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5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5화
금룡화 금은혜 (2)
“제기랄! 개 같은 놈! 벼락 맞아 뒈질 놈!”
와장창! 쨍그랑!
복면을 벗어버린 금은혜는 화가 나서 방 안의 물건들을 향해 화풀이를 하였다. 하지만 그녀도 값이 나가는 것은 건드리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값이 비싼 물품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그녀는 화가 났지만 어느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놈이 자신한테 이상한 벌레를 집어넣은 것은 분명했다. 아마 이대로 놈을 잡아들이라고 말했다가는 머리 없는 시체가 되고 말 것이다. 지금 그녀는 화가 나면서도 그렇게 될 경우 생겨날 일에 대해 공포감이 들고 있었다.
“아휴, 왜 그런 놈이 그렇게 생활을 하는 거야! 내가 그런 놈인 줄 알았냐고!”
파락호 같은 놈이라고 생각했건만 놈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얼음같이 차갑고 무덤덤한 눈을 가진 놈. 그런 인간은 파락호가 아니라 오히려 더 무서운 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기이한 사술과 강력한 무공까지 지녔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런 엄청난 무공과 사악한 사술을 가지고서 가만히 있는 놈… 그게 더 이상했다.
“이놈은 세상에 악이 될 놈이야. 나같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밤이 지나도록 그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놈을 죽여버리고 같이 세상을 하직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조용히 숨죽이며 자존심을 버리고 살 것인지 머리 터지게 고민했다. 결국 그녀는 사는 것을 선택하고 말았다.
“악마 같은 놈이 갑자기 날 죽일지도 몰라!”
그럴 수도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자신을 죽여버리면 어찌하겠는가!
사실 복수고 뭐고 완전히 그놈의 물건(?)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불안해서 놈의 주변에서 벗어나기도 뭐했다. 차라리 옆에서 지켜보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될지도 몰랐다.
“나의 이 아름다운 용태를 보게 되면 반할지도 몰라.”
그녀는 상상을 초월한 생각을 버젓이 하고 있었다. 과연 그녀가 생각한 대로 될지 의문이었다.
어찌됐든 그녀는 상대가 악마든 아니든 반드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내고 말았다.
* * *
정오의 햇살이 빗물에 반사되어 화사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였다. 아침나절에 비가 오다가 정오가 되자 비가 그쳤다. 그리고 난 후 해가 뜨니 상쾌하고 시원하면서도 따뜻했다.
천악은 오전에 책을 보고 난 후 정오가 되자 한성객잔으로 향했다.
아침에는 요리사가 내준 오겹살을 오래된 김치와 함께 고추장을 넣고 상추쌈을 해먹었다.
천악은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고기가 아니면 잘 먹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는 데 화식이 해가 된다고 하지만 천악에게는 상관없었다. 야수권은 근력을 바탕으로 하는 무공이므로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고기를 먹어주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그래서 천악은 아침에도 고기, 점심에도 고기, 저녁에도 고기를 먹는다. 고기가 없으면 아마 상을 엎어버릴지도 모른다.
천악이 오자 점소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늘 앉던 자리로 가시겠습니까?”
끄덕!
천악이 천천히 3층으로 올라가 늘 앉던 창가 자리로 이동을 하는데 소리가 들려왔다.
“천악 오빠!”
천악이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니 전에 만났던 귀여운 남궁소희가 자신을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귀여운 볼과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가진 남궁소희의 부름에 천악은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천악 오빠, 이리로 와.”
천악은 소희만 보고 다가가려고 하다가 그 옆으로 사내와 여인이 있는 것을 보고 망설였다. 인간관계를 넓히려면 여러 사람과 만나는 것이 좋지만 천악은 이 세계에서 별로 인맥을 쌓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소희가 계속 부르자 어쩔 수 자리를 이동했다.
“소희야, 오랜만이구나.”
“오랜만이야. 여기는 우리 오빠하고 언니야.”
“반갑습니다. 군천악이라고 합니다.”
천악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 사내와 여인도 대답을 해주었다.
“반갑습니다. 남궁혁성이라고 합니다.”
“남궁태희예요.”
“천악 오빠, 여기 앉아!”
소희가 자신의 옆자리 의자를 빼면서 앉으라고 권유를 하였다.
천악으로선 참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들은 남매들끼리 오붓한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천악이 방해를 한 꼴이 된 것이다.
“이거 오붓한 자리를 방해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색해 하는 천악의 말에 남궁혁성이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놀랐습니다. 소희가 우리 말고 이토록 친근하게 대하는 분이 있다니 말입니다.”
“그럼 실례를 하겠습니다.”
천악이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소희와 천악의 말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남궁혁성과 남궁태희가 무안할 정도였다.
소희는 천악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어디서 사느냐, 나이는 어떻게 되느냐, 어떤 여자를 좋아하느냐 등등.
천악은 웃으면서 귀여운 소희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 주었다. 일곱 살짜리가 할 만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더 귀여운 천악이었다.
남궁태희의 얼음 같은 얼굴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약간 웃는 것 같기도 했다.
남궁태희는 빙화라고 불릴 정도로 차가웠다. 그녀는 언제나 냉철했으며 사내를 대함에 추호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가시가 돋친 말을 서슴없이 하지만 강호의 사내들은 그녀의 그런 말조차 아름답게 보고 있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의 아름다움과 남궁세가라는 배경 때문이었다.
‘아!’
“낯이 익다 했더니 천기서점에서 뵈었던 분이군요.”
천악의 가슴을 잠시나마 뛰게 만들었던 여인이 바로 남궁태희였던 것이다. 어쩐지 처음 봤는데도 낯이 익다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랬나요?”
남궁태희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단조롭게 대답했다.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접근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천악도 같은 유(類)로 보고는 냉랭하게 대꾸한 것이다. 친근한 척 접근하는 놈들의 수작이 뻔히 보인다는 투였다.
하지만 천악은 그 차가운 말투에도 별로 서운해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번 봤다는 것을 말했을 뿐 그것으로 어떤 마음을 품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남궁혁성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동생과 있으면 항상 겪는 일이었다.
“제 동생이 조금 차갑지요? 저러니 언제 시집을 갈지 그게 걱정입니다.”
“아닙니다. 저게 매력일 수도 있으니까요.”
찌릿!
남궁태희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자 남궁혁성이 살짝 몸을 떨었다. 차가운 눈동자, 빙안(氷眼)이 발동한 것이다.
이 눈빛에 움찔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천악은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천악의 무심한 눈을 보자 남궁태희가 속으로 당황을 했다.
천악은 여인에 대해서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상대가 관심 없다는 데 거기서 더 대화를 이어가거나 감정을 이입하진 않았다.
천악은 그때부터 소희와 더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간간이 남궁혁성이 말을 붙이면 정중하게 대답을 해주었을 뿐.
남궁혁성은 눈앞의 젊은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잘 구분한다. 몸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이 좋지 못하면 아이들은 따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더군다나 저토록 소희에게 좋은 말상대가 되어주니 오히려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군천악도 남궁혁성이 마음에 들었다. 남궁세가라는 천하제일세가의 소가주이면서도 남을 대할 때 배려를 하고 겸손했다. 저런 태도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기질이 아니었다. 즉, 남궁혁성은 당당함과 겸허함을 동시에 구비했다고 볼 수 있었다.
반대로 남궁태희에게는 아무 감정이 없다. 처음의 두근거림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소희는 귀여웠다. 저런 아이라면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혼인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소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 것이 신기했다.
처음 이 세상에 와서 느낀 것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수련을 했고, 수련으로 인해 세상에 대한 분노를 뿜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허무해질 때 다시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허무함은 좀처럼 극복하기 어려웠다.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서 자유롭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 집은 풍운장원이다. 소희를 내 장원에 초대하고 싶구나.”
“정말이요? 정말 가도 돼요?”
“물론이지. 우리 귀여운 소희가 온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내가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우리 집의 숙수는 최고 중의 최고란다. 성찬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마.”
남궁혁성은 놀라고 있었다. 풍운장원은 합비 내에서 가장 화려한 장원이었다. 그 값이 만만치 않아서 팔리지 않았던 것을 5년 전에 누군가 샀다는 말을 들었지만, 설마 지금 앞에 있는 청년이 소유주인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풍운장원의 주인이라니, 대단하군요.”
“남궁세가의 소가주께서 그런 말을 하다니 너무하십니다.”
남궁세가는 천하제일세가다. 화려한 장원 한 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남궁세가와 비교가 될 리 없었다.
천악의 말에 남궁혁성이 머쓱해졌다.
남궁태희는 왜 이렇게 됐는지 억울한 상황이었다. 혼자 노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과 어울리면서 대화하는 것을 즐겨하진 않지만 가족 간에는 이렇지 않았다. 간간이 서로 웃으면서 대화를 하는 편인데 지금은 완전히 황허강 오리알이 되어버렸다.
‘다 저 사람 때문이야!’
남궁태희는 이 상황이 모두 군천악 때문이라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를 바라보는 눈이 더 차가워졌다.
한기가 뿜어져 나올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건만 정작 눈빛을 받는 대상은 전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왜 그러냐는 듯 무관심한 눈빛이었다.
‘헛!’
남궁태희를 보고 있던 남궁혁성이 혀를 찼다. 남궁태희의 저 빙안은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군천악이란 청년이 아무렇지 않자 놀란 것이다.
‘저런 강심장과 무관심이라니… 대단하다.’
굉장하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무공을 익혔는지 살폈는데 내공의 화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태양혈도 밋밋했다. 하지만 헐렁한 소매 사이로 보이는 팔뚝의 근육은 상당했다.
‘외공을 익혔나?’
스물댓 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은 청년이 반박귀진의 절대고수라고 보기는 어렵기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열흘 후에 아버지의 회갑연이 있는데, 세가로 오시지 않겠습니까?”
“초대해 주신다면 감사합니다. 음, 그런데 선물로 뭐가 좋을까요? 아무래도 주인공이 좋아하시는 것을 선물로 가지고 가는 것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군천악이 선물로 뭐가 좋을지 물어오자 남궁혁성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은 요새 서예에 빠져 계십니다. 좋은 벼루나 붓이 좋지 않을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제가 최고로 좋은 붓을 한번 마련해 보겠습니다.”
사삭사삭!
그때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단자락이 스치며 사뿐사뿐 걸어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인임을 알 수 있었다.
천악은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미간을 찌푸렸다.
올라온 여인은 군천악을 보고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군 오라버니!”
너무나 반가워하는 모습 때문에 과연 어제 죽이네 마네 했던 여인이 맞는지 의문스러웠지만 천악은 그저 무표정했다. 그리고 이 여자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여인은 바로 어제 도둑질을 하다 생사의 간극을 맛본 금은혜였다.
그녀는 탁자로 다가오더니 다른 사람에게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금은혜라고 해요. 여기 군 오라버니와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남궁혁성은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금은혜는 빙화라고 하는 남궁태희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더구나 누이동생 태희와 달리 화사하게 웃는 모습이 마치 아름다운 봄꽃을 연상케 하였고,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운 몸매는 저절로 사내의 마음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런 여인이 다가와 군천악과 가까운 사이라고 하니 객잔 3층에 있던 손님들 모두 부럽다는 표정이 되었다. 저런 여인과 가까운 사이라니, 생각해 보면 둘 사이가 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아름다운 소저를 뵈었습니다. 저는 남궁세가의 남궁혁성이라고 합니다.”
“남궁태희예요.”
소희가 천악의 팔을 잡으며 금은혜를 노려보았다.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의 것을 탐한다고 생각하는 남궁소희였다.
“앉으라고도 안 하세요? 여전히 짓궂다니까, 우리 오라버니는.”
“앉으십시오.”
남궁혁성이 먼저 적극적으로 앉을 것을 권유했다.
천악의 표정이 약간이지만 찡그러졌다.
[무슨 짓이지?]
천악의 전음에도 금은혜가 아무렇지 않은 듯 천악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은근히 유혹하는 듯한 모습과 찰싹 달라붙는 것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충분히 부러워할 만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죽고 싶나?]
천악은 그런 살가운 모습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제 제 집을 털러 온 계집이 친하게 군다고 갑자기 좋아지겠는가! 그리고 그 여인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의심을 가진 여인에게 잘 대해 주고 싶진 않았다.
무섭도록 차가운 천악의 전음에 금은혜의 마음은 철렁 가라앉았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천악은 여인의 모습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정말 이런 사람이라니……!’
‘앞으로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구문제독부의 금지옥엽이자 황실 제일 미인이라고 칭해지는 자신이 아닌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눈앞의 얼음 같은 사람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혹시 금은혜 소저라면… 설마 구분제독부의 금룡화이시오?”
“어, 남궁 공자께서는 아시네요? 맞아요.”
금은혜는 자연스럽게 신분을 밝힐 수 있게 해준 남궁혁성이 고마웠다. 스스로 밝히기에는 조금 민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신분이 밝혀지자 남궁혁성은 1또 놀라고 있었다. 보통 여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구문제독부의 금룡화라니, 신분이 엄청났다.
‘금룡화와 가까운 사이라니!’
이젠 오히려 천악의 신분이 무엇인지 의심이 드는 남궁혁성이었다. 풍운장원의 주인이라는 것 이외에도 더 중요한 신분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진짜 신분이 무엇이냐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기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이후엔 금은혜와 소희가 경쟁을 하다시피 천악과 대화를 하려는 상황이 연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