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58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58화
158화 전운(戰雲)(2)
***
귀족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런 지지기반도 없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몸이라, 제국을 힘있게 이끌어 가지는 못할 거라고…
귀족들과 계집애처럼 느끼한 대화를 나누기보다 검을 휘두르는 게 더 좋았다.
애초에 황제의 자리는 굳이 욕심을 내지도 않았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내가 황제의 자리를 탐내면 형제끼리 싸워야 하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형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려고 했다.
귀족들과 교류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금은 모두 헛수고에 불과한 일이 되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귀족들과 유대관계는 최악이다.
일부러 듀카스 대공과 모리스 공작을 가까이 두고 있으나, 그들의 본심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두 사람을 파악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아이언 백작에게 끌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위기에서 나를 구해 준 강렬한 기억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언 백작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어서다.
나이가 엇비슷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귀족들의 버터를 바른듯한 언변으로 꺼내놓는 수많은 안건.
제안의 형식을 하고 있으나, 시험하고 있다는 걸 안다.
나에게 제왕(帝王)의 자질이 있는지…
답답하다.
그래서 아이언 백작이 생각났다.
직설적인…
다른 의미를 굳이 생각할 필요 없는 그의 단순함이 그리웠다.
그래서 찾아왔는데, 대뜸 인상을 구긴다.
“뭐야? 내가 온 게 싫어? 표정이 왜 그래?”
기껏 찾아왔는데, 저런 표정이라니 기가 막혀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제가 황궁으로 가겠다고 했잖습니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한 번 둘러보겠다고 했잖나.”
오라고 해도 안 와서 직접 찾아왔더니, 아이언 백작의 이런 반응은 당황스럽다.
그래서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예, 예! 그러시겠죠. 황제 폐하. 덕분에 밤을 꼬박 새고서 겨우 준비했습니다.”
“아니, 내가 시켰어? 쓸데없이 밤을 새고 그래?”
아이언 백작이 비아냥거리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짜증을 드러냈다.
그러자 아이언 백작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한테 잘 보여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러게 그냥 제가 간다니까 뭐하러 굳이 오십니까! 우리 애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응? 그런 거야?”
화가 한꺼번에 풀린다.
한쪽 입술이 비죽비죽 올라가려고 한다.
황제의 자리에 올라 귀족들의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들었을 때보다, 단연코 오늘이 더 기분 좋다.
아이언 백작이 비위를 맞추려 아부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진다.
나에게 잘 보이려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눈빛을 하고서 투덜대고 있다.
“이보게! 아이언 백작! 황제 폐하 앞에서 무례하지 않은가!”
잠자코 있던 듀카스 대공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고는 아이언 백작을 나무란다.
“흠, 흠… 그게 잠을 못 자서… 죄송합니다. 듀카스 대공 전하.”
“내가 아니라, 황제 폐하께 잘못을 빌어야 할 것 아닌가!”
듀카스 공작이 굳은 얼굴로 말하니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진다.
아이언 백작이 머리를 벅벅 긁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다.
“신 윌슨 아이언이 황제 폐하께 불경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안 어울리는 짓 하지 말고 술이나 한 잔 받아, 인마.”
시무룩한 얼굴의 아이언 백작에게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잔을 집어서 내밀었다.
“화, 황제 폐하!”
듀카스 대공이 질색한 얼굴로 눈을 크게 뜬다.
아마도 황제의 위엄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우린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운 ‘전우’잖습니까. 듀카스 대공.”
또 다른 잔을 듀카스 대공의 앞으로 내밀었다.
“하, 하지만…….”
“우리끼리 있을 땐 숨 좀 쉬고 삽시다. 듀카스 대공.”
“흠, 흠…….”
듀카스 대공이 헛기침한다.
‘우리’라는 단어가 가지는 놀라운 힘.
“저기, 황제 폐하?”
“말해.”
무릎을 꿇고 앉은 아이언 백작이 고개를 든다.
입가에 묘한 웃음을 매달고 있다. 이것 역시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힘인가?
어쩐지 아이언 백작과 나와 듀카스 대공의 사이에 한 꺼풀 가로 막았던 벽이 사라져 가는 기분이다.
“‘우리’끼리 마실 거면, 맥주로 바꾸죠? 잔이 이게 뭡니까? 사나이들이 작은 잔으로 홀짝거리는 거 좀스럽지 않습니까?”
아이언 백작이 와인잔을 찜찜한 얼굴로 쳐다보면서 입맛을 다신다.
“좋지!”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오늘…
아이언 백작의 영지에 방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한편,
아이언 영지와 베링 요새를 거쳐 프레하 제국의 황궁에 도착한 오를레앙 공작은 뜻밖의 소식에 들떠 있었다.
아이언 백작에게서 받았던 정신적인 충격은 어느새 그의 머리에 남아 있지도 않았다.
“정말인가?”
“그러합니다. 오를레앙 공작 각하. 아르쿠르 백작이 드디어 벽을 넘어섰다니, 제국의 커다란 경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종장이 들뜬 음성으로 대답했다.
“좋은 소식이군. 어쩌면 우리 제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오를레앙 공작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자신을 포함해서 프레하 제국의 소드 마스터는 셋이 되었다.
엘튼 제국의 소드 마스터가 넷이지만, 그중 두 명은 실전경험이 부족한 인물.
그에 반해 프레하 제국의 소드 마스터는 하나같이 실전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귀족들이다.
이런 전력이라면 엘튼 제국의 소드 마스터는 염려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소드 마스터는 ‘일인 군단’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강력한 위력을 지닌 존재들.
과장이 좀 들어가긴 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사령관의 무력에 따라 부대의 위력이 달라지는 게 현실이다. 소드 마스터가 이끄는 부대와 그렇지 않은 부대는 사기부터 차이가 난다.
소드 마스터는 같은 소드 마스터가 아닌 이상 감당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
사단급 병력으로도 군단급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 ‘일인 군단’이라는 말이 마냥 허풍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황제 폐하께서 다른 말씀은 없으셨소?”
오를레앙 공작이 시종장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시종장이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그에게 다가가 입술을 달싹였다.
“얼마 전에 새로운 흑기사 둘을 보내왔습니다. 소드 마스터 급이라고 들었습니다.”
“오, 오! 드디어! 알려 줘서 고맙네, 시종장.”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럼 가시지요.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조금 서두르도록 하겠습니다.”
시종장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황궁의 그레이트 홀에 도착하자, 시종장이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황제 폐하, ‘프리앙 드 오를레앙’ 공작이 도착하였습니다.”
“어서 들라 이르시오.”
안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오를레앙 공작이 그레이트 홀에 들어섰다.
“신 ‘프리앙 드 오를레앙’이 사신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오를레앙 공작이 귀족의 예법에 따라 인사하고서는 뻘쭘한 느낌을 받았다.
정작 사신으로서 행한 일을 보고해야 할 뒤랑 후작은 황제의 부름을 받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오를레앙 공작, 수고가 많았소! 그래, 엘튼 제국에서는 뭐라고 하오?”
황제는 그를 반기면서 사신의 일까지 물었다.
좋지 않은 소식을 가져온 탓에 오를레앙 공작의 얼굴에 곤욕스러운 감정이 묻어났다.
“엘튼 제국의 필립 황제가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하겠다고 선언했사옵니다.”
자신의 입으로 꺼내고 싶은 얘기가 아니었으나, 황제가 물었으니 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눈치를 보면서도 그의 시선은 빠르게 그레이트 홀의 내부를 훑었다.
“……!”
과연 시종장이 말했던 것처럼 발루아 공작과 두 명의 흑기사가 한쪽 구석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날카로운 기세를 뿌리는 그들의 모습에 오를레앙 공작은 든든한 마음이 생겨났다.
“선전포고를 하겠다라…….”
오를레앙 공작이 새롭게 등장한 흑기사에 한눈판 사이, 황제가 침음성을 흘렸다.
팔꿈치를 황좌의 팔걸이에 대고서 검지와 중지로 한쪽 관자놀이를 지탱했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길 때면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
“선전포고를 하겠다는 건 전쟁을 일으켜도 될 만큼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긴데… 그대가 보기엔 어떻던가?”
황제가 눈살을 찌푸리고서 말했다.
여전히 검지와 중지로 한쪽 관자놀이를 지탱하고서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기사와 병사들을 훈련하는 것 같았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를레앙 공작은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아이언 백작의 존재가 조금 거슬렸으나, 황제 앞에서 꺼낼 얘기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 그대의 표정… 내게 말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듯하군. 맞나?”
황제가 오를레앙 공작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오를레앙 공작은 황제의 눈에 호기심이 묻어나는 것을 발견하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서 입을 열었다.
“실은 한 가지 걸리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게 누군가?”
“국경 부근에 영지를 가진 아이언 백작입니다.”
“아이언 백작? 발루아 공작을 두 차례나 살해했다는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황제가 슬쩍 한쪽에 선 발루아 공작에게 시선을 주었다.
대역으로 세운 인물이었으나, 현재는 발루아 공작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무력조차 발루아 공작에 비해 손색이 없다.
‘아니, 더 대단한 실력을 지녔어. 저 친구는 발루아 공작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걸 짐작도 할 수 없겠지만.’
황제는 발루아 공작에게서 시선을 뗐다.
눈앞의 오를레앙 공작이 발루아 공작의 정체를 안다면 곤란해진다.
현재 프레하 제국에서 살아 있는 소드 마스터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사람이 오를레앙 공작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음의 안식조차 얻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짐작하기 어렵다.
차라리 지금처럼 모르는 게 낫다.
엘튼 제국을 자신의 발아래 놓을 수 있는 상황에서 괜한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렇습니다.”
“자네가 판단했을 때, 아이언 백작이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는가?”
“으음…….”
오를레앙 공작은 황제의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언 백작을 보는 순간, 전신에 오한이 들고 마치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에 통증이 생겨났었다.
‘검술의 경지가 높아지면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했던가? 아니, 그건 말이 안 되지.’
아이언 백작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눈빛으로 살인한다는 건 아마도 ‘살기’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 걸 터다.
하지만 분명 아이언 백작에게선 아무런 살기를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지 않았던가.
“그것은 아닌 듯 합니다. 황제 폐하.”
“그대가 긴장하는 것을 보니,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겠군. 하긴… 강화된 발루아 공작을 처리했을 정도면 만만한 상대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겠지.”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를레앙 공작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황제는 아이언 백작을 아예 위험인물로 간주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찌 되었건 발루아 공작을 두 번이나 처리한 인물이었으니까.
천천히 고개를 돌려 두 명의 소드 마스터급 흑기사와 서 있는 발루아 공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지정하게, 발루아 공작.”
“황제 폐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