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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220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20화

220화. 현대의 인연 (2)

 

 

 

박스 포장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박무훈이 할 일은 선도물산 직원의 눈을 피해 각종 장부를 휴대폰으로 찍는 일이었다. 해당 서류가 정확히 무엇인지, 또 필요한 것인지 알지 못했기에 비슷하다고 생각되면 일단 찍고 봤다.

그의 옆에는 백 대리가 열심히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알기에 훨씬 일이 효율적이었다.

“또 오네요.”

사무실 바깥쪽에서 선도물산 직원이 접근하는 것을 눈치챈 박무훈이 바로 백 대리에게 눈치를 줬다. 백 대리는 찍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이미 검토를 끝낸 서류를 챙겨 박스에 넣었다.

직원이 그들을 향해 퉁명스럽게 말했다.

“서류가 분실되면 안 됩니다. 최대한 있던 자리에 다시 정리해주셔야 합니다.”

“하하, 당연하죠. 저희가 기업 이사만 몇 년째인데요.”

박무훈은 자연스럽게 대응했다. 그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원래 이사 현장에서는 먼지가 많이 날리니까.

“그런데 일반 직원분들은 오늘 휴일인가요?”

예상보다 직원이 거의 보이지 않아 박무훈이 물었다.

“아닙니다. 직원 모두 일박 이일로 워크샵에 갔어요. 저랑 담당자 몇 명만 여기 남았다가 밤늦게 워크샵에 참석할 겁니다.”

직원이 흔쾌히 대답했다.

“그럼 내일은?”

“내일도 만일을 대비해 직원 몇 사람만 올 거예요.”

오늘은 이삿짐을 꾸리고, 내일은 새로 이사 간 사무실에 물건을 다시 풀어놓아야 한다. 즉 내일 한 번 더 서류를 뒤질 기회가 있다.

예상보다 서류가 많아 그들의 일은 더디게 진행됐다.

점심을 교대로 먹고 계속 이삿짐 싸는 일을 진행했다.

오후 시간이 한참일 때 갑자기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유리창을 넘어보니 선도물산 직원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서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고 있었다.

“높은 사람이 오나 본데요?”

한참 사진을 찍던 백 대리가 화들짝 놀라 서류를 대충 치우고는 사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녀는 순식간에 탕비실로 사라졌다.

마치 높은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행동이었다.

박무훈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한 남자가 등장했다.

명품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박무훈도 상대 남자의 옷과 액세서리가 고가 제품이란 사실만은 눈치 챘다.

옷이 날개라 했던가. 훤칠한 키에 명품을 걸친 남자는 흡사 모델을 방불케 했다.

저절로 주눅이 든 박무훈은 남자가 나타나자 몸을 일으켜 한쪽 옆으로 물러섰다.

명품 남자가 이사 중인 사무실을 쓱 살펴보고는 박무훈에게 물었다.

“이삿짐 직원인가?”

“네, 그렇습니다.”

박무훈은 꾸벅 고개를 숙인 다음 눈을 들어 남자를 살폈다. 누가 소개해주지 않더라도 이 사람이 바로 선도물산의 대표인 사만국임을 알 수 있었다.

박무훈은 사만국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디에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분명히 처음 보는 얼굴이건만 굉장히 낯이 익었다. 남자가 봐도 꽤 잘생긴 얼굴이라 기억 못 할 리가 없건만 어디에서 보았는지 아리송했다. 어쩌면 티비에서 보았으려나.

사만국이 박무훈의 표정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순간 표정에 금이 갔다.

“이봐! 날 본 적 있어?”

화들짝 놀란 박무훈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상대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로 물어왔다는 것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하기야 큰 기업의 대표니 이삿짐센터 직원이 어떻게 보일지 뻔하지만.

“아뇨.”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에이, 모르겠군.”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로 털어버린 사만국이 금방 이사 이야기로 넘어갔다.

“내일까지 예정대로 모두 끝나겠지?”

“예, 그렇습니다.”

“좋아, 깨트리거나 분실하는 것 없이 잘 해주도록. 특히 여기에 있는 것은 무척 중요하니까.”

한차례 사무실을 돌고 난 사만국이 박무훈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했다.

사만국은 수행비서와 함께 다른 사무실로 사라졌다.

왠지 모르게 마음을 졸이고 있던 박무훈은 그제야 어깨를 폈다.

“사장이라서 그런가? 어째 풍기는 위세가 대단하네.”

다시 작업을 시작하려던 박무훈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설마…….”

그는 놀란 표정으로 사만국이 사라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만국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이제야 어디에서 보았는지 기억났다.

바로 무림 세계에서. 선도물산 대표 사만국의 외모는 놀랍게도 마교의 소교주인 사마극과 흡사했다. 엄밀히 부분 부분을 따지면 다른 얼굴이었으나 전체적인 인상이 비슷했고, 풍기는 기질은 더더욱 유사했다.

“사만국…… 사마극…….”

성씨는 다르다. 사씨와 사마씨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그는 어젯밤에 묻고 들었던 내용이 다시 떠올랐다.

- 혹시 그 무림 세계에서 현대와 그곳을 오가는 사람이 저뿐입니까?

- GOD 작가 :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 있습니까?

- GOD 작가 :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설마 사만국 회장도 나처럼 무림 세계를 오가는 사람일까?”

잠시나마 의심이 일었으나, 그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너무 우연이지. 이름이 비슷하다고 그렇게 간주하는 것은 더더욱 이상하잖아.

그때 잠시 자리를 피했던 백 대리가 다시 돌아왔다.

“사만국 대표는 갔어요?”

“예, 갔는데요. 근데 왜 피하셨어요?”

“서로 얼굴을 알아서요.”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 듯 백 대리가 하던 일을 계속했다.

박무훈도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만국을 마약 혐의로 조사하고 이 회사 또한 압수 수색을 했었다니까 마주칠 기회가 없었을 리 없다.

“혹시…… 저건 어떻게 하죠?”

박무훈은 사장실 구석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금고를 가리켰다.

“그냥 옮겨야죠.”

“안에 내용물은 안 보고요?”

“저들이 열어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죠. 지금 수색영장도 없고. 방법이 없어요. 예전에 압수 수색했었을 때도 별것 없었고요.”

그가 보건대 그녀는 금고 뒤지기를 포기하고 있는 듯했다. 당연히 이곳 직원이 금고를 열어줄 리도 없다.

“그래서 포기?”

“어쩔 수 없잖아요.”

너무나 쉽게 대답하는 그녀에게 박무훈이 얘기했다.

“원하시면 제가 열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백 대리가 그를 힐끔 봤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열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아니지만 가능해요.”

“자칫 발각되면 큰일이라…….”

금고를 열었다가 저들에게 걸리면 변명할 말이 없어진다. 수사를 더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잠시나마 고민하던 그녀가 그와 시선을 마주치며 진의를 확인했다.

박무훈이 그녀의 곁으로 가서 귓속말했다.

“밥 한 끼 사실래요?”

“좋아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표정을 전혀 볼 수 없었으나 흔쾌히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예전에 경험했던 사건 하나를 떠올렸다.

그때도 심부름센터에 금고를 열 수 있느냐는 의뢰가 들어왔었다. 놀랍게도 직원 이성준이 해결했었다. 그는 과거에 열쇠공 밑에서 일하다가 금고 여는 법을 배운 적이 있다고 했다. 당연히 심부름센터 직원으로도 유용하게 써먹는 기술이다.

“아까 점심때 보니 선도물산 직원들이 같이 밥 먹으러 가더라고요. 저녁때 저들이 자리를 비우면 그때 시도해보기로 하죠.”

박무훈은 그녀와 대충 계획을 짜고는 이성준에게 연락했다.

저녁이 되자 선도물산 직원이 와서 일의 진행을 점검했다.

“언제까지 할 겁니까?”

“오늘 중으로 짐을 다 싸서 실어야 내일 새 사무실로 옮기거든요. 흠, 아홉 시? 그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어휴, 여기가 제일 늦군.”

늦게 퇴근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직원이 노골적으로 투덜댔다. 녀석이 동료 직원을 붙잡으며 말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당신들도 밥 먹고 하슈.”

두 직원이 사라졌다.

박무훈은 동료 이성준을 불렀다.

미리 언질해둔 대로 이성준이 총알처럼 달려왔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 이성준의 실력은 예상외로 좋았다.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금고가 덜커덕 열렸다.

박무훈은 백 대리와 함께 금고 내부를 뒤졌다. 각종 실물 채권과 어음, 거기에 장부와 서류 뭉치까지. 예상외로 잡다한 것이 많이 들어있었다.

“얼른 찍어요.”

백 대리가 서류를 일부 확인한 다음 바로 그에게 넘겼다. 박무훈은 정신없이 서류를 넘기면서 휴대폰에 담았다. 그동안 이성준이 직원이 돌아오는지 망을 봤다.

안타깝게도 모두 끝내기 전에 그들은 금고를 다시 닫아야 했다. 그래도 그만큼 확보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열 시가 되어서야 짐을 내리고 트럭에 싣는 것까지 완료할 수 있었다.

내일은 이사 간 새 사옥 사무실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선도물산 직원과 헤어졌다.

그들은 아침에 타고 갔던 카니발 앞에서 다시 모였다.

검찰 측 세 사람을 대표해서 아침에 설명했던 김상철 수사관이 감사를 표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하루 더 고생하시면 됩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새 사무실 앞에서 뵙지요.”

어째 저녁도 안 먹고 파하는 분위기였다.

박무훈을 보고 백 대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밥은 일 끝나고 하기로 해요.”

사주는 사람이 다음이라니 어쩔 수 없었다.

심부름센터 직원들만 따로 모여 후딱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내일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려면 술자리는 어려웠다.

집에 돌아온 박무훈은 그대로 침대에 뻗었다.

온종일 긴장한 데다 무거운 박스를 나르느라 힘을 많이 써서 꽤 힘들었다.

곧바로 자려다가 그는 오늘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그의 휴대폰은 용량이 많지 않아 자칫하면 내일 일하는 중에 용량 부족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다.

 

***

 

다음날은 새 사무실에서 이삿짐을 푸는 작업을 했다.

산뜻하게 단장한 사무실은 다소 과하다고 생각될 만큼 멋지게 장식되어 있었다. 특히 사장실은 이전 사무실보다 몇 배나 더 호화로웠다.

어차피 박무훈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박스에서 푼 짐을 정리하면서 어제 끝내지 못한 작업을 계속했다.

순식간에 사무실 가구가 정리되고 이전 사무실과 똑같이 자리를 잡아나가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오늘도 직원의 감시가 심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사만국 대표는 나타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그들은 모든 정리를 끝낼 수 있었다. 다른 층에서도 모두 일이 끝난 모양이었다.

특별히 문제 될 일은 발생하지 않고 이사가 마무리됐다.

간단한 회식이 끝나고 모두가 헤어졌다. 심부름센터에서 찍은 사진은 다음날 한꺼번에 모아서 전달하기로 했다.

“밥 얻어먹기는 틀렸네.”

회식 때문에 백 대리와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된 박무훈은 투덜거리며 지하철역을 향했다.

그가 기운 빠진 기분으로 걷고 있자니 뒤에서 누가 쿡쿡 찔렀다.

“제가 밥 사기로 하지 않았던가요?”

“밥은 이미 먹었잖아요.”

박무훈은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 백 대리를 돌아봤다.

순간 그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곳에는 그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미인이 서 있었다. 계속 야구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보지 못했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방송국에서 보았던 탤런트가 나타난 것 같았다.

“왜 그래요?”

“아, 아닙니다.”

박무훈은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난생처음 보는 미인이라 놀란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그를 더 당황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바로 백 대리의 외모가 천향무후 백단영과 어딘지 모르게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자, 가죠. 밥을 먹었으니 제가 맥주를 한잔 살게요.”

백 대리가 그에게 부근에 있는 작은 치킨집을 가리켰다.

박무훈은 자석에 끌린 듯 그녀를 따라가다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백 대리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요? 서울중앙지검의 백다연 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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