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26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26화
226화. 접속자 (1)
파일을 검사하는 동안 박무훈의 머릿속은 흡사 정지된 듯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건넨 파일을 건성으로 살피고 대답도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생각은 방금 보았던 백다연 휴대폰의 아이콘에 머물러 있었다.
‘백단영이 백다연일까? 그래서 분위기와 외모가 닮았던 걸까.’
기본적인 의문에서 시작해서.
‘내가 무흔이란 것을 말하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실제에서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문득 그는 백다연의 직업이 검사란 사실에 주목했다.
다른 검사일지라도 그녀는 무림에서는 칼을 다루는 검사이고, 이곳에서는 법을 다루는 검사였다. 그리고 선도물산의 사만국 역시 사마극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백단영이 이곳에 존재하는데 사마극이라고 존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백단영과 사마극의 죽고 죽이는 인연이 이곳까지 연결되었으니 정말 질긴 인연이다.
“왜 그래요?”
박무훈이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이상함을 느낀 백다연이 그를 쳐다봤다.
어쨌든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아니라고 한다면 본전이지만 예상이 맞으면 이 세상에서 새로운 인연이 생기는 것이니까.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박무훈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백 검사님,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요?”
백다연이 대수롭지 않게 응수했다.
박무훈은 휴대폰 화면에서 사진을 내리고 지금은 붉게 표시된 아이콘을 가리켰다.
“천향무후, 아세요?”
순간 백다연의 안면이 굳어지고 한동안 그를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무훈은 직감적으로 자신의 추측이 옳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를 뚫어지라 쳐다보던 백다연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무흔?”
“네. 무흔.”
“아아!”
그의 대답과 동시에 백다연이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박무훈 쪽으로 다가오더니 그를 와락 품에 안았다.
그는 갑작스런 백다연의 행동에 놀랐다.
그러나 갑자기 낯선 여자를 품에 안게 되니 어색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정말 익숙한 기분이었다.
박무훈도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한동안 가만히 안고 있었다.
그렇게 감격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백다연이 포옹을 풀고 박무훈의 옆자리에 앉았다.
“설마 했었는데 정말 무흔일 줄은 몰랐어.”
“예? 눈치채고 있었어요?”
“너, 얼굴도 비슷하고 분위기도 비슷하고 그렇잖아.”
박무훈은 당황했다.
백단영만 비슷한 것이 아니고 자신도 비슷했나? 무림 세계에서 본인의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으니 정말 비슷하게 생겼는지 그도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당사자들만 그렇게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지도.
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신기하게도 이곳이 현실임에도 오래도록 함께한 무림 세계에서의 버릇과 관계가 그대로 이어졌다. 그곳처럼 어느새 백다연은 상단주의 딸인 주인이 되어 있었고, 박무훈은 그 호위무사가 되어 말의 높낮이마저 그곳과 같아졌다.
반갑게 말을 주고받던 백다연이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사과했다.
“미안해요, 제가 무흔에게 버릇이 되어서. 여기에서도 말이 막 나오네요.”
“괜찮습니다. 저도 오히려 그게 더 편해요.”
정말 그랬다. 눈앞의 여자가 백단영이란 것을 안 순간 그 역시 변함없이 무흔으로 돌아가 있었으니.
“그런데 어쩌다가 천향무후에 접속하게 되었어요?”
박무훈은 궁금증부터 해소하고 싶었다.
“그게…… 이상하게 완결된 천향무후 마지막 회차를 봤다가 열 받던 중에 GOD 작가란 사람과 연결됐어.”
놀랍게도 그녀 또한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듯했다.
GOD 작가와 계약을 맺었던 당시를 열심히 이야기하는데 내용이 그와 매우 비슷했다.
“그래서 천향무후 리메이크에 참여하게 되었어. 원래는 전혀 생각 없었는데 무려 주인공인 백단영을 제의하더라? 나라면 더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그래서 수락했고…….”
그녀와 이야기하다 보니 성격마저 백단영과 확실히 비슷했다.
박무훈은 그녀가 한결 편해졌다. 검사라서 딱딱할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무림에서 본 약간 허당이면서 다정한 백단영과 그야말로 똑같았다.
“그런데 무흔 넌 정말 뜻밖이야. 내 옆에 무흔이 계속 남아 있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네가 나랑 같이 리메이크에 참여한 사람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어.”
“정말 몰랐어요?”
“아니,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어. 전작에 비해 무흔의 비중이 엄청나게 커진 데다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능력이 막 튀어나와서…….”
“능력요?”
“그 팥빙수나 샤브샤브…….”
“푸하하!”
당연히 백단영이 현대 사람이었다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그는 현대인임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으니까.
그에 비하면 백단영은 자신이 현대인임을 정말 잘 숨기며 지냈다.
“흐음, 저의 최종 목표는 백단영 아가씨를 살리는 것이거든요. 아가씨의 최종 목적은 뭐죠? 저랑 같나요? 살아남는 것?”
박무훈의 질문에 백다연의 표정이 조금 심각하게 변했다.
“비슷하긴 한데…… 나의 최종 목적은 사마극을 제거하는 거야. 그래야 내가 완벽하게 살아남으니까.”
사실상 똑같은 목적이었다. 전작 천향무후가 백단영의 어설픈 죽음이 문제였으니 당연했다.
“그럼 GOD 작가로부터 부여받은 능력은…….”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니, 사마극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능력이 없을 리 없다. 백다연이 반대로 질문을 해왔다.
“넌 무공 관련이지? 무공을 배우고 창조하는 능력. 그 세계에서 단연 발군이었으니. 그렇지?”
엄밀하게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하니까 박무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가씨는요?”
“맞춰봐.”
박무훈은 그동안 겪었던 백단영의 행동을 다시 되새겼다.
그리 특별하게 뽐내는 능력을 본 기억이 없었다. 물론 그녀의 무재가 대단하긴 하지만 그것은 이전에도 이미 소유했던 능력이다. 원래 백단영이라는 캐릭터가 그런 인물이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잘 생각해봐. 뭔가 이상한 부분이 없었어?”
박무훈은 그녀가 이상하다고 여겨졌던 때를 다시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딱 한 번 있긴 했다.
“그때 만혈대에서…….”
“그래, 그거.”
만혈대에서 두 사람은 미로에 갇혀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도 그들은 큰 곤란을 겪지 않았다. 물론 무흔이 미리 대비해서 건량을 많이 갖고 있었던 덕분이긴 하지만 백단영 또한 신기하게도 먹을 것을 계속 꺼내 놨다.
비밀을 털어놓는 백다연은 무척 즐거워 보였다.
“처음에 GOD 작가가 여러 능력을 보여주며 고르라고 하더라고. 별별 이상한 능력이 많긴 했는데 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선택하지 않았어. 내가 주인공이니까 설마 무참하게 죽지 않으리란 자신이 있었거든. 대신에 내가 선택한 것은 물건을 옮기는 능력이야. 난 무림 세계에 접속할 때마다 이곳 현대에 있는 물건을 그쪽으로 가져갈 수 있어. 반대로 그곳에 있는 물건을 이곳으로 가져올 수도 있고.”
“정말요?”
정작 백다연이 그런 능력을 선택한 이유는 무림에서의 생활 편의 때문이었지만, 이것은 박무훈이 생각지도 못한 능력이었다.
그렇다면 그때 만혈대에서 백단영이 꺼냈던 과일은 모두 현대에서 가져온 것이란 말이 된다. 어쩐지 그 작은 행낭에서 먹을 것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더라니.
“후아…… 대박!”
“그렇지?”
백다연이 호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물품 몇 개를 꺼냈다. 무림 세계에서 흔히 보는 금전과 은전이다. 그곳의 물건을 이곳에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직 별다른 것은 가져오지 못했는데…… 최근에 나도 결심한 것이 있어.”
“뭔데요?”
“네가 개봉에 무림다루와 무림주루를 만들어 줬잖아? 거기에서 커피를 팔아볼까?”
현대의 물건을 그곳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색다른 메뉴를 만드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대량으로 가져가긴 쉽지 않겠지만, 조금씩 재료를 옮긴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올 여름에는 거기에서 제대로 장사해보려고. 상단의 딸이 어떻게 개봉을 휘어잡는지 보여주려고. 어때?”
물론 박무훈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무흔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다음 접속은 언제예요?”
“이틀 후 자정.”
“거기에서는 언제 왔어요?”
“남궁이화를 구해서 석실에 들어간 다음에 시간이 0이 되더라.”
그 부분 역시 무흔과 똑같았다. 결국 두 사람은 같은 시각에 접속하고 같은 시각에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무림 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서로 죽이 쭉쭉 맞아 박무훈은 눈앞의 사람이 백단영인 것만 같았다. 백다연과 백단영을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그것은 백다연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녀는 무흔을 대하듯 스스럼없이 그를 대했고, 때로는 박무훈과 무흔이라는 이름마저 헷갈렸다.
“이것 볼래?”
백다연이 휴대폰 사진첩을 열었다. 놀랍게도 여러 사진 가운데 무림에서 찍은 사진이 몇 장 있었다. 휴대폰을 그곳으로 가져가서 찍어온 모양이다.
무림 세계의 풍경, 개봉의 거리, 용봉대 연무장에 이르기까지. 거기에 백단영의 셀카와 남궁이화의 모습까지 찍혀 있었다. 다시 봐도 두 사람의 모습이 정말 예뻤다. 역시 무림삼화란 명성은 명불허전이다.
“왜 저는 없어요?”
“네가 조금 의심스러웠거든.”
그곳에서 백단영이 휴대폰을 가진 것을 보았다면 접속자임을 무조건 확신했을 테니까.
그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사마극으로 이어졌다.
“혹시 우리처럼 현실과 무림 세계를 오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알아요?”
“몰라. 더 있을 수도 있지만 최대가 넷이야.”
“넷요?”
“처음 천향무후를 끝까지 따라와 준 독자가 네 명이었다고 GOD 작가가 말해준 적 있거든.”
생각해보니 박무훈 역시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사만국 사장이 의심스럽지 않아요?”
박무훈은 자신의 의심을 토로했다. 백다연 역시 같은 의심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도 의심스러워. 외모와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니까. 그래서 내가 더더욱 사만국 사장을 구속하려고 하는지도 몰라.”
그녀마저 의심하고 있다면 아마 사마극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리메이크에 참여한 사람일 확률이 대단히 높을 것이다.
무흔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어 그녀의 휴대폰과 나란히 놓았다.
천향무후 접속 아이콘이 나란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 것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다.
***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이틀 뒤 밤이었다.
그날은 천향무후 접속이 예정된 날이어서 박무훈은 다소 망설였으나 같은 처지인 백다연이 꼭 그날 봐야 한다고 우겨서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저녁을 사준다고 하니 박무훈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테헤란로의 한 음식점에서 적당히 밥을 때우고 작은 커피숍에 자리 잡았다.
“여기는 지난번에 선도물산이 이사했던 곳 부근이잖아요?”
어째 꺼림칙한 기분에 박무훈은 그녀의 의도를 물었다.
역시나 백다연이 괜히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오늘 밤에 선도물산을 털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어제 네가 찍어온 사진 파일을 전부 확인했거든. 역시 금고 안에 있던 장부에서 외화 밀반출로 사들인 해외 부동산 내역이 있더라고. 이것이면 사만국을 외환관리법 위반 및 횡령죄로 구속할 수 있어. 우리가 목표했던 바로 그 증거지.”
“그럼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결정적인 세부 자료 하나가 빠져 있어. 그 하나만 구하면 돼.”
“서류 하나 때문에 사무실을 털러 가자고요?”
백다연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고도 못 여는데?”
“금고 안에 있는 서류는 아니야. 서랍장 하나만 뒤지면 끝나. 이사 때 우리가 정리했으니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고.”
어째 갑자기 소설 속 백단영 만큼이나 대책이 안 서는 여자 같았다. 물론 둘은 동일인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