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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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23화
223화. 섭혼귀령 (2)
콰앙-
산적 같은 놈이 휘두른 박도와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찌른 검의 기세는 남궁이화를 궁지로 몰아붙였다.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그녀는 큰 어려움 없이 이 둘을 제압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내공 고갈에 허덕이는 그녀는 상대의 기세를 막아내기 쉽지 않았다.
남궁이화의 움직임에서 내공이 부족함을 읽은 두 녀석이 신바람을 내며 압박했다.
채채챙-
남궁세가의 절정검법과 무흔이 알려준 임기응변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오래전에 고혼이 되었을 것이다.
무흔이 전수한 검법 가운데 비천삼검이나 무흔검법은 내공 부족으로 아예 쓸 수 없었고, 무상벽라검법만 간신히 펼칠 수 있었다. 그것도 내공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위력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것들이!”
남궁이화는 검을 휘두르며 분통을 터트렸다. 평소라면 한 방에 처리했을 녀석이 기세 좋게 날뛰고 있으니 분통이 터졌다.
반면 산적과 기생오라비는 더욱 신바람을 냈다. 평소 남궁이화의 수준은 아는 바 없으나 그녀의 명성을 고려했을 때 오늘 제대로 한 건 올릴 수 있겠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채챙-
내공 부족으로 힘에서 밀린 남궁이화의 검이 상대의 무력에 검로를 잃고 휘청했다. 적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산적의 박도가 그녀의 허리를 베어왔고, 기생오라비의 검이 그녀의 가슴을 찔러왔다.
위험을 느낀 그녀는 황급히 몸을 틀며 기생오라비의 공격을 흘림과 동시에 허리를 향해 날아오는 박도를 검으로 쳐냈다.
그녀의 임기응변은 적절했으나, 이것은 상대의 무공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었다.
기생오라비의 검이 목표물을 잃는 순간 검로를 바꾸며 곧바로 그녀의 어깨를 쳐왔다.
제대로 응수하기가 곤란해진 남궁이화는 박도를 쳐낸 검을 재빨리 위로 올리며 몸을 굴렸다. 아슬아슬하게 기생오라비의 검이 그녀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산적의 박도가 다시 그녀를 찍어왔다.
바닥에 넘어진 상태라 움직임이 둔해졌다. 피하기 어렵다고 본 남궁이화는 전력을 다해 날아오는 박도를 받아냈다.
쩡!
무식한 힘이 담긴 박도가 검을 강타하자 그녀의 팔이 휘청했다.
“으윽!”
남궁이화는 간신히 박도를 받아내며 균형을 맞추었다.
문제는 공격자가 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상황을 눈치챈 기생오라비가 바로 약점을 찔러왔다.
눈앞으로 날아오는 검날을 보면서 남궁이화는 눈을 감았다. 이것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생각에 맥이 탁 풀렸다.
생각했던 고통은 닥치지 않았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자 남궁이화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눈앞에 시퍼런 검날이 두 눈 사이 인중을 겨누며 금방이라도 찌를 듯 위협하고 있었다. 맥이 풀려 검이 저절로 내려진 그녀의 앞에는 두툼한 박도가 가슴을 겨누고 있었다.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상황이었다.
“으…….”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내공이 조금이라도 더 남아 있었다면, 음천마령과 싸울 때 조금이라도 내력을 비축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일었으나 그녀는 생각을 지웠다. 음천마령과 싸우면서 최선을 다했던 것은 그녀의 친구인 백단영과 은공인 무흔을 위한 일이었으니까.
“흐흐, 더 날뛰고 싶으냐?”
산적이 그녀에게 음산한 비웃음을 던졌다.
남궁이화는 대답하지 않고 표독스러운 시선만 보냈다.
“크크, 그래도 고통 없이 죽여주마. 잘가라.”
산적이 박도를 휘두르려는 찰나 기생오라비가 말렸다.
“잠깐!”
얼떨결에 박도를 멈춘 산적이 돌아보자 기생오라비가 음탕한 미소를 지으며 침을 흘렸다.
“이왕 죽일 거 재미나 좀 보자고.”
“여기에서?”
사방이 석벽으로 된 통로라 언제 어떤 자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곳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산적이 안면을 찌푸렸다.
남궁이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큰소리로 외쳤다.
“얼른 죽여라!”
그때 지금까지 뒤에서 관망하던 섭혼귀령이 끼어들었다.
“아서라, 이년은 쓸 데가 있다.”
아무리 기생오라비가 그녀에게 눈독을 들인다 해도 감히 섭혼귀령의 명을 거부할 용기는 없었다. 아쉬운 표정으로 기생오라비가 뒤로 물러나자 섭혼귀령이 주저앉은 남궁이화를 보며 요사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호호, 너는 은옥상이나 무흔이라는 자를 처리할 때 사용하면 제격이지.”
뭔가 심상찮은 말에 남궁이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곧바로 섭혼귀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라!”
남궁이화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 섭혼귀령의 눈에 감도는 시뻘건 귀화(鬼火)가 보였다.
요사스러운 미부의 눈은 그것대로 아름다웠다. 위험한 의식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시 섭혼귀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남궁이화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짐작했다.
“섭혼귀령이…… 섭혼귀령이…….”
그녀는 다급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무흔을 향해 최후의 힘을 다해 천리전음을 보낸 것이다.
“남궁이화! 너는 나의 충실한 종이 될지니…….”
그 목소리는 달콤했다. 나른한 기분을 느끼며 남궁이화의 의식이 잠에 빠져들었다.
흐리멍덩해진 남궁이화의 눈동자를 살피던 섭혼귀령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 됐다. 섭혼대법에 걸려들었다. 이 여자는 이제 나의 명령만 듣게 될 것이다. 일어나라!”
남궁이화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혼탁해졌던 그녀의 눈동자 또한 겉보기에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섭혼귀령의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남궁이화의 상태를 점검한 섭혼귀령이 먼저 걸음을 내디뎠다.
“가자!”
섭혼귀령이 앞장서고 검을 주워든 남궁이화가 바로 뒤를 따랐다.
이어서 불만족스러운 표정이 안면에 가득한 기생오라비가 뒤를 따랐고, 마지막으로 산적 녀석이 박도를 어깨에 걸치고 성큼성큼 걸었다.
***
운기조식을 마치고 막 깨어나던 무흔은 귓전에 들려온 전음에 깜짝 놀랐다.
여전히 백단영은 천상보 수련에 허공을 걷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능숙해져서 실전에서도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해 보였다.
그렇다면 백단영이 전음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곳 석실 내에는 백단영 밖에 없으니 이 전음은 다른 사람에게서 온 것이다. 그에게 천리전음을 배운 사람은 단둘뿐.
어렵지 않게 전음의 주인이 남궁이화임을 간파했다.
“섭혼귀령이라…….”
무흔은 섭혼귀령을 알지 못했다. 물론 천마궁 회의실에서 사마극과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섭혼귀령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정확한 상황을 모르지만 남궁이화가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백단영의 상태로 미루어 보아 남궁이화 역시 음천마령 때문에 내공을 과다하게 소모했을 테니, 그녀 본신의 무공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흔은 급한 마음에 후다닥 일어났다.
“어? 다 끝났어?”
그제야 무흔이 깨어났음을 눈치챈 백단영이 수련을 멈췄다.
“남궁 소저가 위험해요.”
무흔이 급히 대답하며 석실 문을 열었다.
그그긍-
“남궁이화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무흔은 다급하게 통로로 나갔다. 다행히 미로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백단영이 따라붙었다.
“지금 어디에 있는데?”
“그건 모르겠어요. 귀혼마령과 있나 봐요.”
무흔은 예상되는 방향으로 통로를 질주했다.
통로를 꺾는 순간 눈앞에 장한 한 명이 보였다. 옷차림과 외모로 보아 용봉대원이 아니고 마교인이 분명했다.
마교인이라도 바로 처리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은옥상의 편인지 사마극의 편인지 알 수 없어서다.
반면 무흔을 발견한 녀석은 공격의 날을 세웠다. 무흔이 숙인 머리 위로 검이 지나갔다.
재빨리 손을 뻗은 무흔이 녀석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크윽!”
순식간에 제압당한 장한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표정으로 눈을 껌벅였다.
“누구지?”
“마, 마중검이요.”
“서열은?”
“치, 칠십이 위.”
“누구 휘하냐?”
장한이 갑자기 눈동자를 굴렸다. 대답을 고민하고 있다는 표시다.
“사마극 휘하군.”
“커윽!”
다시 가해진 무흔의 악력에 마중검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호흡 곤란을 느낀 녀석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무흔은 살짝 손에 힘을 빼면서 계속 질문했다.
“섭혼귀령이 누구냐?”
“서, 서열 구 위요.”
“외모나 무공 특징은?”
“삼십 대 중년 미부요. 배, 배교에서 사술을 배워온 것으로 알고 있소.”
섭혼귀령의 별호와 배교라는 사문을 통해 무흔은 상대의 무공이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나?”
“모, 모르오.”
“그럼 죽어야지.”
다시 무흔이 손에 힘을 가했다.
“커윽!”
마중검이 손을 휘적거리며 대답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무흔의 손아귀에서 약간 힘이 빠졌다.
“크으으……, 서, 섭혼귀령을 저쪽에서 한 시진 전에 봤습니다.”
“저쪽이 어디야?”
“이 통로로 쭉 가다가 오른편으로 꺾고…… 두 번째 석실 옆으로 난 길로…….”
미로라서일까. 설명이 엄청 복잡했다. 어차피 맞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사마극은?”
“모, 모릅니다.”
“절대마령은?”
“보, 보지 못했습니다.”
무흔은 더는 알아낼 것이 없자 마중검을 노려보았다.
마중검의 눈에 공포가 일었다.
다음 순간.
“크윽!”
마중검의 머리가 툭 꺾이며 목이 부러졌다. 무흔이 손을 떼자 석벽을 타고 마중검의 몸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이쪽으로 가죠.”
방금 녀석이 실토한 내용이 진짜일지 가짜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에 이것이라도 할 뿐이다.
무흔은 통로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천리전음을 보냈다.
“남궁 소저! 남궁 소저!”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만일 그녀가 살아있고 조금이라도 내공을 사용할 수 있다면 대답해올 것이다.
무흔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것을 간파한 백단영은 상황의 중대성을 짐작했다.
그녀도 무흔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이동 도중 마교인을 다시 만났으나 무흔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허리를 양단했다.
***
구진광은 미로 내부를 헤매고 있었다.
그는 미로라면 지긋지긋했다. 만혈대 미로 안에서 사마극과의 악연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악연만 아니었더라면 그는 정상적인 정파 후기지수로서 계속 성장했을 것이다. 어쩌면 장후성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정파의 운명을 짊어질 기재로 키워졌을지도 모른다.
경쟁자라 할 현공은 소림의 불자 출신이라 제한이 많았고, 제갈세가의 제갈수는 무공에서만큼은 그에게 뒤떨어졌으니까.
용봉대에 들어오면서 꿈꾸었던 모든 영광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첩자란 사실이 발각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지금은…….”
혼자 떨어져서 이곳 미로를 헤매는 지금은 오히려 그 사실이 다행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사마극이 그를 공격할 리 없으니까. 용봉대마저 그와 적이 아니라 본다면 그가 주의해야 할 자는 오직 은옥상의 편을 든 마교인 뿐이었다.
위험이 대폭 감소한 까닭에 그는 큰 불안 없이 미로 내부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도중에 마교인 둘을 만났으나 사마극과의 친분을 설명해서 어려움 없이 벗어나기도 했다.
그가 막다른 통로 끝에서 석실을 발견했을 때였다. 뜻밖에도 석실 내부에서 두 남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