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47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47화
247화. 마지막 소원 (1)
천지문주가 비록 수십 년간 강호를 누비면서 사파의 핵심인물로 군림해왔지만, 그 명성이나 영향력에서 감히 무림맹주인 의천진인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사마련이 융성할 때는 무림맹과 맞섰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무림맹에 짓눌려 쪼그리고 지내야 했다.
평소라면 무림맹 근처에 발도 디디지 못했을 것을 얼마 전 마교가 바뀌고 사마련에 대한 영향력이 사라지면서 사마련 또한 무림맹과 공식적인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덕분에 무림맹 코앞에서도 당당하게 버틸 수 있게 됐다.
“나? 언제는 동원된 노인네라고 하지 않았소?”
“예? 아이고, 아닙니다. 동원이라뇨.”
“내가 방금 저기 줄 서 있었거든. 사람이 나이 들었다고 권위 세우면 큰일 나. 솔선수범해야지.”
천지문주는 제대로 적응이 안 되어 눈만 껌뻑였다. 다시 눈앞의 연연의방과 그 안에서 치료 중인 천향무후로 생각이 옮겨졌다.
무림맹주가 줄을 서 있을 정도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다시 슬그머니 들 때, 그의 머리를 팍 치는 손이 있었다.
“너, 나랑 아직 대화 안 끝났다.”
남궁이화가 분노를 표출하며 천지문주 앞에 나섰다.
천지문주가 남궁이화와 의천진인을 번갈아 쳐다보자니, 의천진인이 슬그머니 물러서서 본래의 줄로 돌아갔다.
“네놈이 뒤에서 천향무후를 그렇게 비하하고 돌아다닌다며?”
“네년이 왜 난리야?”
“말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다시 남궁이화의 손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예상했기에 천지문주는 재빨리 상체를 움직여 상대의 주먹을 흘리려 했다.
뻑!
노력이 무의미하게도 상대의 주먹이 이마빡을 강타했다.
“컥!”
“너 예전에 천향무후에게 자객도 보냈다며?”
뻑뻑!
갑자기 남궁이화가 천지문주에게 달려들어 마구잡이로 패기 시작했다. 그것도 얼굴만 집요하게 두들기다 보니 금방 안면이 부풀어 올라 떡이 됐다.
“야, 너도 나와!”
분노한 남궁이화가 혈고루를 가리켰다.
남궁이화가 선보인 극강의 무공에 기가 죽어 있던 혈고루가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발끈했다.
“뭐라고? 이 시버럴 년이!”
순간 검광이 번뜩였다.
서걱!
혈고루의 목이 한방에 떨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옆에 있던 천지문주의 가슴에도 긴 자상이 남아있었다. 혈고루의 몸이 무너짐과 동시에 천지문주 역시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그러게 모난 놈 옆에 있으면 정 맞는다니까.”
남궁이화가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손을 털며 검을 집어넣었다.
살아남은 사마련 간부들은 남궁이화의 무공에 입을 쩍 벌렸다. 일파의 종주인 천지문주와 혈고루를 순식간에 절단한 그녀의 무공은 흉내조차 어려울 만큼 대단했다.
‘무공의 신이 여기 또 있었네.’
천산광소는 백단영 못지않은 무위를 선보인 남궁이화에 완전히 압도되어 눈을 떼지 못했다.
“천지문주와 혈고루가 천향무후를 욕했다고 해서 손 좀 봤다. 불만 있냐?”
“아, 암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혹시나 또 검이 날아올지도 몰라 남은 자들이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옆에서 유심히 살폈던 천산광소가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이상했다. 남궁이화라면 남궁세가의 여식인데 남궁세가의 무공이 아닌 듯했다.
“호, 혹시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냐?”
남궁이화가 눈에 쌍심지를 밝히며 째려봤다.
“호, 혹시 은사가 어느 분이십니까? 남궁세가 분이십니까?”
“나? 너도 봤잖아? 천향무후랑 함께 있던 젊은 남자.”
“아!”
천산광소는 감탄했다.
그날 호수에서 보았던 그 무공의 신이 이 여인의 사부였다니. 별호도 없고 무림에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그 무위만은 대단했던 남자. 절대마령과 싸우던 광경 또한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남궁이화가 천산광소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너! 사마련 신임련주라며? 애들 잘 관리해라. 다음에 또 잡음 들리면 그냥 싹 밀어버린다.”
남궁이화가 눈을 부라리더니 다시 의천진인 옆으로 가서 줄을 섰다.
멍한 표정을 짓는 사마련 간부들에게 천산광소가 속삭였다.
“아무래도 우리도 줄을 서서 병문안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뇌물도 좀 준비하고요. 문파를 보전하려면 말입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설사 백단영이 무공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더라도 남궁이화의 무공을 보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들은 대기 줄의 맨 끝에 가서 섰다. 무림다루 덕분에 개봉에서는 줄을 서는 질서가 생활화됐다.
***
나흘이 지나자 무흔은 다시 현대로 돌아왔다.
소파에서 눈을 뜬 박무훈은 바로 옆에서 마찬가지로 그를 살피는 백다연을 발견했다.
낯선 실내. 그의 원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깔끔한 공간. 그제야 그는 자신이 백다연의 오피스텔에 와 있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무림에서 다쳐 의식을 잃었던 백단영을 떠올리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몸은 괜찮아?”
백다연이 팔을 쭉 폈다.
“당연히 괜찮지. 그런데…… 어째 조금 아픈 느낌이네.”
물론 아프지 않다. 기분 탓이다.
사마극을 죽여서 목적을 달성한 후의 무기력감 때문이기도 했고.
박무훈도 사마극을 제거했다는 생각이 벼락처럼 머리를 강타했다.
“아! 그럼 오늘로 천향무후 접속이 끝난 건가?”
“그럴지도?”
갑자기 허탈감이 밀려왔다.
일 년 반 동안 함께 했던 무림 세계를 이렇게 떠나보내야 한다니 섭섭했다. 그것도 그만의 연인이었던 백단영이 간신히 의식을 회복한 상태에서 보내야 한다니.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아마도 몸을 회복해서 잘 살았다는 식으로 결말을 보여주겠지만, 여기에서 끝내야 하는 그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말이었다.
“이제야 무림 속 생활이 재미있어지려 했는데…….”
연신 한숨을 내쉬는 박무훈을 보며 백다연 또한 같은 심정이 됐다. 그녀 또한 붕대를 온몸에 감고 비몽사몽간에 이리로 넘어왔으니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둘이서 아쉬움을 달래고 있으려니 휴대폰에서 톡 소리가 울렸다.
백다연이 휴대폰을 열었다.
- GOD 작가 :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종료를 알리는 GOD 작가였다.
끝난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에 백다연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 GOD 작가 : 사마극을 죽이는 임무를 완성하였기에 소원을 하나 들어드립니다. 소원을 입력하세요.
“소원 입력하라는데?”
백다연이 박무훈에게 휴대폰 창을 보여줬다.
박무훈도 재빨리 휴대폰을 열었다. 역시 그의 휴대폰에도 같은 내용의 톡이 들어와 있었다.
- GOD 작가 :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 GOD 작가 : 백단영을 보호하는 임무를 완성하였기에 소원을 하나 들어드립니다. 소원을 입력하세요.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왔다. 천향무후에 접속하면서부터 항상 생각해왔던 소원. 그 소원은 날마다 바뀌었고, 이제는 막상 적으려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더구나 방금 무림에서 돌아온지라, 그것도 어중간한 상황에서 돌아온지라 더욱 소원을 생각해내기 어려웠다.
박무훈은 대신 다른 내용으로 대답을 보냈다.
- 사마극이 죽었습니까?
- GOD 작가 : 백단영이 죽이는 장면 봤지 않습니까?
- 그럼 사만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 GOD 작가 : 그대로입니다. 사마극이 죽었다고 해도 사만국에게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는 않으니까요. 단지 그분은 소원을 말할 기회만 놓쳤을 뿐입니다.
사만국 사장은 아무 일도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도 상실감에 빠져 한동안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이다. 무림에서의 생활 기간이 적지 않은 만큼 기억과 감정에서 모두 지워내기 쉽지 않을 테니.
목적을 이룬 자신도 벗어나기 쉽지 않으니 말이다.
- GOD 작가 : 소원을 넣어주시면 이루어드립니다.
다시 GOD 작가가 독촉했다.
박무훈은 깊은 한숨을 쉬고 백다연을 돌아봤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뭐 할까?”
그의 질문에 백다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넌 심부름센터장, 나는 검찰총장. 어때?”
이 와중에 농담하며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찰총장도 들어줄까?”
지금까지 보여준 GOD 작가의 신비한 능력이라면 아마도 검찰총장도 만들어주지 않을까.
“해주겠지. 그럼 난 대통령 시켜달라고 할까?”
박무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선택 장애에 빠졌다.
대통령 하게 해달라고 해보고 안 된다면 국무총리 하게 해달라고 하고…… 그러다 보면 뭔가는 들어주려나. 그냥 소소하게 평소의 소원인 대기업 신입사원이 되게 해달라고 할까.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이 다 떠돌았다.
박무훈은 옆에 앉아서 같은 고민을 하는 백다연을 바라보며 다시 아쉬움에 잠겼다.
‘이제 완전히 끝이구나. 붕대를 푼 모습만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쌓였던 정을 이대로 가슴에 묻어버리려니 가슴이 막혀 터질 것만 같았다.
백다연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무훈 씨, 평소 말버릇처럼 소원을 중얼거렸잖아, 그걸로 해. 고민하지 말고.”
그녀와 어울리면서 심심할 때마다 재미 삼아 했던 말이 있다.
100억만 있으면 심부름센터 알바도 때려치우고 대기업 사원 꿈도 버리고, 그냥 놀고먹으며 지낸다고. 무림에 접속할 때부터 가졌던 평범한 소원이긴 했다.
“돈을 달라고?”
“그게 제일 무난하잖아?”
그렇게 써넣으려니 그것대로 망설여졌으나 가장 현실적인 소원임은 분명했다.
‘그래. 돈이 있으면 백다연에게 프러포즈라도 해볼 수 있으니까.’
심부름센터 알바로서는 차마 민망해서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프러포즈를 해볼 수 있으니까. 박무훈은 내심 그렇게 결심했다.
“그럼 넌 무슨 소원을 말할 건데?”
“난 이미 생각해둔 것이 있어.”
“뭔데?”
“비밀이야.”
얼핏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자신처럼 돈을 달라는 그런 요구는 아닌 듯했다. 그렇다고 거창한 일도 아닌 것 같고. 어쩐지 평범한 소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찬히 백다연의 얼굴을 살펴봤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별다른 힌트를 찾아낼 수 없었으나, 커다란 눈과 오뚝한 콧날이 두드러진 아름다운 얼굴에 숨은 진지함을 읽을 수 있었다.
“얼른.”
백다연이 옆에서 채근했다.
어차피 더 고민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지 않는다.
박무훈은 휴대폰에 글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 100억 원을 주세…….
쓰다가 100억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쓴 글을 다시 지우고 0을 하나 더 붙였다.
- 1000억 원을 주세요.
- GOD 작가 : 네, 접수했습니다. 1000억 원을 드립니다. 이 시간 이후 처음 열어보는 통장에 1000억 원이 들어있을 겁니다. 당연히 합법적인 돈이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돈입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GOD 작가와의 톡이 종료됐다.
멍한 상태에서 그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평소 거래하던 은행 계좌를 접속했다. 놀랍게도 원래 있던 잔액 4만5천 원에 무려 천억 원이 더 붙어 있었다.
- 현재 잔액 : 100,000,045,023원.
놀라운 돈이었지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돈이 들어왔어!”
어버버한 감정으로 은행 앱에서 빠져나오던 박무훈은 휴대폰 화면에서 천향무후 접속 아이콘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평소 접속 시간이 될 때까지 항상 붉은빛을 띠던 그 아이콘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렇게 자신과 무흔은 영원히 단절되는가.
천억 원이 생겼다는 기쁨보다 무흔과의 헤어짐이, 백단영과의 헤어짐이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정말 소원이 이루어졌네. 그럼 이제 나도 소원을 말해볼까.”
백다연의 표정은 그와 달리 밝았다.
“생각해둔 것 있다고 했지?”
“있지.”
백다연이 그의 시선을 피해 휴대폰 화면을 보지 못하게 한 다음 소원을 입력했다.
잠시 후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끝났어.”
그녀의 소원이 궁금했다.
“뭔데?”
“자!”
백다연이 자신의 휴대폰을 그에게 내밀었다.
휴대폰 화면에서 그는 백다연과 GOD 작가의 톡을 볼 수 있었다.
박무훈의 눈동자가 크게 떠지고 절로 눈물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