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8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8화
남궁혈사(南宮血死) (2)
남궁세가의 연회장은 거대한 광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 공간이 남아 있었다.
연회장의 식탁은 두 줄로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고, 그 중심의 끝에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장천이 앉아 있었다. 허연 수염과 더불어 순백의 비단옷을 입고 있는 노인은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저 사람이 검왕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풍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남궁장천의 옆으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온 귀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강호 밥을 먹은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들이었다.
남궁장천이 일어서며 여러 사람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여기 이 초라한 노인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온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우리 남궁세가에서도 소홀함이 없이 대접을 할 것이니 마음껏 연회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남궁장천이 몸소 일어서서 포권을 취하자 연회장의 모든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며 포권을 취해 남궁장천에게 예의를 차렸다.
남궁장천은 주변의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의 귀빈에게 인사를 받고 강호의 고수들에게도 축하를 받았다. 모든 과정이 끝이 나고 나자 남궁혁성이 천악을 데리고 남궁장천에게 소개를 하였다.
“아버님!”
“그래, 성아, 무슨 일이냐?”
“여기 제 의제를 소개하겠습니다.”
“의제? 언제 그런 좋은 인연을 맺었느냐? 네 평소 성격으로는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참으로 다행이구나.”
남궁장천은 남궁혁성의 뒤로 보이는 젊은 청년인 천악을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였다. 무공을 익혔는지 살폈지만 내공을 수련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겉으로 보이는 외형에서 상당한 수련을 했는지 몸 자체의 균형이 뛰어나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음!’
처음으로 의제라며 사귄 사람을 소개한 아들이었기에 기대를 했지만 별다른 특징이 없자 남궁장천은 조금 의아했다. 그렇지만 그것까지고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꼭 무공이 아니라도 다른 것에서 뛰어난 점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악이 남궁장천을 보며 인사를 하였다.
“군천악이라고 합니다. 평소 흠모하던 남궁세가의 가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물론 입에 발린 말이지만 천악은 그저 의례처럼 대하였다.
“군천악이라……. 그래, 반갑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는가?”
천악은 지금 백수다. 직업이 없지만 돈이 많기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 군천악은 세상에 대해 배우고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공부 중입니다.”
“음, 세상에 대해 알고 배우려는 자세가 훌륭하군.”
“아버님, 아우가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남궁혁성이 천악의 선물을 남궁장천에게 주었다.
남궁장천은 아무 생각 없이 선물을 받다가 그 선물의 가치를 알아보곤 매우 놀랐다.
“오호, 이런 귀물을 준비하다니……!”
“아버님, 이게 그렇게 좋은 겁니까?”
“당연하지 않느냐! 붓의 생명은 이 털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은 영물이라고 일컬어지는 백호의 털로 만들어진 붓이다. 백호묵필이 바로 이것이란다.”
선물로 평소 가지고 싶어하던 것을 받았는데 기분 좋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궁장천은 이 선물로 인해 천악에 대한 호감이 몇 배는 증대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좋은 선물을 고르다니, 천악에게 남다른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네, 붓을 볼 줄 아는구먼. 허허허!”
젊으나 늙으나 선물을 좋아하는 것은 똑같다.
천악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였다.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하는군.’
저 정도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힌 것이라 볼 수 있다. 상대가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검왕이니 말이다.
남궁장천은 잠시 웃다가 군천악이라는 이름을 되짚어 보았다.
‘군천악? 그럼 섬뢰마검 사건에 연관된 놈……?’
이름-군천악
나이-스물다섯 살.
풍운장원의 장주이며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음.
독서를 좋아하며, 지금은 대장간에서 철 다루는 기술을 배우고 있음.
섬뢰마검의 배후세력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이나 수상한 부분이 아직 풀리지 않았음.
군천악에 대한 추가 보고서를 읽은 것이 생각이 났다.
‘음, 보기에는 맘 좋은 청년인데…….’
역시 선물로 인해 호감도가 상승했기에 위험한 인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네가 그럼 내 딸 소희와 같이 있었던 서생인가?”
“음… 한 팔이 잘린 노인이 소희를 노릴 때 같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난 사실 자네가 그때 같이 있었다는 것으로 자넬 의심하고 있었네. 장씨 아이들이 제법 실력이 있다고는 해도 섬뢰마검을 이길 정도는 아니거든.”
천악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을 보면 이제는 그 의심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는 것이리라.
“사실 완벽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부끄러운 것을 숨기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저는 의심을 받는다고 해도 아무런 사심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아무튼 연회를 즐기도록 하게.”
그러나 남궁장천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의심을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일단 싸움을 원한다면 죽여버릴 마음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천악은 인정 때문에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어설픈 정은 없는 것만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천악은 연회장을 둘러보다가 오늘 오전에 진가철방에서 봤던 황보현성과 제갈지, 당묘정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황보현성은 몇 시진 동안 운기를 한 후에야 비로소 내상이 완치가 되었다. 강호 후기지수 중에서도 정파오룡에 들어가는 자신이 겨우 상대의 살기에 타격을 받았다는 사실로 인해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화가 치밀지만 막상 상대를 다시 만났을 때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고작 살기 따위에 내가……. 그러나 놈은 혼자다!’
홀로 오대세가 중 하나인 황보세가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이는 강호에서 삼존(三尊)이라고 불리는 일성(一聖)이마(二魔)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황보현성은 놈을 어떻게 해서든 가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대로는 분해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군다나 호감이 있는 여인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한 것을 생각하면 분이 풀리지 않았다.
황보현성은 그런 무모한 생각을 하면서 남궁세가의 연회장에 들어왔다. 그런데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장천의 옆에 오전에 보았던 그 간악한 놈이 버젓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저놈이 어떻게……!’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오대세가는 각 세가 간의 힘이 그리 차이나진 않지만 남궁세가의 힘이 가장 강한 것을 부인할 순 없었다.
제갈지와 당묘정도 천악을 보았다.
오전에 입고 있던 허름한 옷과는 다르게 온몸에 화려할 정도로 기품이 있는 옷을 걸치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남궁세가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던 건가?’
오전에 오만했던 천악의 대처를 보면서 제갈지는 나름대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같은 오대세가의 사람에게 먼저 무례를 한 꼴이라고!
천악은 그들을 한번 살펴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애초부터 발버둥을 친다고 해서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오대세가, 아니 정파무림 전체가 달려든다고 해서 자신이 끄떡이나 할 것 같은가! 소용없는 짓이다. 천하제일강자라는 허명 따위는 필요 없었다. 누가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자신은 이미 천하제일이었다.
천악은 연회장에 차려진 음식을 골라 먹었다.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대문파의 잔치여서인지 음식의 질이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천악은 음식을 먹고 술을 한잔 마셨다.
‘응?’
혀끝을 자극하는 술의 뒤끝에서 지독한 기운이 감지가 되었다. 초감각을 익힌 천악은 어떤 미세한 독도 구분해 낼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
‘잔치와 더불어 독이라……?’
누군가 음모를 꾸민다면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궁세가가 그토록 허술한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술에 섞여 있는 독은 보통 독이 아닌 산공독(散功毒)이었다. 독에 대한 조예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독이라면 중독된 사람은 하루 종일 내공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천악에게 독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저 입맛을 버린 것 외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산공독이 초절정의 고수에게는 어느 정도 억제력이 있겠지만 보통의 산공독이 아닌 경우라면 그것도 예외일 수 없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이들은 독의 정체를 모를뿐더러 술을 먹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다. 천악처럼 초감각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개중에 독의 절대경지인 독성(毒聖)에 이른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 알아채기는 힘들었다.
천악이 남궁장천을 바라보았다.
남궁세가 내에서 천악을 빼고 가장 강한 무인인 검왕 남궁장천조차도 독이 있는지 구별하지 못하고 그저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해독을 할까?’
마법을 펼치면 산공독이 아무리 지독해도 정화시켜버릴 수 있다. 그러나 정화시키면 상황을 이렇게 몰고 간 배후인물을 찾기 힘들 듯했다.
‘기다려보는 게 나을 것 같군.’
산공독은 내공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내공이 지나는 혈맥의 길을 막아서 억지로 운기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독이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해독이 되지 않는 이상 중독된 사람은 무공을 발휘할 수 없다. 억지로 무리하게 운기할 경우 혈로가 터져버려 내공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죽지는 않는다. 살아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살릴 수 있는 천악이었다.
* * *
씨이익!
연회장을 바라보면서 회심을 미소를 짓는 중년 사나이가 있었다. 아무도 그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연회장의 구석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였다.
‘날 버린 세가, 나의 존재를 무시한 것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보아라!’
오늘이 오기를 기다리며 30년 동안 이를 간 중년인이었다.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세가의 주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그것도 가장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다시는 세가 땅을 밟지 못하게 한 남궁세가를 세상에서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중년인이 연회장의 중심으로 이동을 하였다. 천천히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도록 걸어갔다.
남궁장천과의 거리가 1장에 다다랐을 때 중년인이 말을 하였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중년인의 말에 남궁장천의 표정이 변하면서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남궁장천은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른 중년인을 보고 너무 놀라서 일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너, 너는 혁이 아니냐?”
“30년 만이군요.”
중년인은 남궁장천의 동생인 남궁장혁이었다. 30년 전에 갑자기 사라져버린 동생이 지금 나타났으니 남궁장천으로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궁장천은 동생이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분명히 동생이 죽었다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진정 혁이란 말이냐? 살아 있었으면서 왜 이제야 나타난 것이냐?”
반가움이 섞인 남궁장천의 말에 남궁장혁이 뒤틀린 음성을 내뱉었다.
“흥! 내가 죽어서 가주가 됐으면서 반가운 척하지 마라!”
“무슨… 말이냐?”
“날 죽이려 한 아버지, 아니지 그놈과 합작해서 날 죽이고 내 인생을 망쳐버렸으면서 뻔뻔하게 모른 척하는 것이냐?”
남궁장혁의 차가운 말에 남궁장천의 표정도 가라앉았다.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살아왔다는 반가움조차 사라지고 있었다.
“이놈, 고인이 되신 아버지께 그 무슨 말버릇이냐?”
“닥쳐! 내가 그놈 때문에 당한 고통을 오늘 보상받을 것이다!”
“너는 진정 아버지가 널 위해 희생하신 것을 모른단 말이냐?”
“웃기지 마. 날 위해 희생했다고? 난 그날로 주화입마를 당해 세가에서 내쳐졌다!”
남궁장천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 남궁장혁은 남궁장천과 더불어 남궁세가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후기지수였다. 둘 다 무공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고 세가의 무공을 고스란히 이어받으면서 실력을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남궁장혁이 창궁무애심법을 익히다가 주화입마를 당하게 되었다. 당시 가주였던 아버지 남궁진운은 자신의 모든 내력을 남궁장혁에게 쏟아 붓다가 결국에는 선천진기(先天眞氣)까지 소모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남궁진운은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나타난 동생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이냐?”
“말로써 내 기분을 풀 생각은 없다. 이제부터 그 죄 값을 받게 해주마!”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버린 동생이었다. 과거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던 남궁장천에게 이것은 상당히 충격이었다. 죽었던 동생이 갑작스럽게 다시 나타난 것도 그렇고, 다짜고짜 세가에 복수를 하겠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남궁장천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둘의 대화를 듣고 모두 놀라고 있었다. 검왕의 동생이 나타났고, 그 후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는 살벌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놈, 그럼 섬뢰마검의 일도 네 짓이냐?”
“후후, 역시 네놈은 머리가 좋구나. 그러니 그 좋은 머리로 날 죽이려고 했겠지.”
자신의 딸을 납치하려던 섬뢰마검 지경천의 일이 생각난 남궁장천이 혹시나 하며 묻자 남궁장혁은 바로 자신이 행한 일임을 시인해 버렸다. 그저 남궁세가에 작은 분란을 조장하려고 한 행동이었다. 원래부터 오늘의 일을 만들기 위해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
“마(魔)에 물들었구나. 어찌 정파제일세가인 남궁세가에 너 같은 놈이 태어났단 말이냐!”
“헛소리 마라! 어디 그동안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볼까?”
“과거에도 그렇지만 네가 날 이길 수 있다 보느냐?”
“곧 죽어도 자존심은 있단 말이지?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될지 보겠어. 곧 후회하게 될 거다. 크크크!”
검왕 남궁장천은 동생이 어딘지 이상한 것을 보고 우선은 제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자초지종을 정확하게 들어보아야 할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몰라도 동생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듯했다.
천악은 남궁세가 주변으로 백여 명의 무리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강했다. 선기(善氣)와 마기(魔氣)가 뒤섞여 있는 듯한 이질적인 기운이 천악을 자극했다. 산공독으로 인해 주변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하는 이들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저놈의 말대로라면 남궁세가에 큰일이 생기겠군.’
구해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자신이 먼저 나서서 일을 해결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구한다면 남궁소희 하나만 구해 줄 생각이었다.
과거에는 사람이 죽는 것에 눈물을 흘리는 연약한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누가 옆에서 반으로 쪼개진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고 무덤덤했다.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남궁장천이 몸 안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는 검왕이었지만 상대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동생은 사악하게 변해 있지만 과거에도 실력만큼은 뛰어났다. 언제나 자신의 뒤를 바짝 따라왔던 동생은 앞으로 나아가 성취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선의의 경쟁자였다.
그 시절 함께했던 일들이 떠올랐지만 변해 버린 동생을 가만둘 수는 없었다.
“응?”
기는 가만히 있으면 잠재력이 될 뿐이다. 발휘되지 않는 기는 쓸모가 없다. 그 기는 순환을 통해 힘을 발휘하며, 그 순환은 혈맥을 따라 이동하게 된다. 혈맥은 넓이가 넓고 단단할수록 많은 기를 이동시키며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혈맥을 통해 이동된 기가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지금 남궁장천은 기의 순환을 막고 있는 이질적인 기운에 의해 내공을 3할 이상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순환을 막고 있는 장애물을 억지로 뚫으려고 할수록 통로가 막힌 기운들 때문에 혈맥이 터질 듯한 충격을 받았다.
혈맥이 터지면 순환되던 기운들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버리게 된다. 기는 정해진 길을 통해 가야 한다. 가지 않던 길이 억지로 뚫리게 되면 그 순간부터 주화입마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내공을 쓸 수 없다. 점점 더 기운이 소실되고 있다.’
“허어, 산공독을 쓴 것이냐?”
“눈치가 빠르구나. 하지만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것은 보통 산공독이 아니다.”
검왕쯤 되는 인물은 산공독의 영향에서 웬만하면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절대고수라 일컬어지는 검왕조차 산공독을 해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 봐도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