
우우우웅!
당지독의 살기를 정면으로 맞으면서도 천악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살기는 말 그대로 상대를 죽이려는 기운이다. 그 기운은 경지가 높아질수록 더 강해지고 매서워져서 상대의 정신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또한 절대경지에 이르면 살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된다.
“커억!”
밖에 있다가 들어온 남궁혁성이 헛바람을 일으켰다. 살기를 정면으로 받는 것도 아니건만 그 엄청난 기운에 남궁혁성이 버티지 못하고 뒷걸음을 쳤다. 그는 급히 천뢰제왕신공을 운용했다.
‘엄청나다.’
사천 당가의 천수암제 당지독이 왜 대단한지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당지독은 자신의 기운에도 변화가 없는 천악을 보며 말을 하였다.
“제법 심지가 굳구나. 하지만 너무 건방지다.”
“지금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자초지종은 들어보지도 않고 이따위로 행동하다니, 그러고도 절대고수라고 불릴 수 있는 겁니까?”
“허어, 네놈이 지금 날 가르치는 것이냐!”
“나이가 많다고 대접해 주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당지독 일생에 이런 놈은 처음이었다. 그의 앞에서 어떤 이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당지독은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분노가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너무 생생하게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천악을 보고 어이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네놈의 입심이 실력만큼 대단한지 봐야겠구나.”
“절 너무 자극하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자극? 네놈이 정녕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당지독이 처음에 생각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천악은 자신을 보자마자 엎드려서 잘못을 사죄하고 자신은 그 벌로 팔다리 몇 개 정도 분지르고 말려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 정도로 끝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제는 자존심상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천악은 나름대로 화가 나 있었다. 잘잘못을 따지진 못할망정 막무가내식의 행동이 못마땅했다. 힘이 있다고 남을 쉽게 핍박하는 저런 행태를 가만히 두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상황이 너무 심각해지자 남궁장천이 중재에 나섰다. 그는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둘 중 하나가 죽을지도 몰랐다. 천악이 죽는 것도 안 되지만 만약 당지독이 죽는다면 그것 또한 당가와 척을 지게 되며 나아가 정도무림 전체와 전쟁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자자, 너무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지 맙시다. 당 선배,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직 어린 후배입니다.”
“닥쳐! 지금 이놈이 나한테 하는 말을 듣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허험, 자네도 조금 자제하게.”
“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있다면 저분이 저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선을 명확히 그어야 했다.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을 만들게 되면 정말 골치 아파진다.
천악과 당지독의 성격상 둘 중 누구를 굽히려면 힘으로 누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럴 경우 최후의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남궁장천은 그 안전장치를 명확히 했다.
“좋습니다. 둘 다 서로 실력을 확인해 보려고 하니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무슨 말입니까?”
“생사대결은 안 됩니다. 여기서 누가 죽는다는 것은 남궁세가에 위협을 가하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정도가 있는 법이니까 서로 간에 목숨을 노리는 것은 자제했으면 합니다. 이걸 지킨다면 저는 공정하게 대결을 지켜보겠습니다.”
당지독은 남궁장천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남의 세가에 와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남궁세가를 무시하는 처사였다. 그래서 수긍을 했다. 천악도 수긍을 했지만 상대의 마음을 보고 판단할 생각이었다.
“좋네. 나도 그 정도까지는 하지 않겠다. 단, 저놈은 평생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할 거야!”
“저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실현될지 몹시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