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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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46화
246화. 마지막 운명 (4)
예상치 못한 사마극의 공세에 백단영은 당황했다.
천마패를 예상하고 방어 수단을 생각했지만, 좌수의 혈풍백골조는 생각지도 못했던 무공이었다. 게다가 혈풍백골조의 위력은 그녀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극악한 조법을 이용한 갑작스러운 기습은 대처 불가한 상태로 그녀를 몰아넣었다.
몸이 겹치며 지나가는 순간 날아온 혈풍백골조가 그녀의 등을 할퀴었다. 사마극의 예상대로라면 그녀는 그 공격을 막기 위해 몸을 틀어야 했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공격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방어를 위해 그녀가 몸을 트는 순간 이번에는 우수를 이용해서 최후의 혈풍백골조를 펼칠 계획이었다. 이 마지막 한 수가 백단영의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몸을 틀던 백단영이 순간 멈칫했다. 이 수순이 사마극의 노림수임을 알아챘다.
그렇다고 등으로 날아든 좌수의 혈풍백골조를 어떻게 처리할 방법도 없었다. 그녀의 연검은 이미 사마극을 스쳐 허공을 가르는 상태였다.
선택은 분명했다. 사마극을 그대로 놓아줄 수는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백단영은 혈풍백골조를 무시하고 자신의 좌수를 들었다.
천강십이수가 펼쳐지며 그녀의 좌수 끝에 투명한 수강이 어렸다. 백단영은 등으로 들어오는 혈풍백골조를 몸으로 받으며 천강십이수를 이용해 사마극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녀의 예상치 못한 반격은 사마극을 경악으로 몰아넣었다.
“크윽!”
“으윽!”
두 사람은 모두 비명을 터트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사마극의 좌수가 그녀의 등을 완전히 긁어내렸고, 백단영의 좌수는 사마극의 심장을 관통했다.
“으으…… 주, 죽을 생각이냐…….”
“나, 나 혼자 죽을 수는 없잖아.”
사마극의 신음에 백단영이 반응했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사마극과 달리 백단영은 정신을 모으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치 자상처럼 길게 그어진 그녀의 등에서 피가 배어 나와 옷자락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챙그랑-
그녀의 오른손에서 연검이 떨어졌다.
휘청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고 그녀는 발밑에 쓰러진 사마극을 쳐다봤다. 사마극의 눈에서 뿜어지던 분노가 천천히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사마극의 좌수 공격은 치명타가 아니었다. 핵심은 오히려 바로 뒤에 이어질 우수의 혈풍백골조였건만, 그가 공격할 기회는 없었다.
심장이 뚫려버렸기에 살아나는 건 불가능했다.
마교를 부흥시켜 중원을 함락하려던 그의 계획은 여기에서 막을 내렸다.
만일 그가 백단영에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만날 때마다 죽이려 했었더라면, 승부는 그에게로 기울었을 것이다.
마침내 사마극의 고개가 옆으로 떨어졌다.
마지막까지도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아!”
백단영은 거친 숨을 내쉬며 앞을 바라봤다.
푸른 논밭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었다. 싱그러운 여름의 초록빛이 선명하게 눈에 담겼다.
등에서 고통이 밀려들었다. 간신히 지탱하던 다리에서 힘이 빠지고 온몸이 휘청거리면서 저절로 눈꺼풀이 감겼다.
“이것으로 끝인가…….”
사마극의 혈풍백골조는 극악의 무공이라 아마 자신의 생명도 여기에서 마감하려나 보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무림에 뛰어들어 보냈던 온갖 장면들이 눈앞에서 지나갔다.
그동안 그녀를 도와주었던 많은 얼굴들이 명멸했다.
남궁이화를 비롯해서 용봉대 친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흔의 얼굴이 떠올랐다. 절로 그녀의 표정이 따뜻해졌다.
“그래도 괜찮았잖아. 지난번에는 사마극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이번에는 사마극을 죽인 후 내가 죽는 거니까.”
눈이 감기고 무릎이 꺾였다.
그녀의 몸이 천천히 무너졌다.
무흔은 이 모든 광경을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백단영!”
빛살처럼 날아간 무흔이 넘어지는 백단영의 몸을 잡았다. 그녀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 있었으나, 입가에 만족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상의 앞뒤는 길게 쭉쭉 찢겨나갔고 길게 손톱자국이 그려진 등은 피범벅 상태였다.
무흔은 급히 그녀를 안았다.
막 그가 몸을 날리려는 순간 천산광소를 비롯해 사마련에서 온 다섯 마두가 멍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저, 저희들은 어떻게 할까요?”
천산광소가 난감한 표정으로 무흔에게 물었다.
그들과 노닥거릴 시간은 없었다.
무흔은 사마극의 시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화령이 그에게로 날아왔다. 은옥상의 부탁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마화령을 품에 넣은 무흔은 바로 몸을 날렸다. 그의 목적지는 연연의방. 그가 아는 최고의 의원 귀의에게 백단영을 데려가는 것이다.
순식간에 무흔이 사라지자 천산광소와 사마련 간부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치를 봤다.
그냥 이대로 돌아갈지 아니면 원래의 목적대로 백단영에게 사죄할지 난감했다.
“아무래도 살기 힘들지 않겠소?”
천지문주가 무흔이 사라진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하며 중얼거렸다.
“어, 엄청난 무공이었으나 끝이오. 우리 형님 혈각마신을 죽인 업보요.”
혈고루가 말을 보탰다.
각자 의견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천산광소가 주장했다.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는 예전에 천향무후를 노렸던 과오를 사죄하기 위해서요. 아직 돌아가신 것은 아니니 기다렸다가 사죄하고 갑시다.”
무흔과 백단영의 신화적인 무공을 목격했던 그는 여전히 무흔의 편이었다.
결국 그들은 개봉에 머물면서 백단영의 회복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다.
***
갑자기 들이닥친 무흔 때문에 연연의방은 발칵 뒤집혔다.
무흔은 안방에 백단영을 눕혀 놓고 밖으로 왔다. 귀의가 황급히 치료를 시작했고, 양이설이 옆에서 도왔다.
그동안 무흔은 의방 뒤뜰을 오가며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왜 사마극 처리를 자신이 하지 않고 백단영에게 맡겼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자신이 사마극과 싸울 수도 있었는데, 최후의 마무리를 천향무후인 백단영이 해치우도록 했다.
사마극이 예상보다 강했다는 것도 무흔의 실책이었다. 서로 목숨을 맞바꾸는 백단영의 선택은 그 시점에서는 최선이었지만 무흔은 용납하기 힘들었다.
“하아!”
거의 저녁이 깊었을 무렵에야 방문이 열리고 양이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되었어요?”
다급한 그의 물음에 양이설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어요.”
“아아!”
무흔은 감격에 잠겨 말을 하지 못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단영이를 다치게 한 혈풍백골조가 매우 사악한 무공인가 봐요. 이 조공에 상처를 입으면 피부가 중독되어 썩어 들어가고 해당 부분 혈맥이 막혀 금방 죽는데요. 사실상 내공으로도 치료하기 어렵고. 그런데 단영이는…….”
“단영이는 다행히 만독불침이잖아요. 중독이 되지 않으니 끊어진 혈맥만 다시 잡으면 된대요.”
“그럼?”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한 달 정도 후면 다시 완벽하게 원 상태로 돌아갈 수 있데요.”
“아아!”
무흔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
사흘이 지난 후에야 백단영은 의식을 되찾았다.
무흔은 정신을 차린 백단영의 옆에서 표정을 관리했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누워 있는 그녀를 보니 가슴이 아파왔다.
무흔은 그녀와 몇 마디만 주고받은 후 밖으로 나왔다.
백단영이 큰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무림맹에 알려진 덕분에 동료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연연의방을 방문했다. 지금까지는 백단영이 의식을 차리지 못해 바로 돌아갔으나, 이제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어보겠다고 길게 줄을 섰다.
자연스럽게 길게 줄이 형성됐다.
무림다루에서 줄을 서는 일이 습관화되었던 덕분에 연연의방에서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이곳에 길게 늘어선 줄은 백단영의 인기와 무림에서의 지위를 상징했다.
특히 그녀가 사마극을 제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어쩌면 그녀의 무공이 무림에서 가장 강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돌았다.
그녀의 나이도 나이인지라 향후 수십 년간 무림의 중심을 거머쥘 것이 확실했기에 모두가 눈도장이라도 찍어두려는 분위기였다.
“이게 뭔 줄이요?”
연연의방 옆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사마련 간부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림맹주가 누운 것도 아니고, 일개 용봉대원이자 나이 스물에 불과한 여인의 병문안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다는 사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은 탓이다.
“허허, 이거 다 동원된 거요.”
“동원?”
“그런 것 있잖소. 남들 보기에 있어 보이라고.”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천지문주가 연신 빈정거렸다. 보다 못한 천산광소가 경고를 날렸다.
“이건 천향무후의 덕이 높기 때문입니다.”
“계집이 높아 봐야…….”
“문주님, 그렇게 자꾸 계집, 계집 그러다가 언젠가 큰코다칩니다.”
“내가 못할 말 한 건 아니잖소?”
오히려 천지문주가 버럭 화를 냈다.
천지문주는 줄을 선 사람들을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잘 생각해보시오. 그깟 계집년 아프다고 이렇게 노인장들이 몰려올 리가 없잖소? 그것도 줄을 서서 기다리다니. 다 동원된 이 동네의 허접탱이 노인들이요. 그리고 앞으로 그 계집은 부상 때문에 무공을 제대로 쓰지 못할 거요. 그날 봤잖소? 그 계집이 봉황이면 고양이가 호랑이고 파리가 새란 소리요.”
천지문주의 말에 다른 사마련 간부들이 킥킥대며 웃었다.
“암요, 암요.”
혈고루가 거들었다.
천산광소가 발끈해서 반박하려는 찰나, 한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해서 천지문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한 건 했다며 호탕하게 웃은 천지문주가 돌아보는 순간 갑자기 눈에 불똥이 튀었다.
쫘악-
천지문주의 고개가 픽 돌아갔다.
천지문주는 사파에서 나름대로 실력 있는 고수다. 그런 고수가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기로서니 이렇게 얻어맞을 수는 없다. 놀란 천지문주가 눈을 깜박거리며 상대를 살폈다.
놀랍게도 갓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은 젊은 낭자였다.
현재 천지문주의 나이는 일흔을 바라보는 상태. 손녀 뻘인 낭자에게 맞았으니 당연히 분노가 치밀었다.
“어린년이! 넌 애비도 없어? 어느 집 후레자식이야?”
욕설이 쏟아지자 그녀의 눈썹이 쓱 올라갔다.
“나? 남궁이화라고 하는데 넌 누구냐?”
천지문주도 일봉으로 이름을 떨치는 남궁이화의 명성을 들어보긴 했다.
특히 최근에 마교와 얽히면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듣긴 했지만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원래 강호 소문이란 것이 부풀려지기 마련이고 거짓 소문도 넘쳐나니까.
“난 천지문주다! 들어봤나?”
급기야 천지문주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주위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당연히 위축될 남궁이화가 아니었다. 그녀가 재차 반박하려 할 때 황색도포를 입은 노인이 개입했다. 지금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던 노인이다.
“자네 누구라고? 천지문주? 천지문은 또 어느 동네 문파야?”
“이 시버럴 놈이!”
천지문을 욕하는 소리에 앞뒤 가리지 않고 버럭 하던 천지문주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다.
갑자기 기가 팍 죽은 천지문주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혹시 무림맹주이신 의천진인 아니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